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태양 김정일장군」(3) 중에서

온 겨레가 기쁨과 환희속에 맞은 6.15북남공동선언이 있어 이 땅우에는 자주통일의 새시대가 활짝 열리게 되였다. 북남관계는 대화없던 랭전의 시대로부터 대화있는 화해의 시대, 대결의 시대로부터 협력과 교류의 시대에 들어서고있었다.

력사적인 북남공동선언을 탄생시키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북과 남사이의 비방중상을 중지함으로써 6.15공동선언의 요구에 맞게 북남관계를 시급히 개선하고 조국통일위업실현의 새로운 전환기를 열어놓기 위한 사업을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시였다.

지난 시기 북과 남사이에는 통일을 위해 큰걸음을 내디딜수 있는 좋은 합의들이 이룩되군 하였다. 그러나 남측이 돌아앉아 우리를 비방중상하고 화해분위기를 흐리게 하여 그 합의가 실행에로까지 이어지지 못하게 되였다. 력사적인 7.4북남공동성명이 나온 직후에도 북과 남은 서로 비방중상을 중단할데 대한 문제를 합의하였지만 남측이 그것을 휴지장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북남관계를 또다시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것을 누구보다 가슴아프게 여겨오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번만은 그렇게 되여서는 안된다는 확고한 결심을 안으시고 몸소 그 실현을 앞장에서 이끄시여 북남쌍방사이의 비방중상중지문제를 해결하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오늘 북과 남사이의 관계를 불신과 대결의 관계로부터 신뢰와 화해의 관계로 전환시키는것은 민족적단합과 조국통일을 실현하는데서 절실한 요구로 나서고있습니다.》

주체89(2000)년 6월 15일이였다.

남조선당국자일행이 위대한 장군님의 비범한 예지와 결단, 숭고한 아량에 의하여 력사적인 북남공동선언을 발표하고 성과적인 평양방문길에서 돌아가게 된 날이였다.

남측일행을 위하여 국방위원회명의로 오찬을 차리시고 몸소 참석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남측성원들에게 나는 오늘 이 자리에 남쪽의 여러 《장관》들도 앉아계시기때문에 내가 근심하고있는 문제를 하나 이야기하려고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누구라없이 《금의환향》하게 되였다고 즐거움에 한껏 부풀어있던 남측일행은 순간 긴장해졌다.

그러는 그들에게 장군님께서는 이제 10일 있으면 우리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난 6월 25일인데 이번에는 다른 해와 달라서 50돐이다, 내가 알기에는 남쪽에서 많은 행사들을 벌리자고 하고 또 미국에서도 행사를 크게 하려고 한다고 하는데 공동선언을 채택하고 10일 있다가 6.25전쟁문제를 다시 거론하면서 우리를 자극하면 공동선언에 수표한것이 무효로 된다, 남쪽에서 약속을 어기면 되겠는가고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우리는 6.25에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하시였다.

《6.25반공행사》문제를 북남공동선언에 대한 남측의 립장을 판별하는 시금석으로 보시겠다는 말씀이였다.

해마다 6.25가 되면 남조선에서는 우리를 반대하는 반공놀음들이 년례행사처럼 벌어져왔었다. 이 반공놀음들은 당국이 주도하는 관제행사로서 남조선의 력대 통치배들은 그것을 남조선인민들속에 우리에 대한 적대감을 고취시키고 《승공통일》, 《흡수통일》의 허황한 꿈을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계기로 악용하였다. 특히 남조선당국은 한해전부터 미국과 함께 6.25전쟁발발 50년이 되는 2000년에 《6.25반공행사》를 크게 벌리기로 하고 숱한 자금을 들여 준비해왔었다. 그들은 남조선과 미국에서 대규모적인 공동행사를 벌려놓기로 합의보고 그 준비를 해왔으며 행사의 성격도 지난 시기와 같이 반공대결분위기를 고취하는데 두려고 하였다.

