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태양 김정일장군」(3) 중에서

  

 천년주기가 바뀌는 첫해, 주체89(2000)년이 밝아왔다.

뜻깊은 2000년을 맞이하는 인류의 희망과 념원은 여느때없이 설레였다.

사람들은 커다란 희망과 념원을 안고 2000년의 첫 해돋이를 남먼저 맞이하려고 붐비였다.

세계도처에서 태평양상의 날자변경선가까이에 있는 섬에로 관광객들과 촬영가들이 모여들었다.

새 천년대를 맞이하는 인류의 격앙된 심정의 반영이였다.

2000년을 맞으며 우리 군대와 인민은 선군의 기치를 더욱 높이 들고 통일조국건설과 세계자주화위업실현의 보폭을 더 크게 내짚을 혁명적락관에 넘쳐 력사적진군길에 올랐다.

더우기 망국에 이어 분렬의 년륜을 새기지 않으면 안되였던 20세기의 민족적비운사에 종지부를 찍고 21세기에 통일번영의 새로운 민족사를 수놓으려는것이 우리 인민과 겨레의 열렬한 지향이고 념원이였다.

이 벅찬 시기 조국통일정세에서는 새로운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나고있었다.

99통일대축전 10차 범민족대회를 계기로 북과 남, 해외의 3자련대가 실현됨으로써 통일운동이 전민족적범위에서 더한층 조직화, 적극화되였다. 그리하여 통일을 지향하는 애국세력과 분렬을 추구하는 반통일세력사이의 력량관계는 조국통일에 더욱 유리하게 전변되였다.

남조선에서는 대세의 흐름에 편승하여 보수적인 정치인들과 집권상층까지도 북남관계개선과 나라의 통일문제를 집권유지의 명분으로 내세우지 않으면 안되였다.

눈앞에 박두한 4월 13일의 16대 남조선《국회의원선거》를 성과적으로 치르지 못하면 《국민의 정부》의 정치적장래가 우려를 넘어 비참한 결말로 이어지리라는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더우기 위대한 장군님께서 펼쳐가시는 선군의 위력에 의해 미국과 일본이 북과의 관계개선의 문을 두드리고있어 자기들만 소외되고있다는 조바심이 남조선당국자들을 불안하게 하고있었다.

변천되고있는 대세의 흐름을 통찰하고계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주체89(2000)년 1월 1일 년초의 바쁘신속에서도 여러 부문의 일군들과 함께 조국통일부문 일군들을 부르시여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2000년 새해를 맞으며 신심드높이 일을 더 잘해야 하겠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2000년에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일군들은 장군님의 심중과 뇌리에  거창한 구상과 단호한 대용단이 태동하고있음을 직감하였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1월 4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조국통일문제와 관련하여 또다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우리는 2000년에 나라의 자주적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공세를 벌리는데서 주체성과 민족성을 계속 강하게 들고나가야 하며 자주의 기치, 민족대단결의 기치를 더욱 높이 추켜들고나가야 한다, 우리 나라는 20세기 초엽에 외세의 간섭과 사대매국노들의 외세의존으로 망했고 조국해방후에는 외세에 의하여 반세기가 넘도록 나라가 분렬되여 민족적비운을 겪고있다, 세계에는 우리 나라처럼 오랜 세월 외세에 의해 갈라져사는 민족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21세기의 문어구에 들어서는 오늘 우리의 생명은 자주이고 자주는 곧 통일이라는 사상을 더욱 강하게 들고나가야 한다고 하시며 올해를 조국통일위업수행에서 결정적전환을 이룩하는 의의있는 해로 되게 하여야 하겠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뜻깊은 주체89(2000)년을 조국통일위업수행에서 결정적전환의 해로 되게 하시려는 철석의 신념과 의지가 맥박치는 말씀이였다.  

당시 남조선의 집권자는 4월에 있게 될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그전에 어떻게 하나 북남당국간 접촉의 기회를 얻어 《선거》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보려고 안달아하고있었다. 미국대통령 클린톤 역시 이해말에 있게 될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조선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한다는 공화당의 비난과 공격을 받고있는 형편에서 선거전야인 지금 조미관계에서 그 무슨 《실적》을 올려보려고 고심하고있었다. 일본도 우리와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굽어들어오고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러한 형세를 환히 꿰뚫어보시고 통장훈을 부를 구상을 무르익히시였다.

