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태양 김정일장군」(3) 중에서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선군혁명앞에 나선 중요한 과업의 하나였다.

「고난의 행군」시기 우리 인민이 겪은 가장 큰 고통은 식량난이었다.

제국주의반동들의 고립압살과 경제적 봉쇄 그리고 여러해째 계속되는 자연재해로 하여 조성된 식량난은 참으로 혹심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식량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한 순간도  마음을 놓지 못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주체85(1996) 7 22일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이렇게 절절히 말씀하시었다.

『나는 지금 우리 인민들을 배불리 먹이지 못하는 것이 제일 가슴아픕니다. 요즘은 앉으나 서나 누우나 어떻게 하면 우리 인민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겠는가, 어떻게 하면 더 잘살게 하겠는가 하는 생각뿐입니다.

알곡생산을 늘여 인민들의 먹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 위하여 늘 마음쓰시면서 그 방도를 모색하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산이 많고 냉해가 심한 우리 나라에서는 감자농사를 많이 하여 식량문제를 푸는 길로 나가야 한다고 보시었다.

감자는 생산성이 높은 다수확작물이며 내한성 작물이다. 산간지대에서는 감자농사가 강냉이농사에 비하여 수확고가 높으며 모든 면에서 유리하다.

감자가 인간생활에 널리 이용되기 시작한 역사는 다른 작물에 비해서 그리 오래지 않다. 그러나 오늘 감자는 세계적으로 널리 재배되는 인기있는 농산물로, 주식으로 적극 이용되고 있다. 그것은 감자의 재배적 특성과 유익성에 기인되고 있다.

감자는 이러저러한 기후와 풍토에 잘 순응하기 때문에 쉽게 재배할 수 있으며 불리한 자연지리적 조건에서도 좋은 수확을 거둘 수 있다. 게다가 감자에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필수영양분이 풍부하게 포함되어있다.

유럽에서는 한때 만연하여 많은 사망자를 내던 괴혈병이 감자가 퍼진 다음부터 없어졌다고 하며 비타민과 각종 영양분이 많이 들어있는 감자를 일명 「대지의 사과」로, 장수식료품으로 부르기도 한다.

우리 나라에서 감자재배의 역사가 시작된지는 두세기 가까이 된다. 하지만 농업부문 일꾼들이 강냉이만 내리 먹이면서 감자농사에 관심을 돌리지 않다보니 그것은 점점 뒷걸음 치는 형편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생산성이 높고 건강장수식품인 감자를 식량문제해결의 근본방도의 하나로 보시고 감자농사에 큰 힘을 넣도록 하시었다.

주체85(1996) 5 31일 양강도를 찾으신 장군님께서는 도당책임일꾼에게 양강도에서 감자농사를 한번 잘해보라고, 감자농사를 해야 우리 나라에서 먹는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우리 함께 감자농사를 잘해보자고 강조하시었다.

이태후인 주체87(1998) 1월 중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양강도를 또다시 찾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전해의 감자농사정형을 요해하시고 선언하시듯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양강도에서는 감자농사에 힘을 집중하여야 합니다. 어떻게 하나 감자농사를 잘하여 우리 나라를 아시아의 감자왕국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순간 일꾼들은 이제 멀지 않아 아시아의 「감자왕국」으로 솟아오를 조국의 휘황한 내일을 그려보며 커다란 감격과 환희에 휩싸였다.

장군님께서는 신심에 넘쳐있는 일꾼들을 미덥게 둘러보시며 동무들은 나를 돕고 나는 동무들을 도와 감자농사에서 꼭 혁명을 일으키자고 절절히 말씀하시었다.

그날 장군님께서는 다수확감자종자해결, 재배방법개선, 연구기관과 필요한 시설마련 등 감자농사에서 전환을 일으키기 위한 방도들을 일일이 가르쳐주시었다. 그리하여 대홍단군에서는 감자농사에서 혁명을 일으켜 우리 나라를 아시아의 「감자왕국」으로 전변시킬 수 있는 확고한 전망이 마련되게 되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감자농사혁명의 불길을 지펴주시기 위하여 그해 10 1일 몸소 대홍단군을 현지지도하시었다.

