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머니 김정숙녀장군」중에서

주체20(1931)년에 들어서면서 만주를 집어삼키려는 일제의 야망은 더욱더 로골적으로 드러났으며 온 만주땅에 전쟁분위기가 급격히 짙어갔다. 한편 일제의 파쑈적폭압통치에 항거하여 일떠선 조선인민의 반일투쟁이 대중적이며 폭력적인 성격을 띠면서 세차게 일어났다.

이러한 시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활동무대를 두만강연안으로 옮기시고 무장투쟁준비를 더욱 다그쳐나가시였다.

무장투쟁을 조직전개하기 위한 준비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나선것은 혁명대오를 꾸리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 및 공청간부들과 조선혁명군 성원들을 연길, 안도, 화룡, 왕청, 훈춘 등 간도의 넓은 지역과 국내의 여러곳에 파견하시였다. 그들은 혁명의 핵심력량을 튼튼히 꾸리며 광범한 인민들을 반일의 기치밑에 결속하기 위한 조직정치사업을 활발히 벌려나갔다.

연길현 부암마을에 파견된 정치공작원들은 계급적으로 빨리 각성되고 사상의식수준이 높은 청년들을 실천투쟁을 통하여 혁명적으로 단련시키는데 선차적인 힘을 넣고 이 사업을 적극 추진하였다.

주체20(1931)년 봄 김정숙녀사께서는 혁명조직으로부터 동네집들과 사람들이 제일 많이 모이는 장소에 격문을 살포할데 대한 첫 임무를 받으시였다.

격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조선농민들이여!

우리 선조들의 뼈가 묻혀있는 삼천리금수강산은 일본제국주의자들의 발굽밑에 짓밟히고있다.

강도 일제와 반동적지주, 자본가놈들은 우리 농민들을 억압하고 고혈을 짜내여 고대광실 높은 집에서 호의호식을 하고있다.

농민대중이여, 궐기하라!

강도 일제를 타도하자!

일제의 주구들과 악질지주들을 타도하자!

조선혁명 만세!》

김정숙녀사께서는 민첩한 동작으로 격문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가의 담벽과 대문, 기둥에도 붙이고 우물가의 돌우에도 올려놓으시였다. 그리고 격문을 악질적인 지주집 대문짝에 붙여놓으시고 담장안에도 던져넣으시였다.

녀사께서 첫 임무를 수행하고 집에 돌아오시였을 때는 밤이 이슥하였다. 첫 혁명임무를 훌륭히 수행한 기쁨과 감격으로 하여 녀사께서는 좀처럼 잠을 이룰수 없으시였다.

이튿날 새벽, 온 부암동이 들썩 끓었다.

사람들은 《간밤에 때아닌 백설이 내렸다!》고 웅성이며 격문을 읽었다.

녀사께서는 자신께서 뿌리신 격문을 읽고 힘과 용기를 얻는 사람들을 보시며 투쟁의 보람과 긍지를 느끼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그후에도 적들의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팔구의 여러 마을들에 대한 통신련락과 적정탐지 등 어려운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시였다.

당시 부암동을 비롯한 팔구관내에는 혁명조직들이 새로 조직되거나 복구되여 움직이는 때였으므로 조직과 조직간의 밀접한 련계를 맺고 행동의 일치성을 보장하는 문제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나서고있었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적암동, 풍덕골, 금광촌, 룡수평을 비롯한 여러 마을들에 대한 통신련락임무를 스스로 맡아안으시고 혁명에 대한 무한한 헌신성과 대담성, 뛰여난 지혜를 발휘하여 그것을 어김없이 수행하시였다.

녀사께서는 때로는 산나물 팔러 가는 산골소녀로, 때로는 공부하러 가는 학생으로, 혹은 동생과 함께 친척집에 나들이가는것으로 가장하면서 적들을 속여넘기고 임무를 책임적으로 수행하군 하시였다. 언제인가 봉림동혁명조직에 급히 전해야 할 중대한 련락임무를 받으시였을 때에는 조카애를 업고 기저귀속에 쪽지를 넣어 적들을 감쪽같이 속여넘기고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시였다.