정치가들은 언제나 필요한 정세국면과 정황의 요구를 놓치지 말고 그것을 제때에 포착하여 리용할줄 알아야 한다, 시간적으로 보아 순간적인 계기라고 할수 있는 짧은 정세도 예민하게 포착하여 그것을 요진통에 써먹을줄 아는 사람이 진짜 정치가이다, 아무리 복잡한 정세라도 과학적으로 예리하게 통찰하고 그를 우리 혁명에 유리하게 써먹을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찾아내여 강하게 대처해나가면 역경을 순경으로 돌려세우고 혁명투쟁에서 반드시 승리한다, 참다운 정치의 매력은 객관정세를 예민하게 포착하여 제때에 써먹어 새로운 국면을 조성하는데 있다. 이것이 장군님의 정세관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지금의 정세야말로 《통장훈》을 부를 때이라고 보신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력사적인 《통장훈》을 구상하시면서 그것이 어떠한 성격의것인지에 대해서도 밝혀주시였다.

1월 29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남조선집권자가 《해볕정책》소리를 많이 하는데 어느 해볕이 인민적인 해볕이고 진짜 해볕인가를 알게 하여야 한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자주의 해볕이 진짜 해볕입니다.

인민들은 자주의 해볕을 바라며 그것을 받기를 기다리고있습니다.》

당시 남조선의 집권자는 《해볕정책》이라는것을 《대북정책의 기본》으로 표방해나서고있었다. 그것은 바람과 해가 길가는 나그네의 외투를 벗길 내기를 했는데 미칠듯이 불어친 찬바람은 외투를 벗기지 못했지만 따스한 해볕이 벗겼다는 고대그리스의 이소프우화에서 발상한것으로서 우리를 《개혁》, 《개방》에로 유도하여 우리 식 사회주의제도를 서서히 허물어버리자는데 목적을 두고있었다. 이것은 명백히 《흡수통일》의 변종으로서 우리를 심히 모독하고 우롱하는 반민족적이고 반통일적인 처사였다.

조성된 정세는 남측을 《해볕정책》과 같은 반통일적이며 반민족적인 사상과 립장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민족을 위하고 통일을 지향하는 애국의 길로 돌려세울것을 요구하고있었다.

《통장훈》구상의 근저에는 또한 새 천년대에는 1900년대에 해오던 낡은 형식에서 벗어나 완전히 전환하여 모든것을 새롭게 출발할데 대한 전략적의도가 놓여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즈음 21세기에 들어서는 새로운 분위기에 맞게 주체성, 민족성의 견지에서 무슨 일이나 다 새맛이 나게 근본적으로 전환할데 대하여 강조하시며 특히 통일행사들도 새로운 21세기의 요구를 반영하여 보다 혁명적이고 참신한 우리 식의 독특한 행사로 새맛이 나게 잘할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새시대, 새 천년대를 맞으며 사고방식과 일본새에서 100년, 1 000년을 내다보는 세기적인 전환, 력사적인 전환을 해야 한다. 이것이 장군님의 구상이고 의도였다.

세기와 세기가 교체되는 력사의 분기점에서 어떻게 하나 조국통일의 전환적국면을 열어놓기 위하여 통이 큰 구상을 안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2000년 3월에 조종의 산, 혁명의 성산 백두산을 찾으시였다.

평양상봉이 있은 후인 주체89(2000)년 10월 16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회고하시였다.

《나는 원래 금년초 백두산에 갔을 때에 올해 대남대외관계에서 통이 큰 작전을 펼칠것을 설계하고 이것을 구상하였습니다.

