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태양 김정일장군」(4) 중에서 

 

  

  
 

 선군시대에 사람들의 생활조건과 환경도 새로운 높이에 올라섰다.   

온 나라를 사회주의선경, 노동당시대의 무릉도원으로 꾸리시려는 것이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구상이었다.

수많은 도시와 농촌마을들이 새 세기에 들어와 그 면모를 일신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선군의 위력에 의해 창조되는 우리 인민의 이 사회주의생활의 화폭을 더없이 소중히 여기시며 온 나라를 사회주의선경으로 가꾸어가시었다.

주체90(2001)년 7월 11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황해북도 서흥군 범안리를 현지지도하시었다.

안개비가 소리없이 내리는 이른 새벽 범안땅을 찾으신 장군님께서는 마을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둔덕에 오르시어 한 폭의 그림마냥 아름답게 펼쳐진 농촌전경을  정다운 시선으로 바라보시었다.  

새로 지은 아담한 농촌문화주택들과 과일나무들, 양어장과 발전소가 한데 어울려 조화를 이룬 농촌풍경은 말 그대로 사회주의선경이었다.

장군님의 안광에는 기쁨이 어리었다.

그분께서는 일꾼들을 둘러보시며 아주 멋있다고, 농촌문화주택들과 발전소까지 지어놓으니 풍치가 어울린다고, 별세상에 온 것 같다고 하시며 더없이 기뻐하시었다.

이윽하여 장군님께서는 양지바른 산기슭에 새로 지은 살림집과 문화후생시설들을 돌아보시면서 산간벽지로 불리 우던 범안땅에 소리높이 자랑할 수 있는 훌륭한 농촌마을이 일떠선 데 대하여 거듭 치하하시었다. 그러시고는 범안리가 무릉도원같다고, 아주 훌륭하다고, 양어장뿐 아니라 그 주변의 낡은 집들을 들어내고 농촌문화주택까지 건설해놓으니 풍치가 어울린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궁궐같은 기와집들이 즐비하게 들어서고 뒷동산에는 갖가지 과일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앞 벌에는 풍요한 전야와 규모있는 양어장이 펼쳐져 있는 것이 정말 멋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노동당시대의 무릉도원이고 사회주의선경입니다.』

그러시고 최근에 황해북도에는 처음 왔는데 도안의 일꾼들과  근로자들이 애국심을 발휘하여 소문없이 많은 일을 하였다고 높이 평가하시었다.

범안리가 노동당시대의 무릉도원으로, 사회주의선경으로 꾸려지게 된데는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세심하고도 자애로운 손길이 어리어있었다.

원래 범안리라는 지명은 이곳에 있는 지하수가 솟구쳐 나오는 바위산이 마치 하늘로 날아 오르는 기러기같다고 하여 「뜰 범」자에 「기러기 안」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었다. 여기 바위산에는 여름에 13℃, 겨울에는 12℃ 되는 물이 초당 650ℓ씩 샘솟는 원소가 있어 양어하기에 유리한 조건이 갖추어져 있었다.

반면에 이 원소의 영향으로 논들은 냉습지가 되었기 때문에 1950년대까지만 하여도 벼를 ha당 1∼1.5t밖에 내지 못하였다.

주체46(1957)년 5월 26일 범안리를 현지지도하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러한 지대적 특성을 헤아리시고 양어장을 건설하여 물고기를 기르고 양어장에서 물을 덥혀 논에 댈 데 대하여 그리고 양지바른 산기슭에 문화주택을 건설하고 뒤산에는 과수원을 조성하고 축산업도 발전시킬 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었다.

그러나 일꾼들은 수령님의 교시를 대담하고 통이 크게 관철하지 못하였다. 양어장을 건설하기는 하였으나 소극적으로 하였고 양어사업도 쬐쬐하게 하여 인민들이 실지로 덕을 보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실태를 요해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88(1999)년 11월 11일 서흥군 범안리의 24ha의 냉습지논을 정리하여 현대적인 양어장을 건설할 데 대한 방침을 주시고 도안의 1만여명의 노농적위대원들을 동원하여 빠른 기간내에 건설하도록 하시었다. 그리고 그해 12월 11일에는 건설에 필요한 자재들을 보내주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었다.

그리하여 범안리는 년산 수백t의 물고기생산능력을 가진 양어장과 수백KW능력의 발전소, 100동의 살림집과 유치원 및 편의봉사시설들을 갖춘 사회주의선경으로 꾸려지게 된 것이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마을어귀에 있는 한 제대군인 살림집을 찾으시었다.

