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태양 김정일장군」(3) 중에서

 


 

 

    장자강의 불야성, 이것은 자강도 강계시와 장강군, 성간군을 비롯하여 장자강기슭을 따라 펼쳐진 선군시대의 풍경이다.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 드넓은 광장의 환한 불빛이며 강변에 즐비하게 늘어선 아파트의 창가마다에서 쏟아져 나오는 밝은 불빛들, 거리와 유보도를 따라 흐르는 가로등불빛들과 물위에 두둥실 뜬 유람선같은 강계닭내포국집을 비롯한 수많은 봉사망들과 건물들의 눈부신 불빛들, 밤하늘의 별무리가 내려앉은 듯 온 강계시에 차넘치는 불빛들은 볼수록 장관이다.

이러한 풍경은 고난의 모진 시련과 난관을 이겨내고 낙원에로의 길을 열어놓은 자강도노동자계급과 인민들의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투쟁정신인 「강계정신」에 의하여 마련된 것이다.

사회주의건설의 전환적 국면이 열리고 있던 어느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일꾼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난의 행군>시기에 나에게 제일 큰 힘을 준 것이 강계정신이었습니다. 강계정신은 우리 혁명의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나에게 힘을 주고 의지가 되었으며 우리 인민이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승리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나는 강계정신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장군님께서 그토록 잊지 못하시는 자강도는 혁명의 뿌리가 깊은 고장이다. 만경대가문의 위인들의 발자취가 스며있는 이 역사의 땅은 어려운 시기마다 혁명의 수뇌부와 운명을 함께 해온 전통있는 땅이다. 자강도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해방전쟁의 결정적승리를 이룩하실 원대한 구상을 무르익히신 곳이며 승리할 내일을 그려보시고 준엄한 전쟁시기에 기계공장들을 건설해주신 곳이다.  

자강도는 또한 「고난의 행군」의 가장 치열한 전구였다. 이 고장은 원래 산골지방인데다 불리한 기후조건으로 하여 농사가 잘 안되는 곳이어서 자강도사람들은 「고난의 행군」시기 다른 고장들보다 식량고생을 더 많이 하였다. 「고난의 행군」시기 식품아닌 「대용식품」이라는 말도 처음으로 여기에서 나왔다. 그러나 거름짐을 지고 농장밭으로 나간 사람들, 숨이 지는 순간에도 기대를 돌린 사람들이 바로 자강도사람들이었다.

「고난의 행군」을 어떻게 승리적으로 결속짓겠는가 하는 것을 많이 생각해오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자강도를 추켜세워 본보기를 창조할 것을 결심하시었다.

주체85(1996)년 10월 17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자강도당책임일꾼을 부르시어 그가 만들어 제출한 전력문제해결을 위한 대책안을 함께 토론해주시면서 군중적인 운동으로 중소규모발전소를 많이 건설할 데 대하여 강조하시면서 발전소건설형식과 건설방법, 발전설비설계보장대책까지 일일이 가르쳐주시었다. 그후에도 장군님께서는 도의 중소형발전소건설정형을 자주 알아보시고 대책을 세워주시었으며 선행단위로서의 영예를 떨치도록 고무해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크나큰 믿음을 심장으로 받아 안은 이곳 노동자계급과 인민들은 산악처럼 일떠섰다. 장군님께서 우리 자강도사람들을 「고난의 행군」의 돌파구를 열어 나가는 기수가 될 것을 바라고 계시는데 무엇을 꺼리며 무엇을 두려워하랴, 한몸이 열 조각, 백 조각이 난다한들 장군님의 믿음을 안고 용기백배하여 그분의 높은 뜻을 자강땅에 꽃피우자, 바로 이것이 이곳 노동자계급과 인민들이 지닌 신념이고 맹세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혁명적 군인정신을 따라 배워 짧은 기간에 29개의 중소형발전소를 새로 건설하거나 정비보강하여 많은 발전능력을 조성하여 여기서 생산한 전기로 170여개의 지방산업공장들을 돌려 생산을 정상화하였으며  2만 1,300여세대의 살림집조명과 1,700여세대의 전기난방을 보장함으로써 중소형발전소건설과 운영에서 새로운 시범을 창조하였다.  

자강땅에서 일어난 전변을 그토록 귀중히 여기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 모범을 온 나라에 일반화해 나갈 구상을 안으시고 자강도현지지도의 길에 오르시었다.

