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머니 김정숙녀장군」중에서

주체21(1932)년의 봄, 간도땅에 위대한 전환의 봄이 왔다. 봄은 망국의 설음으로 덕지앉은 사람들의 가슴에 류다른 환희와 크나큰 희열을 밀물처럼 그들먹이 채워주며 찾아왔다. 약동하는 삶의 서곡인양 그해의 봄에 안도의 태고연한 원시림을 뒤흔드는 선군혁명의 우뢰소리가 울려퍼졌다.

민족의 태양이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 마침내 주체21(1932)년 4월 25일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하시고 그를 온 세상에 선포하시였던것이다.

반일인민유격대의 창건! 그것은 강도 일제에 대한 조선인민의 선전포고였으며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고 착취와 압박이 없는 새 사회를 건설하려는 위대한 항일혁명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장엄한 선언이였다. 그것은 또한 혁명무력이 없었던탓으로 망국노의 굴욕을 당하지 않으면 안되였던 조선인민이 자기의 혁명적무장력을 가지려는 오랜 숙망을 실현한 민족적경사였으며 일제의 멸망을 예고하는 력사적사변이였다.

이때로부터 위대한 수령님의 선군혁명령도가 시작되였으며 무장투쟁을 중심으로 하는 조선인민의 반일민족해방투쟁은 실패와 우여곡절을 모르고 승리의 한길로 줄달음칠수 있었다.

반일인민유격대가 창건되였다는 격동적인 소식에 접한 김정숙녀사의 가슴은 남다른 감격과 흥분으로 설레이였다.

독립운동에 나섰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름없는 이국의 산야에 묻히신 아버님, 아버님의 피맺힌 유언을 받으시며 비록 녀자의 몸일지언정 손에 총을 잡고 빼앗긴 조국을 찾는 길에 나서리라 굳게 맹세다진 그때부터 일제침략자들을 물리칠 혁명군대의 탄생을 애타게 기다리신 김정숙녀사이시였다.

그러기에 혁명무력의 탄생소식을 들으신 김정숙녀사께서는 민족의 태양이시며 선군혁명의 개척자이신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다함없는 감사와 흠모의 정을 억제할수 없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하신 후 여러 지방에 공작원들을 파견하시여 이미 활동하던 소규모의 무장대오들을 반일인민유격대로 편성하는 사업을 정력적으로 이끌어나가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 계시던 연길지방에서도 소규모의 무장대오에 핵심적인 반군사조직성원들을 망라하여 반일인민유격대가 편성되였다.

이 력사적인 시기에 김정숙녀사께서는 반일인민유격대조직과 유격구역을 창설하기 위한 투쟁에 적극 참가하시였다.

무기탈취에 앞서 진행하는 정찰, 마을의 경계, 통신련락과 선전활동 등 김정숙녀사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무렵 동만의 각 현마다에서 태여나 우후죽순처럼 자라나는 항일유격대오와 인민들의 앙양된 혁명기세에 질겁한 일제는 반일혁명력량을 요람기에 압살해보려고 미쳐날뛰였다.

간악한 일제침략자들은 조선사람 백명을 죽이면 그중에 적어도 한명은 공산당원이거나 공청원일것이라고 하면서 온 간도땅을 피바다, 불바다로 만들었다.

닥치는대로 죽이고 빼앗고 불사르는 일제의 악명높은 《삼광정책》으로 말미암아 1932년 한해동안에 연길현에서만도 무려 1만여명의 조선사람들이 학살되였으며 수많은 집들이 불에 탔다.

일제의 간도대학살만행은 김정숙녀사의 가슴에 지울수 없는 상처를 남기였다. 이해 7월 15일에 있은 부암동에 대한 일제의 《토벌》에 사랑하는 어머님과 형님을 한날한시에 잃는 불행을 당하시였던것이다.

그날 김정숙녀사께서는 아동단원들의 아침모임을 지도하시려고 뒤산에 오르시였다. 오빠는 조직의 일로 나가고 집에는 어머님과 형님만 있었다.

김정숙녀사께서 아동단원들의 아침체조를 지도하시고 하루의 사업분공을 하고계실 때 마을에서 갑자기 개짖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이어 기관총소리가 자지러지게 울리였다.

