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태양 김정일장군」 (4)중에서

 

   6.15북남공동선언은 애국과 매국을 가르는 시금석이다.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하에 북과 남사이에 화해와 단합, 통일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협력과 교류의 폭이 넓어질수록 내외의 반통일세력의 방해책동은 더욱 악랄해졌다.

조국통일운동의 전진과 성패의 여부는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을 어떻게 고수하고 구현해나가는가에 달려있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전진하는 조국통일운동의 요구에 맞게 전민족적범위에서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을 고수하고 구현하기 위한 투쟁을 새로운 높은 단계에서 전개해나가도록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북과 남, 해외의 온 민족은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반대하는 거족적인 투쟁을 벌려 민족적단합과 조국통일을 방해하는 근원을 철저히 없애야 합니다.》

장군님께서는 민족공조로 조선반도에서의 대결구도를 북과 남의 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로 확고히 전환시키고 거세찬 반미투쟁을 벌리도록 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러한 구상과 의도가 주체92(2003)년을 맞으며 발표된 《로동신문》, 《조선인민군》, 《청년전위》 공동사설에서 제기한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통일을 앞당기자!》라는 구호를 통하여 제시되였다.

공동사설은 현시기 조선반도에서의 대결구도는 북과 남의 조선민족 대 미국이라고 볼수 있다면서 북과 남, 해외의 전체 조선민족은 미제의 무분별하고 모략적인 전쟁책동에 높은 각성을 가지고 대하여야 하며 온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단호한 배격을 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리하여 6.15공동선언을 구현하기 위한 조국통일운동에서는 민족공조로 외세의 식민지지배와 조선반도에서의 전쟁책동을 저지파탄시키기 위한 반미투쟁의 거세찬 열풍이 일어번지게 되였다.

미국은 조선반도의 통일도 북남관계개선도 달가와하지 않으며 저들의 리익을 위해서라면 우리 민족이 둘로 갈라지든 핵참화를 입든 가리지 않는다.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그 참화를 당할것은 북과 남의 우리 민족이고 우리 강토이다. 전체 조선민족은 민족공조로 남조선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고 핵전쟁의 근원을 들어내며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수호하여야 한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런 의지를 지니시고 북과 남의 온 민족이 반미투쟁을 힘있게 벌리도록 하시였다.

부쉬의 《악의 축》망발이후 남조선의 《전국련합》, 《통일련대》, 범민련 남측본부, 《한총련》, 《민중련대》, 《전쟁반대평화실현공동실천》 등 800여개가 넘는 단체들은 매일과 같이 《항의성명》을 내고 《반미결의대회》, 《공개서한전달식》 등을 벌리였다.

2002년 2월에 있었던 부쉬의 서울행각을 계기로 《한총련》소속 남조선대학생들은 《부쉬야말로 진짜 악의 축》이라고 웨치면서 서울주재 미국대사관앞에서 기습시위를 벌리였고 서울시내에 있는 미상공회의소와 미국대사관에 대한 점거투쟁을 벌렸다. 600여개의 시민, 사회단체들도 부쉬의 남조선행각을 반대하여 합동기자회견을 가지고 미국대사관에 항의서한을 들이대는 등 대중적인 반부쉬투쟁을 전개하였다. 이에 질겁한 부쉬는 3중, 4중의 경찰병력에 둘러싸여 《고독한 일정》을 보내지 않으면 안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91(2002)년 6월 미제침략군 장갑차가 백주에 14살 난 녀학생 두명을 무참히 깔아죽인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에는 반미투쟁의 도수를 더욱 높이도록 하시였다.

이해 6월 13일 남조선주둔 미제침략군놈들이 남조선의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에 사는 14살의 나어린 소녀들인 신효순, 심미선학생들을 장갑차로 무참하게 깔아죽이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다.

선군령도의 길에서 이런 범죄사실을 보고받으신 장군님께서는 한동안 아무 말씀도 없으시였다. 꽃도 피워보지 못한채 원한품고 쓰러진 남녘의 두 소녀를 생각하시는 그이의 안광에는 적의가 번뜩이였다.

이윽고 장군님께서는 전체 조선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살인귀 미제에게 단호한 철추를 내리도록 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해당 기관들과 단체들에서 성명을 발표하고 집회를 열어 미제의 용납 못할 범죄행위를 만천하에 폭로규탄하도록 하시였다. 이와 함께 미제의 살인만행을 력사적으로, 전면적으로 폭로단죄하는 목소리가 세차게 울려나오도록 할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조선민족에 대한 미제의 그 어떤 만행도 추호도 용납하지 않으시는 백두산선군령장의 뢰성벽력이였다.

