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 (1)중에서

 

주체24(1935)년 2월말부터 3월초까지 다홍왜에서는 조선혁명의 주체적립장을 고수하기 위한 회의가 열리였다.

1930년대 전반기에 일제의 악랄한 모략책동과 민족배타주의자들과 종파분자들의 분렬책동으로 하여 조선혁명에 엄중한 위기가 조성되였다. 군사적《토벌》공세와 유격구봉쇄정책으로는 날로 강화되여가는 항일무장투쟁을 막을수 없다고 타산한 일제는 혁명대오를 안으로부터 와해하기 위한 책동에 매달렸다. 일제는 1932년 2월 연길에서 민족개량주의자들과 혁명의 변절자들을 긁어모아 《민생단》을 조작하였다. 《민생단》은 일제의 간첩모략단체이며 철저한 《반공》주구단체였다. 일제가 《민생단》을 조작한 목적은 조선민족의 반일의식을 마비시키고 조선혁명가들을 모해하여 인민들로부터 고립시키며 조중인민사이에 쐐기를 박아 혁명대오를 내부로부터 와해시키자는데 있었다.

《민생단》을 조작한 일제는 여기에 망라된 주구들을 교활한 방법으로 혁명대오안에 잠입시켰다. 《민생단》분자들은 일제의 조종밑에 《조선인에 의한 간도자치》라는 기만적이고 반동적인 구호를 부르짖으면서 조선인민의 반일혁명의식을 마비시키는 동시에 각성되지 못한 일부 사람들을 위협공갈하여 《민생단》에 끌어들이는 한편 견실한 혁명가들을 각 방면으로 헐뜯고 별의별 악선전으로 조선사람과 중국사람을 서로 리간시키며 조선사람들끼리 서로 싸우게 하는 등 모략책동을 감행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간계를 간파한 조선혁명가들과 인민들의 투쟁에 의하여 《민생단》의 정체는 곧 드러나고 조작된지 몇달후인 1932년 7월에 해체되고말았다. 일제는 《민생단》이 해체되자 1934년 9월에는 특수기관으로 《간도협조회》를 조작하고 더욱 악랄하게 《민생단》모략공작을 벌리였다. 일제는 유격구들에 《민생단》원들이 수없이 침투된것처럼 헛소문을 내돌리면서 견실한 혁명가들을 모해하였으며 서로 상대방을 의심하고 경원시하게 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일제의 비밀문건에는 《…당내교란을 기도한 협조회는 …당내에 잠입하여 교란공작을 진행하였으며 혹은 민생단원이 당내에 잠입하였다는것을 믿도록 하기 위한 여러가지 방법을 취하였다.》라고 했으며 《간도공산당파괴경험》이라는데서는 처음에 《민생단》을 10여명씩 조직하여 유격대안에 들여보냈으나 다 붙잡혀죽게 되여 더는 들여보낼수 없었기때문에 조선사람과 중국사람, 로동자와 농민, 상부와 하부간에 호상 믿지 못하게 하고 서로 리간시키는 전술을 써서 혁명가들끼리 싸우게 하였다고 썼다.

일제의 《민생단》모략책동이 감행되는 초기부터 조선혁명가들과 인민들은 반《민생단》투쟁을 힘있게 벌리였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암둔한 민족배타주의자들과 그에 추종한 종파사대주의자들은 일제의 간계에 말려들어 반《민생단》투쟁을 극좌적으로 끌고나갔다. 이자들은 덮어놓고 사람들을 의심하면서 자기들의 비위에 거슬리는 모든 행동은 《민생단》의 작간으로 몰았다. 민족배타주의자들은 반《민생단》투쟁을 리용하여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로 조중인민들속에서 날로 높아가는 조선혁명가들의 권위와 위신을 헐뜯고 혁명대오안에서 지도적지위를 독차지하려고 하였다. 종파분자들 역시 민족배타주의자들을 등에 업고 이 기회에 저들의 종파적목적을 이루어보려고 기도하였다. 그리하여 동만의 유격구들에서는 《민생단》이 없는 반《민생단》투쟁이 계속되였으며 《민생단》이 아닌 견실한 조선혁명가들이 《민생단》으로 몰려 무리죽음을 당하는 참사가 빚어지게 되였다.

반《민생단》투쟁에서의 좌경적편향을 극복하는가 못하는가 하는것은 곧 조선혁명의 명맥을 이어나가는가 아니면 중도에서 끊기우는가 하는 매우 심각한 문제로 나섰다.

