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태양 김정일장군」 (4)중에서

 

 

 선군의 흐름속에 6. 15통일시대는 힘차게 전진하고있었다. 《우리 민족끼리》의 통일리념을 구현해가는 선군통일운동력사에 뚜렷이 아로새겨지는것은 북과 남은 하나, 《우리는 하나》라는 민족의 새로운 모습이였다.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밑에 온 겨레를 민족적단합의 길로 힘있게 이끌어주시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불변의 신념과 의지에 받들려 땅길, 하늘길, 바다길로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자동차와 비행기, 배가 오가며 사람들이 래왕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북과 남의 각계각층이 참가하는 계층별 통일대회의장을 크게 펼쳐주시고 련대련합의 메아리가 백두에서 한나까지 우렁차게 울려퍼지도록 하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그 어느 계급계층보다 먼저 북과 남의 로동계급이 단합하여 6. 15공동선언실현을 위한 투쟁을 벌려나가도록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이미전부터 북남로동자들의 련대련합을 강화하여 그들을 단합되고 강유력한 통일력량으로 전환시켜 통일운동의 앞장에 내세워주기 위하여 깊이 마음쓰시였다.

그리하여 1999년 3월과 4월 조선직업총동맹대표단과 남조선 《민주로총》(민주로동조합총련맹)대표들사이의 베이징접촉과 《민주로총》대표들의 평양방문이 성사되여 북남로동자들의 조직적인 련대실현의 돌파구가 열리였다. 그후에도  북남로동자들사이의 련대, 련합의 폭을 넓히고 공고히 하기 위한 대화와 접촉들이 잇달았다.

주체90(2001)년 4월 12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전세계 근로자들의 국제적명절인 5. 1절을 계기로 북남로동자통일대회를 진행할데 대한 구상을 펼쳐주시고 그 성과적보장을 위해 제기되는 문제들을 다 풀어주시였다.

그리하여 5월 1일 금강산에서 6. 15북남공동선언의 기치아래 나라의 자주적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북남로동자 5. 1절통일대회가 성대히 진행되였다.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밑에 조국을 통일하기 위한 투쟁의 앞장에 나설 결의를 안고 달려온 북남로동자들의 통일열기가 세차게 끓어번진 대회는 북측에서 조선직업총동맹대표단 700여명, 남측에서 《민주로총》과 《한국로총》대표단, 《현대》측 건설로동자 등 600여명이 참가하여 큰 규모로 진행되였다. 그리고 여기에 남조선의 《전국농민회총련맹》대표단이 초대되였다.

북남로동계급의 통일운동사에 특기할 력사적인 시각을 맞이한 금강산은 환희에 설레이고있었다.

손과 손에 든 단일기를 흔들며 보무당당히 대회장에 입장하는 북남로동자대표들의 얼굴마다에는 한결같이 6. 15북남공동선언의 기치밑에 하나로 뭉쳐 통일의 문을 열어나가려는 자주통일의 선봉대로서의 긍지와 의지가 어려있었다.

회의에 참가한 대표들은 외세를 반대하고 북과 남이 힘을 모으는데 조국통일이 있다고 하면서 6. 15의 자주통일열풍에 북남로동자들이 가슴과 가슴을 합쳐나갈 때 통일의 배는 그 어떤 외세의 암초도 물거품처럼 마스며 앞으로 힘차게 전진할것이라고 격정에 넘쳐 웨치였다.

이어 다채로운 체육문화행사들이 진행되였다. 통일의 열기가 차넘친 이날의 대회장은 말그대로 북남로동자들의 단합의 광장, 통일의 광장이였다.

언제나 로동계급을 조국통일운동의 앞장에 세워주시기 위하여 깊이 마음써오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2003년에도 평양에서 북남로동자대표자회의를 마련해주신데 이어 2004년에는 또다시 북남로동자통일대회를 진행하도록 해주시였다.

그리하여 2004년 4월 30일부터 5월 3일까지 평양에서 6. 15공동선언관철을 위한 2004년 북남로동자 5. 1절통일대 회가 진행되였다.