범안리에 새로 건설된 살림집은 방 3칸에 부엌, 전실, 세면장, 창고 등이 다 갖추어져있는 문화주택이었다.

방에 들어서신 장군님께서는 방송이 잘 나오는가, 장마철폭우에 비는 새지 않았는가, 수도물은 제대로 나오는가, 겨울에 춥지 않던가고 일일이 요해하시었다. 이윽하여 부엌으로 가신 장군님께서는 밥은 전기로 짓는 가고 물으시었다.

순간 일꾼들은 그분께 아무 말씀도 드리지 못하였다.

일꾼들의 속마음을 헤아려보신 장군님께서는 대뜸 그러면 전기화가 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고 하시면서 부엌에 전기로 밥을 지어먹기 위한 스위치는 달아놓았지만 아직 전기로 난방과 밥을 지어 먹는 것까지는 해결하지 못하였는데 전기로 난방도 하고 밥도 지어먹어야 전기화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고, 발전소에서 전기를 더 많이 생산하여 전기로 난방도 하고 밥도 지어먹을 수 있게 하여야 한다고 하시었다.

일꾼들이 자책감으로 얼굴을 들지 못하는데 장군님께서는 조용히 웃으시며 제대군인부부에게 이제 전기화가 완전히 실현되어 전기로 밥을 지어먹을 수 있게 되면 자신께 편지를 써보내라고 정을 담아 말씀하시었다.

그 말씀에 그들부부는 감격에 겨워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웃으시며 하시는 말씀이었지만 그것은 일꾼들에 대한 엄한 비판이었고 그 비판속에는 인민들을 끝없이 사랑하시는 그분의 뜨거운 진정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훗날 그들부부는 전기화가 실현되었을 때 그 소식을 경애하는 장군님께 편지로 정중히 알려드리었다.

그들의 소박한 편지를 받아보신 장군님께서는 좋은 소식을 알려주어 고맙다는 사랑의 친필을 보내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날 범안리를 다 돌아보시고나서 보던중 제일이라고, 만점이라고 다시금 치하하시며 『황해북도안의 모든 리와 마을들을 범안리처럼 노동당시대의 무릉도원으로 꾸리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여야 합니다. 황해북도뿐아니라 다른 도와 군들에서도 모든 리와 마을들을 범안리처럼 꾸리기 위한 투쟁을 벌여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시었다.

그분의 가르치심은 온 나라를 노동당시대의 무릉도원으로 꾸리기 위한 투쟁에서 틀어쥐고 나가야 할 강령적 지침으로, 인민들을 강성대국건설에로 불러일으키는 투쟁의 기치로 되었다.

황해남도에서는 대규모의 토지가 사회주의조선의 땅답게 정리되는데 맞게 지난 시기의 낡은 집들을 헐어버리고 농촌마을들을 문화농촌으로 꾸리기 위한 투쟁을 활발히 벌렸다. 그리하여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영도업적이 깃들어있는 연안군 정촌리, 청단군 화산리, 삼천군 추릉리, 강령군 내동리 등 도안의 여러 농촌마을들이 무릉도원으로 꾸려졌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90(2001)년 황해남도의 여러 곳을 현지지도하시면서 황해남도의 농촌집들이 이제는 때벗이를 하였다고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시었다.

온 나라를 선군시대의 무릉도원으로 꾸리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영도의 손길은 삼지연군에도 뜨겁게 미치었다.

장군님의 구상에 따라 백두산지구건설이 한창이던 주체 91(2002)년 10월 그분께서는 삼지연군의 건설현장을 찾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변모된 삼지연읍을 돌아보시면서 한채의 집을 지어도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최상의 수준을 보장하여야 한다고, 모든 건축물들을 노동당시대의 맛이 나게 건설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시었다.

