이북도서 「선군태양 김정일장군」  (4)중에서

새 세기 선군조선의 하늘가에 《아리랑》의 노래소리가 힘있게 울려퍼졌다.

2005년 8월 16일 평양의 5월1일경기장에서는 당창건 60돐, 조국해방 60돐을 맞으며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이 우리 인민들과 세계인민들의 커다란 기대와 관심속에 성황리에 개막되였다.

우리 혁명의 근 80년사와 우리 민족의 100여년현대사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직접적인 발기와 정력적인 지도에 의하여 창조된 선군시대의 기념비적걸작이다.

10여만명이 출연하여 하나와 같이 움직이는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은 공연 첫시작부터 우리 인민들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폭풍같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수도시민들뿐아니라 나라의 방방곡곡에서 남녀로소를 막론하고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보려고 기차와 뻐스, 자동차를 타고 평양으로 달려왔다. 아시아와 유럽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와 지역들에서도 수많은 관람객들이 앞을 다투어 찾아왔다.

온 세계가 평양을 진원지로 하는 《아리랑열풍》에 휩싸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리 인민들만이 아닌 남녘동포들도 평양으로 달려와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관람하도록 하심으로써 《아리랑》이 《우리 민족끼리》시대에 민족이 함께 부르는 《아리랑》으로 되도록 하시였다.

나라와 민족의 행복을 지키시려 끊임없는 전선시찰의 길을 이어가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느날 당중앙위원회 한 책임일군을 전화로 찾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그 일군에게 남녘동포들에게 《아리랑》공연을 보여줄데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이번에 제16차 북남상급회담에 참가하기 위해 평양에 왔던 남측당국대표단 성원들이 《아리랑》공연을 다 보고갔고 남측 《통일부 장관》도 《아리랑》공연을 보는것을 허락하겠다고 한것만큼 조직사업을 잘하여 다 데려다 보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순간 그 일군은 커다란 흥분과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일군이 흥분으로 설레이는 마음을 다잡고있는데 장군님의 말씀은 계속되였다.

장군님께서는 《그들이 오면 우리가 대우를 잘해주면서 구경을 시켜주고 하루밤 재워서 보내면 다 좋아할것입니다.》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6.15통일시대가 열린 때로부터 적지 않은 남녘동포들이 평양을 다녀갔지만 짧은 기간에 수많은 사람들을 받아들인 례는 일찌기 없었다. 공연관람을 위해 대규모집단이 들어온 일은 더우기 없었다.

장군님의 이 말씀에는 북남관계발전에서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데 맞게 선군으로 조국땅우에 사회주의강국을 건설해나가고있는 우리 사회의 일심단결된 모습과 선군이 있어 이 땅의 안전과 평화가 지켜지고 우리 민족의 래일도 있다는것을 남녘동포들에게 똑바로 인식시킴으로써 각이한 사상과 정견, 신앙을 가진 그들이 높은 민족적자부심을 가지고 조국통일을 위한 거족적인 투쟁에 힘있게 떨쳐나서도록 하시려는 깊은 뜻이 담겨져있었다. 《아리랑》공연을 보고싶어하는 남녘인민들의 절절한 소망을 헤아려보신 민족의 어버이의 한없이 뜨거운 사랑이였다.

남녘동포들의 《아리랑》관람길을 열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 사업이 성과적으로 진행되도록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남녘동포들의 《아리랑》공연관람단을 《평양참관단》으로 부르도록 해주시고 필요한 대책들도 세우도록 세심히 가르쳐주시였다.

그뿐만 아니였다. 남녘동포들을 받아들이는 통로도 정해주시고 체류기일, 참관장소도 확정해주시였으며 초청영접안내에서 나서는 크고작은 문제들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아리랑》을 관람하기 위해 평양에 오는 남녘동포들을 숙식시키기로 했던 양각도국제호텔에 당창건 60돐경축행사에 참가할 국내대표들을 들이는 문제가 제기되였을 때였다.

이때 해당 부문의 일군들은 당창건 60돐경축행사를 보장해야 하는 조건에서 이것은 할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남측관람자들을 초청하는 사업을 주관하던 남측의 여러 단체들에 숙소관계로 10월 5일경부터 12일까지는 《아리랑》공연관람이 어려울것 같으므로 평양참관단일정을 조절해줄것을 통지했다.

