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1) 중에서 




 

  

백두산이 바라보이는 안도의 수림에서 높이 울린 항일대전의 포성은 두만강연안의 광활한 지대에 혁명의 열풍을 일으켜나갔다.

열혈청년들은 조국광복을 위한 성전에 떨쳐나섰다. 반일인민유격대오는 나날이 늘어났다. 혁명조직들은 유격대와 힘을 합쳐 유격근거지창설투쟁을 힘있게 벌렸다.

유격근거지는 반일인민유격대가 의거할 군사기지, 후방기지였다. 국가적후방이나 정규군의 지원이 없는 조건에서 유격전의 형식을 기본으로 하는 무장투쟁을 벌리자면 혁명의 보루, 유격근거지를 창설하여야 하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이미 주체20(1931)년 겨울명월구회의에서 유격근거지를 창설하고 그에 기초하여 적극적인 무장투쟁을 벌릴데 대한 사상과 방침을 제시하시면서 이렇게 가르치시였다.

『지금 우리의 형편에서는 해방지구형태의 근거지인 유격구역을 창설하여야 합니다. 적들의 통치체계에서 완전히 벗어난 유격구역을 창설하여야만 청소한 혁명무력과 혁명군중을 보위하면서 무장투쟁을 중심으로 한 전반적인 반일민족해방투쟁을 발전시킬수 있는 군사정치적준비를 성과적으로 진행할수 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듬해 봄에 열린 소사하회의에서 해방지구형태의 유격근거지창설방도를 구체적으로 밝히시였다.

이로부터 우리 나라 북부국경지대와 린접한 두만강연안의 산악지대와 혁명화된 농촌지역들이 유격근거지창설지대로 선정되였다.

무장투쟁준비를 위한 길에서 이미 동만각지의 농촌지역들은 혁명에 유리한 지역으로 전변되였다. 특히 우리 나라 북부국경지대인 두만강연안은 일제의 폭압과 착취에 시달리다못해 조선에서 이주한 가난한 농민들이 주민의 80%이상을 차지하고있었다. 일찍부터 사회주의계몽운동이 발전하여 군중들의 민족적 및 계급적각성이 비교적 높았다. 당시 이 지대에서는 혁명조직들이 급속히 확대되여 수많은 대중이 그에 결속되였으며 추수, 춘황투쟁을 통하여 혁명적으로 단련도 되였다. 그리고 이 지대는 험산계곡들과 무성한 수림으로 뒤덮여있어 적들이 최신무기를 가지고도 공격하기 어렵고 유격대가 방어하기에는 유리한 천연의 요새를 이루고있었다. 또한 조국의 여러 산맥들과 직접 잇닿아있기때문에 국내진출에도 유리하고 혁명을 국내로 확대발전시키기에도 매우 적합한 지역들이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유격구역을 창설하기 위한  첫 단계의 사업으로서 광범한 농촌지역을 혁명화하기 위한 투쟁을 적극적으로 밀고나가시였다. 또한 반일인민유격대로 하여금 적들을 군사적으로 제압하고 유격구를 내올수 있는 지역을 확보하도록 하시였다.

유격구창설은 적들과의 치렬한 투쟁속에서 진행되였다. 일제는 유격구창설을 백방으로 방해하였다. 일제는 1932년 봄 이른바 간도처리방책을 모의하고 조선주둔군소속의 림시파견대를 동만 4개 현에 투입하여 모든 촌락들과 시가지들을 피바다, 불바다로 만들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엄혹한 사태에 대처하여 두만강연안의 산악지대에 혁명조직이 통제하는 지역을 확보하고 거기에 혁명군중을 집결시키도록 하시는 한편 적들을 제압하기 위한 군사작전을 맹렬히 벌리도록 하시였다. 그 결과 적들의 기도는 파탄되고 적통치체계에서 벗어난 안전한 지역들이 확보되게 되였다. 마침내 안도의 소사하에서 유격구창설사업이 시범적으로 진행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1(1932)년 5월 중순 소사하에서 소사하 구당 및 혁명조직책임자들의 회의를 소집하시고 유격구역을 창설하기 위해서는 이 지역인민들을 혁명화하기 위한 사업을 더욱 강화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그리고 5월 하순에는 소사하의 구당비서와 구농민협회 회장을 부르시여 유격근거지창설사업정형을 료해하시고 창설사업에서 나타난 편향들을 바로잡아주시였다. 수령님의 지도밑에 주체21(1932)년 5월말 안도현 소사하에는 처음으로 해방지구형태의 근거지인 소사하유격구역이 창설되게 되였으며 이를 계기로 유격구창설사업은 빠른 속도로 진척되였다.