이윽고 살림집앞에 이르신 그분께서는 난방문제로부터 벽두터이에 이르기까지 세세히 살펴보시고 고산지대의 특성에 맞게 설계도 잘하고 시공도 알심있게 하였다고 하시며 인민들에게 쓸모있고 문화적인 이런 살림집들을 더 많이 건설해주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들의 수고를 치하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이날 백두의 수림속에 독특한 모양을 가진 문화후생시설들과 살림집들, 고산특유의 공원과 이채로운 건축물들이 솟아나 한폭의 그림을 펼쳐놓은듯 한 삼지연읍의 희한한 전경을 바라보시면서 삼지연이 몇해사이에 천지개벽되었다고, 삼지연읍이 이제는 하나의 휴양도시처럼 아름답게 변모되었다고, 이곳에 훌륭한 인민의 휴양소를 일떠 세우려고 하시던 수령님의 소원이 드디어 실현되게 되었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이렇듯 장군님의 정력적인 영도와 세심한 지도에 의하여 백두산지구가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훌륭히 꾸려지고 나라의 이르는 곳마다에는 노동당시대의 무릉도원이 수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천지개벽한 박천군 맹중노동자구의 아름다운 화폭이 그것을 생동한 현실로 보여주었다. 시원하게 뻗은 도로를 따라 줄지어 늘어선 가로수들, 산기슭에 아담하게 자리잡은 문화주택들 어느 하나를 보아도 감탄이 앞선다.

박천군 맹중노동자구가 이처럼 훌륭히 꾸려지게 된데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뜨거운 사랑과 은정이 깃들어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주체92(2003)년 2월 15일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에게 이번에 인민군대의 한 군관학교를 시찰하러 갔다가 박천군 읍지구와 맹중노동자구가 한심하기 때문에 새로 꾸리기 위한 조치를 취한데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었다.

『최근에 봄철과 가을철에 국토관리총동원사업을 벌리고 있는데 마을과 거리, 공장과 학교를 비롯하여 향토를 잘 꾸리기 위한 사업을 더욱 힘있게 밀고 나가도록 하여야 합니다.』

장군님께서는 이날 평안북도에서는 박천군을 본보기단위로 잘 꾸리고 일반화하기 위한 사업을 적극 벌리도록 하며 박천군을 꾸리는데 필요한 시멘트와 피치, 목재와 강재를 비롯한 자재는 평안북도에서 내부예비를 동원하여 가능한껏 자체로 보장하고 모자라는 것은 국가계획에 맞물려 보장해주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었다.

그분의 말씀에는 뒤떨어졌던 단위를 끌어올려 거기에서 모범을 창조하고 그것을 온 나라에 일반화함으로써 사회주의생산문화, 생활문화확립의 열풍을 일으키시려는 구상이 깃들어있었다.

자기가 사는 거리와 마을을 잘 꾸리지 못한 것을 책망하실 대신 인민들에게 좋은 살림집을 더 많이 지어줄 데 대한 장군님의 은정어린 가르치심에 접한 평안북도안의 일꾼들과 근로자들은 죄책감을 금치 못해하면서 즉시 건설에 달라붙었다.

그들은 장군님께서 평가하여 주신 살림집설계들을 받아들이고 살림집건설에서 새로운 시공방법을 도입하여 건설대상을 짧은 기간에 질적으로 완공하였다. 그리고 비가 억수로 퍼부어 물이 허리를 치는 속에서도 작업을 중단하지 않고 전투를 계속 진행하여 6만여㎥의 암반을 까내고 고개마루를 10여m나 낮추어 도로를 곧게 펴놓았다.

건설자들의 결사관철의 투쟁정신에 의하여 반년사이에 박천군 박천읍과 맹중노동자구에 1,400여세대의 살림집과 근 100동의 공공건물 및 문화후생시설들이 새로 건설되었으며 도로를 새로 곧추 내고 도로와 마을주변에 62만여그루의 나무를 심게 되었다. 이렇게 되어 박천읍과 맹중노동자구는 자기의 모습을 일신하고 천지개벽하였던 것이다.

이듬해 장군님께서는 중국방문을 마치고 돌아오시는 길에서 새로 꾸려진 맹중노동자구를 보게 되시었다. 훗날 장군님께서는 일꾼들에게 맹중노동자구에 단층살림집을 아담하게 잘 지었는데 우리 인민들은 그런 살림집을 좋아한다고, 살림집을 아담하고 보기 좋게 잘 지었기 때문에 그 앞을 일부러 천천히 지나가면서 보았다고, 도, 시, 군들에서는 살림집을 한채 지어도 맹중노동자구에 지은 집들처럼 잘 지어야 하겠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인민들에게 더 좋은 내일을 마련해주시기 위하여 끊임없이 이어가시는 현지지도의 바쁘신 길에서도  자그마한 마을에 피어난 인민들의 행복한 미래를 그려보시는 장군님이시었다.

이는 비단 박천군 맹중노동자구만이 아니었다.

주체93(2004)년 4월 11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현지지도의 길에서 함경남도 함주군 운동리마을앞을 지나게 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차창으로 비껴 드는 한 폭의 그림과 같은 마을전경을 바라보시었다. 아담한 문화주택을 메우며 연분홍살구꽃들이 활짝 피어 만발하였는데 해빛을 받아 그 아름다움은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차를 천천히 몰게 하시었다.

