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1) 중에서 




 

  

1932년 봄은 소란과 격동속에 찾아왔다.

만주대륙을 강점한 일제는 손중산의 국민혁명에 의하여 밀려난 청나라의 마지막황제 부의를 내세워 3월에 괴뢰만주국을 조작하였다. 일제는 투항한 구동북군과 경찰들로 위만군과 만주경찰을 꾸리고 치안에 내몰았다. 한편 라남주둔 19사단의 주력으로 편성한 《간도토벌대》를 왕청, 훈춘, 연길, 화룡의 농촌지구들에 들이밀어 조선인민의 혁명적진출을 막아보려고 날뛰였다. 간도일대에서 조선인부락들이 불타버렸고 숱한 혁명가들과 인민들이 학살당하였다.

이때 영국 추밀원고문관 릿든을 단장으로 하고 미국과 도이췰란드, 프랑스, 이딸리아 등의 렬강대표들로 구성된 국제련맹조사단이 일본천황, 수상, 륙군상, 외상을 만난 다음 중국에 건너와 장개석, 장학량과 회견하고 만주에 나타나 관동군사령관을 만났다. 그리고 9.18사변 발발현장에 대한 시찰을 진행하였다. 조사단의 사명이란 9.18사변의 발발원인과 그 책임을 해명한다는것이였다. 일본측과 중국측에서는 서로 조사단을 자기편에 끌려고 접대, 환영경쟁에 열을 올리였다. 조사단이 진상을 밝혀내고 국제련맹이 영향력을 행사하면 일본이 만주에서 철병할지도 모른다는 억측이 떠돌았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그런 억측이나 뜬소문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시고 반일인민유격대창건사업에 박차를 가하고계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3월 중순경에 안도에서 동만의 여러 현들에 조직된 유격대소조의 지휘성원들을 위한 단기훈련(단기강습)을 조직하시였다. 지방들에서 20명 가까운 지휘성원들이 소사하 토기점골에 모여 첫날에는 리론강의를 받고 다음날에는 동작훈련을 하였다.

그이께서는 조선혁명의 로선과 방침문제를 가지고 정치학습에 출연하시였고 유격대의 생활규범과 활동준칙에 대한 강의도 하시였다. 군사훈련은 주로 황포군관학교출신경력을 가진 박훈이 맡아 지도했는데 대렬동작이나 무기분해결합과 같은 초보적인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습격, 매복조직과 같은 전술적문제로 훈련을 점차 심화시켜나갔다.

반일인민유격대의 창건을 선포할 시각은 다가오고있었다.

그러나 반일인민유격대창건을 선포하고 합법적인 활동을 벌리자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중국인반일부대들과의 련합전선을 이룩하는것이였다.

당시 중국 동북지방에는 동북자위군, 반길림군, 항일구국군, 항일의용군, 산림대, 대도회, 홍창회와 같은 형형색색의 반일부대들이 많았다. 반일부대란 일제가 만주를 강점한 후 항일구국의 기치를 들고 구동북군에서 떨어져나온 애국적인 군인들과 관리들 그리고 농민들로 이루어진 민족주의군대를 말한다. 이 부대를 통털어 구국군이라고도 불렀다. 만주지방의 반일부대가운데서 유명한것은 왕덕림, 당취오, 왕봉각, 소병문, 마점산, 정초, 리두의 부대들이였다. 동만에서 제일 큰 부대는 왕덕림부대이고 그 휘하부하로 오의성, 사충항, 채세영, 공헌영이 있었다. 남만의 산간지대들에는 당취오의 자위군이, 흑룡강성일대에는 마점산부대가 있었다. 반일부대의 상층부는 대부분 자산계급출신들로서 공산주의에 대하여 맹목적으로 적대시하였다. 그들은 계급적나약성과 정치적락후성으로 하여 일제의 민족리간책동에 넘어가 조선공산주의자들에 대하여서는 《일본놈의 앞잡이》라느니, 《중국인민의 재산을 략탈한다》느니 하면서 적대행동을 서슴지 않고 감행해나섰다. 공산주의자들뿐아니라 조선사람일반에 대해서도 저들의 비위에 약간만 거슬려도 닥치는대로 학살하였다.

