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태양 김정일장군」 (4)중에서

 

 선군이 안아온 6.15통일시대의 막이 오른지 어언 다섯해, 력사적인 6.15북남공동선언의 기치밑에 자주통일의 새시대를 빛내여온 이 5년의 선군통일운동력사는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의 정당성과 거대한 생활력이 뚜렷이 과시되여온 뜻깊은 나날이였다.

《우리 민족끼리》의 대명제가 있어 우리 겨레는 6.15북남공동선언발표이후 지난 5년간 6.15와 8.15 등 중요계기들마다 평양과 금강산, 서울과 인천 등을 오가면서 대규모 민족통일행사들을 성과적으로 진행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2005년에 진행되는 통일행사들이 민간단체들은 물론 북과 남의 당국대표들까지 참가하는 명실공히 전민족적인 거족적운동으로 발전해나가도록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시였다.

2005년은 력사적인 6.15북남공동선언발표 5돐과 조국해방 60돐이 되는 뜻깊은 해였다. 이 뜻깊은 해에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밑에 겨레의 통일운동을 더욱 힘있게 벌려나가기 위하여 장군님께서는 선군혁명령도의 그 바쁘신 가운데서도 6.15북남공동선언발표 5돐기념 민족통일대축전을 몸소 발기하시고 그 실현을 위한 사업을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주체93(2004)년 10월과 주체94(2005)년 1월 북과 남, 해외를 포괄하는 전민족적통일운동기구인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북, 남, 해외공동행사준비위원회를 내올데 대한 방도를 밝혀주시고 그에 기초하여 6.15공동선언발표 5돐기념 민족통일대축전을 평양에서 정치적의의가 있게 성대히 진행할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리하여 2004년 11월 금강산에서 진행된 북과 남, 해외의 각계층 대표들과 여러 통일운동단체대표들의 실무접촉이 이루어지고 여기에서 앞으로의 통일운동과 민족공동의 통일행사들을 광범하게 협의추진하기 위하여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북, 남, 해외공동행사준비위원회를 2005년의 적절한 시기에 내오며 당면하여서는 북과 남, 해외에서 각기 지역준비위원회를 내올데 대한 문제가 합의되였다.

이에 따라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북, 남, 해외공동행사지역준비위원회들이 나왔다.

이어 2005년 3월 금강산에서는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북, 남, 해외공동행사준비위원회 결성식이 진행되고 여기에서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북, 남, 해외공동행사준비위원회가 결성되였다.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북, 남, 해외공동행사준비위원회는 북, 남, 해외의 각계층 정당, 단체, 인사들을 가장 폭넓게 망라한 전민족통일운동련대기구로서 민족의 통일지향과 의지를 하나로 합쳐나갈수 있는 강력한 추동력이였다.

그리하여 6.15공동선언발표 5돐기념행사를 종전의 통일행사들과는 질적으로 구별되는 민족대단합의 새로운 장을 펼치는 행사로 성대히 치를수 있는 조직적기반이 마련되게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민족통일대축전준비사업이 편향없이 추진되도록 깊은 관심을 돌려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6.15북남공동선언발표 5돐기념 민족통일대축전이 우리 겨레의 통일운동에서 새로운 전환적계기가 되도록 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정치행사들과 체육문화행사들을 배합하여 특색있게 진행하며 행사명칭과 행사기간, 참가대상과 축전참가자들의 참관사업, 해내외대표들에게 축전대표증과 기념휘장을 수여하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렇듯 세심한 보살피심에 의하여 2005년 6월 14일 평양에서는 북남당국대표들과 북, 남, 해외대표들 그리고 평양시민들의 참가밑에 6.15공동선언발표 5돐기념 민족통일대축전이 성대히 개막되였다.

개막식에 앞서 자주, 평화, 통일을 열어나가는 민족대행진이 진행되였다. 대행진참가자들은 비가 쏟아지는 속에서도 단일기와 꽃묶음을 흔들고 조국통일구호를 웨치는 평양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축전개막식장인 김일성경기장으로 보무당당히 행진해갔다.

김일성경기장에서 진행된 축전개막식에는 우리측에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당국대표단과 90여개 단체의 대표 130여명, 남측에서 《통일부 장관》을 단장으로 하는 당국대표단과 160여개 단체의 300여명의 대표들, 해외측에서 70여개 단체대표 100여명 그리고 수만명의 평양시민들이 참가하였다. 민족분렬사상 처음으로 북과 남의 당국대표단과 지난 시기 조국통일운동과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사업에 크게 이바지한 해내외의 유명인사들이 참가함으로써 6.15공동선언발표 5돐기념 민족통일대축전을 더욱 뜻깊게 하였다.

