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태양 김정일장군」 (4)권 중에서

 

 

 력사적인 6.15공동선언을 실현하는 길은 결코 순탄한 길이 아니였다.

북남관계가 6.15의 궤도를 따라 급속히 개선되여가는것을 못마땅해 한 미국과 남조선의 극우보수세력은 북남공동선언실현의 앞길에 계속 장애를 조성하였다.

집권전부터 대조선강경정책을 부르짖던 부쉬와 그 패거리들은 집권 첫날부터 우리의 있지도 않는 핵《위협》설을 내걸고 호전적인 폭언들을 거리낌없이 줴쳤으며 우리를 《불량배국가》, 《테로지원국》으로 몰아붙이면서 반공화국압살책동의 도수를 높였다.

미국무성의 고위관리들은 우리의 《붕괴》론에 대해 로골적으로 떠들었고 미국회에서는 《미조기본합의문페기 등 더욱 강경한 대북로선을 취할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태평양지역 미군총사령관은 우리를 《제1주적》으로 공공연히 선포하였다.

부쉬행정부는 대북강경의 도수를 높이면서 남조선의 반통일세력들을 우리와의 대결에로 부추기고 남조선당국에 압력을 가하였다. 남조선의 반통일세력들은 《안보》와 미국과의 《공조》를 내걸고 《주적론》을 펴면서 미국의 반공화국압살책동에 적극 가담해나섰다.

미국과 남조선의 극우보수세력의 방해책동앞에서 남조선당국은 6.15북남공동선언을 고수리행할 견결한 립장과 태도를 보이지 못하였다. 남조선당국은 북남관계보다 대미관계에 더 신경을 쓰면서 6.15공동선언에 배치되는 길로 나갔다.

이로부터 좋게 발전해나가던 북남관계는 남조선당국의 대미추종책동으로 하여 다시 랭각되기 시작하였으며 2001년 3월 중순경에는 전면 중단되고말았다. 3월 중순에 하기로 예견되여있었던 제5차 북남상급회담은 제 날자에 진행할수 없게 되였다.

조성된 정세는 북남대화에 대한 옳은 립장을 가지고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를 그 어느때보다도 더 높이 추켜들것을 요구하고있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북과 남의 대화는 민족공동의 리익을 앞세우고 북남사이의 불신과 대결상태를 해소하며 모든것을 조국통일에 복종시키는 원칙에서 진행하여야 합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의 명의로 북남당국사이의 대화를 하루빨리 재개할데 대한 제안을 담은 통지문을 남측에 보내도록 하시였다. 여기에는 당국간의 대화가 북남관계와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풀어나가는 명실공히 통일지향적인 대화로, 민족적인 화해와 협력, 통일에 실질적으로 이바지하는 결실있는 대화로 되게 하시려는 장군님의 숭고한 뜻이 담겨져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2001년 9월 15일부터 18일까지 서울에서 제5차 북남상급회담이 진행되였다.

회담에서 우리측은 북남관계발전에 대한 기본립장과 현안문제들을 밝혔다. 우리측은 미국과 남조선의 우익보수세력들의 책동으로 북남당국대화가 중단되는것과 같은 비정상적인 사태가 빚어진데 대하여 상기시키고 교훈은 북남관계, 나라의 통일문제를 하루빨리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통일세력들의 방해책동을 짓부시고 6.15공동선언을 지지하는 광범한 대중의 힘에 의거하여 모든 사업을 힘있게 밀고나가야 한다는것을 똑똑히 보여주고있다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민족문제를 해결해나가는것은 북남공동선언의 핵이고 절대로 양보할수 없는 민족의 최고리익이며 바로 여기에 북남사이의 화해와 단합, 평화와 통일이 있고 공동선언의 앞길에 가로놓인 난관과 장애물을 극복하는 열쇠가 있다고 강조하였다.

우리측의 원칙적립장과 진지한 노력에 의해 쌍방은 북남공동선언리행을 위한 지난 기간의 사업정형을 총화하고 민족의 단합과 통일의 견지에서 상정된 제반 문제들에 대하여 합의를 보았다.

이렇듯 중단되였던 북남대화가 재개되고 제5차 북남상급회담이 성과적으로 진행되게 된것은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를 높이 드시고 온 겨레를 조국통일위업실현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신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의 결과였다.