일제의 파쑈적폭압과 반일부대들의 분별없는 적대행위로 말미암아 갓 조직된 소규모의 유격대오들은 조선인마을들에 숨어다녀야 하였으며 자유롭게 활동을 할수가 없었다.

도시들과 벌방지대에서는 일본침략군이 돌아치고 일본군이 채 점령하지 못한 농촌들과 산간지대들에서는 반일부대들이 길목을 지키고 서서 꼼짝달싹 못하게 하였다. 반일부대들의 적대행동은 청소한 유격대의 존재자체를 위협하는 엄중한 난관으로 되였다. 반일부대들과의 관계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유격대의 존재와 활동을 합법화할수 없었다. 유격대를 합법화하지 않고서는 대오도 확대할수 없었고 공개적인 군사활동도 할수 없었다.

이러한 난관과 시련을 극복하는가 못하는가 하는것은 반일인민유격대의 창건을 선포하고 공개적인 무장투쟁을 적극 벌리는가 못 벌리는가 하는 중대한 문제였으며 광범한 조중인민을 불러일으켜 항일무장투쟁을 확대발전시키는가 못시키는가 하는 사활적인 문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성된 난관을 타개하기 위하여 주체21(1932)년 4월 상순 안도현 소사하에서 혁명조직책임자들의 회의를 소집하시고 반일부대들과의 련합전선을 실현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세우시였다.

그이께서는 회의에서 일제의 민족리간책동에 속아넘어간 일부 반일부대들이 조선공산주의자들을 덮어놓고 적대시하면서 닥치는대로 붙잡아 학살하고있는데 대하여 지적하시고 반일인민유격대창건에서 나서는 가장 중요한 과업은 반일부대들과의 련합전선을 실현하는것이라고 가르치시였다. 그리고 이 사업을 성과적으로 실현하자면 반일부대의 상층과 담판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회의에서 별동대문제를 제기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유격대가 당분간 안도에 있는 우사령부대에 들어가서 별동대로 활동하는것이 합리적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고계시였다. 우사령부대에 들어가면 구국군의 간판을 가지게 되니 피해를 입을 념려가 없고 무기도 좀 해결할수 있지 않겠는가, 영향만 잘 주면 그들을 안전한 동맹자로 만들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가설을 세우시고 토론에 붙여오시였다. 별동대에 관한 그이의 착상은 회의에 참가한 동지들의 지지를 받았다.

회의에서는 구국군과의 담판을 위하여 우사령부대에 대표를 파견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런데 누구를 대표로 보내는가 하는것이 문제였다. 동지들은 몸소 자신께서 대표로 가시려는 그이의 제의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자기의 대장을 위험천만한 곳으로 보낼수 없다는것이 그들의 마음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마음이 고마왔으나 누구보다 자신께서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설복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죽음을 두려워하면 혁명을 하지 못한다, 내가 중국말을 잘하고 청년운동시기에 풍랑도 여러차례 겪어본것만큼 가기만 하면 얼마든지 우사령을 만날수 있다, 그러니 내가 가야 한다고 주장하여 끝내 설복시키고야마시였다.

회의가 끝난 며칠후 그이께서는 박훈을 비롯한 몇명 안되는 대원들을 데리시고 안도에 있는 우사령을 만나러 길을 떠나시였다. 아무런 신변안전담보도 없는 모험의 길이였다. 실지로 로상에서 우사령부대와 맞다들었는데 다짜고짜 체포하려고 하였다. 이때 그이께서는 류본초라는 길림육문중학교시절의 스승을 만나 구원되시였다. 그는 우사령부대의 참모장이였다. 그이께서는 그의 도움으로 안도성시에 들어가 우사령을 만나 담판을 하시였다.