조선혁명의 운명을 좌우하는 이 엄중한 위기를 한몸으로 막아나서신분은 김일성장군님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반《민생단》투쟁에서 좌경적편향이 나타난 초기에 벌써 그 후과와 엄중성을 제때에 간파하시고 이 투쟁에서 견지해야 할 원칙과 방도들을 뚜렷이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반<민생단>투쟁은 적들을 철저히 고립시키고 혁명대렬의 통일과 단결을 강화하여 광범한 군중을 혁명의 편에 튼튼히 묶어세우는 방향에서 진행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반<민생단>투쟁에서 일관하게 견지하고있는 근본원칙입니다.》

이것은 반《민생단》투쟁에서 자주적립장을 확고히 견지하여 민족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의 반혁명적책동을 성과적으로 짓부시고 위기에 처한 조선혁명을 승리의 한길로 힘차게 전진시켜나갈수 있게 하는 가장 옳바른 투쟁원칙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가들에게 덮어놓고 《민생단》혐의를 들씌우는 민족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의 책동을 폭로비판하시고 조선혁명가들로 하여금 그 어떤 바람이 불어도 혁명동지들을 믿고 혁명대오의 통일과 단결을 굳건히 지켜나가도록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반《민생단》투쟁원칙을 제시하시였을뿐아니라 이 투쟁에서 나타난 좌경적편향을 바로잡기 위한 사업을 벌려나가시면서 억울하게 《민생단》의 루명을 쓰고 박해당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시여 혁명의 길에 다시 세워주시였다. 민족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이 마촌의 리수구골안에 《민생단》감옥을 만들어 견실한 혁명가들을 가두어넣고 죄인 다루듯 할 때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분격을 금하실수 없어 그자들을 데리고 리수구골안의 감옥으로 가시여 그들의 억울한 루명을 벗겨주시고 모두 석방해주시였다. 우물에 독약을 쳤다는 소년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사건의 전후사연을 해명하심으로써 《민생단》혐의에서 벗어나 유격대원이 될수 있었다. 이렇듯 위대한 수령님의 헌신적인 투쟁에 의하여 《민생단》사건의 허위성이 드러나고 《민생단》의 루명을 썼던 사람들의 문제가 정당하게 해명되게 되였다.

그러나 민족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체23(1934)년 10월 제1차 북만원정을 떠나신 기회를 리용하여 반《민생단》투쟁을 더욱 극좌적으로 끌고갔다. 이자들은 동만 각 현에 《숙반공작위원회》라는것을 내오고 《민생단》원을 《적발》한 실적을 자랑하면서 서로 경쟁적으로 《민생단》원이 아닌 《민생단》원을 만들어내면서 돌아쳤다. 한편 《민생단》을 반대한다는 구실을 내걸고 조선혁명가들의 지도적지위를 허물어버리기 위하여 더욱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반혁명분자》, 《적의 주구》라는 억울한 루명을 쓰고 살해되였으며 유격구에는 또다시 불안과 살벌한 공포분위기가 조성되게 되였다.

조선혁명가들과 유격구인민들은 원정의 길에 계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하루빨리 돌아오시여 사태를 수습하고 자기들을 구원해주실것을 절절히 바라고있었다.

북만원정을 마치시고 요영구유격구에 돌아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원정과정에 쇠약해진 몸도 돌보지 않으시고 혁명의 위기를 한몸으로 막아나서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식적인 장소에서 공식적인 결정을 채택하는것으로 되여야만 반《민생단》투쟁문제를 해결할수 있다고 인정하시고 이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회의를 소집할것을 동만당지도부에 제기하시였다.

이리하여 주체24(1935)년 2월 24일부터 3월 3일까지 다홍왜에서 회의가 열리게 된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태의 위험성으로부터 다홍왜에 가시는것을 만류하는 사람들에게 우리앞에는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운명을 구원하고 조선혁명을 위기에서 건질수 있는 가장 심각한 기회가 왔다, 대결은 피할수 없고 흑백은 반드시 갈라져야 한다고 하시면서 동만당특위 위원의 자격으로 결연히 회의에 참석하시였다. 회의에는 만주성당 파견원 위증민과 동만당단특위의 중국인 간부다수와 몇명의 조선인 간부들이 참가하였다.

