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1) 중에서

  백두산동북부의 두만강연안에 건설된 유격근거지의 존재는 도꾜 대본영의 우두머리들에게 커다란 우환거리로 되였다.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조선의 북부지대와 잇닿아있는 이 지대를 그들은 눈에 든 가시처럼 여겼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동만의 유격근거지를 가리켜 《동양평화의 암》이라고 불렀다. 이 말속에는 유격근거지에 대한 그들의 공포심리가 그대로 담겨져있었다.

일제가 두만강연안에 창설된 유격근거지를 위험시한것은 그것이 조선에 대한 저들의 식민지통치체계에 하나의 큰 파렬구를 조성하고 커다란 타격을 주는 가장 무서운 존재였고 만주에 식민지통치체계를 확립하고 이를 발판으로 하여 아시아 전지역에 대한 침략전쟁을 확대하는데 가장 큰 장애로 되기때문이였다.

그리하여 일제는  간도지방의 《치안》을 저들의 운명과 관련되는 중요한 문제로 보고 《이 지방에 있어서의 치안의 확보, 경비의 통제는 만주국을 위해서도 또한 제국자체를 위해서도 최대긴급사》, 《만주에 있어서의 치안유지는 무엇보다도 간도로부터》라고 떠벌이면서 반일인민유격대와 두만강연안유격구를 요람기에 압살하기 위하여 미쳐날뛰였다.

일제침략자들은 1933년 1월 18일 간도총령사관에서 관동헌병대, 조선강점군 《간도파견대》, 령사관 경찰부, 함경북도 경찰부와 만주경찰기관의 고위두목들의 련석회의를 열고 두만강연안유격구에 대한 대규모적인 《토벌》공세를 강화할데 대한 모의를 하였다. 회의에서 적들은 《재만조선인의 과반수인 40만을 포괄하는 이 간도의 조선인문제는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며 등한히 할 문제가 아니다. …이것을 장기간 그대로 두는것은 만주국의 중대한 장애이며 장래영구한 동양평화의 암으로 된다고 생각한다.》고 비명을 질렀다. 이 회의에서 일제는 반일인민유격대와 두만강연안유격구에 대한 《특별》공세를 강화하며 군사행동에서 지휘체계를 확립하고 군대의 행동에 모든것을 복종시키며 군대와 경찰, 자위단들간의 협동동작을 개선하기 위한 여러가지 대책을 토의하였다.

이러한 조치에 따라 일제는 방대한 침략무력을 증강하면서 두만강연안유격구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공세에 달라붙었다. 일제는 두만강연안의 중요지점들에 배치되였던 조선강점군 《간도파견대》와 독립수비대, 헌병, 경찰, 위만군경은 물론 다른 지방의 침략무력까지 끌어들여 유격구에 대한 전면적인 《초토화》작전을 개시하였다. 당시 일제는 조선혁명의 사령부를 《소탕》하는것을 조선강점군과 만주강점군의 전략적방책으로 규정하였다.

일제는 이러한 전략적기도밑에 두만강연안유격구에 대한 《초토화》작전을 벌리면서 그 주공방향을 혁명의 사령부가 있는 소왕청유격구역에 설정하고 조선주둔 19사단의 병력과 동만일대에 배치되였던 병력 1,500여명으로 련합무력을 편성하고 1933년 4월 중순 보병뿐아니라 기병과 포병, 비행기까지 동원하여 소왕청유격구역을 3개 방면으로부터 공격해왔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그때를 회고하시여 이렇게 쓰시였다.

《적들은 소왕청유격구를 삼면으로 포위하고 련 3일에 걸쳐 집요하게 공격하였다. 우리는 완강한 방어전으로 그 공격을 견제하고 적들에게 무리죽음을 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왕청유격대 지휘관들과 반군사조직 지휘성원들을 부르시여 구체적인 작전을 펼치시였다.

원래 소왕청유격구역은 해발 600∼1,000m이상의 높고 험한 산들이 련달아있어 적들의 공격을 물리치는데 유리한 지형조건을 가지고있었다.