혁명조직이 주는 임무를 수행하던 나날은 김정숙녀사께서 준엄한 실천투쟁속에서 혁명가로서의 품격을 훌륭히 갖추어나가는 성장의 나날이였다.

실천투쟁속에서 혁명의 진리를 깊이 체득하시고 혁명가의 품격을 훌륭히 갖추어오신 김정숙녀사께서는 주체20(1931)년 9월 12일 위대한 수령님께서 무어주신 혁명적인 반군사조직인 소년선봉대에 입대하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소년선봉대에 입대하면서 조직앞에 다음과 같이 맹세하시였다.

《…나는 김일성장군님의 혁명전사된 영예를 안고 조선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생명이 다하는 마지막순간까지 굳세게 싸울것을 조직앞에 엄숙히 맹세합니다.》

소년선봉대 입대, 이것은 김정숙녀사께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안겨주신 고귀한 정치적생명을 지니시고 자신의 운명을 민족의 운명, 인민대중의 해방이라는 무한히 거창하고 성스러운 위업과 결합시킨 빛나는 새삶의 시작이였으며 수령님께서 이끄시는 영광스러운 투쟁대오에 들어서는 뜻깊은 첫걸음이였다.

이때부터 김정숙녀사의 혁명투쟁이 시작되였다.

세계혁명운동사의 갈피갈피에는 수많은 유명무명의 녀성혁명가들의 삶과 투쟁의 이야기가 기록되여있지만 김정숙녀사와 같이 어리신 나이에 반군사조직에 입대하는것으로부터 혁명투쟁을 시작하고 일생 총과 운명을 함께 한 그런 녀성혁명가, 녀성투사는 없다.

소년선봉대에 입대할 당시 김정숙녀사의 나이는 열네살이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그 어리신 나이에 벌써 고귀한 정치적생명을 지니고 조직생활에서 모범을 보이시였으며 30여명이나 되는 부암동 소년선봉대원들의 앞장에서 그들을 가르치고 이끄시면서 투쟁에로 능숙하게 조직동원하시였다.

녀사께서 소년선봉대에 입대하신지 며칠후인 9월 18일 《만주사변》이 일어났다.

중국의 심양 북대영 서쪽 류조구에서 일본 만철회사소유의 철도선을 폭파하는 음모를 꾸미고 그것을 구실로 만주에 대한 무력침공을 개시한 일제는 《후방의 안전》을 기한다는 미명밑에 조선인민에 대한 반동공세를 전면적으로 강화하였다. 놈들은 특히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새로운 혁명력량이 급격히 자라나고있는 동만을 비롯한 조선인거주지역들에서 폭압만행을 더욱 악랄하게 감행하였다.

부암동의 혁명조직에서는 일제가 일으킨 《만주사변》의 침략적본성을 폭로하고 대중을 반일투쟁에로 더욱 적극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마을사람들의 집회를 조직하였다.

집회는 부암동 중촌학교 운동장에서 열리였다.

삼단같은 우등불이 타오르는 운동장에서는 수많은 군중들이 일제와 지주놈들을 단죄하는 구호들을 웨쳤다.

《강도 일제를 타도하자!》

《악질지주를 타도하자!》

수많은 군중이 모인 학교운동장은 불야성을 이루었고 투쟁의 함성으로 들끓었다.

군중의 기세가 한창 고조되는 가운데 소년선봉대원인 김정숙녀사께서 연단에 오르시였다.

녀사를 알아본 마을사람들은 《회령집 작은 딸이요!》하고 수군거리며 놀라움으로 웅성거리였다. 이처럼 큰 군중집회에서 녀성이, 더구나 나어린 소녀가 연설하는것을 본적이 없는 그들이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일제침략자들의 학대와 구박으로 고향에서 쫓겨나 거치른 이역땅에서 아버님을 잃고 수난의 생활을 거듭해오신 생각으로 분노와 증오가 솟구쳐올라 목이 메였다.

이윽고 김정숙녀사께서는 연설을 시작하시였다.

《아버지, 어머니, 오빠, 언니 여러분!

우리 조국을 강점한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얼마전에 <만주사변>을 조작하고 대대적인 무장침공을 개시하였습니다.