장군님의 정통을 찌르는 말씀에 남조선당국자는 와뜰 놀라며 그렇게 되여서는 안된다고 말씀올렸다. 남측성원들모두가 긴장해있는데 장군님께서는 가벼운 미소를 띠우시고 우렁우렁하신 목소리로 이번에 내가 한번 《청와대》나 《문화관광부》, 《통일부》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조종해나가는가 하는 실력을 시험쳐보겠다고, 그것을 조종하지 못하면 《장관》자리들을 다 내놓게 하고 내가 직접 서울에 나가 《장관》을 겸임하겠다고 하시면서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잔뜩 긴장해있던 남측성원들은 장군님의 해학적인 말씀에 웃음보를 터뜨리면서도 많은 가책을 받은듯 그렇게는 안될것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자기들이 그런 문제들에서 서로 협력해나가겠다고 거듭 말씀드렸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다시금 남조선당국자에게 이번 6.25때 남측에서 의연히 반공소동을 일으키며 우리를 자극하면 우리는 그것을 북남공동선언에 대한 공공연한 도전으로 인정할것이라고 하시면서 이것을 강조하는것은 결코 남조선의 야당이나 극우익보수세력들의 반공모략소동이 두려워 그러는것이 아니라 북남관계개선과 나라의 통일을 열망하는 온 민족과 세상사람들앞에 희망과 신심, 락관을 안겨준 귀중한 북남공동선언의 존엄과 가치가 희석되거나 손상되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이라고 강조하시였다.

남조선당국자는 평양상봉의 성과를 누구보다 귀중히 여기시여 하시는 장군님의 가르치심에 깊이 공감하여 《6.25반공행사》문제를 잘 조종해나갈데 대하여 거듭 약속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전연에서 쌍방이 해오던 비방방송도 중지하도록 하심으로써 공동선언리행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놓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15일에 있은 오찬때 남측성원들에게 군사분계선에서 서로 상대방을 비방하는 방송을 하고있는데 공동선언의 내용에는 없지만 우리가 모범을 보여 그런 방송을 하지 않겠으니 남에서도 그만두는것이 어떤가고 하시였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서로의 대결관념을 없애는데서 군대를 잘 관리하는것이 중요하며 그러자면 군대를 나라와 민족의 번영을 위한 일을 하게 하여야 한다고 하시였다.

북남사이의 비방중상중지는 전연에서부터 해야 한다는 가르치심이였다.

장군님께서는 그날로 해당 부문에 전연에서 남측에 대한 일체 방송을 중지할데 대하여 명령하시였다.

평양상봉의 성과에 토대하여 통일의 활로를 열어나가시기 위하여 바치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정력적인 령도가 있어 남조선에서는 일찌기 없었던 놀라운 일들이 련이어 일어나게 되였다.

남조선당국자는 서울에 돌아가자마자 전연에서 우리에 대한 비방중상방송을 중지하도록 군부에 지령을 내렸다. 하여 7.4북남공동성명발표이후 처음으로 남조선《국방부》는 평양상봉이 끝난 다음날인 6월 16일 군사분계선에서 진행해오던 대북비난방송들을 즉시 중지하도록 하였다. 또한 6월 20일 《국방부지침》을 발표하여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한 호칭은 공식직함을 붙여 《김정일국방위원장》으로 하도록 하였고 우리에 대한 표현도 고치도록 하였다.

남조선당국은 6월 19일부터 23일사이에만도 3차례나 남조선의 주요 언론사 사장들과 주필, 편집국장, 보도부장 등 언론계의 중진인물들을 모두 《청와대》에 불러들여 조찬, 오찬, 만찬을 차려주면서 대북비난방송을 자제해줄것을 요청하였다. 남조선언론들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평양을 방문한 남측일행에게 통일의 분위기를 마련하자면 북남사이의 비난전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고 하면서 남측도 북의 모범을 따라 대북비난선전을 중지해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해나섰으며 실지 그러한 조치들을 취하였다. 《KBS》, 《MBC》, 《SBS》 등 방송들뿐아니라 《동아일보》, 《한겨레》, 《경향신문》을 비롯한 신문들은 우리에 대한 비난선전을 중지하고 《강성대국이란 무엇인가》, 《선군정치방식이란 무엇인가》 등의 표제를 달고 우리를 객관적으로 소개보도하는데 전례없는 열의를 보였다.