장군님께서는 그후 복잡한 정세속에서도 제5차 북남상급회담에서 이룩된 합의사항들을 실현해나가도록 이끌어주시였다. 그리하여 10월 4일부터 5일까지 금강산에서 금강산관광활성화를 위한 제1차 북남당국회담이 성과적으로 진행되였으며 10월로 예견된 제6차 북남상급회담과 북남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제2차회의, 금강산관광활성화를 위한 제2차 당국회담과 제4차 흩어진 가족, 친척방문단교환, 우리 태권도시범단의 서울방문을 위한 준비사업들이 성과적으로 추진되였다.

남측은 제5차 북남상급회담 이후 북남관계에 계속 먹구름을 조성하였다. 특히 미국에서 일어난 《테로사건》을 구실로 북의 그 무슨 《도발가능성》이니, 《주적》이니 하고 떠들면서 전군에 《비상경계조치》까지 취하고 무력증강과 전쟁연습에 매여달리였다.

이로하여 6.15북남공동선언의 근본정신이 엄중한 도전에 부닥치고 제5차 북남상급회담 합의사항리행이 정체상태에 빠지게 되였다.

정세는 그 어느때보다도 북남쌍방이 인내력을 발휘하고 성의있는 노력을 기울여 사태의 근본원인을 제거하고 현실적인 대책을 취할것을 요구하였다.

이로부터 우리측은 력사적인 6.15북남공동선언의 근본정신에 부합되게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조성된 현 난국을 타개하려는 립장으로부터 출발하여 제6차 북남상급회담 개최를 주도하였다. 그리하여 2001년 11월 9일부터 14일까지 금강산에서 제6차 북남상급회담이 개최되게 되였다.

회담에서 우리측은 《비상경계조치》의 해제와 《주적론》의 완전페지 등 남측의 반북대결책동의 철회를 강하게 요구하였으며 북남사이에 조성된 현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합리적인 제안과 함께 공동보도문초안까지 제시하고 그 합의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였다.

그러나 남측은 북남관계를 엄중한 상태에 빠뜨린 저들의 행위를 시인, 사죄할 대신 오히려 그것이 저들 내부문제라느니, 국제관계문제라느니 하고 책임회피에만 급급하였으며 회담앞에 계속 인위적인 난관만을 조성하였다.

지어 남측수석대표는 회담시작부터 결실없이 돌아갈것도 생각하고 왔다느니 하면서 회담을 파탄시키기 위한 기도를 공공연히 드러내고 쌍방실무자들이 애써 합의하여놓은 내용들마저 순간에 뒤집어놓는 매우 불순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근 한주일이라는 전례없이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된 회담은 결실없이 끝나고 북남관계는 또다시 얼어붙게 되였다.

제6차 북남상급회담의 전과정은 누가 진실로 6.15공동선언을 존중하고 성실히 리행해나가며 누가 그것을 부정하고 북남관계발전에 훼방을 놀고있는가를 다시금 뚜렷이 확증해주었다.

그리하여 2002년초에 이르러 북남관계는 6.15이전의 대결상태로 되돌아가는가 아니면 화해와 단합의 관계로 발전하는가 하는 갈림길에 놓이게 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북과 남이 력사적인 6.15공동선언을 굳건히 고수하며 화해와 단합, 통일에로 나가도록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온 겨레의 단합된 힘으로 반통일세력들의 책동을 단호히 짓부셔버리고 우리 민족의 통일의지를 다시한번 내외에 과시하기 위하여 공화국 정부, 정당, 단체합동회의를 소집하게 하시고 조국통일을 위한 획기적인 제안을 내놓도록 하시였다.

2002년 1월 22일 공화국 정부, 정당, 단체합동회의가 열렸다. 합동회의는 력사적인 북남공동선언발표 2돐이 되는 해에 《우리 민족끼리 조국을 통일하자!》라는 구호를 높이 들고 조국통일에 대한 필승의 신심과 락관에 넘쳐 기어이 자주통일의 결정적국면을 열어나갈데 대하여 토의하였다. 그리고 6.15북남공동선언의 철저한 고수리행, 북남관계의 진전과 조국통일운동의 활성화, 나라의 평화를 위협하고 통일을 장애하는 요인들의 제거를 내용으로 하는 3대호소와 2002년을 《우리 민족끼리 단합과 통일을 촉진하는 해》로, 북남공동선언이 발표된 6월 15일을 《우리 민족끼리 통일의 문을 여는 날》로, 5월부터 7.4공동성명이 발표된 7월을 거쳐 조국이 해방된 8월까지를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나가는 운동기간》으로 할데 대한 3대제의를 담은 해내외의 전체 조선동포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채택발표하였다.