주체87(1998)년 1월 16일 강계의 날씨는 영하 30℃를 오르내리었다. 강계에 도착하신 경애하는 장군님을 마중나온 도의 책임일꾼은 대한목의 추운 날씨에 험한 산골도로에다 눈과 얼음까지 뒤덮였는데 어떻게 현지지도하시겠는가고 걱정어린 말씀을 올리었다. 장군님께서는 강행군시기가 아닌가, 내가 앞장서 나가야 인민이 따라서고 강행군이 성과적으로 진행되어 최후승리를 이룩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고 나서 그 길로 현지지도의 길에 오르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먼저 강계에 있는 북천띄우개식발전소로 가시었다.

이 발전소는 물위에 띄워놓은 띄우개들에 수차를 설치하여 전기를 생산하게 되어있는데 장군님께서 도착하시었을 때 다섯개의 둥그런 수차가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북천의 사나운 칼바람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장군님께서는 오랫동안 전기생산정형을 요해하시었다.

일꾼들은 그분의 건강이 염려되어 강기슭에 오래 서있지 말고 승용차안으로 들어가실 것을 말씀올렸다.

장군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내가 이 추운 겨울날에 왜 왔는지 압니까, 갈수기이고 강이 얼어붙은 겨울에도 발전기가 잘 돌아가는가를 보자고 왔습니다라고 하시면서 강을 뒤덮은 얼음의 두터이와 그밑으로 흐르는 물량, 최대갈수기때의 전기생산량을 구체적으로 요해하시었다.

이어 장군님께서는 장강1호발전소를 향해 길을 떠나시었다.

그곳으로 가는 길은 좁아지는 외통길이어서 평시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는 곳이었다. 더욱이 이 날은 금요일이어서 손달구지와 발구를 비롯한 각종 운반수단들을 끌거나 밀고 가는 사람들, 배낭을 지고 가는 사람들의 행렬이 차길을 메우다시피 쭉 늘어섰다. 포전으로 거름을 운반하는 사람들이었다. 얼굴마다에는 신심과 내일에 대한 낙관이 짙게 어려있었다. 그것은 사면팔방으로 제국주의무리들이 덤벼들어도 장군님만 계시면 우리는 이긴다는 신념과 낙관의 흐름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감동과 아픔으로 흐려진 눈길로 차창밖으로 흘러가는 인민들의 미더운 모습을 보고 또 보시었다.

분과 초를 쪼개가시며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는 장군님의 바쁜 걸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운전사는 차를 빨리 몰수 없어 안타까워하였다.

그의 심정을 헤아려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운전사동무가 거름을 운반하는 주민들때문에 승용차를 마음 놓고 몰수 없어 안타까워하는데 일없다고, 인민들과 함께 가면 된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인민들과 나란히 강행군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거름을 운반하는 저 사람들을 보시오. 얼마나 좋은 인민입니까. 생각 같아서는 차에서 내려 인민들과 함께 걷고 싶지만 그렇게 할 형편이 못되고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이 유감입니다. 저런 인민들과는 하늘땅 끝까지라도 함께 갈수 있습니다.』

자강도사람들에 대한 크나큰 믿음이 어린 말씀에 운전사는 가슴이 뜨거워 남을 금할 수 없었다.

이날 하루동안에만도 장군님께서는 강계시에 있는 북천띄우개식발전소, 장강1호발전소, 장강고등농업전문학교의 토목언제식발전소, 장강2호발전소, 전기화된 장강읍의 55동 살림집, 도농촌경리위원회 관개건설사업소에서 만든 대용연료에 의한 전기생산공정, 장자산발전소, 북천3호발전소 그리고 한개 공장을 현지지도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가시는 곳마다에서 자강도의 노동자계급과 인민들이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으로 살아나가며 당의 경제정책을 높이 받드는 것을 보는 것이 기쁘시었다.

장강에 여러 개의 발전소가 건설된 것을 보시고서는 적은 물량을 가지고 전기를 많이 생산할 수 있어 여러모로 좋다고 하시었고 지방에 흔한 통나무와 막돌, 진흙으로 언제를 쌓고 일정한 낙차를 조성하여 전기를 생산하는 토목언제식 발전소에서 시간당 수십kw의 전기를 생산하여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것을 보시고는 이런 발전소는 개울이 있고 나무가 있는데서는 어디에서나 다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고, 훌륭한 기술혁신이라고 못내 만족해하시었다. 그리고 어느 한 단위에서 만든 대용연료에 의한 전기생산공정을 보시고는 아주 좋은 것을 만들어놓았다고 치하하시면서 이런 공장이 자력갱생하는 공장이라고 높이 평가해주시었다.