우사령은 반일부대 두령들가운데서 거만하고 완고하기로 이름난 사람이였다. 그러나 자기의 참모장을 통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매우 명망이 높으신분이시라는것을 알게 된 그는 례절있게 맞아주었다.

그이께서는 조선공산주의자들의 투쟁목적과 반일련합실현의 의의에 대하여, 조중인민이 단결하여 공동의 원쑤 일제를 반대하여 싸워야 한다는것을 사리를 따져가며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론리정연한 주장, 넓은 도량과 인품앞에 완고한 우사령은 감화되고말았다. 그는 그이를 보고 사령부선전대장이 되여달라고 요청까지 하였다. 그이께서 수락하시자 그는 몹시 흡족해하며 그 즉석에서 부하에게 임명장을 쓰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날 저녁에 구국군이 연길에서 푸르허로 넘어오는 조선청년 70∼80명을 붙잡아 끌어왔는데 우사령이 그들을 일제의 앞잡이라고 하면서 총살하려고 하였다. 조선사람들과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그의 편견과 오해는 예상보다 훨씬 더 지독하고 맹목적이였으며 집요하였다. 알고보니 그를 뒤에서 조종하는 조선인 모사가 있었다. 그가 우사령을 공산주의자들을 박해하도록 사촉하고있었다.  

그이께서는 그 모사도 만나보시고 우사령을 진지하게 설복하시여 마침내 70∼80명의 청년들을 석방하게 하시였으며 구국군안에 조선사람으로 부대를 따로 뭇고 별동대라는 이름을 가지고 활동할수 있도록 만드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처럼 반일부대와의 반일련합전선문제를 빛나게 해결하시였으며 별동대의 탄생으로 유격대의 합법화를 위한 기초작업을 끝내게 하시였다. 반일인민유격대창건앞에 가로놓였던 또 하나의 큰 장애가 제거되였다.

그이께서는 안도에서 먼저 별동대 제1지대를 조직하시고 리광에게 지시하시여 왕청지구에 별동대 제2지대를 조직하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반일부대들과의 사업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의 다른 하나로서 반일병사위원회를 내오시여 나타나는 편향들을 제때에 바로잡고 련합전선사업을 전면적으로 힘있게 밀고나갈수 있게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별동대를 내오신 다음 그것을 확대하고 재편성하여 빠른 시일안에 반일인민유격대를 내오기 위한 준비사업을 활기있게 다그치시였다.

그이께서는 유격대오의 구성성분와 지휘체계, 복장문제도 기존공식에 구애됨이 없이 유격전의 요구와 특성에 맞게 새롭게 해결하시였다. 반일인민유격대는 중대를 기본전투단위로 하여 조직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장 겸 정치위원으로 되시였다. 유격대의 군복은 가둑나무물을 들인 록색천으로 지었다. 왼쪽가슴에 다섯모가 난 붉은 천을 오려붙이고 거기에 중대번호를 써넣었다. 군모에는 붉은별을 달기로 하고 다리에는 흰 행전을 치기로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어머님 강반석녀사께서는 혁명투쟁의 길에서 덧쌓인 피로와 숙환으로 시름시름 앓으시면서도 부녀회원들과 함께 온갖 정성을 기울여 군복을 마르기도 하시고 재봉침을 손수 돌리기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4월 하순 안도에서 반일인민유격대를 조직하기 위한 최종회의를 소집하시고 입대지망자들에 대한 마지막심사와 함께 유격대결성식날자와 장소에 대한 토의를 진행하시였다. 그리고 당면한 활동지역을 확정하시고 유격대의 활동과 관련된 전반적대책을 수립하시였다.

력사에 길이 빛나는 반일인민유격대창건의 날은 드디여 왔다.

주체21(1932)년 4월 25일 반일인민유격대창건식이 안도현 소사하 무주툰 토기점골등판에서 있었다.