공화국 정부, 정당, 단체합동회의의 3대호소, 3대제의는 확고한 민족자주정신과 열렬한 민족애, 민족주체적힘에 대한 굳은 의지를 반영한것으로 하여 전체 북, 남, 해외동포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호응을 받았으며 외국의 정당, 사회단체들도 지지를 표명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긴장된 북남관계를 주동적으로 풀고 통일의 유리한 환경을 마련하시기 위하여 남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남측특사를 평양에 부르도록 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91(2002)년 4월 4일 평양을 찾아온 남측특사를 접견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남측당국자가 보내온 친서를 전달받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먼저 남측당국이 우리와의 약속을 어기고 6.15공동선언채택이후 한달이 지나자마자 선언의 기본정신에 어긋나게 행동하고 특히 미국에서 부쉬정권이 들어앉자 워싱톤에 찾아가 《해볕정책》도 북을 흡수통합하는 조건에서 지지할것이라며 저들의 승인을 받아서 북남관계를 처리해야 한다고 압력을 가해나선 미국에 굴복하여 《상호주의》에 대해 말하면서 신의를 저버린 사실을 문제시하시였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6.15북남공동선언의 기본정신을 존중할데 대하여, 미국과 반통일세력의 악랄한 책동으로 조선반도에 조성된 위기사태를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풀어나갈데 대하여, 당면하여 북남관계를 원상회복할데 대한 문제를 비롯한 6.15북남공동선언을 철저히 리행하는데서 나서는 원칙적인 요구들을 하나하나 밝혀주시였으며 만찬도 베풀어주시였다.

특히 북남사이에 동서해안의 철도와 도로를 련결시키고 그것을 로씨야를 횡단하여 서유럽까지 개통함으로써 조선반도를 아시아의 물류중심으로 만들데 대한 구상을 펼치시였다.

남측특사는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에 따라 조국통일을 기어이 실현하고 민족공동의 번영을 이룩하시려는 김정일장군님의 확고한 의지앞에 머리를 숙이지 않을수 없었다.

4월 5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비서와 남측특사사이에 두차례의 회담이 진행되였다. 회담에서 쌍방은 조선반도에 조성된 엄중한 사태와 북남관계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폭넓게 토의하였다.

우리측은 력사적인 평양상봉과 6.15북남공동선언발표이후 화해와 단합, 통일을 지향하여 좋게 발전하던 북남관계가 안팎의 호전세력의 전쟁도발책동으로 말미암아 악화되고 북남공동선언리행이 엄중한 국면에 처해있는데 대하여 지적하고 이에 대한 책임이 미국과 함께 남측에도 있다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이번에 우리가 특사의 평양방문요청을 수락한것은 민족앞에 닥쳐온 엄중한 사태와 관련하여 직접 마주앉아 남측이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나라의 통일문제를 풀어나갈데 대한 립장과 6.15북남공동선언의 기본정신을 존중하고 민족끼리 공조해나갈 의지가 있는지에 대한 명백한 대답을 들어보려는데 있다고 강조하였다.

또한 우리측은 남측이 력사적인 평양상봉때 《주적론》이라는것이 더는 없을것이라고 하고도 계속 그것을 제창하면서 전쟁소동을 일으키는데 대하여 엄중시하고 6.15공동선언리행에 대한 근본립장부터 바로 가질데 대하여 강하게 요구하였다.

회담에서는 일시 동결되였던 북남관계를 원상회복한다는 내용을 담은 공동보도문이 발표되였다.

북과 남은 력사적인 6.15북남공동선언의 기본정신에 부합되게 서로 상대방을 존중하고 긴장상태가 조성되지 않도록 노력하며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나라의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풀어나갈데 대한 공동선언의 합의사항을 리행하는 방향에서 그동안 일시 동결되였던 북남관계를 원상회복하기로 하였다. 또한 동해안과 서해안의 철도와 개성-문산사이의 도로를 빨리 련결하며 북남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제2차회의 개최, 금강산관광활성화를 위한 2차 당국사이의 회담개최, 제4차 흩어진 가족, 친척상봉진행, 북측 경제고찰단의 남측파견을 비롯하여 이상의 합의사항들이 리행되고 진척되는데 따라 제7차 북남상급회담을 개최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쌍방은 군사당국자사이의 회담을 재개할데 대해 군사당국에 건의하기로 하였으며 동포애와 인도주의, 상부상조의 원칙에서 서로 협력하기로 하였다.

