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1) 중에서 





 

역사적인 카륜회의에서 제시된 조선혁명의 대강에 따라 일제를 반대하는 무장투쟁을 조직전개하자면 그 준비사업을 위한 무장조직이 필요하였다. 그리하여 조선혁명군을 결성하여 무장투쟁을 전개할 수 있는 여러가지 경험을 축적할데 대한 카륜회의방침을 관철하기 위한 사업이 진행되었다.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카륜회의가 끝난지 며칠후인 7월 6일 이통현 고유수에서 조선혁명군결성을 위한 당 및 공청간부회의를 소집하시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회의에서 조선혁명군의 결성을 선포하시고 「조선혁명군의 사명과 기본임무에 대하여」라는 역사적인 연설을 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설에서 며칠전 카륜에서 조선혁명의 새로운 노선을 제시하고 그에 따라 오늘은 조선혁명군을 결성하게 된다고 하시고 그 결성을 온 세상에 선포하게 된다고 하시면서 조선혁명군의 사명과 기본임무에 대하여 이렇게 밝히시었다.

『조선혁명군은 자기의 적극적인 정치군사활동으로 무장투쟁의 핵심적 골간을 육성하며 무장투쟁에 필요한 무기를 마련하고 군사적 경험을 축적하며 광범한 인민대중을 굳게 결속하여 조직적인 항일무장투쟁을 위한 준비를 철저히 갖추어야 합니다. 여기에 조선혁명군의 사명과 기본임무가 있습니다.』

그분의 연설은 참가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분께서는 열기를 띤 그들을 둘러보시며 조선혁명군이 지니고 있는 사명과 임무는 참으로 조선혁명의 진로를 개척하여 나가는데 있어서 중요하다고, 이 어렵고  무거운 혁명임무를 성과적으로 수행하는가 못하는가 하는 것은 여기에 참가한 모든 동무들이 어떻게 투쟁하는가 하는데 달려있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었다.

그분께서는 이어 연설에서 무장투쟁의 핵심적 골간을 육성하며, 모든 조건과 가능성을 최대한 이용하여 무장투쟁에 필요한 무기를 마련하며, 군사지식과 경험을 축적하기 위하여 단기훈련을 조직하여 군사지식을 습득하고 국내와 만주의 광활한 지역에 적극 진출하여 군사활동경험을 축적해 나가며, 광범한 대중을 혁명적으로 각성시키고 결속하기 위한 정치활동을 힘있게 전개하여야 한다고 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와 같이 조선혁명군의 투쟁과업과 그를 성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방도들을 밝혀주신 다음 우리는 일제를 반대하는 무장투쟁을 준비하기 위한 영예로운 사명을 지니고 나선 조선혁명군 성원들이라는 것을 깊이 명심하고 피끓는 청춘의 지혜와 정력을 다 바쳐 억세게 싸워 나가야 하겠다고 강조하시었다.

그분의 연설은 조선혁명군의 활동에서 견지해야 할 원칙적 문제들을 전면적으로 밝힌 강령적 지침이었다.

연설이 끝나자 참가자들은 격동을 금치 못하며 모두 일어나 박수를 치면서 『손에 무장을 잡고 일제를 타도하자!』, 『조선혁명 만세!』를 힘차게 불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적 열정과 흥분으로 들끓는 혁명군대원들로 대오를 편성하시었다. 조선혁명군대오는 제1대, 제2대, 제3대 등으로 편성되고 그 책임자들이 임명되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혁명군 대원들에게 무기(사창, 브로닝권총)를 수여하시었으며 조선혁명군 대원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붉은 띠(「조선혁명군」이라는 커다란 도장이 찍혀져 있다.)를 수여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혁명군을 결성하심으로써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을 조직적인 무장투쟁단계에로 발전시키기 위한 투쟁에서 획기적 전환점을 마련하시었다.

조선혁명군의 결성은 그분의 선군혁명영도를 실현하기 위한 제반 준비를 철저히 갖출 수 있게 한 역사적 사변이었다. 조선혁명군은 항일무장투쟁준비를 위한 과도적인 정치 및 반군사조직으로서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한 선군혁명사상을 실현해 나가는 맹아적인 무장조직이었다. 이 맹아적인 혁명적 무장조직은 항일무장투쟁을 조직전개하기 위한 실질적인 준비를 갖추어 나가는 과정에 급속히 성장하여 주체형의 상비적 혁명무력인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할 수 있게 함으로써 선군혁명의 새 역사를 안아오는 불멸의 업적을 쌓아올리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혁명군을 결성하신 후 그 대오를 확대하며 핵심골간을 육성하는데 큰 힘을 넣으시었다. 당 및 공청조직을 비롯한 혁명조직들에서 단련된 우수한 청년들을 혁명군에 받아들이시었다. 그리고 독립군안의 노동자, 농민출신의 애국적 청년들을 교양개조하여 인입하도록 하시었다. 그분께서는 고유수에 있는 삼광학교에 2년제 고등과를 새로 내오게 하시고 정치와 군사를 겸비한 지휘관들을 체계적으로 키우시었다. 그리고 고유수와 회덕현 오가자에서 조선혁명군 성원들과 각지 혁명조직들에서 선발한 우수한 청년들에 대한 군정강습과 훈련을 조직하시어 무장대오의 핵심골간을 키워 나가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형권, 이제우, 김혁, 최창걸을 책임자로 한 조선혁명군 소조들을 편성하시어 국내와 중부만주, 동만과 남북만일대의 넓은 지역에 파견하시고 그들의 정치군사활동을 힘있게 조직영도하시었다.