《로동신문》을 비롯한 공화국의 신문, 방송들은 미군의 만행과 살인행위를 강력히 규탄하고 남조선인민들을 반미투쟁에로 호소하는 기사들을 련일 내보냈다. 미제가 조선침략전쟁을 일으킨 6.25를 계기로 중앙과 지방에서 진행된 군중집회들에서도 미군만행자료를 가지고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서기국 보도를 발표하여 남조선에서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미군만행자료를 폭로하고 반미투쟁에 온 민족이 한결같이 떨쳐나설것을 열렬히 호소하였다.

장군님께서는 남조선강점 미군법정이 천만부당하게도 살인귀들에 대한 《무죄》판결을 내렸을 때에는 미제를 천추에 용서 못할 인간백정으로, 조선민족의 모든 불행의 화근으로 만천하에 고발하고 단죄하는 반미투쟁의 도수를 더욱 높이도록 하시였다.

나어린 녀학생들을 장갑차로 깔아죽인 극악한 범죄와 살인자들에 대한 《무죄》판결은 남조선인민들의 반미감정을 활화산처럼 폭발시키였다.

각계각층, 남녀로소를 가림없이 남조선인민들은 전인민적인 초불시위에 떨쳐나섰다. 살인범들에 대한 《무죄》판결이 결정된 그해 11월 20일부터 27일까지의 1주일사이에만도 무려 1,000여개 단체의 연 110만여명에 달하는 남녘의 각계각층 인민들이 반미투쟁에 떨쳐나섬으로써 미국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남조선인민들의 반미투쟁은 남조선전역으로 확대되면서 《범죄자처벌》, 《미국대통령사죄》, 《미군철거》, 《식민지지배종식》을 요구하는 높은 수준의 투쟁으로 발전하였다.  

이와 같은 대중적반미초불시위투쟁은 그해가 다 저물어가던 12월 31일 강추위속에서도 남조선전역 100여곳과 해외의 20여개 나라들에서 《100만범국민행동의 날》 반미집회로 확대되였다. 그야말로 조선민족이 사는 곳 어디에서나 반미투쟁이 휩쓸었다.

남조선인민들의 반미초불시위투쟁, 이것은 단순히 미국에 대한 불만이나 반감때문이 아니라 반미투쟁을 통하여 민족의 자주적권리를 되찾으려는 민족적자존심의 폭발이였다.

남조선강점 미군에 의한 녀중학생살해사건은 반미의 기폭제로 되여 2002년에만 하여도 반미투쟁건수는 무려 5,880여건에 달하였고 반미투쟁참가자수는 연 670여만명에 이르렀다.

이해 12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선반도에서의 긴장격화가 미국때문이라는것을 세계에 고발하게 하심으로써 반미자주화투쟁에 떨쳐나선 남조선인민들에 대한 국제적련대성과 지지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미국을 세계적으로 고립배격하는 국제적여론과 반미감정이 더욱 고조되게 하시였다.

미제침략군에 의한 남조선녀중학생살해사건을 계기로 거세차게 타오른 반미투쟁의 불길은 남조선의 전역으로 타번졌다.

온 민족의 격렬한 반미투쟁과 세계적인 규탄에 바빠난 부쉬는 2002년 12월 13일 두 녀학생살해사건에 대해 구차한 변명으로 《유감》을 표시하는 《간접사과》를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우리 민족제일주의기치밑에 민족공조로 자주통일의 활로를 열어나가자!》의 구호밑에 이 땅의 평화를 지키고 나라의 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투쟁을 더욱 과감히 전개해나가도록 이끌어주시였다.

2003년 5월 16일 미군학살만행진상규명 전민족특별조사위원회(전민특위) 북측본부 대변인은 담화를 발표하여 미제침략군이 《해방자》의 탈을 쓰고 남녘땅에 기여든 이후 감행한 무고한 주민들에 대한 야수적학살만행과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공화국북반부의 여러 지역에서 인민들을 무참히 학살한 자료, 남조선에서 끊임없이 감행되고있는 살륙만행자료들에 대하여 폭로하고 남조선인민들은 미국의 대조선침략정책과 민족멸살책동을 단호히 저지파탄시키기 위한 반미반전투쟁에 적극 떨쳐나서야 할것이라고 하였다. 이어 조선민주법률가협회 고발장이 발표되였고 신문, 통신, 방송들은 조선인민에 대한 미제의 력사적인 만행자료들을 체계적으로 폭로하였다.