6.15북남공동선언발표 이전의 대결관계로 되돌아갈번 했던 북남관계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남조선특사접견을 계기로 다시 화해와 단합의 분위기를 맞이하게 되였다. 그 흐름을 따라 4월말부터 5월초까지 제4차 흩어진 가족, 친척상봉이 진행되였고 남조선 제주도민회대표들이 평양을 방문하였으며 동해선 및 서해선 북남철도련결을 위한 착공식과 북남개천절공동행사가 진행되는 등 북남사이의 화해와 교류분위기가 다시 고조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6.15북남공동선언의 기치밑에 온 겨레의 통일열기를 더욱 북돋아주시는 한편 여러 갈래의 회담들을 통하여 6.15북남공동선언실천을 위한 조치들을 련이어 취해나가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6.15북남공동선언을 철저히 리행해나가는데서 북남상급회담을 중시하시고 회담이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밑에 민족적단합을 이룩하고 겨레의 통일을 위한 투쟁에 실질적으로 이바지하는 결실있는 계기로 되도록 관심하시였다.

제6차 북남상급회담이 있은지 9개월만인 2002년 8월 12일부터 14일까지 서울에서 제7차 북남상급회담이 진행되였다.

회담에서 쌍방은 력사적인 6.15북남공동선언을 확고히 리행해나갈 의지를 확인하였으며 2002년 4월 5일의 공동보도문과 그밖에 서로 관심하는 문제들을 실천해나가기 위한 대책을 협의하고 10개 조항의 공동보도문을 발표하였다.

공동보도문에서 쌍방은 북남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제2차회의를 8월 26일부터 29일까지 서울에서 개최하고 여기에서 북남철도 및 도로련결문제, 개성공업지구건설문제, 림진강수해방지문제와 그밖의 경제협력문제들에 대해 협의하기로 하였으며 북남철도 및 도로련결을 위한 군사적보장조치를 시급히 취하며 쌍방 군사당국자간 회담을 빠른 시일안에 가지도록 각기 자기측 군사당국에 건의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흩어진 가족, 친척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북남적십자회담문제, 금강산관광활성화를 위한 당국회담문제, 북측 경제고찰단의 남측지역방문문제 등 여러 문제에 합의했음을 밝히였다.

그리하여 장군님께서 놓아주신 북남관계개선의 무지개를 타고 북과 남사이의 협력과 교류는 활기를 띠고 진행되게 되였다.

북과 남이 힘을 합쳐 통일을 이룩하는것을 달가와하지 않는 미국과 반통일세력들은 북남관계발전에 제동을 걸면서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좋게 발전해나가던 북남관계는 2003년에 들어서면서 미국의 악랄한 대조선적대시책동으로 인한 조선반도의 정세격화로 또다시 랭각되여가고있었다. 날로 가증되는 미국의 반공화국고립압살책동으로부터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과 생존권, 존엄을 지키기 위하여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 탈퇴한다는 2003년 1월 10일 공화국정부 성명이 발표되자 미국은 《북핵문제는 북미간의 문제가 아니다》느니, 우리의 핵무기전파방지조약 탈퇴조치가 《국제공동체성원국들에 대한 위협》으로 된다느니 하면서 조미사이의 《핵문제》를 국제화해보려고 집요하게 책동하였다.

미국은 1월에 들어와 남조선군부와 함께 《우발계획》이라는 대북선제공격계획작성을 적극 다그쳤으며 방대한 규모의 침략무력을 동원하여 침략전쟁책동을 강화하는데 달라붙었다. 미국은 남조선군부와 함께 3월 4일 《독수리》전쟁연습을 벌려놓았고 19일부터는 《련합전시증원연습》을 련이어 진행하였다. 또한 남조선군부는 중지되였던 전연비방방송을 재개하였으며 《한나라당》을 비롯한 남조선의 반통일세력들은 미국의 반공화국압살책동에 편승하여 년초부터 《대북송금특검》소동을 일으키면서 6.15공동선언에 도전하여 북남관계를 파탄시키려고 발악적으로 책동하였다. 새로 집권한 남조선당국도 미국의 계속되는 압력에 굴복하여 이라크침략전쟁마당에 추가파병을 결정하였다. 그리고 《주한미군재배치》문제에서도 미국에 굴복하는 대미굴종자세를 드러냈다. 이 모든것은 6.15북남공동선언에 대한 정면도전이였다.

조성된 정세는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를 더욱 높이 들고 민족공조로 외세의 전쟁책동을 단호히 짓부셔버리며 6.15북남공동선언을 계속 실천해나갈것을 요구하고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새로 집권한 남조선당국이 미국의 요구에 굴복하여 대미추종정책을 실시하고있는 속에서도 그 어느 회담보다 먼저 제10차 북남상급회담이 열리도록 해주시였으며 여러 차례의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리하여 2003년 4월 27일부터 29일까지 평양에서 제10차 북남상급회담이 진행되였다.