북과 남의 로동자대표들은 우리 민족제일주의야말로 6. 15시대의 구호이라고 하면서 모두가 이 기치밑에 통일애국위업실현에서 로동자의 억센 기상을 높이 떨쳐나가자고, 6. 15공동선언의 기치를 높이 들고 분렬 60년을 기어이 끝장내며 로동자가 앞장서서 21세기를 우리 민족의 세기로 자랑스럽게 빛내나가자고, 통일이야말로 최대의 애국이며 조국도 로동자도 하나라고 절절히 토로하였다.

북남로동자들은 대회를 통하여 북남로동자들의 자주적통일운동이 본 궤도우에서 진행되고있으며 그 어떤 외세의 전쟁위협도 극복해나가리라는 굳센 통일의지를 남김없이 보여주었다.

북남로동자통일대회를 계기로 계층별 통일대회의 막을 열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북남농민통일대회, 북남녀성통일대회, 북남청년학생통일대회 그리고 북남교육자통일대회와 민족작가대회를 비롯한 회합들을 평양과 금강산에서 열도록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심으로써 조국통일을 위한 북남 각계각층의 조직적련대련합의 튼튼한 기초를 다져놓게 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광폭의 통일애국의지와 도량에 이끌리여 남조선의 《전국농민회총련맹》(《전농》)이 금강산에서 남북농민단체들의 공동행사를 제안하였다. 이 제안에 남조선의 《전국녀성농민회총련합》(《전녀농》)이 적극 합세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국통일을 위한 남북농민단체들의 공동행사를 소집할데 대한 《전농》의 제안과 그에 적극적인 참여를 표명한 《전녀농》의 주장과 립장을 귀중히 여기시고 그를 성사시키며 그 행사에 많은 남조선농민들을 참가시킬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리고 주체90(2001)년 6월 28일 장군님께서는 대회준비사업을 료해하시고 북남농민통일대회를 7월 중순에 금강산에서 개최하되 그 명칭을 6. 15공동선언관철을 위한 북남농민통일대회로 하고 농민들의 특성에 맞게 씨름, 윷놀이, 바줄당기기, 농악무 등 민족적인 행사들을 기본으로 하여 대회를 특색있게 진행하도록 해주시였다.

장군님의 이러한 가르치심과 은정어린 조치에 의하여 남조선에서 《전농》의장을 단장으로 하는 《전농》대표단 543명, 《전녀농》회장을 단장으로 하는 《전녀농》대표단 63명, 14개 언론사기자 17명, 예술인 11명, 모두 681명의 큰 규모대표단이 들어오고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국 일군들을 포함하여 대회명예손님으로 《민주로총》, 《한국로총》대표들,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2001년 민족공동행사추진본부실무대표단 등 29명이 왔다.

그리하여 7월 18일부터 19일에 걸쳐 북남농민통일대회가 조선의 명산 금강산에서 진행되였다. 대회는 6. 15공동선언이 채택된 후 북과 남이 공동으로 진행한 통일행사가운데서 가장 큰 규모로 진행되였다.

그리고 대회기간에 북남예술인들의 민족성이 진하게 풍기는 합동예술공연과 민족체육 및 유희오락경기가 성황리에 진행되였다. 그것은 북과 남의 농민들이 마음과 뜻, 힘을 합쳐 통일의 문을 열어나가는 뜨거운 열기가 굽이친 화해와 단합, 통일의 마당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통일된 조국강토에서 만풍년을 노래하며 밭갈이를 하고싶어하는 북남농민들의 소원을 하루빨리 풀어주기 위하여 주체93(2004)년 북남농민통일대회를 또다시 마련해주시였다.

그리하여 2004년 6월 27일부터 28일까지 금강산에서는 조선농업근로자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200여명의 북측농민대표들과 남조선 《전국농민련대》상임대표를 단장으로 하는 600여명의 남측대표들이 참가한 가운데 우리 민족끼리 통일의 활로를 열어나가는 북남농민통일대회가 성대히 진행되였다.

우리 민족제일주의, 반미자주, 민족공조의 열기가 뜨겁게 솟구친 대회에서는 북남농민통일대회 공동선언문이 참가자들의 열렬한 박수속에 채택되였다.

조국의 명산 금강산에서 두차례에 걸쳐 진행된 북남농민통일대회는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조국통일의 대문을 기어이 열려는 온 겨레의 확고한 신념과 의지를 다시금 온 세상에 시위하였으며 력사적인 6. 15공동선언의 생활력을 뚜렷이 과시하였다.

