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 (1) 중에서

무장을 갖추는것은 항일무장투쟁의 절박한 요구였다. 국가적후방도, 지원도 없는 형편에서 어떤 방법으로 무장을 갖추겠는가.

일부 사람들은 혁명촌농민들에게 호소하여 돈을 모아 총을 사오자고 했지만 그것은 독립군식이였지 새 세대 청년혁명가들의 식으로는 될수 없었다. 설사 돈을 모은다 해도 그것은 큰 밑천으로 될수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당시 사회주의국가인 쏘련에 수류탄공장을 하나 지어달라고 하면 그들이 우리를 도와줄수도 있지 않겠는가고 하면서 쏘련에 청원편지까지 써보냈지만 무소식이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믿을것은 오직 자기자신밖에 없다는 신념으로부터 자체의 힘으로 무기를 해결하는 길만이 유일하게 옳은 길이라는 확신을 굳히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기를 해결하는 중요한 방도의 하나는 적의 무기를 빼앗는것이라고 가르치시였다. 그것은 당시 일제침략자들이 중국 동북지방의 넓은 지역에 수많은 군대와 경찰을 배치하고있는 조건에서 가장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방침이였다.

이 현명한 방침을 받들고 광범한 군중이 적의 무기를 빼앗기 위한 투쟁에 떨쳐나섰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 다른 하나의 방도로서 유격구에서 자체의 힘으로 무기를 생산도 하고 수리도 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1(1932)년 5월 15일 소사하회의에서 무장을 갖추기 위한 투쟁을 계속 힘있게 전개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구식무기들을 최대한으로 동원리용하기도 하고 힘과 지혜를 모아 자체로 작탄을 비롯한 여러가지 무기를 만들어 내기도 하며 구식무장을 점차 현대적무장으로 바꾸기 위한 투쟁도 전개하여야 하겠습니다.》

적의 무기를 빼앗는 투쟁은 생사를 판가리하는 어려운 투쟁이였지만 자체로 무기를 만들기 위한 투쟁도 그에 못지 않게 간고한 투쟁이였다.

무기를 제작하는 기술과 경험도 없었고 일제의 가혹한 탄압과 봉쇄책동으로 하여 무기제작에 필요한 원료와 자재를 보장하는것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였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군중의 힘을 믿고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높이 발휘하여 이악하게 달라붙으면 능히 맨손으로도 무기를 자체로 만들어낼수 있다는것을 굳게 확신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조직들로 하여금 각지에 무기를 전문으로 만드는 기지를 꾸려놓고 처음에는 쉽게 만들수 있는 무기를 만들다가 무기제작경험과 토대가 축적되는데 따라 점차 구조가 복잡하고 위력이 강한 화력무기를 만들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높이 받들고 유격구인민들은 모두가 떨쳐나 야장도구들과 쇠붙이를 모으고 힘과 지혜를 합쳐 소왕청의 동림촌, 대리수구를 비롯하여 화룡현 수리바위, 연길현 부암동, 훈춘현 대황구 등 유격구도처에 병기창이라고 불리운 무기수리소를 꾸렸다.

초기 병기창에는 7∼8명의 성원이 있었고 설비로는 야장도구에 지나지 않는 모루, 망치, 집게, 메, 풍구, 줄칼, 착공기 등이 전부였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력갱생의 투철한 신념을 지니고 지혜와 힘을 합쳐 처음에는 칼, 창 등을 만들다가 점차 살상능력이 높은 무기를 만들어내는데 달라붙었다. 화룡현 병기창에서 만들어낸 작탄이 그런것이였다.

작탄의 시초는 《소리폭탄》이였다. 《소리폭탄》은 화룡현 수리바위병기창 일군들이 광산에서 하는 발파작업때의 폭음에서 실머리를 찾고 창호지로 장약함을 만들어 폭약을 다져넣은 다음 뢰관을 끼운 도화선에 불을 달아 던지면 굉장한 폭음을 내므로 적들을 질겁하게 만드는데 큰 효과가 있었다. 이 《소리폭탄》은 무기획득투쟁의 초기에 크게 은을 냈다. 그러나 《소리폭탄》은 적을 살상할수 없는것이 근본약점이였다. 병기창일군들은 연구를 거듭하여 《고추폭탄》을 거쳐 《돌쪼각폭탄》을 만들었으며 나중에는 쇠쪼각을 기본재료로 한 《연길폭탄》을 만들어냈다.

《연길폭탄》의 위력은 대단하였다. 적들은 유격대의 《연길폭탄》벼락에 넋을 잃고 공포에 떨었다.