이윽고 곳곳에서 삼단같은 불길이 치솟아오르고 귀청을 째는 총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비명소리, 아우성소리가 들렸다.

마을에 달려든 일제《토벌대》놈들은 사람이건 짐승이건 가리지 않고 총창으로 찌르고 기관총사격을 퍼부었다. 집안으로부터 사람이 나오지 못하게 해놓고 불을 지르고 불길에 쫓겨나오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늙은이, 아이 할것없이 총으로 쏘고 총창으로 찔렀다. 온 마을은 삽시간에 불바다, 피바다가 되고 총소리, 고함소리와 함께 가슴을 째는듯 한 비명소리, 아우성소리가 하늘땅에 차고넘치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두주먹을 부르쥐시였다. 당장 마을로 달려내려가 원쑤놈들과 사생결단하고 인민들을 구원하고싶으시였다.

하지만 그렇게 할수가 없으시였다. 이 어려운 시각에 아동단원들을 끝까지 책임지고 보호해야 할 자신마저 그렇게 행동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녀사께서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며 마음을 다잡으시였다.

아동단원들은 금시에 불타는 마을로 달려내려가려고 몸부림쳤다.

김정숙녀사께서는 두팔을 벌려 그들의 앞길을 막아서며 안타깝게 말씀하시였다.

《동무들처럼 내 가슴도 막 터지는것 같아요. 나도 달려가서 아버지, 어머니와 동생들을 구원하고싶어요.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여서는 안돼요. 우리는 아동단원들이며 우리의 몸은 조직의 몸이예요.》

마을에서는 적들의 총소리가 더욱 자지러지게 울리고 사람들의 피타는 부르짖음이 계속 들려왔다. 김정숙녀사께서는 그 원한의 총소리와 절규를 페부에 새겨넣으시였다.

부암동에 대한 일제《토벌》로 인한 피해는 참혹하였다. 마을의 집들은 모두 불길에 휩싸였고 사람들은 무참히 학살당하였다.

김정숙녀사께서 불타는 집에 이르시니 형님은 이미 숨을 거두었고 어머님은 참혹하게 화상을 입어 쓰러져있었다.

녀사께서는 어머니를 마구 흔들며 애타게 부르짖으시였다.

《어머니, 이게 웬일이세요?!》

한참만에야 가까스로 눈을 뜨신 어머님께서는 분노에 떨리는 음성으로 물으시였다.

《그 악귀같은 왜놈들이… 그, 그놈들이 지금 어디에 있느냐?》

비록 말소리는 약하였으나 그 마디마디에는 일제살인귀들에 대한 용서할수 없는 분노, 천년을 두고도 잊을수 없는 저주와 원한이 서려있었다.

왜놈들이 이제는 모두 달아났다고 말씀올리자 어머님께서는 따님의 손을 잡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정숙아,… 네 형님이 불에 타죽으면서두… 네 이름을 부르더라.… 조카애를 버리지 말구 길러달라구.… 내 이 말을 외우자구…》

어머님께서는 잠시 가쁜숨을 몰아쉬더니 《내 눈으로 …저 악귀같은 왜놈들이 망하는 꼴을 꼭 보자고 했는데… 원쑤를 갚아다우.…》 하고는 더 말을 잇지 못하시고 숨을 거두시였다.

《어머니!》

김정숙녀사께서는 와락 어머니의 품에 얼굴을 묻고 몸부림치며 우시였다.

이게 정말 꿈아닌 사실이란 말인가, 한뉘 고생속에도 모진 시름, 모진 설음을 다 억누르며 대바르고 강직하게 살아오신 어머님, 독립혈전에 나서신 아버님의 뒤바라지를 하시느라고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으시면서도 자식들의 밝은 앞날을 위해 모든것을 바쳐오신 어머님!

이제는 일제를 족치고 조선의 해방을 안아올 반일인민유격대도 무어져 밝은 앞날이 눈앞에 다가오고있는데 일제에 대한 그 깊은 원한도 풀지 못하고 이렇게 가시다니…

김정숙녀사께서는 앞이 캄캄하고 하늘이 꺼져내리는것만 같으시였다. 녀사께 있어서 어머님과 형님의 희생은 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이였다.