한편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통일의 한쪽 수레바퀴를 힘있게 떠밀고나갈 북남녀성들의 통일대회를 개최하도록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북남녀성통일대회가 남조선과 해외의 광범한 녀성들이 6. 15공동선언의 기치를 높이 들고 통일의 한쪽 수레바퀴를 담당하고있다는 자각과 긍지를 가지고 통일운동에 적극 나서도록 추동하며 북녘의 녀성들의 행복한 모습을 통해 남과 해외녀성대표들이 신심과 용기를 굳게 가다듬게 하는 등 정치적의의가 있게 진행되도록 대회의 명칭과 참가규모, 행사내용에 대하여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리하여 2002년 10월 16일부터 17일에 걸쳐 북과 남, 해외의 녀성대표들이 가을도 한껏 무르익어 단풍이 불타는 금강산에 모여 6. 15공동선언실천과 평화를 위한 북남녀성통일대회를 개최하였다.

통일조국건설에 당당히 이바지하는 자부심을 안고 평양-온정 700여리를 한달음에 달려온 100여명의 북녘녀성대표들, 비극의 분렬력사를 끝장낼 일념을 안고 배편으로 뜻깊은 통일회합의 포구에 닻을 내린 130여개 단체 370여명의 남녘녀성대표들, 통일조국의 그날을 앞당겨오기 위하여 이국땅 멀고 먼곳에서  금강산을 찾아온 22명의 해외측 녀성대표들이 축전의 분위기에 휩싸여있는 대회장소에  한마음한뜻으로 모여앉았다.  

대회는 북, 남, 해외녀성단체들이 조국통일의 새로운 희망과 믿음을 가지고 6. 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통일운동에 적극 나설것이며, 이 땅에서 새 전쟁을 막고 평화와 안전을 이룩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기울일것이며, 평화와 통일을 앞당기기 위하여 녀성들사이의 련대와 단합을 적극 도모해나갈것이며, 남녀가 평등한 통일사회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일것이라는 4개항으로 된 공동결의문을 채택하였다.

시대의 격류인 6. 15북남공동선언관철을 위한 투쟁에서 민족문학인들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을 깊이 헤아리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선군령도의 그 바쁘신 속에서도 북과 남, 해외작가들의 대회를 친히 마련해주시고 성과를 거두도록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주체93(2004)년 2월 중순 민족문학이 나아갈 방향과 방도를 환히 밝혀주시면서 북의 작가들이 남조선의 진보적문학단체인 《민족문학작가회의》를 비롯하여 여러 문학단체들과 그에 속해있는 작가들을 만나는 문제로부터 우리 민족제일주의의 기치를 높이 들고 민족공조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서 북남작가들의 역할문제, 《6. 15민족문학인협회》와 같은 북, 남, 해외 공동의 민간급문학인련대조직을 내오는 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6. 15공동선언발표 5돐기념행사가 끝나자 다른 통일행사들보다 먼저 민족작가대회를 평양에서 열도록 은정깊은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또한 내외반통일세력의 방해책동에도 불구하고 민족작가대회가 개최되게 되였을 때에는 대회장소를 인민문화궁전으로 정해주시였고 남조선과 해외작가대표들의 숙식문제와 우리 비행기로 남조선작가들을 데려오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작가대회를 며칠 앞둔 어느날 당중앙위원회 해당 부문 책임일군에게 친히 전화를 거시여 민족작가대회준비정형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광복후 처음으로 하는 민족작가대회인것만큼 의의있게 잘하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렇듯 현명한 가르치심과 은정깊은 보살피심이 있어 2005년 7월 20일 평양에서 민족분렬사상 처음으로 되는 북, 남, 해외작가들의 대회합인 6. 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가 성대히 진행되였다.

대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선언문을 채택하였다.

《…

첫째, 우리 민족작가들은 6. 15공동선언을 조국통일의 유일한 리정표로 삼고 이를 견결히 옹호하고 끝까지 고수할것이다.

둘째, 우리 민족작가들은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아래 민족자주, 반전평화, 통일애국의 정신으로 문학창작에 매진할것이다.   