다홍왜회의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주의 기발을 드시고 조선혁명의 주체로선을 견지하고 그 권리를 옹호고수하기 위하여 벌리신 대사상전이였다. 회의에서는 심각하고도 격렬한 론쟁이 벌어졌다. 론쟁에서 열기를 띠기 시작한것은 공청 만주성위순시원이 보고에서 동만에 있는 조선사람의 70%, 조선혁명가들의 80∼90%가 《민생단》이거나 그 혐의자들이며 유격구가 《민생단》의 양성소라는 종래의 견해를 되풀이한 순간부터였다. 회의분위기는 팽팽해졌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좌경분자들의 황당한 궤변에 과학적인 론리와 주장으로 된타격을 안기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어떤 물질이든지 본래의 구성요소와 다른 요소가 80∼90%이상을 차지하게 되면 그 물질은 다른 물질로 변하게 된다, 이것은 과학이다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어떤 사람들은 동만에서 활동하고있는 조선공산주의자들의 대부분이 <민생단>이라고 공공연히 말하는데 이것 역시 리치에 맞지 않는 소리이다. 그들이 만일 <민생단>이라면 무엇때문에 3년동안이나 만성적인 봉쇄상태에 놓여있는 유격구들에서 엄동설한에 집도 없이 입을것도 입지 못하고 먹을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적들과 힘에 겨운 싸움을 하여왔겠는가. 조선혁명가들의 80∼90%는 고사하고 그 십분의 일인 8∼9%만 <민생단>이라고 하여도 우리는 이 자리에서 마음놓고 회의를 할수 없을것이다. 왜냐하면 이 회의장주변에서는 지금 조선사람들로 편성된 1중대가 완전무장을 하고 우리들에 대한 경위임무를 수행하고있기때문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만인민의 대부분을 《민생단》이라고 락인하는것은 조선사람들에 대한 모독이며 이 견해는 이번 회의에서 당장 시정되여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시였다.

이에 대하여 당시 동만당단특위의 한사람인 조아범이 무턱대고 《민생단》이 없다고 하는것은 주관이라고 하면서 감옥에 있는 수백명의 《민생단》혐의자들이 자기 입으로 《민생단》에 들었다고 자백하고 자백서까지 쓰고있는데 그것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인가고 반발해나섰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신들이 말하는 그 자백이나 자백서라는것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 증거자료들이라는것이 대부분 고문장에서 강제적방법으로 받아낸것들이기때문이다, 나는 감옥에 가서 자백을 했다는 혐의자들을 수십명이나 만나보았는데 자기의 자백을 인정한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당신들이 《민생단》이라고 몰아대는 혐의자들의 대다수는 《숙반》의 집행자들에 의해 가해지는 육체적고통에 견디지 못해 가짜자백을 한 사람들이다, 당신들은 지금 《민생단》아닌 《민생단》을 마구 만들어내고있다고 폭로단죄하시였다. 그러자 조아범은 《부뚜이!》(《아니다!》)라고 하면서 자기의 그릇된 주장을 고집하였다.

격하신 수령님께서는 무엇이 아니란 말인가고 주먹으로 방바닥을 내리치시면서 간도의 조선사람들은 지금 당신을 주시하고있다, 당신이 직권을 악용하면서 사람잡이를 망탕했기때문이다, 안도유격대 정치위원 김정룡이 누구한테 죽었는가, 화룡현당서기 김일환은 누구 손에 죽었는가, 오늘 이 자리에서 솔직히 대답해보라고 하시며 그를 비판추궁하시였다. 정의감에 불타고 사리정연한 론리앞에서 민족배타주의자들은 움츠러들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수령님의 주장에 공감을 표시하기 시작하였다.

회의에서는 간부문제에 대하여서도 치렬한 론쟁이 벌어졌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수민족만이 간부로 될수 있고 조선사람은 소수민족이기때문에 다수민족을 지도할수 없으며 더우기 조선혁명가들은 종파적습성과 동요성이 많고 반동화되기 쉽기때문에 간부로 될수 없다는 그릇된 주장을 들고나온데 대해서도 원칙적인 투쟁을 벌리시였다.