하지만 김정숙녀사께서는 이 인간비극의 절정에서 슬픔에만 잠겨있을수 없으시였다.

목놓아우는 동생을 달래시며 녀사께서는 속으로 굳게 맹세다지시였다.

어머님의 유언을 지켜 혁명의 한길을 억세게 걸으리라고… 비록 녀자의 몸이기는 하지만 결단코 원쑤를 천백배로 복수하고 희생된 부모형제와 겨레들의 가슴에 맺힌 원한을 풀어주리라고.…

총을 잡고 혁명하는것만이 살길이라는 혁명의 진리를 녀사는 이렇게 피맺힌 생활체험을 통하여 뼈저리게 새겨안으시였다.

그 어떤 슬픔도 시련도 김정숙녀사를 굴복시킬수 없었다.

후날 김정숙녀사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 나는 너무나 기가 막혀 눈물도 안나왔습니다.

험하고 모진 세상에서 젖먹이조카애를 키울 생각을 하니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듯 앞이 캄캄하였습니다.

울어도 몸부림쳐도 벗어날수 없는 그 절망속에서 나를 다시 일떠세운것은 혁명에 대한 자각이였습니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이끄시는 혁명의 길에서 끝까지 굴함없이 싸워나가야 한다는 자각이 있었기에 나는 그 큰 불행앞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굳세게 다시 일어설수 있었습니다.》

오직 한마음, 혁명의 진두에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 서계시고 그이께서 이끄시는 한 조국해방의 밝은 앞날은  반드시 오고야말것이라는 굳은 신념을 지니시였기에 김정숙녀사께서는 그 모진 슬픔을 박차고 계속 혁명의 길을 꿋꿋이 걸어나가실수 있었다.

언제인가 김정숙녀사를 형상한 어느 한 영화의 주제가창작을 지도하시던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노래 《빨찌산녀전사의 노래》는 무엇보다도 가사가 진실하다고, 가사에 어머님의 시련에 찬 생활을 그대로 가식없이 담았다고, 《어렸을 때 부모잃고 동생도 잃고 머슴살이 천대속에 헤매던 이 몸》이라는 노래구절은 꾸밈이 없다고 하시면서  《한마디로 말하여 혁명의 길에 나서지 않고서는 견딜수 없었던 어머님의 절절한 심정이 가슴뜨겁게 안겨옵니다.》라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사실 민족수난의 그 엄혹한 시기에 나어린 녀성의 몸으로 만고풍상을 다 겪어야 하는 혁명의 길에 나선다는것은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다.

하지만 김정숙녀사께서는 삼천리강토를 피로 물들이고 간도땅에까지 와서 온갖 재난을 다 들씌우고있는 일제침략자들과는 끝까지 싸워이겨야 한다는 굳센 혁명적각오와 강철같은 의지를 지니시고 일신상의 모진 고초를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두시고 항일혁명의 길에 용약 떨쳐나서시였다.

이무렵 팔구공청위원회는 준엄한 혁명의 폭풍속에서 온갖 불행과 슬픔을 꿋꿋이 이겨가시며 참된 투사로, 혁명가로 성장하신 김정숙녀사를 공청대렬에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일제놈들의 《토벌》에 의하여 어머님과 형님을 잃은지 열흘째 되던 날인 주체21(1932)년 7월 25일이였다.

부암동 막바지에 있는 자그마한 농가에서는 김정숙녀사의 공청가맹문제를 토의하기 위하여 부암동공청세포회의가 소집되였다.

회의장으로 들어서는 김정숙녀사의 가슴은 파도마냥 설레였다.

민족의 태양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 몸소 창건하시고 이끌어주시는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 선군혁명의 믿음직한 후비대, 젊은 투사들의 전위대오! 바로 이 자랑찬 혁명대렬에 자신께서 들어서게 되신것이다. 이보다 더 영예롭고 보람찬 일이 또 어데 있겠는가.

이윽고 회의가 시작되였다.

