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머니 김정숙녀장군」중에서

아버님을 잃은 후 김정숙녀사의 일가는 주체18(1929)년 6월 연길현 부암동 하촌으로 자리를 옮기였다.

부암동은 연길(국자가)에서 북쪽으로 60리가량, 팔도구에서 30리가량 떨어져있는 마을이였다.

동네사람들로부터 일가는 《회령집》으로 녀사께서는 《회령집 작은딸》로 깊은 신뢰를 받았으나 겹쳐드는 불행으로 하여 어느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었다.

김정숙녀사께서 10살 되시던 해 봄에는 빚때문에 언니를 지주집머슴으로 빼앗기고 그에 항거해나선 오빠마저 불구가 되고말았는데 또 몇해후에는 김정숙녀사께서 머슴살이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불행을 당하였다.

1930년 어느날 마을에서는 녀인들이 낟알을 얼마간씩 모아 음식을 만들어 함께 들며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는 되놀이를 조직하였다.

가을걷이전이여서 어느 집이나 다 식량사정이 어려웠지만 김정숙녀사의 집은 더구나 어려웠다.

어머님과 형님이 신병으로 일을 변변히 하지 못하였고 얼마전에는 할머님의 장례까지 치르다보니 되놀이에 가지고 갈 쌀이 없었다.

배짱이 센 기송동생이 낫을 들고 소작밭에 나가 잘 여문 수수 몇이삭을 잘라다가 누나의 되놀이쌀을 마련해주었다.

그런데 되놀이를 한 며칠후 이것을 알게 된 지주놈이 제 아들놈까지 데리고 녀사의 집에 달려와 타작도 하지 않은 소작밭에서 누가 마음대로 수수이삭을 잘라왔는가고 발을 구르며 《도적》의 루명을 씌웠다. 그리고 누구든지 자기네 집에 와서 한해 겨울 연자방아를 돌리라고 하면서 이에 응하지 않을 때에는 관헌에 신고하여 집을 헐어버리고 땅을 떼며 김기송동생을 꼴머슴으로 끌어가겠다고 을러메였다.

일가는 너무도 억울하고 분하였으나 당할수가 없었다.

당장 땅을 떼우면 온 집안식구가 굶어죽게 될것이였으므로 김정숙녀사께서는 자신께서 지주집 연자방아를 돌리기로 결심하시였다. 사랑하는 어머님과 형님에게 노예의 멍에채를 메게 할수 없고 더우기 어린 동생에게 지주집머슴살이를 시킬수 없다고 생각하신것이다.

이렇게 수수 몇이삭때문에 녀사께서는 그해 10월부터 머슴살이를 강요당하게 되였다.

머슴살이는 참으로 고되고 피눈물나는것이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눈보라가 휘몰아쳐드는 한지나 다름없는 연자방아간에서 헌 토스레옷을 걸치고 연자방아를 돌리고 또 돌리시였다. 악착한 지주놈은 방안에 있다가도 연자방아소리가 멎기만 하면 달려나와 고함을 질러대군 했으며 밤낮없이 몰아대며 일을 시켰고 어느 하루 쉬우지 않았다.

그해 12월 24일, 녀사의 어머님께서는 열세번째 생일을 맞으시는 따님을 하루만이라도 집에 데려다가 푹 쉬게 해주고싶으시여 지주놈에게 청원하였는데 사람의 가죽을 썼을뿐 량심이란 단 한쪼각도 없는 리지주놈은 대번에 거절하였다.

할수없이 어머님께서는 따님의 생일날 어린 아드님과 함께 베보자기에 밥 한그릇을 싸들고 연자방아간으로 찾아가시였다. 생일날에까지 멍에채를 잡고있는 딸이 너무도 애처로와 어머님께서는 밥보자기를 풀어놓고 아드님과 함께 연자방아채를 잡으시였다.

그때 김정숙녀사께서는 어머님과 동생의 손을 잡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어머니, 그만두십시오. 무엇때문에 어머니까지 이 집 연자방아를 돌리겠습니까. 어머니와 기송이가 이 집 쌀 한말 더 찧어준다고 우리 집 처지와 내 처지가 달라지겠습니까. 그저 가슴만 더 아프지…》

애써 눈물을 참으시며 어머님과 동생을 집으로 돌려보내신 녀사께서는 다시 멍에채를 잡으시였다.

녀사의 가슴속에서는 이 세상을 그대로 두고서는 가난과 치욕, 모멸에서 벗어날수 없으며 불의한 이 세상과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결심이 활화산같이 타올랐다.