각지에 파견된 조선혁명군 성원들은 광범한 군중 속에 깊이 들어가 그들을 혁명적으로 교양하며 혁명조직에 묶어 세우기 위한 정치활동과 적들을 족치고 무기를 해결하기 위한 군사활동을 활발히 벌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삼촌 김형권선생님을 책임자로 하는 무장소조를 국내에 파견하시었다. 그분께서 무장소조들을 국내에 파견하신 목적은 무장투쟁의 대중적 지반을 꾸리고 국내혁명투쟁을 앙양시키자는 데도 있었지만 국내에서 무장투쟁을 할 수 있겠는가를 가늠해 보자는 데도 있었다.

불요불굴의 혁명투사이신 김형권선생님께서는 주체19(1930)년 7월 무장소조를 이끄시고 안도지방을 떠나 무송지대를 거쳐 장백일대에 진출하여 압록강연안일대에서 정치군사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이시면서 국내진출을 위한 제반 준비를 갖추신 다음 8월 초순에 국내진출의 길에 오르시었다. 무장소조는 풍산, 단천, 함흥을 거쳐 평양부근에까지 진출할 작정이었다. 압록강대안에 이르러 김형권선생님께서는 무장소조원들에게 녹음이 우거진 조국의 산들은 얼마나 아름다운 가고 하시면서 사랑하는 부모처자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소, 은금보화로 가득찬 아름다운 조국과 우리 인민은 지금 일제의 발굽밑에서 신음하고 있소, 우리 어찌 발걸음을 지체하겠소, 죽기를 맹세하고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바쳐 투쟁합시다!라고 고무하시었다.

무장소조는 사기충천하여 어두워지자 뗏목으로 압록강을 건너 삼수군 신전리 회골에 올라 인민들로부터 지방형편을 알아본 다음 삼수군경찰서앞을 대담하게 통과하여 매덕령을 넘었다. 무장소조는 산발을 타고 단천쪽으로 행군하다가 8월 14일 점심때에 풍산군 파발리부근 황수원들쭉밭에 도착하여 하루 몇푼벌이밖에 안되는 들쭉따는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계절노동자들의 일손을 도와주면서 노동자, 농민이 헐벗고 굶주리는 원인이 일제의 가혹한 착취와 약탈에 있다는데 대하여, 온 민족이 일떠서 일제와 싸우는 길만이 나라를 찾고 자주독립을 이룩하는 길이라는데 대하여 알기 쉽게 해설해주었다.

무장소조는 대낮에 파발리의 경찰관주재소앞을 지나가려다가 순사놈에게 단속되어 주재소안에 들어가 몸수색을 당하게 되었다. 이 위기일발의 순간에 김형권선생님께서는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아 드시고 이 일대에서 악명높던 「오빠시」라는 별명을 가진 순사부장놈을 조선인민의 이름으로 단호하게 처단하시었다.

김형권선생님께서는 총소리를 듣고 달려온 수많은 군중들 앞에서 연설을 하시었다.

『…우리는 일제놈들과 싸우는 조선혁명군입니다. 조선인민은 모든 힘을 다하여 우리의 철천지원수 일제놈들을 반대하여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당신들을 못살게 굴던 <오빠시>란 놈을 방금 처단하였습니다.

조선인민은 우리의 강토에서 일제놈들을 몰아내고 나라를 찾아야 합니다. 그러자면 한마음한뜻으로 뭉쳐야 합니다.…

동포형제자매들!… 망국노의 처지에서 신음하는 우리 민족을 구원하기 위하여 나라를 사랑하는 남녀청년들은 손에 무장을 들고 일떠서서 일제를 때려 부십시다!』

무장소조는 「조선독립 만세!」를 외치는 군중들의 열광적인 환송을 받으며 후치령을 향해 떠났다.

조선혁명군 무장소조가 울린 총성은 망국노의 처지에서 억눌려 살아오던 인민들에게 조국광복의 신심을 안겨주었고 왜놈들을 공포와 불안에 떨게 하였다.