북측준비위원회 위원장은 축전개막사에서 민족분렬이후 처음으로 사상과 리념, 정견과 신앙의 차이를 초월하여 북과 남, 해외의 각당과 각계각층이 함께 하고 당국과 민간이 함께 하며 백두에서 한나까지 전지역이 모인 이 축전이야말로 조국통일의 주체는 우리 민족임을 내외에 힘있게 과시하고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을 실천해나갈 온 민족의 한결같은 의지를 확인하는 민족대회합의 새로운 마당이라고 하면서 6.15공동선언발표 5돐기념 민족통일대축전개막을 엄숙히 선언하였다.

축전개막에 이어 이를 축하하는 평양시 청년학생들의 률동체조와 야회가 진행되였다.

다음날 4.25문화회관에서는 6.15공동선언발표 5돐기념 민족통일대회가 북남당국대표들을 포함하여 북측과 남측, 해외측대표와 수많은 평양시민들의 참가하에 진행되였다.

대회에서는 온 겨레의 불같은 통일애국의 마음과 의지를 담은 《민족통일선언》을 채택하였다.

《민족통일선언》에서는 민족자주선언, 반전평화선언, 민족대단결선언인 6.15공동선언이 열어놓은 길을 따라 지난 5년간 조국통일을 위한 진군길에서 큰 걸음을 내디딘데 대해 지적하고 조국통일의 새 국면을 맞이한 오늘 온 겨레는 힘을 합쳐 자주적평화통일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야 할것이라고 하면서 다음의 내용을 엄숙히 선언하였다.

선언에서는 력사적인 6.15공동선언에 천명된대로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조국통일의 력사적위업을 성취할것이라는것, 민족운명개척에서 전환적의의를 가지는 6.15공동선언이 발표된 날을 《우리 민족끼리의 날》(6.15공동선언발표기념일)로 정하고 민족공동으로 기념할것이라는것, 민족공동의 리익을 첫자리에 놓고 당국사이, 민간사이의 공동보조를 도모하고 련대를 강화하며 다방면적인 협조를 강화해나갈것이라는것, 온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이 땅에서 핵전쟁의 위험을 제거하고 평화로운 삶의 터전을 가꾸어나갈것이라는것,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북, 남, 해외공동행사준비위원회를 6.15공동선언을 지지하는 온 겨레를 하나로 단합시키고 조국통일운동을 거족적으로 힘있게 추진시켜나가는 가장 폭넓고 위력한 통일애국운동기구로 강화발전시켜나갈것을 천명하였다.

이어 력사적인 6.15공동선언발표 5돐을 기념하는 북남당국공동행사와 북, 남, 해외공동사진전시회가 열리였으며 북, 남, 해외의 로동자, 농민, 청년학생, 녀성, 교원, 정치인 등 계층 또는 부문별상봉모임들이 진행되였다.

16일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는 북과 남, 해외대표들의 《6.15상》통일배구경기 및 체육유희경기가 진행되였고 이번 민족통일대축전을 성과적으로 보장하는데 크게 기여한 단체와 인사들에 대한 지원증서수여모임이 있었다.

정녕 6.15공동선언발표 5돐기념 민족통일대축전은 60년 분렬사상 처음으로 북남당국의 참가밑에 북과 남, 해외의 각계각층 동포들이 한자리에 모여 통일문제들을 토론하고 민족의 대단합을 위한 행사들을 진행한 전민족적인 대회합이였다. 이에 대하여 외국의 신문, 방송, 통신들도 광범히 보도하였다.

남조선인민들과 해외동포들은 평양의 공동축전에 맞추어 6.15공동선언발표 5돐을 기념하는 다양한 통일행사들을 진행하여 자기들의 통일의지를 잘 보여주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밑에 힘차게 전진하는 겨레의 통일운동을 새로운 단계에로 앙양시킬 원대한 구상을 안으시고 주체94(2005)년 6월 17일 6.15공동선언발표 5돐기념 민족통일대축전에 남측당국대표단 단장으로 참가한 남조선《대통령》의 특사인 《통일부 장관》을 접견하시였다. 이것은 축전의 최고절정을 장식한 일대 사변이였다.

석상에서 먼저 경애하는 장군님께 남조선《대통령》의 구두친서를 특사가 정중히 전해드렸다.