유격구창설사업에서는 일련의 편향도 없지 않았다. 그것은 혁명화된 모든 농촌지역을 해방지구형태의 유격근거지로 만들려고 하는데서 표현되였다.

남만원정을 마치고 돌아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러한 편향을 헤아려보시고 혁명화된 모든 농촌지역을 해방지구형태의 유격구로 장악하려는것은 아직 무장력이 불충분한 우리의 실정을 고려하지 못한 무모한 행동이라고 하시면서 무리하게 해방지구형태의 유격구를 많이 설정하고 그것을 보위하기 위해 반일인민유격대를 나누어배치하는것은 무장력을 분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올것이라고, 이것은 결국 어느 한 유격구도 튼튼히 방위하지 못하게 만드는 매우 위험한 편향이라고 지적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정력적인 령도에 의하여 편향은 극복되고 주체21(1932)년 봄부터 주체22(1933)년초까지 사이에 두만강연안의 산간농촌지대들인 안도현의 소사하, 다진강을 중심으로 한 지대를 비롯하여 왕청현의 소왕청, 가야허, 요영구, 연길현의 왕우구, 해란구, 석인구, 삼도만, 위자구, 화룡현의 어랑촌, 우복동, 훈춘현의 대황구, 연통라자, 리수구를 중심으로 한 여러 지대들에 해방지구형태의 유격구가 창설되였다.

간도의 산악지대들에 건설된 유격구역들에 당시 국내와 해외에서 한다하는 많은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찾아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왕청지구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하시면서 연해주지방에서 활동하던 공산주의자들과 독립운동자들도 있었고 적구에서 다년간 지하활동을 해오다가 정체가 탄로되여 투쟁무대를 바꾼 사람들도 있었으며 조선혁명의 중심이 간도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월경탈출한 국내의 애국인사들과 맑스주의신봉자들도 있었다고 회고하시였다.

동만의 유격근거지들에는 이처럼 혁명에 참가할 각오가 되여있거나 실천투쟁속에서 단련되고 풍부한 투쟁경험을 가진 정수분자들을 비롯하여 국내와 해외에서 모여온 수많은 혁명군중이 집결되였다. 그리고 당, 공청조직들과 농민협회, 반일부녀회, 적위대, 소년선봉대, 아동단과 같은 계층별조직들, 반군사조직들이 무어졌다. 이렇게 마련된 유격근거지들은 선군혁명의 분화구로 달아올랐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지구형태의 유격구창설과 병행하여 유격구주변에 반유격구와 유격활동거점들을 꾸리도록 하시였다. 반유격구는 형식상으로는 적들이 통치하는 지역이지만 내용상으로는 유격대와 혁명조직이 장악하고 지도하는 혁명화된 지역이다. 당시 좌경기회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은 해방지구형태의 유격구창설만을 고집하면서 반유격구창설을 방해하였다. 이자들은 유격구와 적통치구역을 「적색구역」과 「백색구역」으로 갈라놓고 적통치구역인민들과 중간지대인민들을 「반동군중」, 「량면파군중」이라고 하면서 함부로 의심하거나 배척하였다. 그리하여 적지 않은 군중을 적의 편으로 밀어던지는 엄중한 후과를 빚어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좌경기회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의 방해책동을 짓부시면서 정치공작원들을 유격구주변지역에 파견하시여 혁명조직들을 내오고 대중을 조직적으로 묶어세우게 하시였다. 그리고 적통치기관의 말단단위들을 장악하고 적기관에 복무하는 사람들을 쟁취하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라자구, 다홍왜, 전각루, 량수천자 등 왕청지구와 연길, 훈춘, 안도, 화룡지구의 넓은 지역과 북부조선의 륙읍일대에 반유격구가 꾸려졌다. 반유격구는 유격구의 군대와 인민, 혁명의 전취물을 보호하는 믿음직한 위성이였다.