참으로 《연길폭탄》을 만들어낸것은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으로 모든것을 풀어나갈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의 정당성과 생활력을 뚜렷이 실증해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작탄제작법을 각 유격구역에 일반화하여 그 생산을 더욱 늘이며 작탄사용법을 널리 보급하기 위하여 주체21(1932)년 11월 하순 작탄강습을 몸소 조직하시였다. 강습에는 간도의 여러 현에서 온 병기창성원들과 유격대지휘관들이 참가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강습참가자들에게 이번 작탄강습의 목적은 화약제조법과 작탄제작방법 그리고 무기수리소에서 얻은 경험들을 배워가지고 현들에 내려가 작탄을 많이 생산하여 유격대의 무장장비를 일층 개선하자는데 있다고 말씀하시고 손수 화약제조방법을 알기 쉽게 설명하시였다.

처음에는 화약을 자체로 제조하지 않고 탄광, 광산들에서 해결했는데 적들이 감시와 통제를 심하게 하여 혁명조직들이 로출될 위험성이 커지고 희생도 없지 않았다. 룡수평늪사건이 한 실례였다. 연길현 팔도구광산근처에 있는 룡수평에는 동구앞에 수심이 깊고 갈대가 무성한 늪이 있었다. 이 룡수평늪이 하루아침에 피바다로 된 참변이 일어났다. 일본헌병대들이 유격구에 화약을 반입한 혐의가 있다면서 팔도구광산의 로동자 20여명을 끌어내여 이 못가에서 무참히 학살하였던것이다.

이 사건은 유격구의 일군들과 병기창일군들로 하여금 탄광, 광산조직들에 전적으로 의탁하여 화약을 해결하던 종전의 방법을 검토하고 새로운 출로를 모색하게 하였다. 나날이 늘어나는 작탄수요를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체의 힘으로 화약을 만들어내야만 하였다.

강습은 작탄제작과 무기생산을 늘이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였다. 모든 병기창일군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자체로 화약을 만들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렸다. 화약을 만드는데 필요한 원자재는 군중이 동원되여 구해왔으며 필수원료인 류황은 적의 경비전화선 애자에서 많이 긁어다가 해결하였다. 화약을 얻어내기 위한 투쟁은 불굴의 투지와 헌신성의 시험장이였다. 작탄제작의 첫 시기부터 자기의 모든것을 바쳐온 항일혁명투사 손원금은 작업도중에 폭발사고로 두눈을 잃고도 락심하거나 비관하지 않고 오히려 동지들을 고무하였다. 그는 비록 두눈을 잃었지만 나에게는 심장이 남아있지 않는가, 두팔이 있고 두다리가 있지 않는가라고 하면서 손더듬으로 쇠줄을 자르고 작탄을 조립하면서 《인터나쇼날》의 노래를 불렀다. 병기창일군들은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면서 주저앉지 않고 실험을 거듭하여 끝내 화약생산에 성공하였다. 화약의 생산은 병기생산에서 일대 전환을 가져왔다. 화약이 해결되자 작탄제작이 부쩍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작탄을 다량생산하는 단계에 들어서던 시기 적들의 《토벌》공세와 파괴책동은 더욱 우심해졌으며 부닥치는 난관은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그렇지만 병기창일군들은 달려드는 적들을 맞받아족치고 앞을 가로막는 난관을 뚫고나가면서 영웅적인 투쟁을 벌려 작탄생산을 늘여나갔다.

참으로 병기창일군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바라시고 혁명이 요구하는 일이라면 그 어떤 환경과 조건에서도 무조건 끝까지 수행해내고야마는 결사관철의 투사들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느날 소왕청병기창사업을 지도하시면서 일군들에게 무엇보다도 무기를 유격대행동에 편리하면서 위력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유격전의 특성은 전투행동에 편리하며 위력있고 누구나 손쉽게 다룰수 있는 무기를 만들것을 요구했다. 수령님께서는 무기제작에서 무기의 위력만 생각하고 처음부터 그 어떤 새롭고 성능높은 무기를 만들려고 할것이 아니라 우리의 실정에 맞고 만들기 쉬운것부터 시작해야 하며 당면하게는 작탄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그리고 작탄제작법을 광범히 보급하여 어느 유격구역에서나 작탄을 만들어 유격대원들에게 공급할수 있게 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그이의 가르치심을 받들고 유격구의 병기창일군들은 작탄제작법을 널리 받아들이고 제작공정을 흐름식으로 하여 작탄생산을 훨씬 늘였을뿐아니라 작탄을 가볍고 다루기에 편리하면서도 더 위력있게 개조완성하였다.