장군님께서는 이에 사의를 표시하시고 특사와 따뜻한 담화를 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남측특사에게 그가 평양에 처음으로 왔지만 우리는 하나의 피줄을 이은 동족이여서 구면같이 생각된다고 하시며 이야기의 서두를 떼신데 이어 《통일부 장관》으로 평양을 방문한것은 중요한 사명을 띠고 왔다는것을 의미한다고 말씀하시였다. 만나는 순간에 긴장된 마음을 풀어주시는 장군님의 말씀을 접하게 된 특사는 국방위원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고맙게 생각한다고 정중히 례의를 표시하였다.

장군님께서는 지금 전반적국제정세는 대단히 복잡하다고,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서 미국은 실패했다고, 조선반도문제, 핵문제에서 괜히 신경을 쓰고 트집을 잡고있다고, 미국은 상황이 진정될만 하면 시비를 걸고있다고 하시며 당시 초미의 문제로 나선 6자회담복귀에 대한 우리의 립장을 밝히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조선반도의 비핵화문제는 김일성주석님께서 처음으로 발기하신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거꾸로 렬강들이 비핵을 주장하고있다, 비핵화를 뒤집어엎은것은 미국이다, 6자회담에는 평등한 자격으로 나갈수 있어야 한다, 누구는 피고석에 앉고 누구는 재판관이 되여서는 안된다, 내가 보건대 미국은 시간을 끌려고 하는것 같다, 지금 부쉬행정부는 한두해 시간을 더 끌면서 이라크, 이란, 수리아, 아프가니스탄문제에서 저지른 실책을 모면하고 거기를 정리하는데 더 신경을 쓰고있다, 핵문제와 조선반도의 문제는 한쪽으로 미루어놓고 다음정부가 하도록 지연전술을 쓰는것 같다고 말씀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특사가 6자회담에서 남측의 역할문제를 상정시키자 핵문제는 기본적으로 조미간의 문제로 된다, 조미협상을 거부하는것은 결국 우리를 거부하는것이며 이런 상황에서는 미국과 맞설수밖에 없다, 우리는 결코 6자회담을 포기한적이 없다, 6자회담을 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시며 우리의 립장을 명백히 밝히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리의 핵보유문제와 관련하여서도 우리에게 핵은 필요없다, 우리의 핵은 어디까지나 미국의 위협을 억제하기 위한것이다,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김일성주석님의 유훈이며 따라서 우리는 이를 철저히 관철할것이다, 미국이 우리의 제도를 전복하려는 의도를 가지고있기때문에 억제력으로 핵을 가지고있는것이지 다른 리유가 없다고 천명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리가 핵을 가지는것은 불가피하게 취한 조치이며 남쪽인민들을 대상해서는 그것을 절대로 쓰지 않는다고, 이에 대해 남조선인민들에게 꼭 전달해주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시였다.

자자구구에 철의 론리와 애국애족의 피가 흐르고 부정할수 없는 진실이 담겨진 말씀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말씀은 그야말로 온 남녘땅을 다시한번 뒤흔들어놓는 《제2의 핵보유선언》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날 북남사이에 통일행사들을 계속 진행해나갈데 대하여서도 뜻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특사일행을 향해 여러분들이 6.15공동선언발표 5돐기념행사에 온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사실 6.15공동선언의 내용은 훌륭하다고, 민족의 운명을 결정할수 있는 선언이라고 하시며 이번에 평양에서 가진 6.15민족통일대축전에 이어 8.15에 서울에서 또 한차례의 통일축전을 벌리면 세계의 분위기상 과속이 아니냐고 놀랄 정도로 북남관계가 잘될수 있을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8.15에 우리 대표단을 내보내겠다고, 이번에 남쪽에서 온 당국대표단규모에 맞추어 대표단을 구성하여 내보내겠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6.15북남공동선언의 기치밑에 통일운동을 더 세차게 벌려 북남관계를 새로운 단계에로 발전시키실 원대한 구상이 담겨져있는 뜻깊은 말씀이였다.

장군님께서는 8.15를 계기로 흩어진 가족, 친척상봉을  금강산에서도 하고 《화상상봉》을 통해서도 할데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특사일행이 제기하는 문제들을 다 풀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날 남측특사일행과 평양상봉연고자들, 문익환목사의 부인을 위하여 오찬을 마련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북남대화와 접촉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킬데 대한 강령적인 말씀을 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옛날에는 《전대협》대표 1명이 오는것만 가지고도 말이 많았는데 지금은 숱한 민간대표단이 오고있다고 6.15공동선언이후 변화발전된 북과 남사이의 오늘의 관계에 대해 지적하시고나서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였다.