대홍단군을 찾으신 장군님께서는 일꾼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감자농사에서 혁명을 일으킬 데 대하여』라는 역사적인 담화를 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담화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었다.

『감자농사에서 혁명을 일으켜 먹는 문제를 풀려고 하는 것은 우리 당이 내놓은 중요한 방침입니다. 우리 당은 농업생산을 추켜세우기 위하여 감자농사에서부터 혁명을 일으키려고 합니다.

담화에서 장군님께서는 양강도는 감자농사를 대대적으로 하는 방향으로 나가며 함경남도와 함경북도, 자강도와 강원도, 황해북도에서도 감자농사를 할 데 대하여 강조하시었다.

그러시면서 감자농사에서 근본적인 전환을 일으키는 사업은 하나의 혁명인 것만큼 본보기단위가 있어야 한다고, 대홍단군종합농장을 본보기로 꾸려야 한다고 하시었다.

그분의 말씀에는 대홍단군을 본보기로 하여 온 나라에 감자농사혁명의 불길이 세차게 타 번지게 하시려는 숭고한 뜻이 담겨져 있었다.  

대홍단군을 감자농사의 본보기로 꾸리시려는 것은 장군님의 확고한 결심이고 의지였다.

그후 대홍단군을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모자도 쓰시지 않으신채 찬바람을 맞으시며 눈덮인 포전머리에 한시간나마 서 계시면서 내가 왜 대홍단군을 감자농사의 본보기로, 사회주의이상촌으로 꾸리려고 하는지 아는가, 이곳은 수령님의 영도업적이 깃들어있는 역사의 땅이고 항일혁명선열들의 피가 스며있는 혁명전적지이기 때문이라고 절절히  말씀하시었다. 대홍단군을 감자농사의 본보기로, 사회주의이상촌으로 꾸리시려는 자신의 의도를 일꾼들이 깊이 새기고 더욱 분발하도록 깨우쳐주시는 간곡한 가르치심이었다.

그후에도 장군님께서는 감자파종기, 수확기, 분무기와 함께 150HP트랙터를 수십대나 보내주시고 전국이 대홍단군감자농사를 돕도록 하시었던 것이다.

참으로 경애하는 장군님의 주체87(1998) 10 1일 대홍단군에 대한 현지지도는 온 나라에 감자농사혁명의 불길을 지펴 올린 역사적인 현지지도였다.

그날 장군님께서는 감자농사를 대대적으로 하자면 노력이 더 많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

『대홍단군종합농장에 당원제대군인들을 한 1,000명 보내주겠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전직후에 현대적인 농장을 꾸리기 위하여 여기에 제대군인들을 보내주시었습니다. 나는 오늘 적들의 고립압살책동을 짓부수고 사회주의를 옹호고수하기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 시기지만 감자농사를 잘하기 위하여 여기에 제대군인들을 보내주려고 합니다.

순간 일꾼들은 격정을 금치 못하며 그분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었다.

감격에 겨워있는 일꾼들을 둘러보시며 장군님께서는 대홍단군종합농장에 제대군인들을 1,000명 보내주어 감자농사를 지으면서 그들이 노농적위대의 핵심이 되어 조국을 보위하게 하려고 한다고, 대홍단군종합농장에서 당원제대군인들을 1,000명 받으면 계급구성이 달라지게 될 것이고 그들이 농장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하시면서 다음해 봄에 제대군인들을 보내주면 새해의 진군을 다그치는데서 아주 좋을 것이라고 하시었다.

