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태양 김정일장군」 (4)권 중에서

 

  6.15공동선언채택으로 북과 남사이에는 경제협력을 보다 광범하게 넓혀나갈수 있는 길이 열려지게 되였다.

북남사이의 경제협력을 발전시키는 문제는 단순한 경제실무적인 문제가 아니다. 북남경제협력사업은 한피줄을 나눈 겨레가 끊어진 민족의 뉴대를 잇고 나라의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중요한 사업이다.

북남경제협력은 북과 남의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합리적으로 발전시켜 민족의 통일적발전을 가져올뿐아니라 민족내부에 서로 돕고 도와주는 화해와 신뢰의 분위기를 조성해준다. 또한 경제협력을 통하여 서로 자유로운 래왕과 접촉, 화해의 길을 넓혀나가고 민족대단결의 길을 열어나갈수 있게 한다.

그렇기때문에 북남경제협력사업은 민족자주의 원칙에서 북과 남이 공존, 공영, 공리를 도모하고 민족공동의 번영과 조국통일위업을 촉진하기 위한 애국애족적인 사업으로 된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북남경제협력사업이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밑에 민족자주의 원칙에서 명실공히 조국통일성업에 이바지하는 사업으로 되도록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북과 남은 서로 다른 사상과 제도의 존재를 인정하는 기초우에서 화합을 이룩하고 공존, 공영, 공리를 도모하면서 조국통일의 길을 함께 열어나가야 합니다.》

장군님께서는 남녘동포들이 눈으로만 그려보고 마음속으로만 오르던 금강산관광의 길을 활짝 열어주시였으며 6.15공동선언발표이후 그길을 더욱 넓혀주시여 금강산관광이 북남경제협력의 대명사로 민족사의 한페지에 기록되도록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조선의 명산 금강산은 예로부터 때와 장소, 보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천태만상으로 모습을 달리한다 하여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워왔다. 신선들이 사는 산이라고 하여 《선산》으로, 가을철에 단풍으로 붉게 물든 1만 2천봉우리의 풍경을 뜻하는 《풍악》으로 불리웠는가 하면 겨울에 나무잎이 다 떨어져 앙상한 뼈처럼 암석들만 남아있다고 하여 《개골산》, 새하얀 메부리가 서리발 같다는 의미에서 《상악》이라고도 불리웠다. 또한 록음이 우거진 여름철에 쑥이 무성하다는 뜻에서 《봉래산》으로 불리웠으며 절간들이 많이 생겨 사람들의 래왕이 잦아지면서는 먼곳에서 바라보면 금속처럼 빛나는 굳은 돌로 보인다고 하여 《금강산》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금강산의 이름은 17세기경부터 고착되게 되였으며 금강산의 1만 2천봉우리들과 명소들에 붙여진 오선봉, 삼선암 같은 이름들은 우리 조상들속에서 전해져내려온 신선들에 대한 전설로부터 유래된것이며 석가봉, 세존봉, 명경대와 같은 이름들은 불교의 영향하에 생겨난 이름이다.

금강산의 경치는 세계으뜸이여서 예로부터 우리 나라에서는 각지의 명산들에 《금강》이라는 이름을 붙여 장수산을 《해서(황해)금강》, 칠보산을 《함경금강》, 석숭산을 《의주금강》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금강산이였지만 외세에 의해 강요된 나라의 분렬로 하여 남녘동포들은 반세기이상이나 금강산관광을 하지 못하고있었다. 그리하여 남녘동포들은 생전에 금강산을 한번 구경이라도 해보았으면 하는것을 마음속 소원으로만 간직하고있었다.

남녘동포들의 이러한 소원을 헤아려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승리에로 이끌어나가시는 그 바쁘신 가운데서도 남녘동포들의 금강산관광길을 열어주시기 위하여 깊이 마음쓰시였다.

선군으로 평화가 보장되는 이 땅에서 조선민족이라면 누구나 보고싶어하고 오르고싶어하는 세계의 명승 금강산에 남녘동포들모두가 와보게 하여 조선민족된 긍지를 가슴뿌듯이 느끼게 하여야 한다는것이 경애하는 장군님의 뜻이였다.

그리하여 장군님께서는 선군령도의 길에서 여러차례 남조선 《현대그룹》의 정주영명예회장과 정몽헌회장을 만나주시고 북남경제협력의 일환으로서 금강산관광사업을 잘해볼데 대한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초행길은 언제나 어려운 법이다. 근 반세기이상이나 분렬되여있던 북과 남사이에 진행하는 경제협력사업이여서 어려움도 없지 않았다. 그때마다 장군님께서는 귀중한 가르치심도 주시고 신심과 용기를 북돋아주시여 남녘동포들의 금강산관광길을 활짝 열어주시였다.