발전소만이 아니라 공장에 가시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한 공장에 가시었을 때에는 자동흐름선이 다 공장자체로 만든 것이라는 것을 아시고서는 이 공장에는 남의 것이 없다고 하시면서 이것이 자력갱생의 창조물이라고, 자동화가 좋다고, 남에게 의존하는 병에 걸린 사람들이 이 공장을 보면 쇠몽둥이에 맞은 것처럼 정신을 차릴 것이라고 말씀하시었다. 또 어느 공장에 가시어 자체로 만든 한 설비를 보시고는 자력갱생하여 자체로 만드니 얼마나 좋은가고, 우리 노동자계급은 마음만 먹으면 꼭 해낸다고 하시면서 매우 만족해하시었다.

자강도의 공장과 농촌, 거리와 마을 그 어디를 가보아도 문화위생적으로 잘 정리되어있었고 산간지대의 불리한 조건에서도 아글타글 노력하여 식량문제도 자체로 풀어 나가고 있었다. 어디에 가나 붙어있는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는 구호는 자강도노동자계급과 인민들의 투쟁방식, 투쟁기풍으로 되어있었고 당의 노선과 정책들은 일관하게 관철되고 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울퉁불퉁한 농촌길을 걸으시면서도, 자그마한 발전소나 소박한 노동자예술선전대공연을 보시면서도, 불꽃튀는 선반앞에서 쇠를 깎는 기대공의 기름묻은 손길에서도 자강땅에 넘친 노동자계급과 인민들의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정신을 느끼시었다.

자강도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1월 16일  장군님께서는 장강땅을 감돌아 흐르는 북천강기슭의 양지바른 언덕에서 차를 세우시었다.

눈앞에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처럼 아담한 주택마을이 펼쳐져 있었다. 장강군인민들이 새로 일떠세운 55동의 전기화된 노동자주택마을이었다.

장군님께서는 마을의 어느 한 집에 들어서시었다. 전기온돌로 되어있는 전실, 방, 부엌 할 것 없이 어디나 훈훈했다.

장군님께서는 전기온돌의 여기저기를 손수 짚어보시며 방안의 온도도 가늠해보시고 전기가마들이 주런이 놓여있는 부엌에 들리시어 밥과 국을 동시에 끓일 수도 있게 되어있는 화식설비들을 하나하나 보시면서 이렇게 전기로 밥을 하니 가정주부들이 대단히 좋아할 것이라고 못내 기뻐하시었다.

그러시면서 장강군내 일꾼들과 당원들, 근로자들이 당의 뜻을 받들고 큰일을 하였다고, 인민들이 추운 겨울에 아무런 걱정없이 지내는 것을 보니 만시름이 풀리는 것 같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1월 16일부터 21일까지 현지지도하신 단위는 20여개, 그분께서 걸으신 노정은 무려 6,000여리에 달하였다. 장군님의 자강도현지지도는 말그대로 강행군이었다.

자강도안의 여러 단위들을 돌아보신 장군님께서는 일꾼들에게 자강도가 「고난의 행군」을 하는 어려운 조건에서도 많은 일을 한데 대하여 높이 평가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자강도를 돌아보면서 내가 의도하고 내세운 것, 우리 당의 노선과 정책이 옳았다는 것을 다시금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자강도안의 일꾼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은 오늘과 같은 어려운 때에 당을 어떻게 받들어야 하는가 하는 것을 실천적 모범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여 자강도인민들속에서는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이 높이 발휘되고 있다고 하시면서 자강도사람들은 의지가 강하며 패배주의란 말을 모르는 것 같다, 자강도노동자계급이 「고난의 행군」시기에 기대를 세워서는 안된다, 굶어죽어도 기계설비만은 베고 죽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투쟁하였다고 하는데 그 정신이 얼마나 훌륭한가, 노동자들과 담화해보아도 누구나 일감을 달라고 하지 먹을 것이나 무엇을 달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우는 소리를 하지 않고 낙관적으로 씩씩하게 살며 일하는 노동자들을 보니 힘이 나며 조선인민군 공훈합창단의 노래를 듣는 것처럼 기분이 대단히 좋다, 자강도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는 사상이 꽉 들어 차있다고 값높은 평가의 말씀을 해주시었다. 그러시고 자강도사람들은 내가 탄 승용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도 만세를 부르고 눈물을 흘리며 달려오군 하였다, 내가 탄 승용차를 향하여 눈물을 흘리며 환호하면서 달려오는 인민들의 감정은 지어낼 수도 없고 돈을 주고 살수도 없는 것이다, 이것은 당과 인민이 한마음으로 굳게 뭉친 우리 나라에서만 있을 수 있는 일심단결의 참모습이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과분한 평가에 몸둘 바를 몰라하는 일꾼들에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나는 자력갱생의 혁명정신과 당과 생사운명을 같이하려는 정신, 일심단결의 기상이 꽉 들어찬 자강도인민들을 보면서 큰 힘을 얻었고 사회주의가 인민들의 마음속에 굳게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더욱 깊이 느끼게 되었다고 하시면서 이런 인민이 있기에 우리의 승리는 확정적이다, 이런 좋은 인민들과 함께라면 미제국주의자들을 이기는 것쯤은 문제로도 되지 않으며 지구를 통째로 떠 옮길 수 있다는 뱃심을 가지게 된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었다.