이 회담은 새로 집권한 남조선당국과의 첫 상급회담이면서도 대결국면으로 치닫던 《핵문제》를 가지고 미국이 굴복하여 우리와의 회담탁에 끌려나오지 않으면 안되게 된때에 우리의 주동적인 조치에 의하여 열리게 된것으로 하여 내외의 관심이 집중되였다.

회담에서는 력사적인 6.15북남공동선언을 실천해나가는데서 호상 관심사로 되는 문제들을 진지하게 협의하고 공동선언을 변함없이 준수하며 계속 철저히 리행해나갈데 대한 문제, 6.15북남공동선언발표 3돐을 계기로 개최되는 6.15민족통일대축전이 화해, 협력의 분위기속에서 잘 진행될수 있도록 하며 앞으로 정례화되도록 지원해나가는 문제, 오는 8월 대구에서 열리는 세계대학생체육경기대회에 북측선수단과 응원단이 참가하는 문제, 동서해선 철도, 도로련결행사와 개성공업지구건설착공식문제를 비롯하여 6개 항목의 공동보도문을 발표하였다.

복잡한 정세속에서도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6.15북남공동선언을 철저히 리행해나갈것을 확약한 제10차 북남상급회담에 이어 여러 차례의 상급회담들이 진행되여 일련의 결실들이 이루어지게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북남상급회담과 함께 북과 남의 첨예한 군사적대치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북남군사회담들에도 큰 의의를 부여하시여 6.15북남공동선언의 리행을 위한 군사적담보조치들을 취해나가도록 하시였다.

2004년 5월 26일 력사적인 6.15북남공동선언의 리행을 군사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제1차 북남장령급군사회담이, 6월 3일부터 4일까지 제2차 북남장령급군사회담이 진행되였다.

제2차 북남장령급군사회담에서는 군사분계선지역에서 선전활동을 중지하고 그 수단도 완전히 제거하며 서해해상에서 군사적충돌을 막기 위한 실천적문제들을 토의하고 《서해해상에서 우발적충돌방지와 군사분계선지역에서의 선전활동중지 및 선전수단제거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하였다.

북과 남의 온 겨레는 이 합의서채택을 열렬히 환영하였다.

그후 6.15공동선언을 철저히 리행해나가려는 우리의 주동적인 조치에 따라 북과 남은 3차의 군사실무회담들을 진행하면서 합의서리행을 추진해나갔다. 그리하여 조국해방  60돐이 되는 2005년 8월까지 군사분계선 전지역에서 방대한 선전수단들을 제거하는 사업이 기본상 계획대로 끝나게 되였다.

지난 40여년간 동족간에 불신과 반목, 대결과 긴장을 조장시켜오던 랭전의 유물인 방대한 선전수단들이 제거된것은 조국통일의 리정표이며 민족대단합의 위대한 강령인 6.15북남공동선언을 관철하는 길에서 거둔 또 하나의 소중한 결실로서 우리 겨레모두에게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밑에 하나로 힘을 합쳐나갈 때 조국통일위업을 이룩할수 있다는 신심과 락관을 안겨준 장거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북남적십자회담에도 깊은 관심을 돌려주시여 흩어진 가족, 친척상봉을 비롯한 인도주의적문제들이 성과적으로 해결되여나가도록 하시였다.

내외의 커다란 관심과 기대속에 북남사이에 첫 상급회담이 개최된 때로부터 2005년말까지 17차의 상급회담과 40여차의 경제협력추진위원회 회의 및 각 부문별 분과회의와 실무접촉, 10여차의 북남군사당국자들사이의 회담 및 실무접촉을 비롯한 100여차에 걸쳐 진행된 북남대화와 거의 모든 회담들에서 매번 합의문건이 채택되였다. 이것은 북남대화력사에 전례없는 기록으로서 1971년부터 력사적인 6.15공동선언이 채택된 2000년까지 무려 29년간 346회의 회담에서 북과 남이 35건의 합의를 이루어냈다는 사실과 비교해볼 때 6.15이후 북남대화에서 얼마나 놀라운 성과가 이룩되였는가를 잘 알수 있게 한다.

참으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선군의 위력으로 안아오신 6.15북남공동선언이 있어 대결과 불신이 지배적이던 북남대화와 협상분위기가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밑에 화해와 협력을 지향하는 대화분위기로 변화될수 있었고 수많은 대화를 진행하여 우리 겨레에게 기쁨과 희망을 안겨주는 훌륭한 성과들을 이룩해낼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