1998년 11월 18일 826명의 관광객이 처음으로 장군님께서 열어주신 사랑의 배길을 따라 꿈에도 소원이였던 금강산관광길에 오르게 되였으며 1년동안에만도 무려 11만여명의 남조선 각계 동포들이 금강산을 다녀가게 되였다.

장군님께서는 6.15북남공동선언의 채택으로 온 겨레의 통일열기가 뜨겁게 분출되는 시대적요구에 맞게 금강산관광길을 더욱 넓혀주시여 더 많은 남녘동포들이 금강산관광길에 오르도록 해주시였다.

력사적인 평양상봉이 있은 때로부터 석달이 지난 주체89(2000)년 9월 30일, 선군령도의 길을 끊임없이 이어가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금강산관광지구를 시찰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정몽헌회장을 비롯한 《현대》관계자들과 함께 고성항을 비롯한 여러곳을 돌아보시면서 시작이 절반이라는 말이 있는데 《현대》에서 시작한 금강산관광을 잘 조직해보는것이 좋겠다고 크나큰 믿음을 다시금 안겨주시였다.

그러시면서 장군님께서는 내가 보건대 이제 금강산관광을 더 활성화하자면 어차피 남쪽과는 관광수송통로가 개발되여야 할것이라고 하시면서 그 하나하나에 대하여서까지 세심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금강산을 단순히 관광을 위한 금강산이 아니라 북과 남, 해외를 잇는 무지개다리로, 온 민족이 만나는 통일오작교로 되게 하시려는 장군님의 크나큰 도량에 《현대》관계자들은 그렇게 하면 장군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천하절승 금강산을 남쪽인민들이 다 보게 할수 있을것이라고 흥분된 심정을 감추지 못해하였다.

이날 금강산관광을 비롯하여 북과 남사이의 경제협력을 더욱 발전시켜나갈데 대하여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신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을 제시하시면서 북과 남이 공존, 공영, 공리를 도모하고 조국통일위업에 모든것을 복종시키는 원칙에서 단결을 이룩할데 대한 사상을 밝히시였다고, 남쪽에서 자꾸 《상호주의》라고 하는데 구태여 《상호주의》라고 한다면 서로 배워주고 도와주는 이런 원칙에서의 《상호주의》라고 해야 할것이라고, 그런 식으로 공존, 공영, 공리를 해서 두 제도가 존재하는 련방제를 하여야 한다고 깊은 뜻을 담아 말씀하시였다.

이윽고 장군님께서는 두 제도가 존재하는 기초우에서 공존, 공영, 공리를 하자는것이지 우리의 사상과 제도를 남쪽에 강요하거나 먹이자는것이 아니라고, 우리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우선 《현대》에서 제기한 금강산관광을 승인한것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북남경제협력을 더욱 폭넓게 진행하여 우리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위업을 기어이 이룩하시려는 장군님의 철의 의지가 마디마디에 어려있는 말씀을 받아안으며 동행한 일군들과 남조선 《현대》관계자들은 숙연해지는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오곡백과 무르익는 가을날 몸소 찾아오시여 믿음을 주시고 용기를 북돋아주신 장군님의 정력적인 령도가 있어 금강산관광사업은 더욱 힘있게 추진되였다.

금강산관광을 비롯한 북남경제협력이 활발히 진행되자 외세의 부추김을 받은 남조선의 극우보수세력들은 이를 저지하기 위하여 악랄하게 책동해나섰다.

남조선의 《한나라당》을 비롯한 극우보수세력들은 우리의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와 《현대그룹》사이에 이루어진 협력사업에 대하여 시비중상해오던 나머지 《대북송금사건》이라는것까지 들고나와 여야간 정쟁을 일삼고 민심을 소란하게 만들며 북남화해과정을 파탄시켜보려고 분별없이 날뛰였다. 극우보수세력들은 미국의 조종밑에 아태와 《현대그룹》사이의 경제협력사업에 대해 《뒤거래》니, 《실정법위반》이니 하는 딱지를 붙이다못해 그 무슨 《대가》와 《뢰물제공》을 운운하면서 력사적인 평양상봉까지 훼손시키려고 하였다.