병기창들에서는 작탄뿐아니라 구식무기와 파손된 무기를 가지고 권총, 보총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무기들을 조립하거나 개량했다. 소왕청, 어랑촌병기창들에서는 나무포도 만들었다. 쇠스레나무로 만든 포는 그 포성이 요란하여 적들을 질겁케 하였다. 병기창들에서는 탄약도 재생하였다. 화룡현 샘물골에 자리잡은 병기창성원들은 탄약제작에 필요한 약통실, 뢰관, 점화약, 총알을 만들기 위하여 연구와 실험을 거듭한 끝에 하루에 한말가량의 탄약을 재생하게 되였다.

유격구의 병기창들에서 작탄을 비롯한 여러가지 무기와 탄약을 생산하고있는데 질겁한 일제침략자들은 《안도현 및 무송현경 병산도자병기창-공장은 대규모로서 공구 등이 완비되였으며 기술원 역시 우수한자가 다수 있는듯 하며 현재 계속 수류탄, 탄약, 소총, 권총 등을 제조하고있다.》고 하면서 비명을 올렸다.

유격구의 병기창들에서는 각종 무기들을 제때에 수리하는 투쟁도 힘있게 벌리였다. 병기창일군들은 고장난 무기들을 하나도 버리지 말고 모두 수리할데 대하여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심장으로 받들고 유격부대들에서 들어오는 고장난 무기들을 제때에 수리하였다. 그들은 줄칼로 쓸고 숫돌로 갈고 망치로 두드리고 물과 진흙에 담금질을 하는 방법으로 보총의 약통물개도 고치고 격침도 수리하였다.

작탄과 무기를 생산하고 수리하는 투쟁은 유격대원들과 인민들의 적극적인 지원속에서 벌어졌다. 유격대원들은 적들과의 치렬한 싸움을 벌리면서도 적들의 경비전화선, 애자 등을 거두어들이는 한편 천보산, 팔도구, 로두구를 비롯한 여러곳의 광산과 탄광들, 철도공사장들을 습격하고 폭약과 뢰관들을 수많이 로획하여 병기창에 보내주었다. 유격구인민들은 작탄제작에 필요한 파철, 류황 등을 적구에까지 나가 수집해왔으며 대대로 물려오는 놋그릇과 수저, 비녀까지 서슴없이 무기생산에 바쳤다. 왕우구유격구역의 한 할머니는 작탄을 만드는데 쇠붙이가 부족된다는 말을 듣고 저녁밥을 짓던 가마를 뽑아 이고 병기창으로 달려왔다. 병기창일군들이 그것만은 돌려보내려고 하자 할머니는 원쑤들을 잡는 일에 무엇이 아까울것이 있겠는가고 하면서 자기 손으로 가마를 깨뜨려 쇠쪼박을 내여 작탄을 만드는데 보태달라고 하였다. 유격구인민들뿐아니라 청진, 부령 등 국내의 각지 인민들도 무기를 만드는데 필요한 화약을 비롯한 각종 재료들을 수많이 유격구로 보내주었다.

이와 같이 유격구에서 무기생산을 위한 투쟁이 힘있게 전개됨으로써 반일인민유격대의 무장장비가 더욱 강화되게 되였다. 자력갱생은 비단 무기생산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항일혁명의 전진과 승리를 추동해나가는 사상정신적힘의 원천으로 되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다음과 같이 쓰시였다.

《자력갱생은 자주, 자강의 기초우에서 민족자력에 의한 나라의 독립을 갈망하는 인민의 지향과 요구를 가장 정확히 반영한 구호였다. 인민이 이 구호를 제때에 받아물고 도처에서 야장간을 병기창으로 전환시키거나 새로운 무기수리기지들을 창설한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였다.

자력갱생, 간고분투는 비단 병기생산과 수리분야뿐아니라 항일혁명의 모든 분야를 관통하는 기본정신으로 되였으며 혁명에 대한 충실성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되였다. 아무리 애국심이 강하고 공산주의사상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하여도 자력갱생, 간고분투하지 않으면 실속있는 혁명가로 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력갱생을 하는 여기에 혁명이 흥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기본고리가 달려있었기때문이였다.》

참으로 적수공권의 우리 인민이 자기의 자주적생명을 지킬수 있는 무장을 가질수 있은것은 전적으로 자기 힘을 믿고 제손으로 자기의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는 자주의식으로 그들을 무장시키시고 자력갱생의 원칙에서 모든 일을 창조적으로 해나가도록 이끌어주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현명한 령도가 있었기때문이였다.

유격구병기창에서 울린 자력갱생의 마치소리는 세대를 이어 오늘 선군시대의 맥박으로 되고 이 시대를 줄달음치게 하는 원동력으로 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