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머니 김정숙녀장군」중에서

회령은 우리 나라 북변을 굽이굽이 감돌아흐르는 두만강기슭에 자리잡고있는 아름다운 고장이다.

백두대산줄기에서 뻗어내린 험준한 산발들이 점차 낮아져오다가 봉긋한 덕을 이루고 회령천과 팔을천이 의좋게 두만강으로 흘러드는 곳에 들어앉은 회령은 산이 수려하고 물이 더없이 맑아 예로부터 함북명승으로 일러왔다. 특히 오산덕은 봄이면 연분홍진달래와 하얀 살구꽃이 만발하여 회령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풍치의 수려함을 뛰여넘어 회령은 예로부터 북관6진으로 유명하다. 옛사람들은 마천령마루에 올라서서 그 북쪽에 있는 지대를 바라보며 북관땅이라고 불러왔는데 바로 그 북관6진중의 하나가 회령인것이다.

15세기에 와서 두만강과 압록강류역의 요충지마다에 외적의 침입을 막는 긴 행성을 쌓고 적의 침입을 물리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이 세워졌다. 압록강중류지대에 려연, 자성, 무창, 우예 등 4군의 설치와 거의 때를 같이하여 두만강 중하류류역지대인 경원부, 회령부, 종성군, 경흥군 등 4진이 설치되게 되였고 이것이 그후 온성과 부령까지 합쳐져 6진으로 불리워졌다. 압록강과 두만강의 남, 서쪽기슭에 설치된 4군6진으로 진출한 인민들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싸움을 줄기차게 벌림으로써 국토방위에 큰 기여를 하였다.

지령이 인걸이라고 이런 아름답기 그지 없고 국토방위의 최전방지역인 회령의 애국적인 독립운동자의 가문에서 주체6(1917)년 12월 24일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께서 탄생하시였다.

시일야방성대곡의 통한이 반일함성으로 바뀌고 삼천리강토를 휘감은 압제의 쇠사슬을 끊어버리려는 조선인민의 항거와 반일투쟁의 불길이 거세차게 타오르던 격동의 시기였다. 오래전부터 조선에 침략의 마수를 뻗쳐온 일제는 1905년에 강도적인 방법으로 우리 나라를 저들의 식민지로 만들었고 강점 첫날부터 총검에 의한 무단통치를 실시하면서 조선인민을 닥치는대로 검거, 투옥, 학살하고 가혹하게 착취하였다. 극도에 달한 일제의 강도적인 식민지적폭압과 략탈은 조선인민의 민족적분노를 격발시켰고 반일항전을 고조시켰다. 조선인민의 반일독립운동은 반일정치운동과 애국문화운동, 반일의병투쟁과 독립군운동 등 여러가지 형태로 광범히 진행되였다. 전국도처에서 일제의 침략과 략탈을 반대하는 로동자, 농민, 청년학생들의 투쟁이 련이어 벌어졌으며 특히 우리 나라에서 반일독립운동의 주요구성부분을 이루고있었던 의병투쟁이 1910년대에 독립군운동으로 전환되여 중국 동북지방과 연해주지방에서는 독립군운동을 위한 군사간부양성사업, 적을 습격하여 무기를 마련하고 무장부대들을 편성하고 훈련하는 사업이 활발히 벌어졌다. 더우기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신 김형직선생님께서 1917년 3월 조직규모가 제일 큰 반일지하혁명조직인 조선국민회를 결성하시고 정력적인 혁명활동을 벌리심에 따라 조선인민의 반일민족해방투쟁은 더 높은 단계에서 거세차게 벌어졌다.

일제의 식민지통치에 항거하는 조선인민의 민족적분노는 바야흐로 폭발적인 3.1인민봉기에로 육박해가고있었다.

세계적으로 볼 때 로씨야에서 사회주의10월혁명이 승리하여 처음으로 로동자, 농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력사적사변이 일어났으며 이 10월의 열풍은 아시아나라들에도 세차게 불어왔다.