사령부가 자리잡고있는 소왕청골짜기의 마촌은 동쪽의 715고지와 북쪽의 716고지를 비롯한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있었으며 이 산들은 주변에 있는 보다 높은 고지들과 련결되여있었다. 특히 마촌 서북쪽 약 5km 거리에 떨어져있는 뾰족산은 소왕청골짜기의 입구를 막아선 고지였다. 이 고지의 서쪽과 북쪽 그리고 남쪽비탈면은 절벽을 이루고 남쪽경사의 절벽밑에는 왕청-마촌간의 좁은 도로가 뻗어있었다. 소왕청골짜기의 남쪽에는 대왕청골이 길게 뻗어있었는데 이 골짜기의 어귀에는 마반산이 있고 골짜기로 올라가면서 서대파, 만하, 십리평 등 마을이 자리잡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러한 유리한 지형에 맞게 반일인민유격대 제1중대의 기본력량을 마촌일대의 715고지와 716고지를 비롯한 무명고지들에, 유격대 1개 소대와 반일자위대를 뾰족산과 그 맞은편 무명고지에 배치하여 침공하는 적들에게 불의의 집중사격으로 첫 타격을 가하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제2중대는 대왕청골짜기로 침입하는 적을 마반산과 토성바위계선의 좁은 골짜기에 몰아넣고 족침으로써 마촌방향으로 침입하는 적의 기본력량을 소멸하는 제1중대의 전투를 보장하게 하시였다.

유격대원들과 반군사조직성원들은 지정된 진지를 차지하고 전투준비를 빈틈없이 갖추었다. 소년선봉대원들도 도로의 굽인돌이에 못을 박은 널판자를 묻어놓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감시조건이 좋은 마촌뒤산의 715고지에 지휘처를 정하시고 전투를 령활하게 지휘하시였다.

전투는 주체22(1933)년 4월 17일 시작되였다. 왕청주둔 일제수비대 500여명이 오전 10시경에 뾰족산에 접근해왔다. 도로를 따라 2렬종대로 기여드는 적들이 사격권안에 완전히 들어섰을 때 사격신호가 울렸다. 뾰족산과 무명고지에 배치된 유격대와 반일자위대는 일제히 교차사격을 들이대여 적의 선두대렬을 제압하였다.

갑자기 된벼락을 맞은 적들은 넋을 잃고 개울가로 밀려났다가 대오를 수습해가지고 뾰족산 남쪽고지로 기여오르기 시작하였으며 일부는 뾰족산 서쪽으로 달려들었다.

유격대원들은 자위대원들과 함께 정확한 조준사격으로 적들을 계속 쏘아눕히면서 방어진지가까이까지 기여든 적들에게 준비해두었던 돌무지들을 내리굴리고 작탄을 던져 무리로 쓸어눕혔다. 뾰족산과 그 남쪽의 무명고지로 달려들던 적들은 2시간동안에 커다란 손실을 당하고 물러서지 않을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첫날 전투가 끝나자 지휘관들에게 적의 새로운 공격에 대처하여 전투준비를 더욱 빈틈없이 갖출것을 명령하시였다.

그 다음날 적들은 증강된 력량으로 또다시 공격해왔다. 적들은 500여명의 력량을 소왕청골짜기로 침입시키고 다른 500여명의 병력으로는 쟈피거우방향으로부터 마촌을 공격하게 하였다. 그리고 기병과 배합한 500여명의 병력을 대왕청골짜기의 마반산으로 들이밀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러 방향으로 침입하여 유격대의 력량을 분산시키고 마촌으로 침입하려는것이 적들의 기도이라는것을 환히 꿰뚫어보시고 이를 파탄시키기 위한 작전을 펴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뾰족산을 차지하고있던 제1중대 1소대는 적에게 호된 타격을 가하여 그를 물리친 다음 재빨리 마촌 남쪽에 있는 마촌-서대파사이의 고지를 차지하고 마촌을 우회공격하려는 적을 유리한 계선에서 격퇴소멸하며 제2중대 3소대는 마반산으로 접근하는 적들을 타격하여 좌절시키며 제1, 2중대의 기본력량은 적의 주력을 마촌계선의 좁은 골짜기에 몰아넣고 강력한 집중화력으로 소멸할것을 명령하시였다. 그이의 명령에 따라 유격대원들과 자위대원들은 적의 공격을 제압하고 강력한 타격으로 무리죽음을 안겼다. 유격구인민들도 모두 떨쳐나 적들과 용감히 싸웠다.