그러자 그들은 당창건 60돐경축행사기간에 평양에 오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특히 많다고, 자기들은 양각도국제호텔 1개 방에 4명이나 6명이 들어도 좋고 복도를 침실로 해서 한개 층에 수십명씩 숙식하거나 5월1일경기장에서 천막을 치고 자도 좋다고 하면서 평양참관을 계속해줄것을 거듭 간청했다.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장군님께서는 양각도국제호텔에 들기로 예정되였던 당창건 60돐경축행사 국내대표들을 모두 다른 려관에 옮기고 양각도국제호텔과 보통강호텔을 통채로 남측참관단이 리용하도록 하는 은정깊은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이렇듯 경애하는 장군님의 세심한 관심과 은정어린 조치에 의하여 남녘동포들의 《아리랑》관람조직사업이 성과적으로 추진되였으며 2005년 9월 26일부터 하루에 수백명의 남녘동포들이 평양에 와서 1박2일간에 걸쳐 《아리랑》공연을 관람하고 여러곳을 참관하게 되였다.

각계각층의 광범한 남녘동포들은 5년전 력사적인 6.15북남공동선언채택으로 조국통일의 새로운 전환적국면을 열어주신 장군님께서 오늘은 《아리랑》으로 화해와 단합의 화원을 온 남녘, 온 삼천리에 펼쳐주시였다고 하면서 앞을 다투어 평양방문의 길에 올랐다. 비행장에 내린 참관단성원들은 한결같이 평양방문이 실현된 꿈같은 현실에 흥분과 격정을 금치 못해하였다. 참관단의 한 성원은 우리는 평양에 《아리랑》을 관람하러 떠나기 전에 3일동안 너무 기뻐 잠을 자지 못했다, 특히 하층국민들속에서 너도나도 평양으로 오겠다고 나서고있는데 이제 《아리랑》대잔치판이 펼쳐질것 같다, 5년전 6.15처럼 김정일국방위원장님께서 《아리랑》이라는 폭죽을 터뜨려 온 남녘땅을 빨갛게 물들여놓았다, 이남민중의 마음을 순간에 련북으로 돌려놓으신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은 참으로 뛰여난분이시라고 흥분에 겨워 이야기하였다.

평양에 온 남녘동포들의 감동과 흥분은 《아리랑》공연관람에서 최절정을 이루었다.

《아리랑》공연이 진행되는 5월1일경기장은 동포애의 뜨거운 정으로 차고넘쳤다. 우리 인민들이 《우리는-》 하고 구호를 웨치면 남녘동포들은 《하나다!》라고 화답하고 뒤이어 또다시 《조국-》 하면 《통일》 하고 화답해나섰다. 서로 손을 흔들어주고 울고 웃으며 손을 맞잡는 모습은 우리 민족의 통일념원이 얼마나 뜨거운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관람한 남녘동포들은 그 공연이 꿈아닌 현실이라는데 대하여 놀라움을 금치 못해하였다.

원래 남측은 평양을 방문하는 참관단성원들에게 주는 그 무슨 《강습》이라는데서 《아리랑》공연관람시 북을 너무 춰주는 말을 하지 말라, 공연을 보면서 절대로 일어서서 박수를 치지 말라, 배경대에 영상이 모셔질 때는 사진을 찍지 말라 등 구체적인 행동사항을 강조해서 들여보냈다. 그러나 남녘관람자들에게는 그것이 안중에도 없었다.

《아리랑》공연을 본 남녘동포들은 공연에 매혹되여 저도 모르게 일어나 박수를 치며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거대한 금강석》, 《민족의 저력과 미래에 대한 상징》, 《북체제의 위력함, 북사회에 관통되여있는 강한 정신력을 1시간 20분동안에 충분히 읽었다.》, 《눈앞이 아찔하고 마음이 흥분되여 하늘나라 천궁에 온것으로 착각을 일으키는 공연》이라고 감탄을 터뜨렸다.

공연관람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는 뻐스안에서도 그들은 소감발표회를 열고 공연이 너무 감동적이여서 눈물없이는 볼수 없었다고 하면서 남쪽에 돌아가 북녘동포들의 마음을 널리 전하고 통일운동을 더욱 힘있게 벌려나갈 결의들을 다지였다.

남조선언론들도 《<아리랑잔치> 분단을 잊었다》, 《화려한 교예, 흥겨운 연주 <강성한 나라>열망 <꿈틀>》, 《지구 최고의 마술, 아리랑》 등의 제목들을 달고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에 대한 소개에 지면을 아끼지 않았다.