나는 그 어떤 큰 구상을 하거나 작전을 할 때에는 늘 백두산에 가군 합니다. 눈보라가 날리는 백두산정에서 우리 수령님께서 걸어오신 피어린 항일대전을 돌이켜보고 온 나라에 떠받들려있는 백두산의 장엄한 모습을 보느라면 통이 큰 작전과 구상이 떠오르고 그에 대한 신심과 용기도 생기군 합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백두산에 도착하신 그날 낮부터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하얀 숫눈우에 조국통일을 위한 불같이 뜨거운 한마음을 새겨가시듯 경애하는 장군님의 성스러운 발자국이 찍혀졌다. 그것은 세상을 놀래울 력사적인 사변의 예고이며 의미심장한 출발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눈보라 휘몰아치는 백두산에서  자주냐 예속이냐, 통일이냐 분렬이냐 하는 민족의 운명을 놓고 깊은 사색의 바다에 잠기시였다. 그이께서는 온 민족이 지지환영하고 바라마지 않았던 1994년 여름과 같은 민족사적대경사를 성사시키실 구상을 무르익히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백두산과 뜨거운 심장의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우리 민족의 지상과제는 조국통일이다. 20세기를 마감하는 오늘 우리 민족만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렬민족으로 남아있는 비극의 력사, 치욕의 력사를 끝장내야 한다. 세기말의 정세는 애국과 매국이라는 큰 선에서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고있다. 가슴속에 박힌 분렬의 못을 뽑고 신음하는 조국의 아픔을 풀기 위하여 일대 전환의 결단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반세기가 넘는 분렬의 력사우에 서있는 민족의 절규이고 시대의 호소이며 해내외 모든 동포들의 피맺힌 갈망이다.

장군님의 깊고 넓은 가슴속에서는 분렬의 얼음장을 한순간에 녹여버릴 용암처럼 뜨거운 열류가 소용돌이쳤고 장군님의 사색은 깊어만 갔다.

그 어떤 주의주장도, 어제날의 행적도 통일이라는 대의앞에서는 문제시되지 않는다. 내 나라, 내 겨레에 대한 그 인간의 오늘의 립장과 관점이 중요한것이다. 민족적량심을 가지고 조국통일을 위해 손을 내민다면 그가 누구이든 마다할 리유가 없다. 력대 남조선통치배들은 모두 파쑈독재자들이였지만 남조선의 현 당국자는 그래도 민주인사라고 자처하면서 군사파쑈독재와 오랜 기간 싸웠고 여러차례 죽음의 고비도 넘긴 사람이 아닌가. 남조선의 민주화를 위해 흘린 그의 한방울의 피와 땀이라도 귀하게 여겨주자. 설사 어제날 우리에게 칼을 날렸다 해도 오늘에 와서 통일애국의 뜻을 지녔다면 대의를 위해 한자리에 같이 앉아 조국통일을 진지하게 론의해보자. 할수 있는가, 할수 있다. 우리 혁명가들의 도량은 백두산처럼 크고 넓어야 한다. 대해는 청류와 탁류를 가리지 않는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자신께서 생각하고계신 조국통일의 대구상에 대한 확신을 더욱 굳혀나가시였다.

북남수뇌들이 만나 한자리에 앉는다는것부터 이 나라의 새 력사를 빛나게 장식할 장거이다. 북남수뇌상봉이야말로 미제의 분렬책동을 산산이 부셔버릴 벼락이다. 이제 울려퍼질 온 민족의 힘찬 통일대합창은 겨레의 머리우에 드리운 분렬의 먹장구름을 활활 불태워버릴것이다. 시간을 잃으면 력사를 잃는다. 지금이야말로 어버이수령님께서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기에 남기신 그 숭고한 애국애족의 통일유훈을 꽃피워야 할 시기이다.

장군님께서는 다시금 굳게 다짐하시였다.

드디여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조국통일운동사에 금문자로 기록될 주체89(2000)년 6월에 평양에서 북남수뇌상봉과 회담을 진행하실 력사적인 대용단을 내리시였다.

그것은 백두산을 그대로 닮으신 장군님의 애국애족의 뜨거운 통일의지와 예지로 빛나는 사색, 천하의 만인을 한품에 안으시는 인덕과 도량이 낳은 위대한 결단이였다.

바로 이것이다! 분렬의 칠흑같은 밤은 가고 백두산에서 조국통일의 동이 터왔다.