전투는 치렬하였다. 적들은 손실을 당하면서도 력량상 우세를 믿고 계속 달려들었다. 적들은 비행기와 포, 기관총의 엄호를 받으며 유격대지휘부가 자리잡은 715고지에로 공격해왔다.

이러한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포연탄우를 몸소 헤치시며 적들의 공격을 격퇴하기 위한 전투를 직접 지휘하시였다.

가렬처절한 전투속에서 유격대원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안전을 위해 희생을 무릅쓰고 싸움에 떨쳐나섰다. 대원들은 항상 격전장에 계시는 수령님께 안전한 곳에 지휘처를 옮겨 주실것을 간청하는 한편 결사적으로 수령님을 보위하였다. 그들은 사령관동지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자고 웨치며 수적우세를 믿고 달려드는 적들을 향해 비호같이 내달려 총창으로 적병들을 닥치는대로 찌르고 또 찌르면서 적의 돌격서렬을 짓뭉개놓았다.

어느 한 유격대원은 적의 한 무리가 수령님께서 계시는 지휘처로 은밀히 기여들었을 때 몸을 날려 그이를 막아나서며 적들을 덮쳤다. 그는 치명상으로 숨을 거두면서 《동무들! 사령관동지를 잘 보위해주오.》라는 말을 남겼다. 유격대원들은 결사의 각오를 가지고 적의 공격을 3차례나 물리치고 사령부의 안전을 보위하였다.

소왕청유격구방위전투는 이렇듯 유격대원들과 인민들의 수령보위투쟁으로 일관되였다. 그것은 간고한 항일무장투쟁사에서 혁명의 사령부보위의 빛나는 모범을 창조한 영웅서사시였다.

숱한 주검을 낸 적들은 어두워지자 황급히 퇴각하여 숙영을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밤 몇개의 습격조로 숙영하는 적을 족치게 하시여 놈들을 극도로 피로약화시키도록 하시였다.

전투의 3일째 날에도 적들은 수많은 병력을 동원하여 또다시 쳐들어왔으나 이번에도 참패의 쓴맛을 보고 도망치고말았다.

위대한 수령님의 지휘밑에 진행된 소왕청유격구역방위전투는 빛나는 승리로 끝났다. 이 전투에서 반일인민유격대와 인민들은 400여명의 적을 소탕하고 수많은 무기와 군수물자를 로획하였다.

소왕청유격구역방위전투의 빛나는 승리는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탁월한 전략전술과 령활한 전투지휘의 빛나는 결실이였다. 수령님께서는 적극적인 방어와 유인전의 배합, 퇴각로에 대한 계획적인 매복전, 적의 숙영지에 대한 불의적인 습격교란, 적들끼리 싸우게 하는 망원전술 등 령활한 유격전법을 적용하시여 적들을 피동에 몰아넣으시였으며 전투의 낮과 밤을 쉬임없이 백마를 타시고 비발치는 탄막을 누비며 전투를 지휘하시여 유격대와 인민들을 영웅적투쟁에로 고무하시였다. 실로 소왕청유격구역방위전투의 승리는 위대한 수령님의 백전백승의 주체전법의 위력을 힘있게 확증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지휘밑에 전개된 소왕청유격구역방위전투의 빛나는 승리는 유격구에 확립된 전인민적방위체계의 위력을 과시하였으며 창건된지 불과 1년밖에 안되는 반일인민유격대가 적의 대규모적인 침공을 능히 물리칠수 있는 믿음직한 혁명무력으로 자라났으며 유격구는 군민이 하나로 굳게 뭉친 난공불락의 요새로 전변되였다는것을 뚜렷이 보여주었다.

소왕청유격구역방위전투승리의 소식은 두만강연안의 유격구들에 알려져 반일인민유격대와 인민들을 적의 《토벌》공세를 짓부시기 위한 투쟁에 더욱 힘있게 떨쳐나서도록 하였다.

이렇듯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한 령군술과 전략전술적방침에 의하여 반일인민유격대와 유격구인민들은 일제가 감행한 두만강연안유격구에 대한 1933년 봄의 첫 《토벌》공세를 성과적으로 짓부시고 빛나는 승리를 이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