공청원들은 앞을 다투어 김정숙녀사의 가맹을 지지하여 토론하였다. 그들은 녀사께서 나어린 녀성의 몸으로 마을을 혁명화하는 투쟁의 앞장에 서고 격문살포, 통신련락, 적정탐지 등의 혁명임무수행에서 특출한 모범을 보인데 대하여 지적하였다. 어떤 동무는 김정숙녀사께서 추수, 춘황투쟁때 군중의 앞장에 서시여 대중을 투쟁에로 불러일으킨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녀사의 무비의 용감성에 대하여 토론하였고 어떤 동무는 적들의 《토벌》에 어머니와 형님을 잃고도 그 모진 슬픔을 이겨가면서 꿋꿋이 싸워나가시는 혁명임무에 대한 녀사의 끝없는 헌신성에 대하여 격정에 넘쳐 토론하였다. 그러면서 한결같이 김정숙녀사를 공청대렬에 받아들이자고 하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동무들의 두터운 신임과 기대에 끝없이 부풀어오르는 가슴을 애써 진정하면서 조직앞에 엄숙히 선서하시였다.

《나는 영광스러운 공산주의청년동맹에 가맹하면서 동맹의 한 성원으로 된 영예와 긍지를 심장깊이 간직하고 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싸우겠습니다.

나는 공청원답게 조직의 규률을 엄격히 지키며 조직의 결정과 지시를 성실하게 집행하고 공청을 혁명적이며 전투적인 조직으로 만드는데 기여하겠습니다.…

나는 투쟁과 생활에서 대중의 모범이 되며 언제나 앞장에서 그들을 이끌어나가는 조선혁명의 참된 전위가 될것을 굳게 맹세합니다.》

이 엄숙한 선서는 김정숙녀사께서 위대한 수령님앞에, 조국과 혁명앞에 다지시는 심장의 맹세였다.

공청원들은 엄숙히 손을 들어 김정숙녀사의 가맹에 찬성을 표시하였다. 이리하여 녀사께서는 혁명적청년전위조직인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에 가맹하시였다.

이날부터 김정숙녀사께서는 마을의 첫 녀성공청원으로서의 영예를 빛내이기 위하여 끊임없이 자신을 수양하고 단련하시면서 혁명의 한길에 일생을 바쳐가게 되였다.

김정숙녀사께서 공청원의 영예를 지니신 후 받으신 첫 분공은 적암동인민들을 혁명화하여 조직에 묶어세우는것이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먼저 추수투쟁때 잘 싸운 핵심들을 장악하고 교양하시는 한편 의식수준이 낮은 마을사람들을 깨우쳐주기 위해 마을에서 실지 있은 사실을 가지고 연극을 준비하여 공연하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각성되여가는 인민들의 혁명의식을 마비시키려고 날뛰는 악질지주, 친일주구들을 조직을 발동하여 처단하게 하시였다.

녀사께서는 군중의 의식수준이 높아지고 점차 각성되여가는데 맞게 당조직과 공청조직을 도와 적암동마을에 농민협회, 반제동맹, 혁명호제회, 부녀회를 비롯한 혁명조직들을 내오시였다.

혁명조직이 준 임무에 대한 높은 책임성과 문제해결의 묘술을 찾아내고 풀어나가는 능란한 사업방법, 능숙한 선동방법을 지니신 김정숙녀사의 활동에 의하여 적암동은 혁명화되게 되였다.

1932년 가을 공청세포위원으로 선거되신 김정숙녀사께서는 적들의 《토벌》만행으로부터 혁명군중을 보호하기 위한 사업을 스스로 맡아나서시였다. 적《토벌대》놈들의 동향을 탐지하여 놈들이 쳐들어올 기미만 보이면 마을사람들을 미리 피신시키기도 하시고 로약자들과 어린이들속에서 한명의 피해자도 나지 않도록 세심한 대책을 세우기도 하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 비발치는 적탄속을 헤치고 미리 피신하지 못한 한 할머니를 업어 산에 피신시킨 이야기는 그후 오래도록 마을사람들속에서 전설처럼 전해졌다.

이처럼 김정숙녀사께서는 부암마을의 첫 녀성공청원으로서 각계각층의 광범한 군중을 의식화, 조직화하기 위한 사업과 혁명군중을 보호하기 위한 사업을 능숙하게 벌리시여 사람들로부터 《마을의 보위자》, 《생명의 은인》으로 높은 존경과 사랑을 받으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