재중조선인총련합회와 재미동포 서부지역련합회, 재오스트랄리아동포전국련합회들을 비롯한 해외각지의 여러 동포조직들도 미군학살만행진상규명 전민족특별조사위원회 북측본부 대변인담화를 전폭적으로 지지하여 반미, 반전투쟁에 떨쳐나설데 대한 성명을 각각 발표하였다.

그리고 우리의 언론은 지난 조선전쟁시기 경상북도 례천에서 감행한 미제침략군의 민간인학살사건이 새로 드러나 남조선의 각계각층 인민들이 대중적인 반미투쟁과 미군철수투쟁에 떨쳐나섰을 때 그것을 고무추동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하여 우리 민족에게 헤아릴수 없는 재난과 희생을 강요한 미제의 침략적, 살인적본성을 폭로하고 민족말살책동을 저지파탄시키기 위한 반미, 반전평화투쟁은 전민족적인 투쟁으로 더욱 확대발전되였다.

남조선에서는 지난 5년간 연 2,000여만명의 참가밑에 1만 3,000여건의 각종 반미투쟁이 벌어졌다. 이것은 규모나 대중성, 형태와 지속성에 있어서 6.15공동선언발표 이전에는 찾아볼수 없었던것이다.

남조선에서 세차게 타오른 대중적반미투쟁의 불길은 2002년말에 있은 남조선《대통령선거》와 2004년 봄의 《국회의원선거》에서 친미사대매국세력에 준엄한 심판을 내리고 민족자주세력, 통일애국세력의 커다란 승리를 가져왔다.

남조선언론들과 외신들이 《정치적대지각변동》, 《반미시민혁명》이라고 부를 정도로 내외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킨 이 놀라운 사태는 민족공조가 안아온 반미열풍이 남조선인민들의 의식구조에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왔는가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리 민족의 력사에서 뜻깊은 해인 2005년을 맞으며 민족자주, 반전평화, 통일애국의 3대공조기치를 높이 들고 전체 조선민족이 강력한 반전평화투쟁으로 남조선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고 핵전쟁의 근원을 들어내기 위한 반미투쟁을 더욱 과감히 벌려나가도록 이끌어주시였다.

2005년은 조국해방 60돐이 되는 해이면서도 4.19인민봉기 45돐, 광주인민봉기 25돐, 미국의 조선전쟁도발 55년, 미군의 로근리학살사건 55년, 미군의 남조선강점 60년이 되는 해였다.

그로 하여 자주와 평화 그리고 통일을 실현하고저 하는 우리 민족과 예속과 전쟁, 분렬을 지속시키려는 미국과의 대결구도는 더욱 첨예화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국해방 60돐과 미군의 남조선강점 60년이 되는것을 계기로 남조선과 해외의 모든 력량을 반미자주화투쟁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기 위한 사업을 집중적으로 벌려나가도록 하시였다.

8월 14일 조국해방 60돐을 계기로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와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성명은 이제 우리 민족이 자주의 기치를 높이 들고 전민족적범위에서 민족의 자주권을 실현할 때가 되였다는데 대하여 지적하면서 남조선을 비롯한 해내외의 모든 조선동포들은 일제식민지통치시기 조국광복의 기치아래 대단결하여 조국의 해방을 이룩한것처럼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아래 한마음한뜻으로 뭉쳐 남조선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강점을 끝장내고 제2의 8.15를 가져와야 한다는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화답하여 남조선에서는 반미투쟁이 강력히 전개되였다.

8월 15일 오전부터 서울시내 대학로에서 진행된 반전평화자주통일범국민대회에 참가한 남조선인민들은 미군강점 60년을 맞아 대규모 민족학살의 주범인 맥아더의 동상을 철거할것을 선포함으로써 본격적인 미군강점 60년체제 청산투쟁에 돌입하였다.

남조선인민들은 또한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밑에 민족공조의 목소리를 높이면서 반미투쟁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남조선의 한 여론조사기관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대다수가 《북과 미국이 전쟁을 하면 민족의 이름을 걸고 당연히 북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것이나 민족공조를 주제로 한 다양한 문예작품들이 많이 나오고 그것들이 사람들속에서 인기를 끌고있는 사실 등은 숭미의식으로부터 반미의식에로의 변화를 뚜렷이 보여주었다.

이것은 수십년간 지속되여온 우리 나라의 분렬이 미국과 그에 추종하는 반통일우익보수세력들에 의해 초래된것이라는것을 깨달은데서부터 오는 의식변화였다.