무장소조는 후치령에서 북청-혜산간을 다니는 승합자동차를 기습하여 거기에 타고 있던 풍산경찰서 사법계주임놈을 무장해제시킨 다음 자동차를 돌려 세워 후치령을 넘었다. 무장소조는 그후 이원군, 북청군, 홍원군을 비롯한 함경남도일대에서 정치활동을 능숙히 벌려 광범한 인민대중속에 혁명의 씨앗을 심어 나갔다. 이 과정에 무장소조는 북청군 대덕산전투와 홍원군 절부암전투, 전진동전투를 진행하여 일제놈들에게 된 벼락을 안기었다. 무장소조의 한 성원은 중부조선방향으로 진출하여 춘천, 대전일대에서 수개월동안이나 정치활동을 벌이였다. 다른 조원들은 일제밀정놈의 고발로 불의의 습격을 받고 싸우다가 일제경찰에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 김형권선생님은 15년의 장기형을 받고 서울 마포형무소에서 옥중투쟁을 하시다가 1936년초에 세상을 떠나시었다. 운명의 마지막순간에 선생님께서는 수감자들에게 『김일성은 내 조카이다. 그는 지금 만주에서 큰 혁명부대를 이끌고 왜놈들을 족치고 있다. 그 부대가 국내에 쳐들어올 날은 멀지 않았다.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무장으로 싸우라. 무장을 들고 싸워야 왜놈들을 쫓아내고 나라를 해방할 수 있다!』라는 절절한 말을 남기시었다.

김형권선생님의 무장소조가 적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고 인민들에게 커다란 혁명적 영향을 주고 있을 때 다른 무장소조들도 함흥, 원산, 평양, 서울, 신의주, 의주 등 국내 여러 지역에 진출하여 군사정치활동을 적극 벌이였다.

만주의 넓은 지역에 파견된 혁명군소조들도 적극적인 군사정치활동으로 군사적 경험을 쌓고 무장을 마련하는 등 무장투쟁에서 제기되는 제반 군사적 준비를 갖추어 나갔다. 그들은 장춘 금강관전투를 비롯한 여러 전투를 벌여 적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안겼다.

김혁을 책임자로 한 조선혁명군 소조는 할빈에서 이곳 혁명조직을 적들의 탄압으로부터 지켜내고 조직성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사업을 맹렬히 벌이면서 부두노동자들과 청년학생들을 비롯한 각계각층 군중속에 깊이 들어가 카륜회의방침을 정력적으로 해설하여 그들을 교양하고 조직을 확대하는 한편 기층당조직을 내오기 위한 준비사업과 무기를 확보하기 위한 사업을 힘있게 밀고 나갔다. 이때 김혁은 능숙한 조직적 수완과 담력을 가지고 혁명의 한개 지역을 담당한 책임자답게 종횡무진으로 활약하다가 할빈도리의 비밀연락소에서 불의에 달려드는 적들과 총격전을 벌이던 끝에 최후를 결심하고 3층에서 뛰어내렸다. 그런데 강철같은 육체가 그의 뜻을 배신하였다. 그는 자결에 성공하지 못한채 적들에게 붙잡혀 여순감옥으로 끌려가 모진 고문과 박해를 맞받아 싸우다가 애석하게 옥사하였다.

한명의 혁명동지가 천금보다 더 귀중했던 그때 김혁과 같이 훌륭한 재사를 잃은 것은 참으로 가슴아픈 슬픔이고 큰 손실이었다.

그가 붙잡혔다는 소식을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며칠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시었다. 김혁은 할빈에 대한 공작임무를 맡고 떠날 때 그분의 손을 오래도록 잡고 할빈의 일은 걱정하지 말라고, 어떤 일이 있어도 조직에서 준 임무를 수행하고 웃으면서 동무들 곁으로 돌아오겠다고 하였는데 그것이 그와의 마지막이별로 되고만 것이어서 더욱 가슴이 아프시었다.

김일성장군님의 현명한 영도밑에 조선혁명군의 맹렬한 정치군사활동에 의하여 무장투쟁의 대중적 지반이 확대되고 조선혁명군에 대한 광범한 인민대중의 지지와 신뢰가 높아졌으며 혁명무력창건을 위한 고귀한 밑천으로 될 핵심골간이 마련되고 풍부한 경험과 고결한 혁명정신이 창조되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선혁명군을 결성하시고 현명하게 이끄시어 항일무장투쟁준비를 위한 활동에서 이룩하신 이 불멸의 공적에 대하여 해방직후 서울에서 발행된 도서 「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의 필자 최형우(본명 최일천)는 이렇게 썼다.

『본군(주-조선혁명군)은 김성주, 차광수, 김혁, 최효일 등 청년투사들을 망라하여 길림성 이통현을 중심으로 활동을 개시하였다. 청년들의 집결이니만치 그 운동은 대단히 용감하였다. 장춘의 금강관사건에 백신한의 아까운 희생을 내이고 할빈도리사건에 혁명시인 김혁의 감옥(여순)행이 있었으나 이를 계기로 그후 동군의 발전은 조선내에까지 미쳐 홍원, 단천사건을 비롯하여 서북선일대에 일대 경동을 일으키고 각 방면으로 영웅적 투쟁을 전개하여 당시 혁명운동선상에 많은 공헌을 남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