인민의 피땀을 짜내는 저주로운 세상과 결판내기로 싸워 가슴에 서린 원한을 기어이 풀리라는 심장의 맹세를 다지신 김정숙녀사께서는 1931년초에 치욕스러운 머슴살이에서 뛰쳐나오시였다.

고역과 학대속에서 보낸 머슴살이는 녀사로 하여금 원쑤 왜놈과 지주, 자본가놈들과는 한하늘을 이고 살수 없으며 반드시 이 불공평한 세상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투철한 혁명의식, 계급적각오를 더욱 굳게 가다듬게 하였고 분연히 혁명의 길에 나서게 한 중요한 계기로 되였다.

김정숙녀사의 일가가 모진 수난과 불행을 겪으시던 이무렵 간도땅은 항일의 열풍으로 서서히 달아오르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새 세대 청년공산주의자들을 묶어세우시며 기존세력들의 투쟁방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조선독립의 길, 항일무장투쟁을 준비하고계시였던것이다.

피바다에 잠긴 삼천리조국땅과  수난에 몸부림치는 겨레의 운명을 한몸에 안으시고 혁명의 길에 나서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 세대 청년공산주의자들로 주체15(1926)년 10월 17일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되는 참다운 혁명조직인 타도제국주의동맹(《ㅌ.ㄷ》)을 결성하시고 선군혁명사상의 시원으로 되는 《ㅌ.ㄷ》의 강령을 발표하심으로써 조선인민의 민족해방투쟁의 새 출발을 온 세상에 알리시였다.

망국의 비운속에서  민족의 운명을 구원해줄  걸출한 위인을  목마르게 기다리던 조선인민은 이때로부터 위대한 수령님을 민족의 태양으로 우러르며 주체혁명의 새로운 항로를 개척해나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ㅌ.ㄷ》를 결성하신 이후 화전에서 길림으로 활동무대를 옮기시며 《ㅌ.ㄷ》를 반제청년동맹으로 발전적으로 개칭한데 이어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을 결성하시고 길회선철도부설반대투쟁과 일본상품배척투쟁을 현명하게 령도하시였으며 그후 주체19(1930)년 6월 력사적인 카륜회의에서 무장투쟁로선을 반일민족해방투쟁의 기본로선으로 제시하시였다.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선군사상, 항일무장투쟁로선을 받들고 수많은 정치공작원들이 두만강연안의 넓은 지역들에 나가 무장투쟁준비를 다그쳤다. 그들에 의하여 마을마다 야학이 세워지고 대중을 혁명화하기 위한 사업이 활발히 벌어졌다.

부암동에도 야학이 생겼는데 야학선생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파견하신 청년공산주의자들에 의하여 무어진 혁명조직의 한 성원이였다.

야학에서는 주로 국어와 산수, 우리 나라의 력사와 지리 등을 배워주었다.

어리실 때부터 배움에 대한 열망이 남달리 높으시였던 김정숙녀사께서는 야학에 남먼저 나가시여 언제나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꾸준히 공부하시였다.

한때 부암동에 와서 활동하면서 김정숙녀사의 일가와 깊은 인연을 맺은 항일혁명투사 림춘추는 그 시절의 김정숙녀사에 대하여 이렇게 회상하였다.

《김정숙동지는 그때 나이에 비하여 매우 숙성해보였다.

김정숙동지는 례절이 바르고 총명하였으며 배우려는 열망이 남달리 높았다. 마을에 야학이 서는 날 그는 누구보다도 선참으로 야학에 달려왔으며 그후 어느 하루도 야학에 빠지는 일이 없었다.》

녀사께서는 국어든 산수든 무엇이나 다 놀라울 정도로 잘 리해하시였는데 어느것이나 다 현실과 결부하여 그 본질을 깊이 파악하시였다.

당시 야학생들이 제일 애타하는것은 산수응용문제였다.

어느날 늘 녀사의 곁에 앉는 동무가 선생으로부터 받은 응용문제를 제힘으로 풀지 못하고 주저앉고말았다.

공부가 끝난 후 김정숙녀사께서 그에게 우리에게 오련발짜리 총이 열자루가 있다고 하자, 거기에 총탄을 다섯발씩 재우려면 모두 몇발이 있어야 하는가고 묻자 그는 제꺽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웃으시며 그러면 열에 다섯을 곱하면 몇인가고 재차 물으시였다. 그제서야 그는 머리를 들며 쉰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는 동무를 대견히 바라보시며 김정숙녀사께서는 말씀하시였다.