력사적인 평양상봉은 어느날 우연하게 생겨난것이 아니다. 모든 생명체들에 그것을 잉태한 모체가 있고 그것이 태여난 때와 장소가  있듯이 평양상봉도 그러했다.

남조선의 인터네트 《통일한마음》 2002년 7월 23일부에 실린 글 《6.15공동선언이후의 통일정세와 조국통일실현의 전망》에서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밝히였다.

《6.15공동선언은 눈보라 휘몰아치는 백두산에서 잉태되였습니다. 그리고 그 선언은 2000년 6월 15일 평양에서 태여났습니다. 7천만겨레의 최대숙원인 조국통일을 실현하는 리정표인 6.15공동선언은 다른데서 잉태될수 없고 다른데서 태여날수 없었습니다. 백두산은 우리 민족에게 어떠한 산입니까? 단순한 산이 아니지 않습니까? 자주민족의 상징이며 조국통일의 상징이 아닙니까?

6.15공동선언이 백두산의 정기를 받아 잉태되고 평양에서 태여났으므로 조국통일위업은 백두산의 힘으로 실현되고있습니다.》

2000년으로 임기중반을 넘기게 된 김대중《정권》에 있어서 북남관계에서 《정치실적》이 없는것이 문제였다. 당시 남조선인민들속에서 집권자의 《인기도》는 초기 90%에 이르렀던 지지률이 30%선으로 곤두박질치는 심각한 상황이였다. 임기 5년간 북남대화탁에 한번 나와보지도 못하고 정치무대에서 사라진 전 집권자와 별반 차이가 없는 운명이였다.

그리하여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북남최고위급회담을 위하여 남조선의 전 당국자를 평양에 초청하였던 전례를 따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자기를 평양에 불러주실것을 여러 통로를 통해 요청해왔던것이다.

이어 유럽방문길에 나섰던 남조선당국자는 도이췰란드의 베를린자유대학에서 한 연설에서 《베를린선언》이라는것을 발표하였다. 그가 《베를린선언》에서 《우리의 당면목표는 통일보다는 랭전종식과 평화정착》이라고 한것은 사실상 군사적대결로는 북을 당할수 없다는데 대한 인정을 전제로 한것이며 평양방문요청은 바로 선군의 위력앞에 달리할수 없는 선택이였다.

새 천년대에 들어선 이해에 조국통일운동에서 전환적국면을 열어제낄 원대한 뜻을 품으신 장군님께서는 남조선당국자의 평양방문초청제의를 넓으신 도량으로 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남측이 물밑선으로 대화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 때에 벌써 그들의 심중을 꿰뚫어보신것이다.

이렇게 되여 3월 8일부터 싱가포르에서 시작된 북남간의 비공개접촉은 베이징을 거치면서 여러차례에 걸쳐 진행되게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매일같이 북남베이징접촉정형을 보고받으시고 구체적인 지도를 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베이징접촉에서 주요쟁점사항의 하나로 되고있던 초청합의문에 자신의 존함을 밝힐데 대한 남측의 요구도 대범하게 받아들이시고 남조선당국자가 장군님과 상봉하게 된다는것을 밝힐데 대한 그들의 간절한 요청도 동의를 주시면서 베이징접촉을 성사시켜나가시였다.

3월 27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북남합의서는 우리의 독창적인 국가체계를 고려하여 다음과 같이 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북남합의서에서는 북과 남은 력사적인 7. 4북남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조국통일3대원칙을 재확인하면서 민족의 화해와 단합, 교류와 협력, 평화와 통일을 앞당기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김대중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그가 6월 12일부터 14일까지 평양을 방문한다, 평양방문에서는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신 김정일국방위원장과 김대중대통령사이에 력사적인 상봉이 있게 되며 북남최고위급회담이 개최된다라고 해놓고 김대중의 평양방문과 관련한 실무접촉을 한다는 내용을 더 넣자고 하면 넣어줄수 있습니다.

그리고 각기 아래에는 <상부의 뜻을 받들어 북측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 송호경, 남측 문화관광부 장관 박지원>으로 할수 있습니다.》

신문과 방송을 통해 발표된 4. 8북남합의서는 다름아닌 장군님의 이 말씀을 그대로 옮긴것임을 명백히 알수 있다.