어찌하여 우리의 늙은 부모들은 조국을 그리다가 원한을 품은채 이 거치른 이국땅에서 쓰러져가야 하며 어찌하여 우리 젊은이들이 피눈물나는 고생속에서 시들어야 합니까.

이것이 무엇때문이며 누구의 탓입니까? 그것은 우리 나라를 빼앗은 강도 일제와 악귀같은 지주놈들때문입니다.

일제와 악질지주는 우리의 철천의 원쑤입니다.

원쑤를 때려부시지 않고서는 누구도 편안하게 살수 없습니다.

모두다 강도 일제를 반대하는 투쟁에 하나와 같이 떨쳐나서야 합니다.》

군중들은 김정숙녀사의 연설에 격동되여 틀어쥔 주먹을 쳐들고 강도 일제와 악질지주놈들을 타도하자고 웨쳤다. 그리고 홰불을 휘두르고 혁명가요를 부르면서 장재촌까지 시위행진을 하였다.

녀사께서도 홰불을 드시고 군중들과 함께 걸으시였다.

이때부터 김정숙녀사는 연길현 팔도구일대의 인민들속에 대중의 선봉투사로 널리 알려지게 되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소년선봉대에서 활동하는 전기간 높은 책임성과 헌신성을 발휘하여 통신련락, 밀정감시, 군중선동사업을 비롯하여 조직에서 주는 모든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시였다.

주체21(1932)년 3월 중순 김정숙녀사께서는 팔구혁명조직으로부터 남선혁명조직에 보내는 긴급통신련락임무를 받으시였다.

부암동 채영에서 팔구남선혁명조직이 있는 대마록구 서골까지는 70리가 넘었는데 연길강을 건너 질러가면 60리정도 되였다.

그때 연길강의 얼음이 풀려서 떠내려오고 강바람이 몹시 세차게 불었으나 김정숙녀사께서는 중요한 통신을 빨리 전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주저없이 강물에 들어서시였다.

통신련락쪽지를 가지고 도착하였을 때 녀사의 얼굴과 손은 말할것도 없고 옷은 꽛꽛하게 얼어붙어 가죽처럼 되여있었다.

임무수행의 긴박성을 예리하게 판단하시고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시바삐 통신련락임무를 앞당겨 수행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어려운 지름길을 택하신 김정숙녀사의 행동은 혁명임무에 대한 높은 책임성, 창발성, 무한한 헌신성을 보여주는것이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소년선봉대원으로서 능숙한 조직적수완과 혁명적열정을 발휘하여 대중을 각성시키고 투쟁에로 불러일으키는데서도 특출한 공적을 쌓으시였다.

대중을 각성시키고 그들을 불러일으킬줄 아는 조직선도자적수완은 누구에게서나 찾아볼수 있는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민대중에 대한 사랑과 믿음, 인민대중을 위해 자신의 한몸을 바치려는 투철한 각오, 대중의 심금을 울릴줄 아는 감화력, 선동력을 지닌 혁명가들만이 지닐수 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0(1931)년 여름 연길현 태평구에서 당 및 공청일군들에게 혁명군중을 더욱 단련시키고 혁명정세를 성숙시키자면 대담하게 실천투쟁을 조직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우선 간도의 각 혁명조직들에서 소작료를 낮추기 위한 농민들의 합법적인 경제투쟁을 조직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당시 중국국민당 길림성정부는 농민대중의 분노와 혁명적진출을 무마하며 회유할 목적으로 동만일대 조선농민들의 소작료를 4,6제, 3,7제로 실행한다는것을 공포하였다. 그러나 지주놈들의 항거로 성정부포고는 유야무야해지고말았다.

이러한 사태에 대처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만의 전체 혁명조직들이 성정부의 포고를 리용하여 농민들을 합법적인 소작료감하투쟁에로 이끌며 그 투쟁을 정치투쟁, 폭력투쟁으로 발전시킬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그리하여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이해 가을 전동만의 넓은 지역에서 일제와 악질지주들을 반대하는 대중적인 폭력투쟁이 벌어지게 되였다.

추수투쟁을 앞두고 부암동의 혁명조직에서는 투쟁위원회를 뭇고 선전대, 규찰대, 주구청산대, 구호대 등을 조직하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선전대에 속하여 활동하시게 되였다.

