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태양 김정일장군」 (4)권 중에서

 

 

 6.15공동선언은 사상과 리념, 제도와 정견, 신앙의 차이를 초월하여 북과 남이 하나가 되는 화해, 협력의 선언이였다.

 그러므로 6.15공동선언의 리행과정은 민족분렬로 하여 생긴 사상과 리념, 제도와 정견의 차이를 하나하나 제거하고 겨레의 가슴마다에 민족공동의 리익이 실질적인것으로 와닿도록 화해와 협력의 결과물을 차곡차곡 마련해가는것으로 되여야 했다. 그것은 비록 작은것이라 할지라도 민족분렬의 력사와 비운이 종합적으로 응축된것들이여서 마음먹는다고 하여 쉽게 해결될 문제들이 아니였다.

오로지 선군의 위력에 의해서만 풀려질 문제들이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선군정치의 위력으로 동강난 철도와 도로를 련결하는것을 비롯하여 지맥을 잇고 혈맥을 잇는 중대한 민족사적위업을 이루어나가시였다.

2002년에 들어와 공화국을 기어이 힘으로 압살하려는 미국과 반통일세력의 책동으로 하여 조선반도정세는 예측할수 없는 대결국면에 처하게 되였다.

미국은 우리 공화국을 《악의 축》으로 모독할뿐아니라 우리를 핵공격목표로 정한 《핵태세검토》보고서라는것을 만들어 반공화국고립압살기도를 로골적으로 드러내였다.

한편 남조선당국은 6.15북남공동선언의 정신과 배치되게 《올해는 한미공조를 바탕으로 한미련합방위태세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느니, 《무엇보다 튼튼한 안보와 한미동맹의 기초우에서 남북간의 평화공존과 평화교류를 실현해야 한다.》느니 하면서 민족공조보다 미국과 결탁하는 길로 나갔다. 특히 남조선의 군부보수세력들은 3월 21일부터 27일까지 미국과 함께 남조선 전지역에서 《련합전시증원연습》과 《독수리》합동군사연습을 통합한 대규모북침전쟁연습을 광란적으로 벌려놓은것을 비롯하여 1월부터 4월초까지 무려 30여차의 전쟁연습을 벌리면서 정세를 극도로 긴장시켰다.

6.15북남공동선언에 전면 배치되는 남조선당국의 이러한 행위로 하여 북남관계는 다시금 랭전시대의 대결상태로 후퇴하느냐 아니면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통일의 길을 열어나가느냐 하는 갈림길에 놓이게 되였다.

6.15공동선언실현과 조국통일위업수행에서 민족자주를 생명으로 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날로 악랄해지는 내외반통일세력들의 책동에 대처하여 민족자주의 원칙에서 북남관계를 풀고 조국통일의 유리한 환경을 마련하기 위한 사업을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하나의 강토가 미제의 남조선강점으로 두동강이 된채 반세기가 넘는 오랜 세월 겪고있는 분렬의 고통을 제거하는데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어느 한 인민군초소를 찾으시였을 때에 《아름드리나무들이 우거지고 새소리만 울려야 할 전연고지들에 가로세로 질러간 길들과 원한의 군사분계선을 보니 조국산천도 민족분렬의 고통을 안고 몸부림치는것 같아 어깨가 더 무거워집니다.》라고 하시면서 동강난 조국강토를 기어이 이으실 결심을 더욱 굳히시였다.

동강난 조국강토를 두고 그토록 가슴아파하시며 통일의지를 굳혀오신 장군님께서는 주체91(2002)년 4월 4일 평양을 방문한 남측특사를 몸소 접견해주시였을 때 북남철도련결과 관련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만나뵈올수록 너그럽고 인자하신 장군님의 위인적풍모에 감동을 금할수 없었던 특사는 이날 그이께 여러가지 문제들을 제기하고 가르치심을 받았다. 북남철도와 도로련결문제가 상정되였을 때였다. 특사는 신의주-서울사이의 철도와 개성-문산사이의 도로련결문제만을 말씀올리였다. 서해지구의 철도와 도로련결문제는 이미 자기들이 제기했던 문제이므로 그것이 실현되면 앞으로의 《대통령선거》에서 유리한 환경을 마련할수 있으리라는 속심이 그대로 내비치였다.

장군님께서는 남조선당국자들의 속심이 헤아려지시였으나 조금도 안색을 달리하지 않으시고 신의주-서울사이의 철도만 련결할것이 아니라 동해선철도도 련결하여야 한다, 동해선철도를 련결하여야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할수 있다, 신의주-서울 철도만 련결하면 조선땅이 찌그러질수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조선땅이 찌그러질수 있다!

참으로 신통하고 생동한 비유였다. 깊은 뜻이 담긴 그 한마디의 비유속에 백마디의 타이르심이 있었다.

그것은 동서의 철도를 다 련결하여야 철도가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는데 실질적으로 이바지할수 있으며 실리도 크다는 뜻으로서 민족적리익의 견지에서 하신 가르치심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숭고한 뜻과 현명한 가르치심을 받들어 4월 5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비서와 남측특사사이에 두차례에 걸쳐 진행된 회담에서 발표된 공동보도문은 셋째 조항에 다음과 같은 합의내용을 담았다.