《이다음에 네가 군사 열을 거느리게 된다고 하자. 그때 군사 한사람에게 총탄을 다섯개씩 나누어주려면 쉰개가 있어야 한다는것을 제꺽 계산해내야 하지 않겠니. 응용문제를 푸는것은 이렇게 실지 써먹을수 있는 지식을 익히는 학습이야. 때문에 아무리 어려운 응용문제라도 제힘으로 푸는 습성을 붙여야 해. 그러면 신심도 생기고 한문제라도 더 풀어보려고 애쓰게 돼.》

어리신 김정숙녀사의 뇌리에는 언제나 손에 총을 잡고 일제와 싸울 반일항전의식이 깊이 자리잡고있었던것이다.

김정숙녀사께서는 학습토론에도 언제나 열성적으로 참가하시였다.

어느날 야학에서는 상급반, 초급반이 한데 모여 《우리 소작인들은 왜 못사는가?》라는 제목으로 토론을 하였다.

토론에 참가하신 녀사께서는 부암마을 지주가 소작인들을 어떻게 착취하는가 하는것을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 생동하게 설명하시였다.

땅없는 농민들은 일년내내 뼈빠지게 일하여 거두어들인 곡식의 절반이상을 지주놈에게 소작료로 빼앗기고 거기에다 땅세요, 인두세요, 거류민회비요, 가축세요, 굴뚝세요 하는것들까지 다 물면 결국 보리고개를 넘기기도 바쁘다, 그래서 하는수없이 지주놈에게서 장리로 쌀을 꿔오고 돈을 꿔오게 되며 그렇게 되면 거기에 리자가 붙고 그 리자가 또 새끼를 쳐서 결국 빚더미우에 올라앉는다, 그러니 소작인들이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김정숙녀사께서는 여기 간도지구사람들은 누구나 다 일제놈들과 지주놈들때문에 살기 좋은 고향땅을 버리고 산설고 물설은 남의 나라 땅에 와서 살게 되였다고 하시면서 자기 집에서도 회령땅을 등지고 두만강을 건너왔으며 이곳에 온 후에도 지주놈의 착취와 천대를 받고있다고 절절히 이야기하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야학에서 진행되는 학습과 토론을 통하여 자신의 지식을 높여나가시였을뿐아니라 야학에서 진행하는 이야기모임에도 적극 참가하시여 사상의식수준을 높여나가시였다.

녀사께서는 특히 야학에서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끝없는 존경과 흠모의 마음을 깊이 간직하게 되시였다.

당시 혁명조직성원인 야학선생은 야학생들에게 위대한 수령님께서 민족의 태양으로 출현하신 전설같은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다.

《료하천변의 캄캄한 밤하늘에 새별이 솟아 온 천지를 환히 밝혀주고있다.》

《새별처럼 온 천지를 환히 밝혀주시는분이 산을 주름잡아 다니시며 왜놈들을 한칼에 베일 도를 닦고있다. 그분이 군사를 거느리고 나서시는 날에는 조선이 독립된다.》

김정숙녀사께서는 그 이야기를 들으시며 짓밟힌 조국과 민족을 구원해줄 위대한 령도자를 마음속으로 그려보시였다.

그런 위대한분이 정말로 계신다면! 그분을 따라 그분의 군사가 되여 일제와 지주, 자본가놈들을 때려부시는 싸움에 나설수 있다면!…

이것은 그 시절 어리신 김정숙녀사께서 품으신 가장 간절한 소망이였다.

이 시기 김정숙녀사의 김기준오라버님은 반제동맹의 핵심성원으로서 혁명활동에 참가하고있었다. 그러나 집안식구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있었다. 어느날 안해가 무슨 일로 밤잠을 잊고 다니는가고 물었을 때 오라버님은 밤이슬을 받아마시면 약이 된다고 하기에 한번 시험해보는중이라고 대답하였다. 안해는 그 말을 그대로 믿었으나 김정숙녀사께서는 오라버님이 그 어떤 큰일을 위해 밤길을 걷는다는것을 감촉하시였다. 녀사께서는 그 길은 곧 나라를 찾는 투쟁의 길이라고 생각하시였고 자신께서도 기어이 그 길에 나서리라 마음다지시였다.

이튿날 김정숙녀사께서는 야학선생에게 밤이슬이 약이라는데 그 약을 어떻게 하면 마실수 있는가고 물으시였다.

야학선생이 밤이슬은 나라를 찾기 위해 밤길을 많이 걷는 사람에게만 약이 된다고 대답하자 김정숙녀사께서는 《나라를 찾기 위해 맞는 이슬이라면 저도 맞아보고싶습니다.》라고 의미심장하게 말씀하시였다.