소사하마을은 이른아침부터 흥성거렸다. 유격대원들은 물론 소사하와 흥륭촌일대 사람들이 떨쳐나섰다. 유격대원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손길아래 자라난 조선혁명군 대원들,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의 핵심성원들, 안도의 청년핵심들 그리고 그이의 지시를 받고 각지 반일지하혁명조직들과 반군사조직들에서 선발해보낸 우수한 청년들이였다.

이깔나무숲으로 둘러싸인 등판의 공지에 새 군복차림에 총을 멘 름름한 모습의 유격대원들이 구분대단위로 정렬해있었다.

대렬 맨 우측에는 《반일인민유격대》라고 쓴 붉은기와 함께 차광수참모장이 서있었다. 각지 대표들과 소사하와 흥륭촌사람들은 대오의 량옆에 나누어섰다.

식장은 장중하고 숭엄하였다.

어머님께서 몸소 지으신 군복을 입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아버님이 물려주신 권총을 차시고 전투가방을 메시고 대렬앞으로 걸어나오시였다.

순간 《만세!》의 환호가 터져올랐다.

이윽고 력사에 길이 전할 반일인민유격대창건식이 진행되였다. 창건식시작을 알리는 나팔을 불자 차광수참모장이 위대한 수령님께 대렬보고를 하였다.

주체혁명의 첫 무장력의 창건자이신 위대한 수령님께 올리는 유격대원들의 충정과 맹세의 보고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손을 들어 답례를 보내시며 대렬을 사열하시였다. 사기충천한 대원들을 바라보시는 그이의 마음은 기쁨도 크셨지만 추억도 많아 격정으로 차넘치시였다. 이때 심정을 그이께서는 후날 회고록에서 이렇게 쓰시였다.

《대원들의 생신하고 름름한 모습을 정겹게 바라보는 내 눈앞에는 가지가지의 회억들이 구름처럼 떠올랐다. 이 무장대오의 결성을 위하여 우리의 동지들이 길은 얼마나 걸었고 모임은 얼마나 가졌고 연설은 얼마나 하였고 준령은 얼마나 넘었으며 그 과정에 가슴아픈 희생은 얼마나 당하였던가. 반일인민유격대는 수많은 동지들의 눈물겨운 로고와 피어린 투쟁과 희생의 대가로 이루어진 우리 혁명의 고귀한 산아였다.

나는 이날을 보지 못하고 희생된 동지들과 고인들을 토기점골등판에 모두 불러오고싶은 충동을 느끼며 가슴에 차넘치는 격정을 터뜨려 연설을 시작하였다.》

이날 하신 연설이 바로 《반일인민유격대창건에 즈음하여》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설에서 먼저 반일인민유격대창건을 위한 준비사업에서 거둔 빛나는 성과들을 총화하시고 우리 인민의 력사에서 처음으로 탄생한 반일인민유격대의 성격과 사명, 그 창건이 가지는 력사적의의에 대하여 밝히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반일인민유격대는 일제와 그 주구들을 반대하고 나라와 인민을 사랑하는 로동자, 농민, 애국청년들로써 조직되였으며 진정으로 인민의 리익을 보호하는 혁명적인 무장력입니다.

인민유격대의 목적과 사명은 조선에서 일제식민지통치를 뒤집어엎고 조선인민의 민족적독립과 사회적해방을 달성하는것입니다.

우리는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함으로써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주류인 무장투쟁을 직접 담당하고 이끌어나갈 원동력을 마련하게 되였으며 일본제국주의침략자들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주고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투쟁을 더욱 높은 단계로 발전시켜나갈수 있게 되였습니다.》

그이께서는 다음으로 조성된 정세의 요구에 맞게 모든 힘을 다하여 무장투쟁을 본격적으로 벌려나가야 한다고 가르치시면서 반일인민유격대확대강화문제, 유격근거지창설사업 추진문제, 중국인민들과의 반일통일전선 특히 중국인반일부대들과의 반일련합전선형성문제, 인민대중과의 혈연적련계 강화문제 등 군사정치적과업들을 구체적으로 밝히시였다.