이윽하여 장군님께서는 대홍단군종합농장에서는 제대군인들을 받을 준비를 잘해야 한다고, 다음해 4.15까지 살림집을 적어도 200300세대는 지어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명년봄에 제대군인들을 보내주겠다고, 그들과 함께 감자농사를 한번 잘해보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이렇게 되어 끌끌한 당원제대군인 1,000명이 대홍단으로 달려오게 되었고 감자농사에서는 새로운 혁신이 일어나게 되었다.

한해후에 또다시 대홍단군을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한 제대군인가정에 들리시었다.

아직은 고향의 부모들도 자식들의 집을 찾지 못하였고 안해도 친정집에서 이사짐조차 가져오지 못한 그런 때에   장군님께서 먼저 이들의 가정을 찾아주신 것이다.

살림집에 들어서신 장군님께서는 친자식의 살림살이를 살피듯 식장의 간장병까지 보아주시고 살림방의 침대에 앉으시어 생활형편을 하나하나 알아보시었다.

이윽하여 장군님께서는 그들부부에게 군사복무는 어디에서 하였는가고 다정히 물어주시고 군복에 달려있는 훈장을 보아도 이 동무들이 군대에서 일을 많이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지금 각오도 좋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대홍단에 온 제대군인들은 조국보위초소에서 위훈을 세우고 사회주의농업전선에 달려온 참다운 혁명가, 열렬한 애국자들입니다.

이런 동무들이 대홍단군의 기둥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시면서 이 백두삼천리벌을 동무들에게 맡긴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대홍단군의 기둥, 이것은 그들이 이 땅의 주인이 되기를 바라시는 그분의 한없는 사랑과 크나큰 믿음이었다. 그 사랑, 그 믿음을 안고 제대군인들은 혁명적 군인정신을 발휘하면서 힘찬 투쟁을 벌이었다.

그리하여 대홍단군에서는 주체89(2000)년에 군이 생겨 처음 보는 흐뭇한 결실을 마련했다.  

이것은 감자농사혁명의 포성이 울린지 2년밖에 안되는 짧은 기간에 대홍단군감자농사가 높은 수준에 올라섰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대홍단에 달려온 제대군인들은 감자생산을 정보당 40t, 50t 나아가서 70t, 80t까지 올릴 때 경애하는 장군님의 감자농사혁명방침을 관철했다고 떳떳이 말할 수 있다고 하면서 더 높은 목표를 내세우고 투쟁을 계속 벌여 나갔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마련해주신 준마를 타고 감자농사의 앞장에서 내달리는 그들은 오늘 대홍단정신, 대홍단기풍으로 끊임없는 비약을 이룩하고 있으며 온 나라가 대홍단의 모범을 따라 감자농사에서 전환을 일으키고 있다.

이렇듯 경애하는 장군님의 대홍단군에 대한 끊임없는 현지지도에 의하여 전국적으로 감자재배면적이 많이 늘어나고 ha당 감자생산량이 그전의 몇배로 부쩍 늘어났다.

온 나라에 감자풍년가가 높이 울렸다.

그런 가운데 「대홍단의 감자꽃바다」가 선군8경의 하나로 자랑떨치게 되었다.

감자농사혁명에서 이룩된 성과는 남조선에도 널리 알려져 남조선신문 「중앙일보」에 『김정일국방위원장 <감자농사 사령관 되겠다>』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실었다.

