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1) 중에서

두만강연안은 선군의 노을로 붉게 물들었다. 유격구를 진원으로 하여 울려퍼지는 반일인민유격대의 총성은 국내인민들에게 혁명적기운을 드높여주었다. 온성, 종성, 회령지방을 비롯한 북부국경일대는 항일혁명의 도가니마냥 들끓었다.

이것을 제일 두려워한것은 일본제국주의자들이였다. 일제는 항일무장투쟁의 혁명적영향이 국내인민들에게 미치는것을 막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발악하였다. 적들은 반일인민유격대의 국내진출과 국내의 《적화》를 막는것을 이른바 《국책》으로 내세우고 방대한 병력을 집중하여 북부국경경비진을 강화하는 한편 인민탄압에 미쳐날뛰였다.

이러한 때 국내혁명조직들과 인민들에게 필승의 신념을 안겨주고 그들을 일제를 반대하는 투쟁에 힘있게 불러일으키기 위하여서는 무장투쟁을 국내에로 확대발전시켜야 하였다.

무장투쟁을 국내에로 확대발전시키는것은 좌경기회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의 반혁명적책동을 짓부시고 전반적조선혁명을 주체의 기치밑에 발전시키기 위해서도 절실한 문제로 나서고있었다.

당시 동만당조직의 책임적인 자리에 앉아있던 일부 사람들은 반일인민유격대의 국내진출에 신경을 쓰면서 그것을 각방으로 방해하였다. 그들은 중국 령내에 있는 조선혁명가들이 조선혁명을 위해 싸우는것은 민족주의적인 《조선연장주의》경향이라고 비난하였으며 1국1당제원칙에 모순되는 행위이므로 국내진출을 애당초 단념하는것이 좋을것이라고 하였다. 이를 적극 추종해나선 종파사대주의자들은 만주에서 활동하는 조선혁명가들이 조선혁명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반혁명적궤변을 늘어놓으면서 무장투쟁을 국내에로 확대발전시키는것을 집요하게 반대하였으며 국내도처에서 앙양되고있던 인민들의 혁명투쟁을 음으로양으로 저애하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이러한 방해책동에 타격을 안기시고 무장투쟁을 국내에로 확대발전시킬데 대한 탁월한 전략적방침을 제시하시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줄기차게 벌리시였다.

항일무장투쟁을 국내에로 확대발전시키는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무장투쟁을 조직전개하신 첫 시기부터 일관하게 견지하신 전략적목표였고 불변의 의지였다. 북부국경일대를 조선혁명의 전략적기지로 꾸려야 그에 의거하여 국내의 광범한 대중을 반일투쟁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킬수 있으며 우리 인민자신의 힘으로 일제침략자들을 때려부시고 나라의 독립을 이룩할수 있었다. 수령님께서는 이 전략적과업을 실현할 목적밑에 유격구를 조국과 잇닿아있는 두만강연안에 창설하시였으며 온성, 종성지방을 비롯한 북부국경일대를 혁명화하는데 선차적관심을 돌려오시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장투쟁을 국내에로 확대발전시키기 위하여 반일인민유격대의 국내진출을 결심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국내진출의 유리한 환경을 마련하기 위하여 소부대들을 두만강연안일대의 여러곳에 파견하시여 적들의 경비진을 교란하고 적의 주목을 딴데로 돌리게 하시였다. 그러시고 반일인민유격대의 왕청대대 2중대성원 40명과 각 중대들에서 선발된 10명의 지휘관들과 정치일군들로 국내진출대오를 편성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2(1933)년 3월 11일 몸소 대오를 친솔하시고 두만강을 건너 조국땅 온성지구에 진출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눈덮인 가파로운 산길을 타고 왕재산에 오르시여 국내정치공작원 및 지하혁명조직책임자들과 감격적인 상봉을 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사랑하는 전사들과 뜨거운 인사를 나누시고 그들로부터 국내형편과 혁명조직들의 활동정형을 보고받으신 다음 온성지구 지하혁명조직책임자 및 정치공작원회의를 지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에서 《무장투쟁을 국내에로 확대발전시키기 위하여》라는 연설을 하시였다.

연설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성된 정세와 항일무장투쟁을 개시한 이후 지난 한해동안에 이룩한 성과에 대하여 언급하신 다음 무장투쟁을 국내에로 확대발전시킬데 대한 혁명적인 방침을 제시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원쑤들의 책동이 악랄하고 정세가 아무리 어려워도 항일무장투쟁을 반드시 국내에로 확대발전시켜나가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력점을 찍으며 강조하신것은 반유격구창설과 관련된 문제였다. 수령님께서는 무장투쟁을 국내에로 확대발전시켜나가기 위하여서는 이미 창설된 두만강연안의 유격구와 잇닿아있는 국내의 넓은 지역에 반유격구를 더 많이 창설하고 공고화하기 위한 투쟁을 더욱 강력히 전개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그러시고는 반유격구를 형성하기 위하여 유격대가 국경연안일대에서 전투활동을 더욱 강력히 전개하는것과 함께 국내지하혁명조직들이 광범한 군중을 결속하고 혁명화하기 위한 투쟁을 강력히 전개하며 유리한 산림지대의 자연조건을 리용하여 필요한 곳들에 비밀련락장소를 비롯한 여러가지 활동거점을 마련하여야 한다고 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또한 로농동맹을 기초로 하는 반일민족통일전선의 기치밑에 전민족을 하나의 정치적력량으로 튼튼히 묶어세우기 위한 과업과 대중운동과 당창건준비사업을 힘있게 내밀기 위한 국내혁명조직들앞에 나서는 과업에 대해 밝혀주시였다.