바로 이러한 격동적인 시기에 회령 오산덕기슭에 자리잡은 자그마한 초가집에서 한겨울의 추위를 녹이는 따스한 온기이련듯 힘찬 고고성이 울리였다. 위대한 선군의 해발이 되시여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의 선군혁명위업을 누구보다도 앞장서 받들어나가실 김정숙녀사께서 수난겪는 조국의 딸로 탄생하신것이다.

김정숙녀사의 일가는 조선독립을 위한 무장항전의 높은 뜻을 지니고 외래침략자들을 반대하는 투쟁의 앞장에 선 애국가정이였다.

김정숙녀사의 일가분들은 이곳저곳에 자리를 옮겨사시다가 할아버지대인 1895년경에 이곳 회령으로 이주하였다.

이곳에서 소작살이를 하면서 어렵게 살아가시던 일가분들은 녀사께서 탄생하실무렵에는 빚값으로 지주놈에게 소작지를 빼앗기고 초가집마저 헐리워 더는 한집에서 모여살수도 없게 되였다. 그리하여 할머님과 삼촌네 식구들은 두만강을 건너 연길현 북구에 가게 되였고 녀사의 아버님네는 오산덕에 있는 남의 집 곁방을 얻어살지 않으면 안되였다.

비록 지지리도 못살고 한뙈기의 땅도, 변변한 집도 없는 극빈한 가정이였지만 일가분들의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은 하늘에 닿고 기개는 씩씩하였다.

할아버님은 정의감과 의협심이 강하시였으며 일찌기 봉건통치배들을 반대하는 농민봉기에 참가하여 용감히 싸우시였고 농민봉기가 실패하자 고향을 떠나 회령에 오신 후 세상을 떠나시였다.

아버님 김춘산선생님은 일찍부터 두만강을 넘나들며  반일독립운동에 참가하신  애국자이시였고 어머님 오씨는 남편의 애국투쟁을 적극 도우시며 자제분들을 열렬한 애국자로, 견결한 혁명투사로 키우신분이였다.

오라버님 김기준선생님은 위대한 수령님의 선군혁명로선을 받들어 모든것을 다 바쳐 싸우신 열렬한 혁명가이시였다. 김기준선생님은 공산당원으로서, 능숙한 정치공작원으로서 지하혁명활동을 벌리시다가 불행하게도 일제경찰에 체포되여 장렬하게 희생되시였다. 아동단원이였던 김기송동생도 항일의 전장에서 생을 마친 슬기롭고 용감한 소년혁명가이시였다.

김정숙녀장군의 일가분들은 이처럼 모두가 투철한 반일항전의지를 지니시고 총대와 더불어 조선독립의 초행길에 뚜렷한 자욱을 남긴 뜻이 높은 선각자, 열혈의 애국투사들이시였다.

이런 애국적이며 혁명적인 가정에서 김정숙녀사께서 탄생하신것은 조선의 혁명가들과  인민들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령도하시는 선군혁명위업을 높이 받들어나가는데서 특출한 의미를 지니는 일대 사변이였다.

유서깊은 오산덕의 백살구향기를 생의 자양분으로, 조국의 숨결로 하여 아름답고 억세게 성장하신  녀사께서는 10대의 어리신 나이에 손에 총을 잡으시고 위대한 수령님의 가장 가까이에서 항일의 준엄한 전구를 앞장서 헤쳐오시였다. 항일혁명의 영광찬 투쟁사의 어느 페지를 펼쳐도 거기에는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의 사상과 령도의 결사옹위, 결사관철의 1번수가 되시여 조국해방, 새 조국건설의 초행길을 개척해나가신 김정숙녀사의 거룩한 발자취가 뚜렷이 찍혀져있음을 보게 된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유년시절 망국의 설음을 안고 두만강에 피눈물을 뿌리며 사랑하는 고향땅을 떠나신 후로 다시 귀향하지 못하시였다. 해방후 항일혁명의 산아인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앞세우시고 온 겨레와 회령사람들의 축복을 받으시며 고향집사립문에 들어서실수 있으셨건만 위대한  수령님의 건당, 건군, 건국위업을 앞장서 받드시느라 시간을 내지 못하시였다.