이어 장군님께서는 자강도에는 기계공업부문 노동자계급이 많기 때문에 그들을 불러일으키면 어떤 난관도 이겨낼 수 있고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고, 그래서 나는 자강도에서 모범을 창조하고 그것을 온 나라에 일반화하여 사회주의경제건설에서 일대 전환적 국면을 열어놓을 것을 결심하고 자강도에 대한 현지지도를 다른 도들보다 먼저 한다고, 자강도를 모범으로 하여 강행군의 돌파구를 열어 나가려고 한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자강도는 모든 일이 잘 되며 전망이 휘황합니다. 지금 자강도사람들은 <고난의 행군>이 아니라 광명의 행군, 낙원의 행군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고난의 행군」을 낙원의 행군으로, 그것이 경애하는 장군님의 구상이고 의도였다. 자강땅에서는 이러한 구상과 의도가 이미 현실로 펼쳐지고 있었으니 장군님께서는 벌써 승리한 내일을 보고 계시는 것이었다.

「고난의 행군」시기 자강도에 대한 현지지도에서 받으신 충격이 하도 크고 잊을 수 없으시어 장군님의 마음속엔 언제나 자강도가 정든 고장으로, 가볼수록 또 가고 싶고 오면 떠나고 싶지 않은 곳으로 소중히 간직되게 되었다.

그리하여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87(1998)년 1월의 현지지도에 이어 주체89(2000)년 8월까지 기간에 무려 7차례나 이곳을 찾으시었다.

주체87(1998)년 1월에 하신 현지지도에 이어  6월 1일 또다시 자강땅을 찾으신 장군님께서는 어느 한 연합기업소를 현지지도하시다가 공장의 벽체에 크게 써붙인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라는 구호를 보시고 참으로 좋은 구호라고 만족해하시면서 우리도 이렇게 웃으며 가고 있지 않는가고 호탕하게 웃으시었다.

승리에 대한 확고한 신심과 혁명적 낙관을 천품으로 지니신  장군님의 크나큰 심장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구호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는 온 나라 인민의 심장을 확고히 틀어 잡고 혁명적 낭만에 넘쳐 강행군을 힘차게 다그쳐 나갈 수 있게 하였다.

이렇듯 장군님의 역사적인 자강도현지지도는 온 나라가 강계정신을 따라배워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하루빨리 결속하기 위한 투쟁을 더욱 힘있게 벌여 나갈 수 있게 한 중요한 역사적 계기로 되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자강도인민들이 발휘한 백절불굴의 투쟁정신을 「강계정신」이라고 부르도록 하시고 그것을 온 나라가 따라 배워야 할 고귀한 투쟁정신으로 높이 내세워주시면서 『강계정신이야말로 최후승리를 위한 강행군전투를 벌여 나가는 우리 인민의 투쟁정신입니다. 강계정신을 가지고 투쟁하면 최후승리를 위한 장엄한 투쟁에서 영예로운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명명하신 강계정신은 「고난의 행군」을 상징하는 시대어로 이렇게 태어나 혁명사전에 오르게 되었다.

장군님께서 온 나라가 따라배워야 할 고귀한 혁명정신으로 높이 내세워주신 자강도사람들의 혁명정신, 강계정신은 선군시대를 대표하는 위대한 시대정신인 혁명적 군인정신을 따라배우는 과정에 창조된 사회주의수호정신이며 새로운 천리마대고조의 열풍을 불러온 1990년대 노동자계급의 위대한 혁명정신이었다. 강계정신은 선군혁명의 총대바람이 일으킨 자력갱생의 마치바람이었다.

영도자에 대한 절대적인 숭배심에 기초한 결사관철의 정신,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 불굴의 투쟁정신, 혁명적 낙관주의정신으로 특징지어지는 강계정신이야말로 우리 인민이 「고난의 행군」을 하루빨리 승리적으로 결속하고 이 땅위에 부강조국의 휘황한 앞날을 앞당겨올 수 있게 하는 선군시대 노동자계급과 인민들의 가장 고귀한 투쟁정신이며 우리 군대와 인민의 투쟁을 힘있게 떠밀어주는 위력한 추동력으로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