《한나라당》패거리들은 그 무슨 《대북퍼주기》를 코에 걸고 금강산관광중단을 제창하였는가 하면 2003년 2월에는 저들이 다수를 차지하고있는 《국회》에서 《특검법》을 통과시킴으로써 북남간의 화해협력을 위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와 남조선의 《현대아산》사이의 정상적인 경제협력관계를 《특검》의 칼도마우에 올려놓았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북남경제협력사업을 파탄시키려는 극우보수세력들의 책동을 단호히 짓부셔버리고 이 사업을 계속 진행해나가도록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미제의 부추김밑에 남조선의 극우익보수세력인 《한나라당》이 벌리는 반통일적, 반민족적책동에 된매를 안기도록 하시였다.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는 2003년 3월 9일 상보를 발표하였다. 상보는 아태와 《현대》가 민간급협력과 교류를 발전시키기 위한 목적밑에 진행한 경제협력사업이 북남관계발전의 기초로, 상징으로 된데 대하여 지적하였다. 그러면서 아태와 《현대》의 경제협력사업을 모독하고 악랄하게 방해해나선 《한나라당》을 비롯한 극우익보수세력들의 반민족적, 반통일적적대행위들에 대한 진상을 낱낱이 발가놓고 미국이 바로 그 배후조종자이고 북남사이의 화해와 단합을 가로막는 장본인이라는것을 까밝히였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저들의 행위에 대해 반성할 대신 상보에 밝혀진 내용이 거짓이며 우리가 《특검제》를 문제시하는것은 《내정간섭》이라고 악에 받쳐 고아댔다. 이것은 저들의 검은 정체를 가리우고 좋게 발전하는 북남관계를 대결과 불신의 극한점으로 몰아가려는 참을수 없는 도전행위였다.

3월 14일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는 즉시 대변인담화를 발표하였다. 담화는 《한나라당》이 우리를 비방중상하고 걸고드는 조건에서 안팎이 다르게 행동하는 그들의 실상을 그 일부만이라도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2002년 9월과 12월에 《한나라당》이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우리에게 밀사를 보내여 자기네들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현 《정부》보다 더 적극적으로 《통 큰 대북지원》을 할것이라고 한데 대하여 폭로하였다.

대변인담화로 안팎이 다른 《한나라당》의 추악한 몰골이 여지없이 드러나게 되자 이에 격분한 남조선인민들은 《한나라당》은 《대북밀사파견》의 진상을 전국민앞에 솔직히 전면공개하고 사죄하라고 들고일어났다.

도적이 매를 드는 격으로 《대북밀사설》을 부정하고 《내정간섭》문제를 들고나왔던 《한나라당》은 우리의 정당한 론거와 남조선인민들의 《한나라당》규탄투쟁에 의하여 오히려 창피만을 당하고 궁지에 몰리게 되였다.

그리하여 극우보수세력들의 악랄한 방해책동속에서도 북남경제협력사업은 계속 추진되여 6월 14일에는 동, 서해선철도련결행사가, 7월 23일부터 25일까지는 금강산에서 아태와 《현대》사이에 금강산관광지구 경계확정문제와 시범륙로관광문제를 비롯한 금강산관광활성화 등 당면한 중요문제들이 협의되였다.

그런데 2003년 8월 4일 남조선의 《현대아산》 정몽헌회장이 자결하는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그의 사망은 《한나라당》이 불법으로 꾸며낸 《특검》의 칼에 의해 빚어진 명백한 정치적타살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은 철면피하게 그의 사망과 관련하여 감히 우리까지 걸고들었다. 저들의 죄행을 가리우고 그 책임을 남에게 넘겨씌워보려는 비렬한 행위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한나라당》의 이 후안무치한 행위를 전민족의 이름으로 단호히 규탄하도록 하시였다.

이에 따라 조선사회민주당 중앙위원회 대변인담화와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대변인담화가 발표되고 뒤이어 북남상급회담 북측대표단 대변인담화가 발표되였다. 특히 8월 13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민족화해협의회는 공동명의로 《전체 남조선동포형제들에게 격함》을 발표하여 《<현대아산>회장의 죽음은 북남관계개선을 바라지 않는 랭전수구세력의 <특검법>이 빚어낸 타살》이라고 강력히 규탄하였다.

장군님께서는 민족화해협력의 개척자의 한사람인 정몽헌회장이 뜻밖에 사망한데 대해 못내 애석해하시면서 심심한 조의를 표시하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그후에도 《현대》와 그의 유가족들에게 크나큰 사랑과 믿음을 거듭 안겨주시였다.