김정숙녀사의 마음속에 간직된 깊은 뜻을 헤아린 야학선생은 우리는 오직 무장투쟁으로써만 강도 일제를 때려부시고 망국노의 치욕에서 벗어날수 있다는데 대하여 그리고 혁명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탁월한 령도자가 있어야 하며 그 령도자를 받들어 광범한 인민대중이 굳게 뭉쳐야 한다는데 대하여 감명깊게 설명해주었다.

야학선생은 창문에 비낀 밤하늘을 내다보며 조용히 이러한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 캄캄한 조선의 밤하늘엔 유난히 밝은 새별이 솟아 짓밟히는 삼천리강산을 밝게 비쳐주고있습니다.

내가 야학에서 말하던 새별이야기가 생각납니까? 사실은 그 별이 전설에 나오는 별이 아니라 지금 솟아있는 별입니다. 그 별이 앞길을 환히 밝혀주고있기에 이제 억눌리고 짓밟힌 캄캄한 조선땅에 동이 터올것입니다.》

야학선생이 여기까지 이야기하자 김정숙녀사께서는 언제인가 료하천변의 밤하늘에 솟았다는 새별이야기와 백두산에서 도를 닦고있다던 젊은 장수이야기가 머리에 떠올라 흥분되는 심정을 걷잡을수 없으시였다.

그 시각, 김정숙녀사께서는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마지막으로 하시던 말씀을 생각하시였다. 오랜 기간 독립운동에 전심하였으나 투쟁을 옳바로 이끌어갈 걸출한 령수가 없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밝은 세상도 못 보고 간다고 가슴치며 통탄하시던 아버님의 말씀이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돌아가신 아버님의 유언을 되새겨보시며 캄캄하고 숨막히는 조선에 동이 트게 하고 밝은 세상을 가져다줄 새별, 왜놈군사를 한칼에 베일 도를 닦고있는 젊은 장수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고 또다시 물으시였다.

야학선생은 김정숙녀사의 손을 꼭 잡고 녀사께서 알고싶어하시는 새별의 참뜻을 이야기하였다.

《정숙동무, 기뻐해주시오.

조선에 새별이 솟았습니다. 아니, 태양이 솟았습니다!

조선혁명의 령도자께서 출현하시였습니다.

그이는 바로 김일성동지이십니다.…》

야학선생은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몇해사이에 일어난 력사적사변들에 대하여 녀사께 하나하나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벌써 5년전에 화전에서 《ㅌ.ㄷ》라는 혁명조직을 뭇고 투쟁의 홰불을 올리시였으며 지난해 여름에는 카륜에서 항일무장투쟁로선을 제시하시여 민족해방의 진로를 환히 밝혀주시고 온성지구에 진출하시여 국내에서 처음으로 되는 당조직을 친히 무어주신데 대하여 자세히 이야기해주었다.

특히 부암동에서 멀지 않은 연길현 조양천에까지 왔다가셨다는 이야기는 김정숙녀사를 무한히 격동시켰다.

조양천에 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 및 공청일군들에게 무모하고 극좌적인 5.30폭동과 8.1폭동의 후과를 빨리 수습하고 인민대중을 교양결속하여 두만강연안의 광활한 지역을 혁명의 전략적거점으로 꾸릴데 대한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였었다.

이날 밤 야학선생으로부터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를 상세히 들으신 김정숙녀사께서는 왜 그토록 오빠가 낮에 밤을 이어 집을 나다니는가를 알게 되였고 자신께서도 그 길을 꿋꿋이 걸어나갈 결심을 가다듬으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 야학선생과 헤여져 집으로 가실 때 밤하늘에는 뭇별들이 총총하였다.

(저 별들은 해빛이 있기때문에 캄캄한 밤에도 저렇게 반짝인다지!…)

조선의 새별이시고 태양이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

김정숙녀사께서는 온 민족의 숙원이 담긴 존함을 거듭거듭 외워보시였다. 그분은 어떤분이실가, 그분께서는 반드시 우리 민족에게 빼앗긴 나라를 찾아주시고 우리 인민에게 착취와 압박이 없는 새 세상을 마련해주실것이다, 그분께서는 우리 나라를 짓밟고있는 강도 일제를 때려부시고 거꾸로 된 이 세상을 바로잡아주실것이다, 우리 운명의 태양이신 그분께서 가리키시는 길에서 한생을 싸워가리라!

유난히도 밝은 빛을 뿌리는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시며 김정숙녀사께서는 자신께서도 태양의 빛을 받아 반짝이는 별들처럼 민족의 태양의 따사로운 해빛을 받아안고 캄캄한 조선에 밝은 새날을 가져오기 위해 모든것을 다 바치리라 굳게 마음다지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