이렇듯 장군님의 탁월한 령도예술과 광폭의 도량에 의하여 드디여 4월 8일 북남합의서가 채택되게 되였다.

주체89(2000)년 4월 10일, 어버이수령님을 잃고 20세기의 마지막 태양절을 며칠 앞둔 때 온 나라 인민은 놀라운 소식에 접하였다.

북과 남이 각기 상부의 뜻을 받들어 우리측의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과 남측의 《문화관광부 장관》이 수표한 4. 8북남합의서가 발표되였다.

《북과 남은 력사적인 7. 4북남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조국통일3대원칙을 재확인하면서 민족의 화해와 단합, 교류와 협력, 평화와 통일을 앞당기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김대중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김대중대통령이 금년 2000년 6월 12일부터 14일까지 평양을 방문한다.

평양방문에서는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신 김정일국방위원장과 김대중대통령사이에 력사적인 상봉이 있게 되며 북남최고위급회담이 개최된다.

쌍방은 가까운 4월중에 절차문제협의를 위한 준비접촉을 갖기로 하였다.》

북과 남이 합의서에 도장을 누른 다음날인 4월 9일이였다.이날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되신지 7돐이 되는 뜻깊은 날이였다.

이날 당중앙위원회 해당 부문 책임일군을 부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민족사에 특기할 사변이라고, 남조선당국자가 평양에 오는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유훈을 관철하는 측면에서도 좋은 일이며 북남관계를 전진시키는데서도 하나의 사변이라고 볼수 있다고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북남합의서가 채택된것은 우리의 막강한 군사적힘에 의하여 마련된 승리이라고, 다시말하여 선군정치의 위대한 승리이라고, 우리가 선군정치를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결과를 얻어낼수 없다고 강조하시였다.

실로 4. 8북남합의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비범한 예지와 정력적인 선군령도가 낳은 민족사적사변이며 자주통일시대의 개막을 예고하는 장쾌한 뢰성이였다.

북남합의서발표는 세상을 들었다놓았다. 남조선의 여야당과 경제, 사회, 시민, 로동계는 물론 군부까지도 앞을 다투어 합의서를 지지환영하는 립장들을 밝혔다. 합의서발표후 남조선에서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북남수뇌회담이 《바람직하다》는 사람이 81%에 달했으며 북남수뇌회담이 《남북관계개선에 전기가 마련될것》이며 이로 하여 《통일이 더 빨리 올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남조선주식시장에서는 주가가 큰 폭으로 뛰여올랐다. 13일에 진행된 남조선의 16대《총선》에서 남조선당국자의 《민주당》은 115석을 확보하여 크게 성과를 거두었다.  

민족의 절박한 념원과 기대를 담은 7천만 해내외동포들의 마음이 평양으로 달리였고 력사적사변의 추이를 지켜보는 세계의 이목이 조선으로 쏠리였다.

합의서에 따라 북과 남은 4월 22일부터 5월 18일까지의 사이에 력사적인 평양상봉과 북남최고위급회담준비를 위한 5차례의 준비접촉과 2차례의 통신, 보도실무자접촉을 진행하였으며 5월 31일에는 남측선발대가 평양에 왔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력사적인 평양상봉을 어버이수령님의 유훈을 관철하기 위한 민족의 중대사로 보시고 그 준비사업에 각별히 큰 힘을 기울이시였다.

력사적인 북남수뇌상봉의 날자가 하루하루 다가오면서 온 민족의 통일열기는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무렵 력사적인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한 비공식방문을 마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89(2000)년 6월 3일 두번째로 찾아온 남측《특사》일행을 현지로 부르시여 4시간 반동안이나 접견해주시고 만찬을 베풀어주시였다.