《상급회담을 하는것을 보면 처음 5분간은 날씨 등을 가지고 따뜻한 말이 왔다갔다하지만 본론으로 들어가면 말싸움뿐입니다.

북과 남이 마주앉아 회담하는것도 시대가 달라지는데 맞게 바뀌여야 합니다. 리성적으로 해야지 더이상의 체면유지놀음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말싸움, 체면유지놀음! 북과 남사이의 접촉과 대화에 고질적으로 남아있는 병페를 예리하게 찌르는 말씀이였다.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여 북과 남이 하나로 합쳐지면 우리 나라가 힘이 강해진다는것을 알고있기때문에 미국은 우리 민족문제에 개입하여 헌병노릇을 하면서 정세가 좋아지고 북남이 가까와지는것을 좋아하지 않고있으며 자꾸 정지시키고있다고 지탄하시였다.

이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리 민족은 하나이라고, 우리는 빨리 통일을 해야 한다고 절절히 이르시고나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북남관계에서 절대로 주관주의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북남관계는 곧 민족내부관계이며 민족의 운명, 민족의 리익과 관련되여있는 관계입니다.

그만큼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북남관계는 중요하다고 볼수 있습니다. 그런데 북남관계문제를 다루면서 일군들이 주관주의에 빠지게 되면 민족의 리익을 침해하게 되고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하는데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북남관계에서 절대로 주관주의에 빠지지 말아야 하며 그것을 금물로 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보기에는 그것이 다 체면때문입니다. 체면주의가 야단입니다.》

주관주의, 체면주의를 없앨데 대하여 강조하시는 위대한 장군님, 한없이 숭고한 풍모와 따뜻한 동포애, 파격적이고 거침없는 언변으로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격동시키는 그이의 경이로운 대화술에 탄복하여 남측성원들은 흥분된 어조로 어쩌면 그리도 모든 말씀을 가슴이 시원하게 하시는가고, 막혔던 속이 다 내려간다고 하면서 절세의 위인의 근엄한 영상을 우러르고 또 우러렀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남측《대통령》특사와 기념촬영을 하시였다. 그리고 북남수뇌상봉의 연고자들인 전 《정보원 원장》, 전 《통일부 장관》, 전 《한겨레》신문사 사장, 전 《정보원 차장》과 그리고 전 《상지대학교》 총장,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문익환목사의 부인을 접견하시고 그들과 기념촬영을 하시였다.

장군님께서 남측특사일행을 만나주시고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밑에 조국통일운동을 더욱 힘있게 벌려나가기 위하여 북남관계에서 새로운 전환을 가져올데 대한 강령적인 말씀을 주신 6월 17일은 조국통일운동력사에서 하나의 획을 긋는 격동적인 사변의 날로 기록되였다.

장군님을 만나뵙고싶던 소원을 성취한 특사는 정말 힘이 생긴다고, 자기는 돌아가서 국방위원장님의 말씀을 꼭 지키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남조선 《통일부 장관》을 접견하신 소식은 남조선에 제2의 《6.15열풍》,김정일열풍》을 일으켰다.

남조선의 주요신문들은 장군님께서 남측특사일행을 접견해주신 소식을 앞을 다투어 보도하였다.

《17일 이뤄진 김정일국방위원장과 정동영과의 면담은 여러모로 파격적이였다.》(《중앙일보》 2005. 6. 18), 《김정일국방위원장과 정동영장관의 면담에서 6자회담복귀를 비롯해 남북장성급군사회담 등을 합의함에 따라 남북관계는 <제2의 6.15시대>를 맞게 된것이다.》(《북한》 2005. 7), 《이번 면담은 남북대화의 전면복원과 심화의 토대가 될 전망이다.》(《한겨레》 2005. 6. 18), 《…남북관계진전과 한반도평화증진에 일대 돌파구를 연 중대한 사건이였다.》(《중앙일보》 2005. 6. 20)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남조선특사를 접견하시고 하신 뜻깊은 말씀은 북남관계발전에서 커다란 변화를 안아왔다.

6월 21일부터 23일까지 서울에서는 제15차 북남상급회담이 진행되였다.