그이께서는 국적이나 소속, 인구의 다수가 간부선발의 기준으로 되여서는 안된다고 하시며 이것은 혁명에 대한 충실성과 능력을 위주로 하는 간부선발배치원칙에도 어긋나며 조선사람들이 동만혁명운동을 개척하는데서 선구자적역할을 한 력사적사실과 그들이 동만인구에 있어서나 간부, 당원구성에서 압도적다수를 차지하고있는 현 실태를 외면하고 능력도 자질도 없는 사람들을 다수민족출신이라고 하여 덮어놓고 등용시키는 경향은 반드시 시정퇴치되여야 한다고 주장하시였다.

회의에서는 또한 조선혁명가들이 추켜든 민족해방의 구호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하는데 대하여서도 론쟁이 벌어졌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제기하고있는 민족해방의 구호는 일제가 《민생단》에 쥐여준 《조선인에 의한 간도자치》의 구호와는 아무런 인연도 없다고 하시면서 조선공산주의자들이 내세운 민족해방의 구호는 일제의 식민지통치를 전복하고 조국을 광복하며 우리 인민이 착취없고 압박없는 자주적인 새 사회에서 참다운 자유와 권리를 누리게 하려는 목적으로부터 내놓은 구호라는것을 밝히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2월 28일 회의에서 《조선혁명을 위하여 투쟁하는것은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자주적권리이다》라는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여 민족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의 허황한 주장과 립장에 다시한번 결정적인 타격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설에서 《민생단》의 발생근원과 그 혐의자문제, 간부문제, 조선혁명의 주체적로선과 투쟁구호문제에서 나타난 민족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의 반혁명적견해와 책동, 그 해독성을 낱낱이 폭로하시고 이 문제에 대한 혁명적립장, 자주적립장을 명백히 천명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특히 동만에서 활동하는 조선공산주의자들이 민족해방의 구호를 들고 조선혁명을 위하여 투쟁하는것은 자주적권리라는데 대하여 다음과 같이 엄숙히 선언하시였다.

조선혁명의 승리, 조선민족해방위업실현을 위하여 투쟁하는것은 그 누구도 막을수 없고 대신할수도 없는 조선공산주의자들과 조선인민의 자주적권리이며 신성한 의무입니다.》

그러시면서 강도 일제에게 빼앗긴 조국강토와 도탄에 빠진 우리 민족의 운명을 구원할 숭고한 사명을 지닌 공산주의자들은 어느때, 어디에서 투쟁하든 절대로 조선민족해방의 구호를 버릴수 없다고, 조선공산주의자들은 민족의 존엄과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간난신고를 무릅쓰고 피흘려 싸웠으며 앞으로도 이 길을 꿋꿋이 걸어나갈것이라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연설은 민족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의 반혁명적궤변의 허황성과 죄행을 신랄히 폭로하고 그들에게 심대한 정치적타격을 주었다. 민족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은 회의과정에 저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려고 갖은 책동을 다하였으나 수령님의 론리정연하고 원칙적인 론박앞에서 머리를 수그리고말았다.

다홍왜회의는 혁명의 생명인 자주성을 확고히 고수함으로써 조선혁명을 위기에서 구원하고 반일민족해방투쟁을 주체의 기치따라 힘차게 전진시킬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수많은 조선혁명가들의 운명을 구원하고 혁명대렬의 통일단결을 고수할수 있게 한 력사적인 회의였다.

다홍왜회의에서 시작된 론쟁은 3월에 련이어 열린 요영구회의에서도 계속되였다. 이 회의에 참가한 많은 사람들이 위대한 수령님의 립장을 지지하였으며 자기들의 잘못을 시인하였다. 그러나 이 회의에서도 의견상이는 완전히 해소되지 못하고 미결로 남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두 회의의 론점에서 핵으로 되여있는 몇가지 문제들을 국제당에 제소하기로 하고 그에 대한 결론을 받기 위하여 만주성당 파견원 위증민과 공청동만특위간부인 윤병도를 모스크바에 보내기로 하시였다.

다홍왜회의소식은 삽시에 두만강연안의 모든 유격구들에 전해졌으며 사람들의 가슴마다에 끝없는 환희와 재생의 기쁨을 안겨주었다. 이 회의를 분기점으로 하여 조선인민은 위대한 수령님을 민족의 태양으로, 절세의 애국자로 더 높이 우러르며 따르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홍왜회의이후 반《민생단》투쟁에서 발로된 좌경적편향의 후과를 하나하나 가시고 바로잡아나가시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 혁명의 위기를 한몸으로 막아나서시여 원칙적인 투쟁을 벌리심으로써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은 주체의 기치, 자주의 기치따라 힘차게 전진해나갈수 있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