활짝 피어난 꽃속에 묻힌 마을은 보면 볼수록 희한하고 별세상 같기도 하였다.

마을을 거듭거듭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는 함주군 운동리마을이 아주 아담하고 깨끗하다고 하시며 못내 기뻐하시었다.

『집집마다 살구나무를 많이 심었는데 보기 좋습니다. 살구꽃속에 묻혀있는 운동리마을은 그야말로 살구동네입니다.』

이 말씀은 정녕 장군님의 가르치심대로 자기들의 생활을 아름답고 풍만하게 꾸려 나가고 있는 운동리사람들에 대한 최대의 평가였고 찬사의 말씀이었다.

이어 장군님께서는 일꾼들을 보시며 다니다가 저런 모습을 볼 때가 제일 기쁘고 아무리 일해도 힘든줄을 모르겠다고 하시면서 지금 사회에서도 인민군대의 모범을 따라 배워 자기가 사는 거리와 마을을 선군시대 사회주의선경으로 훌륭히 꾸리기 위한 사업을 활발히 벌여 나가고 있다고, 함경남도에서 집집마다 과일나무를 많이 심을 데 대한 당의 방침을 잘 관철하고 있다고, 전국의 모든 농촌리들에서 집집마다 5그루이상의 과일나무를 심을 데 대한 당의 방침을 철저히 관철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이르신 후에야 승용차의 속도를 높이도록 하시었다.

선군의 빛발 아래 태어난 살구동네.

정녕 살구동네는 선군시대가 안아온 사회주의선경이었다.

강원도 안변군도 선군시대의 요구에 맞게 희한하게 꾸려져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냈다.

정신이 번쩍 들게 건설된 「감나무거리」, 「은행나무거리」, 「분홍꽃아카시아나무거리」, 「살구나무거리」 그리고 제대군관마을, 그 어디를 보아도 그림과 같이 아름다운 선경이다.

장군님께서는 안변군을 큰 도시보다 더 잘 꾸렸다고, 도시경영에서 제일이라고 하시면서 군을 꾸리기 위하여 애써 노력한 이곳 일꾼들과 인민들에게 감사를 보내주시는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주시었다.

이처럼 새 세기에 들어와 박천군, 사리원시, 낭림군, 안변군을 비롯하여 도처에 사회주의선경이 생겨났다.

인민들에게 훌륭한 생활조건을 마련해주시려고 마음 쓰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세심한 사랑은 살림집의 문패에도 어려있다.

장군님께서 서흥군 범안리의 한 제대군인 농장원부부의 가정을 찾으시어 친부모의 심정으로 살림살이형편을 따뜻이 보살펴주시고 뜨락에서 마을의 살림집들을 둘러보실 때였다.

그분께서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일꾼들에게 왜 집집마다 누구의 집이라는 문패가 없는 가고 물으시었다.

뜻밖의 물으심 이었다. 누구도 대답을 드리지 못하였다. 사실 새 마을에 사는 사람들도 간혹 자기 집을 헛갈릴 때가 있었지만 오히려 이것을 새집들이 경사 후에 흔히 있을 수 있는 「행복한 착각」으로 여겨왔다.

장군님께서는 말없이 서있는 일꾼들을 보시며 옛날에는 집집마다 여러가지 과일나무들을 많이 심어놓고 「배나무집」이요, 「감나무집」이요 하는 식으로 이름을 지어 불렀는데 집주변에 여러가지 과일나무들을 많이 심도록 하며 집들이 똑같아 가려보기 힘들므로 살림집들에 문패를 써붙이는 것이 좋겠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표준설계를 가지고 꼭같이 지어놓은 살림집들에 문패가 없으면 어느 집이 누구네 집인지 인차 가려보기 힘듭니다.』

그로부터 얼마후 장군님께서는 일꾼들과 자리를 같이 하시고 며칠전 범안리에 가시였을 때 지적하신 문패문제를 상기시키시면서 노동당시대에도 문패가 있어야 한다고 다시금 강조하시었다. 그리하여 범안리를 비롯하여 새로 꾸려진 농촌마을의 새 집들마다에 문패가 나붙었다.

이렇듯 경애하는 장군님의 정력적인 영도에 의하여 온 나라 이르는 곳마다에 21세기 노동당시대의 무릉도원들이 수많이 생겨나 인민들의 행복한 생활이 활짝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