이 상급회담에서는 우익보수세력들의 준동이 극도에 이르고 토의할 문제가 많았지만 단 한차례의 전체회담으로 모든 문제들을 타결하고 북남관계전반을 다룬 12개 조항의 공동보도문을 발표하는것으로 새로운 회담문화를 창조하였다.

그리하여 제15차 북남상급회담은 종래 회담문화의 낡은 틀을 벗어던지고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합의를 이룩한 회담으로, 동족으로서 진심으로 합심하고 협력하여 민족공동의 실리를 도모해나가는데서 《신기록》을 세운 회담으로 되였다.

남조선의 《KBS》도 《남북관계의 새로운 봄맞이》로 묘사하면서 《이번 제15차 장관급회담의 공동보도문을 종합해보면 7월과 8월에만도 11차례, 12월까지의 남북대화일정이 잡힌셈이여서 앞으로 남북대화가 보물처럼 쏟아진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회담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비방과 비난도 거의 없었던것으로 알려졌다.》라고 평하며 놀라움을 표시한것을 비롯하여 모든 언론들이 제15차 북남상급회담정형을 경쟁적으로 보도하였다.

북남관계의 주축을 이루는 상급회담이 이렇게 새롭게 움직이니 뒤이어 열린 제10차 경제협력추진위원회에서도 북남이 서로에게 리익이 되는 새로운 방식의 경제협력의 합의를 보는 성과가 이룩되였다.

이뿐이 아니였다. 제15차 북남상급회담을 계기로 일시 정체상태에 빠져있던 전반적인 북남관계는 보다 폭넓게 활성화되고 민족의 통일열기는 더한층 고조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6.15축전에 이어 조국해방 60돐을 맞으며 8.15축전이라는 전민족적인 대잔치를 련이어 펴놓게 하시여 겨레의 통일열기를 더욱 북돋아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끊임없이 이어가시는 선군령도의 그 바쁘신 가운데서도 8.15민족대축전을 통하여 북남관계와 통일운동사에서 획기적인 전환을 마련하실 구상을 지니시고 몸소 그 준비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려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여러차례에 걸쳐 서울에서 진행되는 8.15통일행사가 협력교류과정이 아니라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밑에 조국통일을 위해 투쟁할것을 확약하는 통일잔치가 되도록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8.15민족대축전을 통해 6.15시대에 처음으로 남조선과 해외의 광범한 각계층을 망라하여 발족된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북, 남, 해외공동행사준비위원회를 점차 상설적인 전민족적규모의 통일운동기구로 확대발전시키고 그것을 주축으로 통일운동이 더욱 힘있게 전개되여나가도록 이끌어주시였다.

2005년 12월 10일 북과 남, 해외의 대표들은 중국 심양에서 통일운동련대기구창설의 정당성과 의의를 다시한번 확인한데 기초하여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북, 남, 해외공동행사준비위원회를 6.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략칭 《6.15민족공동위원회》)로 그 명칭을 바꾸었을뿐아니라 위원회의 규약도 채택발효시키고 공동사무국도 설치하여 행사위주의 조직으로부터 상설적인 통일운동련대조직으로 그 기능과 지위, 역할이 일층 강화발전되게 하였다.

6.15민족공동위원회는 전민족의 통일지향과 애국애족의 결정체로서 겨레의 통일운동을 조직적으로, 대중적으로 이끌어나갈수 있는 민족대단합의 모체, 견인력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6.15민족공동위원회를 주축으로 해내외의 온 겨레가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아래 굳게 단결하여 반미자주화와 조국통일운동에 적극 떨쳐나서도록 하시였으며 8.15통일행사가 6.15민족통일대축전에서 채택된 《민족통일선언》을 실천하기 위한 행사일환으로 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뿐만아니라 행사명칭이며 행사기간, 장소, 행사내용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으며 축전의 기본대회인 자주, 평화, 통일을 위한 8.15민족대회에 큰 의의를 부여하시고 여기에서 조국통일 3대공조를 실현하여 민족의 자주권을 수호하며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6.15공동선언을 철저히 관철할데 대한 내용으로 북, 남, 해외가 각각 연설도 하고 해내외동포들에게 보내는 호소문과 같은 공동문건도 채택하도록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가 있어 서울에서 열린 8.15민족대축전은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조국통일을 위한 힘찬 투쟁을 벌려나갈것을 다짐하는 《제2의 평양축전》으로 되였다.