한편 적통치구역에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유격활동거점들이 생겨났다. 유격활동거점은 유격대가 적통치구역에 나가 군사정치활동을 벌리거나 련락을 위하여 설치한 지하혁명조직과 련락장소로 이루어진 기동적이고 림시적인 성격을 띤 근거지의 한 형태였다. 유격활동거점들은 유격대의 눈과 귀가 되여  군사정치활동을 보장하였다.

이렇듯 두만강연안에 유격근거지가 창설됨으로써 반일인민유격대의 군사전략기지, 후방기지가 마련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유격구를 강화하는 사업을 줄기차게 밀고나가시였다. 유격구강화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방위능력을 갖추는 문제였다. 유격구에 유격대를 기본으로 전민방위체계를 갖추어놓아야 하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유격구의 전체 인민을 무장시킬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유격구역에서는 유격대를 정치군사적으로 장성발전시킬뿐아니라 적위대, 소년선봉대 등 반군사조직들을 확대강화하고 전체 인민들을 무장시켜 유격근거지를 보위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유격구보위의 핵심력량인 반일인민유격대를 확대강화하는데 큰 힘을 넣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2(1933)년 2월 하순 소왕청 마촌에서 열린 당 및 공청지도핵심성원들의 회의에서 반일인민유격대의 대오를 빨리 늘이며 정치군사적으로 더욱 강화할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왕청 제2중대를 비롯하여 여러곳을 찾으시여 유격대를 군사기술적으로 강화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반일인민유격대를 주체적인 유격전법으로 무장시키기 위하여 유격대창건후 1년남짓한 기간의 무장투쟁과정에 얻은 군사경험들을 종합하여 주체22(1933)년 4월과 11월에 고전적로작 「유격대동작」「유격대상식」을 발표하시였다.

「유격대동작」에는 유격대의 정신도덕적품성으로부터 유격전의 일반원칙에 이르는 근본적인 문제들과 습격전, 매복전, 방어전, 행군, 숙영 등 유격대의 전투행동조직과 사격, 무기관리, 규률에 이르는 유격대동작의 모든 원칙과 방법들이 간명하게 규범화되여있었다. 「유격대상식」에는 유격대의 성격과 사명, 임무, 유격전의 본질과 유격전을 벌리는데서 유격대가 반드시 적용해야 할 제반 전투조법 등 유격전의 몇가지 상식 그리고 유격대가 준수하여야 할 생활질서들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여있었다. 유격대원들은 이 로작들을 교범으로 하여 군사기술적으로 튼튼히 준비되였다.

반일인민유격대는 창건초기의 중대규모로부터 주체22(1933)년초에는 각지 유격부대들이 모두 대대의 규모로, 이해말에는 련대규모로 장성되였으며 짧은 기간에 불패의 전투대오로, 유격구보위의 핵심력량으로 자라났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유격구의 전체 인민들을 무장시키고 유격구를 요새화하는 사업에도 큰 힘을 넣으시였다.