《화려한 공중교예나 박력있는 취주악단의 연주, 아름다운 률동이나 활력있는 체조 등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드문 장관이 공연 내내 펼쳐졌다.》(《한겨레》 2005. 10. 5), 《도저히 리해할수 없었다. 남한에서는 그렇게 비판의 대상이 되여온 획일성과 전체성이 왜 북의 공연을 관람할 때 민족의 힘으로 뒤바뀌는가.》(《주간조선》 2005. 10. 17), 《수만명의 평양시내 학생들이 펼치는 정교한 카드섹션(배경대)과 우렁찬 함성, 현란하고 아찔한 교예, 최첨단영상과 레이자빛으로 뿜어내는 아름다운 영상은 지구상에서 어느 누구도 흉내낼수 없는 종합마술처럼 비친다.》(《한겨레 21》 2005. 10. 18), 《…해방 60돐에 맞춰 8월 16일 시작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답게 <아리랑>은 웅장한 규모와 일사불란함으로 관중을 압도했다. 특히 외국관광객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중앙일보》 2005. 10. 5), 《집단주의적가치를 신봉하고 국가를 중심으로 예술사업이 펼쳐지는 북체제의 특성에서 그러한 대규모의 공연형식은 성립가능하다고 볼수 있다.》(《한겨레》 2005. 10. 5)…

《아리랑열풍》은 오래동안 반공사상에 물젖어 우리에 대해 그릇되게 생각하던 사람들까지 평양으로 떠밀었으며 그들의 의식변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평양에 들어와 《아리랑》공연을 본 사람들이 그에 대한 선전을 얼마나 요란히 했는지 지난 시기 우리에 대한 적대감을 품고있던 사람들도 평양에 오지 못해 안달이 나서 몰래라도 오려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열심히 《공작》까지 하였다. 그러다나니 평양참관단에는 우익보수인물들도 적지 않게 망라되였으며 지어 《정보원》에서 오래동안 일한 사람도 있었다.

이에 대하여 남조선의 어느 한 운동단체의 관계자는 당국이 북으로 달리는 민심에 제동을 걸어보았지만 저들도 《아리랑》에 마음이 끌리는것을 어쩔수 없어 《정보원》에서는 오래동안 일한 공로있는 사람들만 골라 표창으로 《아리랑》공연관람을 보낸다고, 이제 조금만 있으면 《정보원》만이 아니라 《국회의원》들도 떼를 지어 들어오고 《대통령》까지 변성명하고 들어올것 같다고 하였다.

뿌리깊은 반북적대의식에 사로잡혀 북에서 하는 일을 덮어놓고 비난해오던 사람들도 공연의 황홀함에 심취되여 저도 모르는 사이에 박수를 치고 노래를 따라부르는 등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들은 1시간 20분동안 공연을 관람하고는 이런 세계적인 작품을 결코 그 어떤 강제나 돈으로는 해낼수 없다고, 북이 이처럼 강대한줄은 몰랐다고, 통일되면 우리 나라가 단연 우수하고 위대한 최강국으로 될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였다고 속생각을 터놓았다.

전라북도에서는 《도지사》를 비롯하여 도안의 《시장》, 《의회의장》, 《군수》 등 50여명의 공무원들이 집단적으로 와서 공연을 관람하였는데 공연과정에 그들은 우리 출연자들에게 열광적인 박수를 보내면서 《이밤이야말로  일생에 한번밖에 없는 행운의 기회》, 《황금을 주고도 보지 못할 천궁의 공연》, 《배경대에 눈 두개, 하늘에 눈 두개를 걸어놓고 보아야 할 공연》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공연관람이 끝난 후에도 《아리랑》공연에서 받아안은 그들의 감동과 흥분은 좀처럼 가라앉을줄 몰랐다.

전라북도《지사》는 번영과 행복의 상징으로, 《꽃가운데 왕자》로 불리운다는 목단꽃을 함겉면에 정성껏 수놓은 《자수박이보물함》을 경애하는 장군님께 드려달라고 우리 일군에게 정중히 전달하였다.

《아리랑》공연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민족분렬 60년간 반목과 불신으로 얼어붙었던 마음들을 신비한 예술의 힘, 따뜻한 동포애로 녹여내는 단합의 1시간 20분이였다.

남녘동포들은 경치 아름다운 릉라도의 5월1일경기장에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보았을뿐아니라 만경대고향집, 주체사상탑, 개선문, 만경대학생소년궁전, 국제친선전람관, 김일성김정일화전시관, 만수대창작사, 서해갑문, 동명왕릉 등 여러곳들을 참관하면서 인민대중중심의 사회, 전체 인민이 자기 령도자의 두리에 굳게 뭉친 일심단결의 사회, 주체성과 민족성이 살아숨쉬고 선군의 위력으로 세계에 존엄떨치는 사회, 온 나라가 한가정이 되여 서로 돕고 이끌어주는 우리 식 사회주의사회의 불패의 위력에 대하여 더 잘 알게 되였다.

《아리랑》축전기간에는 분렬 60년이래 평양산원에서 첫 남녘아기가 태여나는 반갑고도 희한한 일이 생겨나 온 겨레를 기쁘게 하였다.

범청학련 남측본부 《한총련》대표로 1998년에 평양을 방문한바 있는 남조선의 황선(《통일련대》 대변인)녀성이 10월 10일 저녁 공연관람도중 갑자기 오는 진통으로 하여 평양산원에 구급으로 입원하게 되였다.