《쌍방은 북남사이의 끊어진 철도와 도로를 련결하는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아래 동해지구에서 새로 동해선철도 및 도로를, 서해지구에서 신의주-서울사이의 철도 및 개성-문산사이의 도로를 빨리 련결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철도와 도로련결 및 협력사업을 토의하기 위하여 북남경제협력추진위원회아래 분과들을 가동하기로 합의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애국애족의 결단에 의해 끊어진채 수십년동안 녹쓴 철길과 잡초무성한 도로가 다시 련결된다는 소식에 접한 온 겨레는 감격을 금치 못해하였다.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동강난 철도와 도로, 그것은 민족분렬과 그로 인한 불행과 고통의 상징이였다.

끊어진 두줄기 철길의 침목사이에 아름드리나무들이 뿌리내리고 끊어진 도로는 지뢰밭으로 변하여 짐승들도 넘나들지 못하였으니 철도와 도로련결은 말그대로 갈라진 강토의 지맥과 끊어진 민족의 혈맥이 이어지는 통일의 시작이기도 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91(2002)년 9월 5일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철도와 도로를 련결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나는 서해선만 련결하면 기울어지기때문에 동해선도 련결하여 평형을 보장하는 조건에서 하자고 하였습니다.》

장군님의 말씀은 북남철도 및 도로련결에서 나서는 원칙적문제를 뚜렷이 밝혀준 강령적인 가르치심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선군령도의 그 바쁘신 속에서도 9월 11일과 15일을 비롯하여 여러차례에 걸쳐 금강산에서 진행되는 북남철도 및 도로련결분과사업을 료해하시면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모두 풀어주시였다.

그리하여 9월 13일부터 17일까지 금강산에서 북남철도 및 도로련결분과 제1차회의가 성과적으로 진행되여 동해선과 서해선의 철도와 도로련결을 최단기간내에 끝낼수 있는 제반 조치들을 협의하고 합의서를 발표하였다.

합의서에는 북남철도 및 도로련결을 위한 착공식은 9월 18일에 하며 철도는 1차적으로 온정리-저진사이 27.5㎞ 구간을 단선으로 련결하고 강릉방향에로의 남측구간련결공사를 중단없이 빨리 추진시키며 도로는 고성-송현리사이의 구간을 2차선으로 련결하되 우선 12월초부터 차량이 다니게 하는 문제, 서해선에서 철도는 종전의 철길로선을 따라 개성역으로부터 중앙분계선까지의 15.3㎞ 구간과 미진된 남측구간을 련결하고 도로는 개성공업지구건설부지의 남쪽경계선으로부터 철도로선 우측을 따라 4차선으로 련결할데 대한 내용이 들어있었다.

이와 함께 9월 16일과 17일 판문점에서는 북남군사실무회담이 진행되였으며 여기에서 동해지구와 서해지구 북남관리구역설정과 북과 남을 련결하는 철도, 도로작업의 군사적보장을 위한 합의서가 채택되였다. 이 합의서가 발효됨으로써 분렬사상 처음으로 동해지구와 서해지구의 비무장지대에 북남관리구역이 생겨나고 여기에서 북남철도 및 도로련결작업을 동시에 착공하고 동시에 완공하며 동시에 운영할수 있는 확고한 군사적담보가 마련되였다.

9월 18일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청년역과 개성역에서는 력사적인 착공식이 진행되였다. 민족분렬의 비운인양 고삭아 부스러진 침목우에 시뻘겋게 녹물이 오른 두줄기 철길이 뚝 끊기여 반세기이상 종착역 아닌 종착역으로 되였던 동서의 두 역에서는 같은 시간에 철길과 도로를 련결하는 의식이 있었다. 착공식에 참가한 주석단성원들이 공사의 착공을 기념하여 철도와 도로가 련결된 로반에서 첫삽을 떴다. 이어 통일조국의 새 아침을 불러오는 장쾌한 서곡인양 착공의 첫 발파소리가 높이 울려퍼졌다.

조국강토의 허리를 휘여감고있던 분렬의 장벽을 통채로 날려보내는듯 대지를 진감하며 하늘가 멀리 울려퍼지는 착공의 첫 발파소리, 정녕 이것은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밑에 민족자주의 원칙에서 조국통일을 기어이 이룩하시려는 장군님의 드팀없는 신념과 의지의 발현이였고 선군의 위력으로 민족의 존엄을 떨치시고 운명을 지켜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을 우러러 터치는 겨레의 환호성이였다.

미국과 그와 야합한 남조선의 반통일세력들의 전쟁책동으로 우리 민족의 머리우에 또다시 전쟁의 불구름이 드리워지고 민족의 생존이 경각에 달했을 때 그 위기를 한몸으로 막아나서신분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이시였다. 장군님이 아니시고 그이의 선군정치가 아니라면 6.15북남공동선언은 또다시 종이장우의 빈 약속으로 되였을것이고 우리 민족은 전쟁과 분렬을 강요하는 외세의 희생물이 되고말았을것이다.