그이께서는 력사적연설을 마치시면서 모두다 조국광복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기 위하여 혁명의 붉은 기치를 더욱 높이 추켜들고 일제를 반대하는 무장투쟁을 힘차게 벌려나가자고 열렬히 호소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력사적연설은 우리 인민의 력사에서 처음으로 되는 진정한 혁명적무장력의 탄생과 무장투쟁의 본격적개시를 선포한것으로 하여 유격대원들은 물론 인민들의 심장을 뜨겁게 격동시켰다. 그들은 한결같이 민족의 태양을 우러르며 그이께서 이끄시는 무장투쟁의 길에 청춘도 생명도 서슴없이 바쳐싸울 억센 결의를 다지고 또 다지였다.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께서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하시고 세상에 선포하신것은 진정 우리 인민의 혁명투쟁과 군건설에서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온 력사적사변이였다.

반일인민유격대가 창건됨으로써 우리 나라에서 참다운 주체형의 혁명무력, 선군혁명을 앞장에서 떠메고나갈수 있는 강력한 주력군이 탄생하게 되였으며 반일민족해방투쟁은 무장투쟁을 주류로 하여 새로운 높은 단계에서 승리적으로 전진할수 있게 되였다.

반일인민유격대가 창건된 때로부터 위대한 수령님의 선군혁명령도가 시작되였다.

반일인민유격대의 창건은 총대로 혁명을 개척하고 전진시켜나갈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총대중시사상, 선군사상과 선군혁명로선의 고귀한 결실이였다.

이때로부터 혁명무력의 영광스러운 력사, 군대를 먼저 창건하고 그에 의거하여 전반적조선혁명을 승리에로 이끌어나가는 선군혁명령도의 력사가 펼쳐지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며칠후 5.1절에 반일인민유격대 대오를 이끄시고 안도현성에 입성하시였다. 대오는 《반일인민유격대》라고 쓴 붉은기를 앞세우고 나팔을 불고 북을 두드리면서 보무당당히 열병행진을 하였다.

온 거리가 떨쳐나와 열렬히 환영하였다. 정든 고향과 조국을 떠나 백두산이 가까운 안도땅에 보짐을 풀고 살아온 칠순로인들, 젊은이들, 아낙네들, 아이들 할것없이 달려나와 환호하였다.

《백두산에 장군별이 솟아나 천만군사를 키운다.》, 《왜적을 칠 조선군사가 구름을 몰아타고 백두산에 내렸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떠돌아가더니 《하늘에서 내려왔나, 땅에서 솟아났나, 어느 산속에서 저런 끌끌한 군사가 나왔을가?!》라고 하면서 기쁨을 금치 못해하였다.

반일부대 장교들과 병사들까지 거리에 달려나와 유격대오를 보고 엄지손가락을 흔들며 환영의 인사를 보내고 축하의 박수를 쳐주었다.

무력시위를 끝낸 대오는 토기점골로 돌아왔다. 차광수 등 지휘관들이 몸져누워계신 강반석어머님을 모셔왔다.

어머님께서는 언제나와 같이 따뜻한 미소로 병고의 모진 아픔을 감추시고 유격대원들곁에 다가오시여 총이며 탄띠며 오각별을 오래오래 만져보기도 하시고 대원들의 어깨도 쓸어보시였다.

《정말 장하구나. 우리 군대가 생겼으니 이제는 됐다. 왜놈들을 치고 나라를 꼭 찾아야 한다!》

어머님의 음성은 젖어있었다. 유격대원들은 어머님의 말씀을 가슴깊이 간직하며 그것을 조국과 온 겨레의 부탁으로 받아안았다.

안도에서 울린 반일인민유격대창건의 총성은 연길, 왕청, 훈춘, 화룡을 비롯한 동만의 여러 지역들에서 김책, 최용건, 리홍광, 리동광 등 조선의 견실한 혁명가들에 의하여 북만과 남만에서도 울려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