남조선당국은 《6.25전쟁기념행사》에 대해서도 그 규모를 대폭 줄이고 내용도 《평화공존》으로 바꾸었다. 남조선의 극우보수단체들도 내외정세가 급격히 변화되고 종전처럼 반공일변도로 나가다가는 더욱 고립배격당할수 있다는 위기감으로부터 당국과는 별도로 준비해온 반공행사의 성격을 부랴부랴 수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남조선에서 우리에 대한 비방중상이 중지되고 인민들의 반공반북의식에서 일대 변화가 일어나자 남조선의 우익보수세력들은 불안과 공포에 떨며 갈팡질팡하였다. 우익세력의 비명을 두고 잡지 《월간조선》(2000년 7월호)은 력사적인 평양상봉을 통해 《북측은 김정일위원장 중심체제의 강철같은 결속을 과시한 반면 남측에서는 대북정책을 둘러싼 보수와 진보세력간의 심각한 갈등구조를 점화시키는 새로운 계기가 마련되였다.》고 하면서 북측은 《반세기에 걸쳐 영욕이 점철된 가운데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해준 남측의 반공체제를 일격에 난파선으로 만들어버렸다.》고 썼다.

전연에서부터 우리에 대한 비방중상이 사라지고 대규모반공행사가 부랴부랴 취소되였으며 남조선인민들의 반공반북의식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게 된것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지니신 선군령장의 위인적풍모와 그이께서 펼치시는 백승의 선군정치가 안아온 력사의 기적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북남관계를 되돌려세우려는 내외의 반통일세력들의 책동을 민족의 드높은 통일열기로 짓뭉개버리고 온 겨레가 통일성업실현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서도록 깊은 관심을 돌려주시였다.

력사적인 평양상봉과 6.15북남공동선언발표를 계기로 삼천리강산이 통일열기로 달아오르고있을 때 미국과 남조선의 반통일세력은 북남관계개선과 조국통일의 앞길에 빗장을 지르려고 책동하였다.

미국은 북남관계개선이 지내 빠르다느니,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느니 하면서 남조선당국에 압력을 가하고 남조선의 극우보수세력과 군부를 사촉하여 북남관계개선의 좋은 분위기를 흐려놓기 시작하였다.

2000년 10월말부터 11월초까지 미국과 남조선군부는 대규모의 《독수리》합동군사연습을 강행해나섰으며 그 얼마후에는 전투함선들을 서해의 우리측 령해깊이 침투시켜 1년전 서해사건을 방불케 하는 도발행위를 감행하였다.

더우기 2000년 12월 4일 남조선《국방부》는 우리를 《주적》으로 규정한 《2000국방백서》를 공식발표하였다. 군부호전분자들은 이 《국방백서》에서 있지도 않는 북의 《전력증강》이니, 《지속적인 침투활동추진》이니, 《군사적위협의 존재》이니 하고 우리를 걸고들면서 북의 《현실적군사위협》이 해소될 때까지 이른바 《주적관념》을 유지할것이라고 떠벌였다.

남조선의 《통일부》도 그 무슨 《여론조사》놀음을 벌려놓고 우리의 존엄높은 정치체제를 걸고드는 엄중한 도발을 서슴지 않았다.

미제와 그와 야합한 남조선의 반통일분자들의 이러한 책동을 짓부셔버리지 않으면 6.15북남공동선언의 성과적인 리행을 기대할수 없는것은 물론이고 북남관계가 대결원점으로 되돌아가게 할수 있었다.

6.15북남공동선언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이러한 도발행위들에 온 겨레는 분노의 목소리를 높였다.

12월 10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대변인성명을 발표하여 남조선당국이 동족사이에 극도의 적대감을 고취하는 《주적론》을 또다시 들고나오고 우리의 정치체제까지 걸고드는것은 명백히 6.15공동선언에 대한 배신이며 북남관계를 되돌려세우려는 반통일행위라고 단호히 규탄하였다. 12월 12일 평양에서 진행된 제4차 북남상급회담에서도 우리측은 남측군부호전세력이 들고나온 《주적론》을 되게 문제시하면서 남조선당국이 온 민족앞에 확약한 6.15북남공동선언의 정신을 귀중히 여기고 민족의 화해와 단합, 나라의 통일을 위한 립장과 자세로 나올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우리의 사리정연한 주장앞에 남측은 머리를 숙이고 사죄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렇듯 정력적인 령도와 선군의 위력에 의해 6.15북남공동선언리행에서 큰 전진이 이룩됨으로써 반세기이상 대결과 긴장, 불신만이 존재하던 북과 남사이에는 화해와 협력의 새시대가 도래하고 통일의 앞길에 밝은 전망이 열리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