하기에 철도와 도로련결을 위한 착공식을 지켜보는 온 겨레의 감격과 기쁨을 담아 착공의 발파소리가 내 나라의 하늘가 멀리로 더욱 세차게 메아리쳐간것이다.

남조선의 언론들도 《뭉클한 감격으로 온몸의 혈관이 박동친다》, 《대립과 갈등의 분단 반세기를 넘어 남북협력과 화해의 시대를 연 의미있는 일》 등으로 일제히 이 소식을 대서특필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착공식이 진행된 다음에도 철도와 도로를 련결하는 공사를 중단없이 적극 추진하도록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장군님께서는 9월과 10월 북남철도 및 도로련결공사를 다그쳐 끝내기 위하여 공사과정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제때에 협의하고 풀어나가도록 이끌어주시였다. 그리하여 공사를 위한 준비작업이 일정대로 잘 진척되여나갔다. 동, 서해안의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에서 군사적대결의 상징물인 지뢰들이 제거되기 시작하였고 잡초만 무성하던 황량한 벌과 골짜기로 대통로가 뚫리고 두줄기 궤도가 시원스레 뻗어나가게 되였다.

그런데 북남관계개선을 못마땅하게 지켜보던 미제가 찬물을 끼얹으며 간섭해나섰다. 철도 및 도로련결을 위한 비무장지대 지뢰제거작업이 마무리단계에 들어서자 미국은 《정전위원회의 허가》라는 왕청같은 문제를 갑자기 들고나오는가 하면 남조선강점 미군사령부 부참모장이라는자를 내세워 북남철도와 도로가 련결되면 그 통로가 《남침목적에 리용》될수 있다는 망발을 하면서 이 사업에 빗장을 지르려고 하였다.

마침내 우리 민족의 통일의지를 한사코 가로막아나서는 미국의 오만한 행위에 온 겨레의 민족적분노를 폭발시키는 여론전의 포성이 울리였다.

2002년 11월 16일 철도성 대변인성명 《우리는 북남철도, 도로련결공사를 방해하는 미국의 간섭책동을 절대로 용납할수 없다》가 발표되였다. 12월 1일에는 북남철도 및 도로련결분과 북측단장이 미국이야말로 북과 남 온 민족의 공동의 적이며 불구대천의 원쑤라고 단죄하고 북과 남의 전체 조선민족이 떨쳐일어나 북남철도, 도로련결을 방해해나서는 미국의 부당한 책동에 전민족적인 반미성전으로 대답할것을 호소하는 담화를 발표하였다.

남녘의 민심도 이에 호응하여 미국을 단죄규탄했다.

북과 남에서 일제히 쏟아지는 치솟는 분노와 규탄의 목소리에 미국의 방해책동은 여지없이 파탄되였다.

이렇듯 경애하는 장군님의 정력적인 령도에 의하여 미국의 방해책동을 짓부시며 북남철도 및 도로련결공사는 더욱 힘있게 추진되였다.

그리하여 2003년 2월 5일 민족분렬사상 처음으로 동해선림시도로가 완공되여 금강산륙로관광을 위한 시험답사가, 2월 14일에는 시범륙로관광이 성과적으로 진행되였고 2월 21일에는 개성-문산사이 림시도로가 개통되여 개성공업지구건설을 위한 현지답사가 진행되였다. 그리고 6월 14일에는 동해선과 서해선 철도련결행사를 북과 남이 공동으로 동시에 진행하였다. 드디여 삼천리강토의 지맥이 하나로 이어지게 되였다.

남조선의 《CBS》방송은 북남철도련결행사에 대하여 《지난 1950년 6.25전쟁으로 끊어진 남북의 철길이 6월 14일 분단의 상징인 군사분계선에서 다시 련결되였다. 군사분계선 바로 아래 옛 장단역자리에는 지난 50년 전쟁 당시 북쪽으로 향하던 렬차가 지금도 녹이 쓴채 멈추어 서있다. 이 철도를 통해 앞으로 렬차가 달리는 모습을 다시 볼 날도 머지 않아 오게 되였다. … 오늘 궤도련결로 렬차가 곧 달릴수 있는것은 아니지만 분단 반세기만에 남북의 혈맥이 다시 이어졌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라고 전했다. 또한 로씨야의 《엔떼웨TV》도 《조선반도의 북과 남이 철도를 련결하였다. 6월 14일 북남조선이 끊어졌던 반도의 철도를 련결하는 상징적인 의식을 군사분계선에서 진행하였다》고 하면서 북과 남의 철도련결로 우리의 강토가 하나로 이어진데 대하여 상세히 전하였다.

북과 남의 철도와 도로가 하나로 이어진것은 6.15북남공동선언이 가져온 귀중한 열매로서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의 가슴속에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민족자주의 원칙에서 조국통일문제를 풀어나갈 때 통일의 그날은 앞당겨진다는 신심과 용기를 북돋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