셋째, 우리 민족작가들은 사상과 신앙, 출신지역과 립장을 넘어 굳게 단합하며 민족문학활동에서  련대와 련합을 더욱 활성화해나갈것이다.

넷째, 우리는 해내외 민족문학인들의 공동의 조직으로서 <6. 15민족문학인협회>를 결성하고 그 활동에 적극 참가하며 협회기관잡지 <통일문학>을 온 겨레의 친근한 길동무가 되도록 편집발행할것이다.

다섯째, 우리는 조국통일운동에 문학으로 이바지한 사람들에게 민족의 표창으로서 <6. 15통일문학상>을 수여하는것을 적극 지지하며 모두가 그 수상자의 영예를 지니기 위하여 힘껏 노력할것이다.…》

이어서 7월 23일 북, 남, 해외의 작가들은 조종의 산, 혁명의 성산 백두산에서 민족통일문학의 탄생을 알리는 《통일문학의 새벽》행사를 크나큰 환희와 격동속에 가지였다.

북과 남, 해외의 통일애국력량이 벌린 각계층의 공고한 련대련합을 위한 투쟁은 미국을 비롯한 내외반통일세력의 방해와 도전으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이 가져다준 생명력에 의해 더욱더 확대강화되여왔으며 그 과정에 훌륭한 합의들을 이룩하였다.

이전에는 남조선청년학생조직인 《전대협》의 나어린 녀학생대표가 혼자서 사선을 넘어 평양을 방문한것이 《죄》가 되여 철창속에 들어갔다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열어주신 6. 15시대에는 자주통일대로를 따라 각계층의 수많은 사람들이 북과 남으로 오가면서 화해와 협력, 단합을 도모하고 통일의지를 굳게 다지였다.

6. 15북남공동선언으로 넓어진 통일의 오작교를 선남선녀들이 오가며 다양한 체육문화의 장을 펼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민족의 단합과 통일을 먼저 생각하시는 넓은 도량으로 남녘땅에 선수단과 취주악단, 대규모의 응원단도 보내시여 우리 민족은 하나임을 내외에 널리 과시하도록 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리 선수단과 응원단이 2002년 9월말 남조선의 부산에서 열리는 제14차 아시아경기대회에 참가하도록 하시였다.

부산에서 진행되는 제14차 아시아경기대회참가문제는 단순히 남녘땅에서 진행되는 국제경기에 우리가 참가하느냐 아니면 그만두느냐 하는 실무적인 문제가 아니다, 우리 선수단이 경기대회에 참가할뿐아니라  녀성취주악단과 대규모응원단도 함께 남조선에 나가 통일바람을 일으키면 6. 15북남공동선언의 기치높이 민족자주의 원칙에서 조국통일을 반드시 이룩하고야말 겨레의 굳센 통일의지를 세계에 힘있게 과시하는 계기로 될것이다. 이것이 경애하는 장군님의 뜻이였다.

이로부터 장군님께서는 남측이 경기대회개막식행사에 북과 남이 따로따로 입장하자고 제의해왔을 때에는 다른 나라에서 진행되는 경기에서도 북과 남이 단일기를 들고 나갔는데 제 나라, 제땅에서 하는 경기대회에 북과 남이 각기 자기 기발을 들고 나간다는것은 《두개 조선》을 인정하는것으로서 있을수 없는 일이라고 하시면서 단일기를 앞세우고 북과 남이 함께 입장하도록 해주시였고 백두산에서 지핀 성화를 미국이 지켜서있는 판문점으로 넘겨달라고 했을 때에는 그러지 말고 금강산에서 넘겨주도록 해주시였다.

9월 29일 저녁 부산에서 제14차 아시아경기대회가 개막되였다.

백두산을 떠나서는 조국도 통일도 없다는 력사적선언인듯 백두산에서 채화된 아시아경기대회의 성화가 부산의 상공높이 타래쳐올랐다. 북과 남의 두 남녀선수가 공동점화를 한것도 뜻깊었고 《아리랑》선률에 맞추어 북과 남의 선수들이 단일기를 앞세우고 함께 입장한것도 감동적이였다. 북과 남의 선수들이 손에 손을 잡고 공동으로 경기장에 들어서자 관중들은 모두 일어서서 끝없는 환호와 박수갈채를 보내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였다. 7천만겨레는 민족도 피줄도 언어도 력사도 문화도 땅도 하나라는것을 만방에 과시하는 력사적순간이였다.