유격구안에 반일자위대, 소년선봉대, 청년의용군과 같은 여러가지 반군사조직들이 조직되고 청장년들과 소년들에 대한 군사훈련이 강화되였다. 그리고 유격구도처에 전호와 사격호, 교통호들이 설치되고 유리한 지형조건을 리용하여 여러가지 방위축성물들이 수많이 쌓아졌다. 또한 비상동원체계와 대피대책이 빈틈없이 세워지고 적들의 움직임을 제때에 알아낼수 있는 전인민적감시경계체계도 확립되였다. 유격구는 일제의 그 어떤 「토벌」공세도 격파할수 있는 철벽의 요새로, 믿음직한 혁명의 보루로 전변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유격구에 인민혁명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조직령도하시였다. 이미 카륜회의에서 참다운 인민의 정권을 세울데 대한 구상을 천명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겨울명월구회의에서 유격근거지창설사업이 당면한 실천적문제로 나선 환경에서 유격구에 혁명정부를 세우며 그가 수행해야 할 과업들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밝히시였으며 주체21(1932)년 5월 소사하회의에서는 유격구에 세워야 할 정권이 인민혁명정부로 되여야 한다는데 대하여 명백히 가르치시였다. 이것은 조선혁명과 새로운 시대적조건에 맞는 혁명정권건설의 가장 옳바른 길을 밝힌 독창적인 정권건설로선이였다.

그런데 좌경분자들은 수령님께서 남북만원정을 진행하시는 기간 국제당이 내놓은 쏘베트로선을 그대로 본따서 유격구에 「쏘베트」정부를 세웠으며 즉시적인 사회주의의 실현이라는 구호밑에 사유재산일반에 대한 철페를 선포하고 공동생활, 공동로동, 공동분배의 실시를 적용하였다. 그리고 친일, 반일을 가리지 않고 유격구역안에 있는 모든 지주들과 부농의 토지를 무상으로 몰수하였으며 마소와 식량까지 일률적으로 수탈하였다. 유격구들에서는 심한 동요와 혼란이 생기였다. 혁명에 큰뜻을 품고 유격구로 찾아왔던 많은 사람들이 쏘베트시책에 불만을 품고 유격구를 떠나갔다. 사태가 엄중했으나 누구도 이것을 수습할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있었다.

그때로 말하면 「쏘베트열풍」이 세계를 휩쓸던 시기였다. 1931년 가을 중국 강서성 서금에서는 중화쏘베트림시정부수립이 선포되였고 윁남의 느구엔-딘에도 쏘베트가 수립되였다. 국제당본부에 가있던 조선의 최성우 등이 국제당집행위원회에서 동방부의 일을 맡아보던 일군들과 같이 작성한 「조선공산당 행동강령」에도 조선의 완전독립과 함께 「로동자, 농민의 쏘베트국가수립」을 당면과업으로 제기하였다.

이렇게 쏘베트로선이 국제당의 시정방침이였기에 이에 약간한 의견과 의문을 표시하여도 우경의 감투를 쓰고 제재를 받아야 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것을 허용하지 않으시였다. 남북만원정에서 돌아오신 그이께서는 주체22(1933)년 2월 하순 왕청현 소왕청 마촌에서 진행된 당 및 공청지도간부들의 회의에서 쏘베트로선의 좌경적본질을 폭로하시고 두만강연안의 일부 지역들에 조직된 쏘베트를 인민혁명정부로 개편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 및 공청지도간부들을 현지로 파견하시여 각지에서 인민혁명정부로선을 관철하기 위한 사업을 조직지도하시는것과 함께 쏘베트로선을 내리먹이거나 그에 추종하는 사람들을 만나 사리정연한 론리로 설득시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소왕청의 마촌에서 동만특위서기 동장영을 만나 동만지방의 유격구들에서 쏘베트가 실정에 맞지 않는 정권형태라는것이 생활적으로 증시된 조건에서 조중 두 나라 공산주의자들은 결단을 내려 정권형태를 바꾸고 인민의 요구에 맞는 정책을 실시함으로써 혼란상태를 시급히 수습하여야 한다고 일깨워주시였다. 이어 수령님께서는 군정간부들을 부르시여 쏘베트를 대신하는 혁명정권을 세울데 대한 문제를 토의하시면서 통일전선적정부를 세우되 로농동맹에 기초한 통일전선적인민혁명정부를 세워야 한다고 간곡히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2(1933)년 3월 18일 가야허유격구 사수평마을에서 시범적으로 왕청 제5구인민혁명정부를 수립하는 집회를 지도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열광적으로 환호하는 인민들앞에서 『인민혁명정부는 참다운 인민의 정권이다』라는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연설에서 조선혁명을 승리에로 이끌어나가기 위하여서는 광범한 반일력량을 하나로 결속할수 있는 새형의 정권, 인민혁명정부를 하루속히 수립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새 정권의 성격과 임무, 인민혁명정부를 시급히 수립하기 위한 방도들과 인민혁명정부가 실시해야 할 제반 시책들에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이날의 집회에서 인민의 의사에 따라 구인민혁명정부대표들을 선출하게 하시고 왕청 제5구인민혁명정부의 수립을 엄숙히 선포하시였다. 집회에서는 또한 10개 조항에 달하는 정부정강이 발표되였다.