『북의 농업시설과 농장에는 감자와 관련한 당구호가 곳곳에 적혀있다. <감자농사에서 전환을 일으켜 식량문제를 풀자>, <감자를 주식으로 식생활을 개선하자> 등이다. 일선 현장을 찾아가면 북에서 이야기하는 <감자혁명>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감자증산에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전면에 섰다. 1998 10 1김정일국방위원장의 양강도 대홍단감자연구소방문은 북의 밭농사구조변혁의 신호탄이었다. 이날 감자농사를 통이 크게 잘해보아야겠다, 감자농사를 잘해 우리 나라를 아시아의 감자왕국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감자재배확대를 지시했다. 그러면서 이제부터는 감자농사 사령관이 되려 한다고 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식량문제를 원만히 풀기 위하여 감자농사혁명과 함께 두벌농사를 대대적으로 발전시키는데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두벌농사의 새 시대를 펼치실 구상을 안으시고 주체84(1995)년에 어느 한 보리종자를 증식시켜 옹진지구에서 논밭앞그루로 심고 비배관리를 잘하도록 하시었으며 보리파종과 수확을 제때에 할 수 있도록 밀보리파종기와 수확기를 보내주시었다. 그러시고 협동농장들의 생산계획을 농민들의 열의가 떨어지지 않게 주도록 하시는 등 두벌농사시험에서 나서는 제반 문제들을 일일이 풀어주시었다. 그리하여 황해남도 옹진지구에서 두벌농사시험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그 경험이 다른 지방들에 보급되기 시작하였으며 강원도의 일부 협동농장들에서도 좋은 성과와 경험이 창조되었다.

주체85(1996) 6 15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에게 강원도의 일부 협동농장들에서의 키큰모에 의한 두벌농사경험과 성과를 소개해주시었다.

강원도의 일부 협동농장들에서는 앞그루로 감자를 심고 뒷그루로 키큰모를 심었는데 여러가지 좋은 점이 있었다. 우선 감자넝쿨을 뒤집어엎으면 녹비가 되어 좋고 잡초를 다 갈아엎기 때문에 살초제를 치지 않아 좋으며 물코끼리벌레가 성하는 6 10일 이후에 키큰모를 내니 벌레도 죽이고 살충제도 치지 않아서 더욱 좋았다. 그리고 키큰모를 내면 벼의 정당소출과 비료의 효과성을 높이고 비닐박막을 비롯한 자재를 쓰지 않으면서 볏모를 잘 길러낼 수 있을 뿐 아니라 병해충 피해를 막고 앞그루작물의 완전결실도 보장할 수 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이런 방법으로 두벌농사를 하는 경우에는 밭갈이와 논갈이를 두번 해야 할 것이라고 하시면서 두벌농사에 큰 힘을 넣을 데 대하여 강조하시었다.

그후에도 장군님께서는 두벌농사면적을 늘이는데서 제기되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시고 키큰모를 재배하는 수만정보의 논에 앞그루로 보리, 감자 등을 심어 두벌농사를 하도록 하시었다.

결과 두벌농사에서는 커다란 전변이 일어났다. 어버이수령님의 현지지도단위인 황해남도 연안군 읍협동농장을 비롯하여 수많은 협동농장들에서 경제조직사업을 짜고 들고 이악하게 농사를 지어 앞그루로 봄밀보리를 심고 뒷그루로 키큰모를 심어 정보당 수확고를 훨씬 높였다. 그리하여 2모작논에서 정보당 많은 양의 알곡을 생산하였다.

이뿐이 아니라 북방의 자강도 장강군 읍협동농장에서는 세벌농사까지 하는 성과를 이룩하였다. 주체88(1999) 6 15일 장강군 읍협동농장을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들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요해하시고 대단히 만족해하시었다. 그리고 떠나실 때에는 세벌농사에서 좋은 소식이 오기를 바란다고 다시금 크나큰 믿음과 기대를 표시하시었다. 그 믿음과 기대에 보답할 일념을 안고 이곳 농장원들은 세벌농사포전에 봄무우와 감자, 가을배추를 심고 가꾸어 높은 수확을 거두었다.

그해 9 14일 또다시 이곳 농장을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세벌농사에서 이룩된 성과를 보고 받으시고 이 농장의 경험을 모든 농장들이 적극 따라 배우도록 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89(2000) 11 2일에도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두벌농사에 대하여 다시금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면서 두벌농사에서 알곡 대 알곡을 기본으로 할 데 대하여 말씀하시었다.

이렇듯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명한 영도에 의하여 두벌농사에서 커다란 성과가 이룩되어 우리 나라에서는 인민들의 먹는 문제를 원만히 해결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전망이 열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