이날 그이께서는 남조선당국자의 평양방문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일련의 문제들에 대한 사리정연하고 진정에 넘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사실상 남조선당국자가 평양에 와서 합의하려는것은 결국 《베를린선언》을 다시 평양까지 가지고 와 같은 내용을 가지고 간판만 바꾸려는 의도가 엿보이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우리의 의견은 조국해방 55돐을 맞이한다는 의미에서 통일을 위한 희망적인 큰 범위의 선언같은것이나 하나 내고 거기에 앞으로 더 전진적으로 어떻게 발전시킨다 하는 내용을 큼직하게 명기해놓는것이 좋지 않겠는가 하는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계속하여 그이께서는 남조선당국자가 정치활동의 마무리를 잘하기 위해서도 실용적인 큰 선에서 공동선언이나 발표하고 앞으로 지향적으로, 발전적으로 북남관계를 점차 개선해나가는것이 좋지 않겠는가 하는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북남수뇌상봉에서 발표할 문건이 지난날의것을 반복하고 모방할것이 아니라 새로운 내용으로 되여야 한다는것이   경애하는 장군님의 웅심깊은 뜻이였고 변함없는 의지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남측《특사》에게 김대중《대통령》이 평양에 올 때 남조선의 전직《대통령》들도 함께 데리고 올데 대한 의견도 말씀하시였다. 이것은 우리 장군님께서만이 내놓으실수 있는 대담하고 경탄할 명안중의 명안이였다. 만일 장군님의 가르치심대로 전직《대통령》들의 평양방문동행이 실현되였다면 남조선사회에는 또다른 의미의 거대한 변화가 오고 민족통일의 앞길에는 더 큰 새로운 전환적국면이 열리게 되였을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크나큰 뜻이 담겨진 가르치심을 주시고나서 남측《특사》일행을 위해 만찬을 베푸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한 남측《특사》일행의 매혹과 감동의 분위기가 짙어가는 속에서 만찬이 한창 무르익어가고있을 때 장군님께서는 나는 앞으로 신변안전담보각서를 받아가지고 오는 사람들은 절대로 만나주지 않으려고 한다고 하시며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북남대결시대의 상징인 신변안전담보의 증표보다 신의와 믿음을 더 중히 여기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뜻깊은 말씀이였다. 계속하여 장군님께서는 신변안전담보각서도 없이 평양에 와있는 당신들, 남편들을 두고 속태울 아낙네들을 위하여 한잔 들자고 제의하시였다. 순간 장내에는 반세기이상 지속되여온 낡은 시대의 유물을 한순간에 날려보내듯 유쾌한 웃음이 터졌다. 그것은 정녕 북남관계개선을 위한 대화와 접촉, 인사래왕을 대결과 불신의 궤도에서 신뢰와 화해, 협력의 궤도에로 올려세우는 력사의 순간이였고 반세기이상 쌓이고쌓인 불신을 날려보내시는 축배이기도 하였다.

만찬회의 분위기가 고조되여갈 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좌중을 둘러보시며 내가 이제 《대통령》을 만나서 꼭 하고싶은 말이 있다고 허두를 떼시고 잠시 동안을 두시였다가 우리는 북과 남이 서로 마음이 통해서 이 땅에서 민족적자존심을 가지고 살아나가야 한다, 자존심이 곧 힘이다라고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여 4. 8합의서발표와 관련한 주변나라들의 반향에 대하여 언급하시고나서 《앞으로 … 조선문제는 어디까지나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하시였다.

이것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남조선당국자를 만나는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것과 그를 만나서 하게 될 담화의 기본종자를 명시하여주신것이기도 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백두산에서 사색하시고 확정하신 《우리 민족끼리》의 통일리념을 민족공동의 통일강령으로 일떠세우시는 의의깊은 밤이였다.

《특사》일행은 한결같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모든 문제들을 정확하게 통찰하고계시고 이야기도 째이게, 론리정연하게 하시는데 커다란 감동을 표시하였다. 그들은 국방위원장님은 정말 다재다능하시고 위대한분이시라는것을 느꼈다고 감탄을 금치 못해하였다.

조국통일의 앞길에 위대한 태양이 눈부시게 빛나고있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손에 자주통일시대의 방향타가 쥐여져있으며 장군님의 의지를 따라 민족의 력사가 흐른다. 우리 장군님이시야말로 7천만 온 겨레의 운명을 맡기고 통일조국의 영원한 미래를 맡길수 있는 민족의 태양, 통일의 구성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