2003년 10월초에 류경정주영체육관 개관식이 거행되게 되였을 때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체육관개관식행사를 성대히 잘하도록 세심한 관심을 돌려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개관식행사에 참가할 정주영, 정몽헌가족일행과 《현대아산》 사장을 비롯한 《현대》관계자 등 1천여명의 남측행사단 성원들이 서해림시도로를 통해 들어오도록 하는 특혜를 베풀어주시였다. 그리고 체육관개관식을 비롯하여 모든 행사들이 특색있게 진행되도록 하시였을뿐아니라 남측행사단 성원들이 혁명의 성지 만경대와 국제친선전람관, 주체사상탑, 개선문, 김일성종합대학, 인민대학습당, 만경대학생소년궁전, 모란봉과 묘향산을 비롯한 여러곳을 참관하도록 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 정몽헌의 가족, 친척들과 《현대아산》 사장일행을 만나주도록 해주시였으며 개관식행사에 참가한 정주영, 정몽헌가족들과 이 행사에 참가하지 못한 그들의 가족, 친척들, 《현대아산》 사장부부를 포함하여 35명에게 각각 한지함씩의  송이버섯선물을 보내주시였다. 이것은 북남경제협력의 상징으로 되는 《현대》가 이 사업에 열성을 다해나가도록 하는 크나큰 고무였다.     하기에 경애하는 장군님의 선물을 받아안은 그들은 이번 류경정주영체육관 개관식이 존경하는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의 특별한 관심에 의하여 성대히 진행되였다고 하면서 국방위원장님께서 송이버섯선물을 보내주신데 대해 다시한번 감사를 드린다고, 앞으로 《현대》와 아태사이의 경제협력사업을 더 잘해나가겠다고 하였다.

주체94(2005)년 7월 16일, 선군령도의 그처럼 바쁘신 가운데서도 정몽헌회장의 미망인인 《현대그룹》 회장과 그의 딸 그리고 《현대아산》 부회장을 접견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정몽헌선생은 정말 아까운분이였다고 추억하시면서 그만 불상사가 생기여 가슴이 아픈 그 심정을 이루 다 말할수 없다고 못내 애석해하시였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현대그룹》 회장에게 사람에게 있어서 첫사랑이 중요하다고, 우리는 북남관계에서 당국보다 훨씬 앞서 《현대》와 첫사랑을 시작하였다고,  정주영명예회장과 정몽헌회장이 열어놓은 북남관계를 가문은 대를 이어가면서 잘해나가야 한다고 하시면서 《나는 북남관계에서 <현대>가 그 어느 기업보다 모범이 되리라고 믿습니다.》라고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금강산관광길을 더욱 넓혀주시려 바치신 장군님의 이렇듯 정력적이고 세심한 손길이 있어 2005년 7월까지 남녘의 100만명이상의 동포들이 금강산을 관광했다.

실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열어주신 금강산관광은 북남경제협력뿐아니라 북남관계를 화해와 협력의 단계로 발전시키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금강산관광과 함께 우리 민족의 유구한 력사가 깃들어있는 개성시에 북과 남이 함께 하는 공업지구를 건설하도록 하시여 북남경제협력이 더욱 활발히 진행되도록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그리하여 2002년 11월 13일에는 개성공업지구를 내올데 대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이, 11월 20일에는 개성공업지구법을 채택함에 대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이 각각 발표되였고 2003년 6월 28일에는 개성공업지구개발규정이 발표되였다. 이에 토대하여 북과 남은 2003년 6월 30일 개성공업지구 건설착공식을 진행하였으며 2004년 12월 15일 개성공업지구 현지에서 《개성공업지구 첫 제품생산기념식》이 진행되였다.

금강산관광사업과 개성공업지구건설은 경제협력사업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북과 남사이의 민족적뉴대를 더욱 두터이 하는데 이바지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정력적인 령도가 있어 경제협력사업을 위하여 북을 방문하는 남녘동포들의 수가 계속 늘어났으며 경제협력사업은 농업, 공업, 임가공 등 여러 부문과 지역으로 확대되였다. 북과 남은 2003년 8월 북남사이의 투자보장, 2중과세방지, 상사분쟁해결절차, 청산결제를 기본내용으로 하는 4개 경제협력합의서 발효통지문을 정식교환한것을 비롯하여 2005년말까지 1차례씩의 북남수산협력분과회의와 북남농업협력위원회 회의를 진행하고 11차례의 북남경제협력추진위원회 회의를 비롯하여 수십차례의 각 부문별 분과회의와 실무접촉을 진행하였다. 그리하여 1992년에 1건에 불과했던 북남협력사업이 2002년에는 52건에 이르렀으며 2003년에는 한해동안에 북남교역액수가 수억US$로 증가하는 등 6.15북남공동선언이 발표된 이후 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적지 않은 성과들을 이룩하였다.

북남경제협력과정은 절세의 애국자이시며 21세기의   걸출한 정치실력가이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령도밑에 그이께서 밝혀주신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를 높이 들고나갈 때 우리 겨레는 멀지 않아 통일된 조국에서 민족의 존엄과 긍지를 온 세상에 떨쳐가게 될것이라는것을 뚜렷이 확증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