어느 한 농가의 조가을을 하던 날이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품앗이 나온 녀인들과 함께 일하시다가 조 열단을 날라다 가지런히 세워놓으시고 그중에서 석단을 추켜올리시며 말씀하시였다.

《요 석단이 리지주네 몫이구요, 나머지 일곱단은 우리 작인들 몫이예요. 이것이 우리가 하자는 3,7젭니다.》

녀사께서는 다시 조단을 여섯단과 넉단으로 갈라놓으시고 4,6제도 설명해주시였다. 3,7제, 4,6제란 말은 한두번만 아니게 들어온 녀인들이였지만 실물로 그것을 보게 되니 기어이 3,7제를 실현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더욱 강렬해졌다.

《그러니 우리는 꼭 이겨야 해요. 이기자면 힘을 단합해야 해요. 놈들이 아무리 날친다 해도 우리 농민들이 한사람같이 뭉치기만 하면 무서울게 없구 그 힘을 당할자가 세상에 없답니다. 뭉치면 이기니 뭉쳐서 싸우자요!》

신심에 넘친 김정숙녀사의 말씀은 녀인들의 가슴에 힘과 투쟁열의를 북돋아주었다.

김정숙녀사의 정력적인 선전사업에 의하여 군중은 급속히 각성되여갔으며 마침내 부암동의 남정네들은 물론 녀성들, 늙은이, 어린이들까지 모두가 추수투쟁에 떨쳐나서게 되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선전대의 임무뿐아니라 소년선봉대와 아동단대렬을 이끄시고 규찰대의 임무도 수행하시였다. 그때 소년선봉대원들은 손에 붉은 수기와 곤봉을 들고 2∼3명씩 조를 무어 규찰대로 행동하였다.

부암마을의 군중이 구호를 부르고 노래를 부르며 지주 리춘팔의 집으로 갔을 때 지주놈은 3,7제를 절대로 못하겠다고 뻗대였다. 그자가 하도 살기등등하게 나오자 일부 군중들속에서는 동요가 일어났다.

이 순간 김정숙녀사께서는 소작인들의 피땀을 빨아먹는 악질지주의 착취상과 죄상을 마을사람들앞에서 낱낱이 폭로하시였다. 그 단죄의 말씀은 참아오던 마을사람들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몽둥이와 농쟁기들이 수풀처럼 쳐들렸다. 지주놈은 겁에 질려 무릎을 꿇고말았다.

소년선봉대원들이 지주의 집마당에 쌓여있는 낟가리에 붉은 수기를 꽂자 행동대원들이 달려나가 낟가리를 헐어버렸다. 부암동 소작인들은 자기들이 가져야 할 7할의 몫을 당당히 찾아냈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10여만 농민들이 들고일어난 추수투쟁은 일제와 그 주구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고 승리로 끝났다.

추수투쟁을 통하여 각성되고 기세가 오른 군중은 이듬해 봄에 다시 춘황투쟁에 일떠섰으며 일제와 친일반동지주들을 반대하는 실천투쟁속에서 항일무장투쟁의 대중적지반은 튼튼히 꾸려져갔다.

추수, 춘황투쟁의 나날 자기들의 요구조건을 관철하기 위하여 지주집을 포위하고 밤을 새우는 군중들을 위해 한몸의 피로도 무릅쓰면서 불을 피우고 더운물을 끓여 고무하여준 김정숙녀사의 헌신적이고도 정열적인 모습, 적기마경찰대놈들이 달려들어 군중을 포위하려는 때 군중앞에 나서서 그들의 용기를 북돋아주는 힘있는 선동연설을 하신 나어린 김정숙녀사의 용감하고도 헌신적인 행동은 그 어떤 곤난앞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맞받아나가는 불굴의 의지와 혁명적열정, 조직선도자적수완을 남김없이 보여주었다.

이렇듯 김정숙녀사께서는 소년선봉대에 입대하여 일제의 《만주사변》의 본질을 폭로하는 투쟁과 추수, 춘황투쟁의 나날에 혁명위업에 대한 무한한 헌신성과 높은 조직성, 능숙한 조직자적수완과 정치사업능력을 지닌 선군혁명의 믿음직한 투사로, 미래의 녀성영웅으로 더욱 억세게 준비되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