부산아시아경기대회 전기간 우리 응원단은 남녘동포들과 마음을 합쳐 응원하여 북과 남이 하나라는것을 과시하였다.

우리 응원단이 《우리는-》 하면 남녘동포들은 《하나다!》라고 응답했다. 이 통일의 함성은 부산땅만 아니라 온 남녘땅을 진감하였다.

우리 응원단은 경기응원만 아니라 여러 장소에서 민족적향취가 진하게 풍기는 예술공연도 진행하여 남녘동포들의 가슴마다에 우리는 하나의 민족, 하나의 겨레이라는 자각을 깊이 심어주었다.

부산에서 당창건기념일을 맞은 응원단은 다대포항에서 당창건기념체육경기를 열고 수많은 부산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분렬행진부터 하면서 《김정일장군 만세!》, 《조선로동당 만세!》, 《결사옹위》, 《총폭탄》의 구호를 웨치며 장군님을 그리는 자기들의 마음과 선군조선의 일심단결의 위력을 남김없이 보여주었다.

남조선의 각계층 동포들은 응원단의 눈부신 활동을 보면서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이 보낸 일당백의 응원단》, 《붉은 미녀》, 《최고인기군단》, 《아시아게임의 최고스타》 등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온 부산땅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응원단이 일으킨 민족공조, 민족통일열풍으로 하여 들끓었다.

미국이 몰아온 전쟁바람으로 조선반도에 전쟁의 검은 구름이 휩쓸 때 장군님께서 선군의 보검으로 평화를 지켜주시고 부산을 그토록 눈부신 통일마당으로 되게 해주신것이다.

남녘동포들이 우리 응원단과 마음을 합쳐 웨친 《우리는 하나다》의 통일함성은 정녕 선군정치의 진리성, 정당성에 대한 민족적지지의 환호였다.

남조선언론들은 북녘동포들의 부산아시아경기대회참가로 남조선에서 가장 보수적이라고 하던 부산시민의 90%이상이 북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새롭게 가지게 되였다고 보도하였으며 신문들은 저저마다 응원단의 활동을 소개하면서 사진들을 크게 실었다.

부산땅은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우리 선수단과 응원단에 의해 통일열풍의 진원지로 화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10월 13일 응원단의 활동에 대하여 료해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제14차 아시아경기대회에 참가한 우리 응원단에 대한 인기가 대단하였다고 합니다. … 남조선사람들은 우리 응원단성원들을 보고 한결같이 미인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우리 응원단성원들이 모두 곱게 생기고 순수할뿐아니라 절도가 있고 조직력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조직력에 있어서 우리 응원단을 따를데가 없다보니 인기가 더 높았던것 같습니다.》

장군님께서 놓아주신 6. 15통일오작교를 따라 북과 남에 민족의 혈맥을 잇는 아름다운 쌍무지개가 떴다.

이 쌍무지개를 타고 우리의 선수단과 응원단은 2003년 8월 대구에서 열린 제22차 세계대학생체육경기대회에 또다시 참가하여 백두령장의 슬하에서 자라난 선군조선청년의 기상과 배짱, 슬기와 담력을 안고 대구땅에 공화국기를 창공높이 휘날렸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2003년 10월 24일부터 27일까지 제주도에서 북과 남이 함께 개최하는 민족통일평화체육문화축전에 큰 규모의 대표단을 또다시 내보내도록 하시여 축전이 명실공히 민족의 단합과 통일위업에 크게 기여하는 통일행사로 되도록 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여러차례에 걸쳐 제주도축전을 6. 15북남공동선언의 기본핵인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를 높이 들고 민족공조를 실현하며 반미반전평화공세를 강화하는 특색있는 통일축전이 될수 있도록 깊은 관심을 돌려주시였다.

제주도축전개최전야에 이르러 좋게 발전하던 조선반도의 정세는 극도로 첨예화되였다.