하지만 회령은 김정숙녀사의 마음속에 한시도 떨어져서는 살수 없는 조국의 모습으로, 사랑하는 부모형제들의 모습으로 뜨겁게 간직되여있었으며 그이의 혁명활동과 투쟁의 출발점에 놓여있었다.

김정숙녀사께서는 후날 고향 회령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회상하시였다.

《나는 회령을 떠난 후 한번도 고향생각을 잊은적이 없습니다. 장군님 모시고 산에서 투쟁할 때 기쁜 일이 생겨도, 슬픈 일이 생겨도 내 고향 회령을 생각하였습니다. 행군을 하고 전투를 할 때에는 좀 나은데 밀림속 숙영지에서 유난히 밝은 달을 바라볼 때면 고향의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조약돌 하나하나가 눈앞에 삼삼하였습니다.》

녀사께서는 마음속에 고향 회령을 불같이 뜨겁게 안으시고 망국노의 수치와 아픔을 원쑤격멸의 총포성으로 바꾸시였으며 혈전만리의 고난과 시련도 《사향가》의 선률로 이겨내시며 항일의 녀장군의 기개를 떨치시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김정숙녀사를 대신하여 주체80(1991)년 8월 27일 회령고향집을 찾으시였다.

어디서나 흔히 볼수 있는 수수한 농가의 마당에 들어서신 수령님께서는 뜨락에서 잠시 주변을 둘러보시다가 토방에 올라서시여 방안을 유심히 살펴보시였다. 네댓㎡ 되나마나 한 작은 곁방에는 변변한 가장집물이란 하나도 없었다. 가난의 흔적이 너무도 짙게 서린 그 작은 방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시다가 다시 뜨락에 내려서시여 어두운 안색으로 추녀낮은 고향집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오산덕에 있는 김정숙동무의 생가에 와보니 그의 일가가 곁방살이를 하면서 어렵게 살았다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김정숙녀사를 고향집앞에 내세우시지 못한 회한, 총포성이 울부짖는 항일혁명투쟁 그리고 새 조국건설의 초행길에서 누구도 대신할수 없는 가장 힘겨운 위치를 지켜서시여 누구보다도 뜨거운 혁명열을 폭발시키시며 헌신의 자욱자욱을 수놓아오신 김정숙녀사에 대한 그리움이 파도처럼 밀려와 수령님께서는 더 말씀을 잇지 못하시고 유서깊은 생가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다. 녀성의 몸으로 10대의 어리신 나이에 항일의 결전장에 떨쳐나 혁명만이 살길이라는 력사의 진리를 온넋으로, 온몸으로 실천하시여 항일의 녀성영웅, 선군혁명의 총대녀장군으로 추앙받으시는 김정숙녀사의 위대한 혁명력사, 혁명업적을 만대에 길이 빛내여주시는 불멸의 화폭이였다.

동서고금의 력사에 녀성혁명가, 녀걸이라 일컫는 위인들이 적지 않았지만 김정숙녀사처럼 한평생 손에 무장을 틀어쥐고 나라와 민족의 운명개척을 위한 길에 그렇듯 크나큰 삶의 흔적을 남긴 녀성영웅, 녀장군은 없다.

그 영원불후의 업적을 후손만대에 길이 전하고저 인민들은 백살구향기 넘치는 오산덕기슭에 김정숙녀사의  동상을 정중히  모시였다. 녀사께서는  오늘도 혈전만리의  풍상고초가 그대로  어려있는 항일군복차림의 백두산녀장군의 모습으로 거연히 서계시며 군민을 선군혁명위업수행에로 고무추동하고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