원래 그는 해산예정일이 이미 지난 몸이였다. 그러나 그는 시어머니까지 모시고 《아리랑》공연관람길에 올랐다.

그는 입원한지 1시간도 못되여 밤 10시에 딸(몸무게 3.36Kg)을 순산하였다. 평양산원개원이래 처음으로 남조선녀성이 옥동녀를 낳았다는 소식은 삽시에 온 나라에 퍼졌다. 온 겨레가 평양에서 첫 고고성을 울린 통일동이의 미래를 축복하였다.

남녘동포들에게도 이 소식이 전해졌다. 평시에 《아리랑》공연에 대해 침묵하던 남조선의 보수언론들까지 《평양에서 출산한 최초의 남한녀성》, 《황씨가 통일동이를 낳게 되였다》 등으로 이 소식을 크게 보도하였다.

황선녀성은 입원해있는 기간 무상치료제혜택으로 산후치료는 물론 종합적인 의료봉사를 받았으며 우리의 모든 산모들과 꼭같이 산꿀과 귀중한 보약제, 영양제들을 공급받았다.

산모의 건강상태와 아기의 발육상태는 대단히 좋았다.

10월 25일 아기와 함께 건강한 몸으로 퇴원하는 황선녀성은 평양산원에서 보낸 보름동안의 나날들을 감회깊이 돌이켜보며 감격과 기쁨을 금치 못해하였다.

평양산원 의료일군들의 뜨거운 환송속에 산원문을 나서면서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뜻밖의 행운으로 평양산원에서 몸을 풀고 귀한 통일동이를 받아안게 되였다. 꿈만 같은 오늘의 이 경사를 안아온 6.15에 감사를 드린다. 6.15는 민족통일의 현실도 반드시 안아올것이다. 나는 이것을 확신한다. 그리고 동포애의 정으로 저와 딸애를 극진히 보살펴주고 돌보아준 의사선생님들과 간호원들에게 저의 진심으로 되는 인사를 드린다.》

남조선에 나간 후 황선부부는 아기에게 우리 겨레는 하나라는 뜻에서 《윤겨레》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황선녀성이 평양에 와서 아기를 낳은 소식이 전해진 후 남조선에서는 이것이 큰 화제가 되였다.

이처럼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은 평양을 방문한 남녘동포들속에서 폭풍같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온 남녘땅을 《아리랑열풍》, 《김정일숭배열풍》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였다.

남조선의 극우보수세력들은 날로 확산되는 《아리랑열풍》을 잠재우고 남조선인민들의 북행길을 어떻게 하나 차단해보려고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그들은 《아리랑》공연은 《체제선전용》이라느니 뭐니 하고 비난해나섰고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들을 내세워 북의 《아리랑》공연관람비가 엄청나게 비싸다느니, 남측의 각계 단체들이 북에 막대한 자금을 섬겨바친다느니 하는 허튼소리 등으로 악선전을 하였다. 그러면서 10월 17일 이후에는 《아리랑》참관을 허용할수 없다고 이 사업을 주선하는 단체들에 로골적으로 압력을 가하였다.

지어 《국가안보의 마지막보루》라고 일컫는 남조선군사병들이 《아리랑》공연을 록화한것을 보려고 너도나도 구실을 붙여 휴가를 가는 바람이 불자 이런 군기문란은 전무후무한것이라고 아우성을 치면서 《기무사》를 군기조사에 내몰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아리랑열풍》은 남조선의 우익보수세력의 방해책동을 산산이 짓부셔버리며 온 남녘땅에 더욱 세차게 불어쳤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날로 높아가는 남녘동포들의 《아리랑》관람열망을 헤아려보시고 10월말까지 계속 남녘동포들을 평양으로 받아들이도록 해주시고 그 방도까지 하나하나 밝혀주시였다. 그리고 남조선에서 통일운동에 한생을 바쳐 싸워온 비전향장기수들을 비롯한 통일운동가들을 《아리랑》공연관람에 초청하도록 깊은 관심을 거듭 돌려주시였다.

장군님의 이처럼 비범한 예지와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10월 17일 이후에도 수많은 남녘동포들이 《아리랑》공연을 계속 관람했으며 10월말까지의 한달남짓한 기간에 무려 8,500여명의 남녘동포들이 평양에 들어와 《아리랑》공연을 관람하는 류례없는 통일잔치마당이 펼쳐질수 있었다.

참으로 온 남녘땅을 휘몰아친 2005년의 《아리랑열풍》은 심오한 철학적내용에 황홀경의 극치를 이룬 대서사시적예술화폭으로 남녘겨레들을 반세기에 걸친 반북악몽에서 흔들어 깨우고 북남겨레가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여준 통일열풍, 《제2의 6.15열풍》, 《김정일숭배열풍》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