미국은 조선반도《유사시》에 대비한 현지무력의 배비변경을 서두르면서 미제2사단을 포함한 남조선강점 미군무력의 한강이남지역에로의 재배치를 급기야 추진시켰다. 남조선당국도 그 무슨 핵문제를 거들며 《인도주의적지원의 중지》요, 그 무슨 《압력》이요 하며 떠드는가 하면 이른바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협의회》 제5차회의에서는 룡산미군기지이전과 관련하여 미국과 굴욕적인 협상을 하고 이라크에 전투병력까지 내몰려 하였다.

첨예한 정세로 제주도민족통일평화체육문화축전개최는 어렵게 되였다.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제주도인민들의 실망도 컸다. 그들은 정세악화로 북남겨레의 만남을 막아나선 미국과 남조선의 추종세력들을 저주했다.

이러한 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선군의 위력으로 주동적으로 반통일세력의 도전에 대처해나가시면서 우리의 대표단을 제주도에 파견하실 용단을 내리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체육단, 태권도시범단 등으로 구성된 큰 규모의 대표단을 제주도에 보내주시였다.

10월 24일 18시, 제주도 서귀포시에 있는 월드컵경기장에서 민족통일평화체육문화축전 개막식이 진행되였다.

《아리랑》노래선률이 울리는 가운데 우리의 녀자선수 3명과 남측의 남자선수 3명, 남녀어린이 6명이 대형통일기를 펼쳐들고 경기장에 들어오고 우리의 노래 《반갑습니다》의 선률속에 남측선수단이 먼저 입장하였다. 우리 선수단은 《통일무지개》의 선률이 울리는 가운데 3만명 관중들의 열렬한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입장하였다.

북과 남의 체육인대표들이 백두산과 한나산에서 채화한 성화봉을 들고 축전장에 입장하여 봉화대에 불을 지폈다. 조선지도의 제주도위치에서 지펴진 불은 점차 우로 타래쳐올라 백두산정점에서 점화되여 봉화대에 활활 타올랐다.

순간 경기장안에서 울려퍼지는 《우리 민족끼리》의 통일의 함성이 온 제주도땅을 뒤흔들었다.

개막식이 끝난 후 련일 축전행사들이 진행되였다.

축전기간 축구, 탁구, 마라손, 씨름, 북남태권도선수들의 시범출연, 우리 선수들의 그네와 널뛰기시범출연 등 다채로운 체육행사들이 벌어졌으며 축전의 일환으로 평양미술 및 수공예품전시회도 성황리에 진행되였다.

축전기간 온 제주도는 뜨거운 통일열기에 휩싸였다. 행사장들에서 《반갑습니다》, 《우리는 하나》, 《휘파람》, 《준마처녀》와 같은 우리 노래들이 꽝꽝 울려나왔다. 그리고 행사장들에는 《백두에서 한나까지 6. 15공동선언의 이름으로 조국을 통일하자》, 《우리는 하나》, 《우리 민족끼리 조국통일》 등의 구호들이 나붙어있었다.

축전행사들을 통하여 북과 남의 참가자들은 우리 민족은 피줄과 언어, 력사와 문화도 하나이며 통일애국의 마음과 뜻도 하나임을 다시금 뚜렷이 보여주었다.

남조선의 신문, 방송, 통신들은 《민속경기로 민족동질성 회복》, 《우리는 하나다》, 《통일념원은 계속된다》 등의 제목으로 제주도민족통일평화체육문화축전소식을 앞을 다투어 전하였다.    

이처럼 6. 15북남공동선언으로 넓어진 래왕의 길을 통하여 북과 남사이에 협력과 교류가 활발히 진행된데 대하여 남조선신문 《한겨레》(2004. 6. 14)는 6. 15북남공동선언발표이후 2004년 5월말까지의 기간에 북에서 남쪽을 방문한 인원수는 6. 15북남공동선언발표이전까지의 10년간에 비해 근 5배, 같은 기간 남쪽에서 북쪽을 다녀간 인원수는 금강산관광객을 빼고 4. 5배 늘어난것으로 된다고 전하였다.

이는 장군님께서 열어주신 넓어진 래왕길이야말로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을 위한 대통로이라는것을 잘 말해주었다.

절세의 애국자이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민족의  태양으로, 통일의 구성으로 높이 모신 영광을 가슴깊이 간직한 온 겨레는 그이께서 열어주신 통일의 대통로따라 6. 15북남공동선언의 기치높이 통일성업의 완성을 위해 더욱 힘있게 전진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