8월 14일 통일대행진을 진행할 때 우리 당국대표단전원은 단일기를 흔들며 민간대표단과 함께 대행진에 나섰고 민족자주를 내용으로 하는 쟁쟁한 연설들을 하였으며 남조선당국대표들도 처음으로 통일운동단체들과 나란히 대행진에 참가하는 하나의 《사변》이 일어났다.

이러한 분위기속에서 남조선 《통일부 장관》은 개막식축하연설에서 《우리 민족끼리》, 《자주》라는 표현을 여러차례 언급하여 보수언론지들까지 크게 놀라게 하였다.

8월 15일에 진행된 자주, 평화, 통일을 위한 8.15민족대회에서는 《우리 민족끼리》의 함성이 서울장안을 높이 울리는 격동된 분위기속에서 《7천만겨레에게 보내는 호소문》이 참가자들의 열렬한 박수속에 채택되였다.

 호소문에서는 60년전 8.15는 분렬로 이어졌지만 오늘 우리는 6.15공동선언이 열어놓은 통일의 시대로 나아가고있다는것을 지적한데 이어 그 어떤 장애물도 이미 시작된 겨레의 발걸음을 멈춰세울수 없다고, 어느 누구도 민족사의 시계를 과거로 되돌릴수 없다고 하면서 6.15공동선언으로부터 시작된 민족사의 대장정을 중단없이 이어나갈것을 7천만겨레에게 절절히 호소하였다.

그 다음날에 진행된 북과 남, 해외대표들의 각계각층의 상봉모임에서도, 북남간의 체육경기들에서도 겨레의 통일열기는 세차게 뿜어져나왔다.

8.15민족대축전이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밑에 민족자주의 원칙에서 조국통일을 힘있게 벌려나갈것을 약속하는 통일대잔치로 진행된데 대하여 남조선의 우익보수세력을 대변하는 《조선일보》(2005. 8. 17)는 《광복 60주년을 맞아 남북이 서울에서 개최중인 <자주, 평화, 통일을 위한 8.15민족대축전>이 <미군철수>, <외세배격> 등 북의 주장을 선전하는 무대로 리용됐다》고 비명을 질렀다.

행사기간에 있은 대표단의 《현충원》방문은 남녘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우리 대표단이 이곳을 참관하겠다고 처음 제기하였을 때 남조선당국은 결단을 내리지 못하다가 사흘후에야 겨우 결단을 내렸다. 그들은 우리 대표단의 《현충원》방문을 몹시 두려워하면서 그 파문을 극소화해보려고 인원을 제한한다, 보도통제를 한다 하며 소란을 피우기도 하였다.

그러나 손바닥으로는 해빛을 가리울수 없는 법이다.

우리 대표단의 《현충원》방문을 두고 남조선당국은 《북은 6.15대축전행사로 남북사이의 큰 벽을 허물었다면 현충원참배로 남쪽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고 솔직한 심정을 고백하였다. 남조선에서는 진보와 보수, 당국과 민간, 단체와 개인을 가림없이 우리 대표단의 《현충원》방문을 북남사이의 마지막장벽을 허무는 극적사변으로 찬양하였다.

남조선의 언론들도 《… 현충원참배는 파격적인 행보이다. 정부가 북의 제안을 받고도 나흘간이나 공개하지 못하고 내부론의를 거친것만 보아도 참배라는 사안의 복잡성을 짐작할수 있다.》(《중앙일보》 2005. 8. 16)라고 하면서 대서특필하였다.

참으로 2005년 6.15-8.15통일대축전은 조국통일운동사에서 커다란 의의를 가지는 력사적인 사변이였다. 5년전 6.15공동선언발표가 북남화해협력의 출발이였다면 이해에 진행한 6.15-8.15통일대축전은 그 새로운 도약을 기약하는 계기로 되였다.

2005년은 우리 나라의 통일운동력사에서 또 하나의 큰 걸음을 내디딘 뜻깊은 해였다.

6.15통일렬차에 몸과 마음을 담고 나아가는 우리 민족에게는 감회깊은 추억도 많고 세상에 소리높이 말하고싶은것도 많다.

그 많고 많은것 가운데서 우리 겨레의 가슴에 가장 뜨겁고 귀중하게 간직된것은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을 모시여 6.15통일시대가 있고 《우리 민족끼리》리념에 따라 조국은 반드시 통일되고야만다는 통일신념이고 통일의지이다.

우리 민족은 《김정일장군 만세!》를 7천만의 대합창으로 소리높이 부르며 삼천리 조국강산에 통일의 축포를 기어이 올리고야말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