사수평에서의 첫 인민혁명정부의 수립, 이것은 세계정권사에서 처음으로 되는 새형의 혁명정권, 인민정권의 탄생이였으며 주체의 기치밑에 정권건설을 위한 우리 인민의 투쟁에서 새 기원을 열어놓은 력사적사변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왕청 제5구에 인민혁명정부가 수립된지 얼마후인 주체22(1933)년 4월 소왕청 마촌과 십리평에서 국제당파견원과 담화하시면서 좌경적인 쏘베트로선의 부당성과 인민혁명정부로선의 정당성에 대하여 밝히시였다. 그리고 이해 여름에 있은 로선전환을 토의하는 회의에서 인민혁명정부로선과 인민혁명정부의 시정방침을 다시금 천명하시였다.

가야허에서의 인민혁명정부수립과 로선전환회의를 계기로 하여 동만 각 현의 혁명조직들에서는 인민혁명정부를 세우는 사업이 인민대중의 드높은 정치적열의속에서 진행되여갔다.

이렇듯 위대한 수령님의 정력적인 투쟁에 의하여 주체22(1933)년 여름까지 두만강연안의 모든 유격구들에 구인민혁명정부가 나오고 마을마다에는 촌인민혁명정부가 수립되였다. 조건이 성숙되지 못한 곳에서는 과도적형태로 농민위원회를 내오고 점차 인민혁명정부로 개편하였다.

인민혁명정부는 민족해방투쟁을 진행하고있던 당시의 조건과 유격구의 실정에 가장 알맞는 정부였으며 조국이 해방된 후에 세워지게 될 인민정권의 원형이였다.

인민혁명정부는 유격구인민들에게 참다운 정치적자유와 민주주의적권리를 보장해주며 친일지주, 예속자본가, 민족반역자들에게는 철저한 독재를 실시하고 토지개혁을 비롯한 경제개혁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남녀평등권을 실시하고 문화분야에서 민주주의적개혁과 시책을 실시하도록 하였다.

혁명정권은 사람들에게 땅을 주고 로동의 권리를 주고 누구나 무상으로 공부하며 치료받을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 력사상 처음으로 평등의 리념이 실현된 사회, 서로 돕고 이끌어주고 위해주며 받들어주는 고상한 륜리가 지배하는 사회가 세워졌다. 사람들에게는 래일에 대한 꿈이 있었고 희망이 있었으며 노래가 있었다.

참으로 김일성장군님의 탁월한 령도에 의하여 두만강연안의 넓은 지역들에 창설된 유격근거지는 선군혁명의 책원지, 항일무장투쟁의 믿음직한 군사전략기지, 후방기지로 되였다.

선군혁명의 총포성은 전간도땅에 울려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