수령님의 연설은 회의참가자들에게 깊은 감명을 안겨주었다. 그들은 수령님에 대한 다함없는 흠모의 정으로 가슴을 불태웠으며 그이의 가르치심을 관철할 결의를 굳게 다지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반일인민유격대의 첫 조국진출과 관련하여 이렇게 가르치시였다.

《유격대의 온성진출은 항일무장투쟁을 국내에로 확대발전시키기 위한 서막으로 되였으며 민족해방투쟁발전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리정표를 마련하였다. 이 진출을 통하여 우리는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이 조선혁명을 위해 싸우는것이 그 누구도 막을수 없는 신성한 임무이며 절대적인 권리라는 움직일수 없는 신념과 립장을 내외에 천명하였다.》

항일유격대의 온성진출과 왕재산회의의 전과정은 완전유격구주변과 국내에 반유격구를 창설할데 대한 방침의 정당성과 간도와 륙읍일대에 반유격구를 건설할수 있는 주객관적조건이 충분히 성숙되였다는것을 실증해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왕재산회의후 국내에 더 많은 반유격구를 창설하고 무장투쟁의 발전을 위한 대중적지반을 튼튼히 꾸리는 사업에 큰 힘을 넣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여러차례 국내에 진출하시여 혁명조직들과 정치공작원들의 사업을 정력적으로 지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2(1933)년 3월 하순 삼엄한 국경경비진을 헤치시고 경원군 류다섬에 나오시여 이곳에서 정치공작원들과 지하혁명조직책임자들의 회의를 지도하시였다. 회의에서 수령님께서는 국내에서 활동하는 정치공작원들의 역할을 높이는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시고 대중정치사업을 힘있게 벌려 각계각층의 광범한 군중을 의식화, 조직화하여 혁명의 대중적지반을 축성하며 그에 기초하여 반유격구를 확대공고화할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류다섬회의는 정치공작원들과 지하혁명조직책임자들의 역할을 더욱 높여 두만강하류일대를 반유격구로 튼튼히 꾸리며 무장투쟁을 국내에로 확대발전시키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두달후인 5월 하순에는 종성군 신흥촌에, 그해 8월에는 경원군 박석골에 나오시여 정치공작원들과 지하혁명조직들의 사업을 지도하시고 구체적인 대책들을 세워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단행하신 경원, 종성지구에로의 진출은 두만강연안의 북부조선일대에 반유격구를 꾸리고 무장투쟁을 국내에로 급속히 확대발전시켜나가는데서 중요한 계기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왕재산회의후 반일인민유격대의 국내진출을 더욱 적극화하도록 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몸소 유격대의 한 부대를 친솔하시고 량수천자를 비롯한 국경대안에 진출하시여 적극적인 군사활동을 벌리시였다. 주체22(1933)년 4월초에 진행하신 량수천자습격전투가 그때 있은 전투였다.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우리 나라 온성지구와 잇닿아있는 량수천자는 온성, 도문, 훈춘, 왕청과 같은 큰 주민지역을 가까이에 두고있는 비교적 교통이 편리하고 지리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습격전투에 앞서 정찰조를 파견하시여 적정을 구체적으로 장악하시였으며 그에 기초하여 전투서렬을 타격대상물수에 맞게 여러조로 편성하신 다음 매조들에 구체적인 전투임무를 하달하시였다. 신호총소리와 함께 습격조들은 타격대상물들에 일제히 집중사격을 퍼부었다. 적들은 갈팡질팡하다가 무리로 쓰러졌고 요행 살아서 도망치려고 담장에 기여오른 놈들도 유격대원들의 명중탄에 맞고 그 자리에 너부러졌다. 적에 대한 소탕전이 한창 벌어지고있을 때 정치공작원들이 거리와 마을들에 삐라를 뿌렸다.량수천자습격전투의 빛나는 승리는 무장투쟁의 국내에로의 확대발전을 가로막기 위하여 발악하던 적들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고 왕재산회의방침을 철저히 관철해나가는데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반일인민유격대 소부대, 소조들이 북부국경일대에 끊임없이 진출하여 적들의 병영,경찰관주재소,면사무소,도선장세관들을 습격파괴하고 악질적인 경찰 및 일제주구들을 처단하는 전투활동을 적극 벌려나가게 하시였다.반일인민유격대의 소부대, 소조들은 주체22(1933)년 3월 중순 회령 성북리일대에 배치된 일제경찰기관에 대한 습격전투, 9월 중순 경원군 룡당나루파출소에 대한 습격전투, 10월 종성군 운암동부근전투를 벌려 적들에게 죽음과 공포를 주고 국내인민들에게 크나큰 신심과 용기를 안겨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3(1934)년에 들어서면서 더욱 악랄해지는 일제의 《토벌》공세에 대처하여 유격구방위를 위한 투쟁이 가렬하게 벌어지고있던 시기에도 반일인민유격대의 소부대와 소조들을 국내에 련속 파견하시여 적극적인 군사정치활동을 벌리도록 하시였다.

반일인민유격대의 계속되는 국내진출과 적극적인 군사정치활동은 일제침략자들에게 커다란 정치군사적타격을 주고 인민들에게 필승의 신념과 용기를 안겨주었으며 국내에서의 혁명운동발전을 적극 추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