1990년대까지만 하여도 남조선에서는 《미국에 대해 거부감을 느낀다.》고 하는 사람은 22%에 지나지 않았던것이 력사적인 6.15북남공동선언발표이후 46%의 각계층이 미국을 《통일에 가장 큰 장애물》로 여기고있고 64%가 《미국과의 관계에서 자주적으로 나갈것》을 주장해나섰으며 《북이 아니라 미국을 주적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여론도 날로 높아갔다. 반면에 남조선미국 《동맹강화》를 주장하는 세력은 6.15북남공동선언발표 이전보다 무려 25%나 줄어들었다.

부쉬와 미국을 풍자하는 《기특한 과자》, 《또라이 부쉬》, 《더러운 미국》 등의 노래들과 시 《나의 편지》,《부쉬한파》, 《반대한다》, 《전쟁대장》, 《성조기》, 《이상한 나라》 등이 창작되여 남조선의 초등학교학생들에게까지 널리 보급되였다. 인터네트에는 《반미운동본부》, 《반미공장》, 《반미미국타도위원회》 등의 싸이트들이 무수히 개설되여 공공연히 반미선전을 진행하였고 지어 반미시위를 하다가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식사를 무상으로 공급하겠다고 광고하는 식당들이 늘어났다.

남조선의 언론들과 일반시민들은 이러한 현실을 《대미의식구조에서의 새로운 변화》로, 《반미대중화시대의 도래》로 평하면서 《미국은 더는 우리와 혈맹관계라고 할수 없다.》고 하였다. 이러한 현실은 6.15공동선언발표이후 남조선인민들의 미국에 대한 의식구조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것을 말해주었다.

특히 민족공조의 열풍은 남조선인민들속에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펼치시는 선군정치에 대한 찬탄의 목소리와 합쳐져 더욱 높이 울려나왔다.

지난 시기 남조선의 일부 사람들은 우리의 선군정치를 군력을 강화하여 《남침》하기 위한것으로 잘못 인식해왔다. 그러나 그들은 선군정치로 하여 이 땅에서 핵전쟁의 불집이 터지지 않고 평화가 고수되고 민족의 존엄이 온 세상에 과시되고있다는것을 절감하게 되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선군정치가 자기들에게 가져다주는 혜택이 얼마나 큰가에 대하여 여러가지로 생각해보았다.

이에 대하여 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은 2005년 3월 24일 재미동포전국련합회 홈페지에 《이남국민이 입고있는 선군정치의 덕》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썼다.

《지금 미국과 이남의 군사전문가들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력사상 가장 비참한 전쟁이 될것이라고 우려하고있다.

<한>반도에서 핵무기가 동원된 현대전쟁이 일어날 경우 총손실액은 대략 21조 204억 4,000여만US$에 달할것으로 본다. 결국 이북의 선군정치로 <한>반도에서 전쟁이 억제되고 평화가 보장되기때문에 이남국민은 수십조US$에 달하는 덕을 보고있는것으로 된다.

이남당국과 민간단체들은 1995년부터 2004년 6월말까지 진행한 남북경제협력총액이 약 9억US$정도 될것이라고 한다. 이에 비하면 그들이 실제 입고있는 이북의 선군정치덕은 그 몇만배나 된다고 할수 있다. 이남국민들이 입고있는 선군정치의 덕은 상상조차 할수 없을 정도로 엄청날뿐아니라 그것은 정치, 경제, 언론, 종교 등 이남사회의 각계에 영향을 미치고있다.》

핵억제력까지 갖춘 우리의 선군정치가 아니면 남조선인민들의 생명자체도, 그 어떤 정당이나 단체들의 존재도, 기업의 운영에 대해서도 생각할수 없는것이 오늘의 엄연한 현실인것이다.

이로부터 오늘 남조선의 진보적청년학생들과 각계층 인민들속에서는 우리의 선군정치를 적극 지지옹호하고 따르려는 열의가 날로 높아가고있다.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련합 남측본부》(《범청남》) 공동의장단회의 최종합의문에서는 《2003년의 빛나는 성과는 6.15공동선언기치아래 민족공조로 다져진 우리 민족의 단합된 힘과 미제의 전쟁책동을 짓부셔버리는 선군정치가 있었기때문》이라고 하면서 《범청학련은 민족공조를 강화하고 선군정치를 적극 지지, 옹호할것》이라고 결의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펼치시는 선군정치가 있고 력사적인 6.15공동선언이 있음으로 하여 남조선인민들의 의식구조는 공미숭미의식으로부터 련북의식으로 확고히 전환되여가고있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