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1) 중에서 





 

 두자루의 권총과 「ㅌ.ㄷ」에 선군의 시원을 둔 조선혁명은 마침내 선군방식의 길을 따라 새로운 출발을 뗄 역사적 시점에 이르렀다.

1920년대 중엽에 이르러 착취와 억압을 반대하는 전세계 노동자계급과 인민대중의 혁명투쟁에서는 새로운 전환이 일어나고 있었다. 국제무대에서는 처음으로 승리한 사회주의의 영향력이 강화되고 노동자계급의 혁명투쟁과 식민지, 반식민지나라 인민들의 해방투쟁이 급격히 앙양되어갔다. 특히 우리 나라를 비롯한 동방나라들에서 인민대중이 민족적, 계급적 해방을 위한 투쟁에 떨쳐 일어났다.

그렇지만 그때 국제공산주의운동안의 어느 영도자나 당들도 국제무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사변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판단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그것을 단순히 정세의 변화로만 이해하고 시대가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그것을 단순한 정세변화로 판단하지 않으시었다. 혁명운동이 세계적 범위에서 폭넓고 다양하게 발전하는 새시대, 억압받고 천대받던 인민대중이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등장하여 자기 운명을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개척해 나가는 역사의 새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헤아려보시었다. 이와 함께 그분께서는 새로운 역사적 조건에서 매개 나라가 혁명운동을 전진시켜 나가자면 혁명의 지도사상, 노선, 전략전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통찰하시었다.

그리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발전하는 시대와 조선혁명이 요구하는 혁명의 지도사상과 이론, 전략전술을 밝히기 위한 정력적인 활동을 벌이시었다.

그분께서는 자신께서 좌우명으로 삼으신 인민을 하늘같이 여긴다는 「이민위천」의 사상과 아버님으로부터 이어받으신 「지원」의 사상을 사상정신적 원천으로 하여 시대가 요구하는 혁명의 지도사상과 이론, 전략전술을 밝히기 위한 사색과 탐구를 거듭하시었다.

그분께서는 선행한 노동자계급의 혁명사상과 이론, 국제공산주의운동의 경험을 우리 나라 혁명실천과 결부하여 연구하면 하실수록 특히는 우리 나라 민족주의운동과 초기공산주의운동의 교훈을 분석해보시는 과정에 모든 문제를 주체적 입장에서 새롭게 풀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시었다.

그분께서는 우리 나라 민족주의운동과 초기공산주의운동의 실태를 분석하여 보시고 부르조아민족주의자들과 초기공산주의자들의 사고와 활동방식에서 두가지 본질적 결함이 있다는 것을 포착하시었다.

그 하나는 그들이 대중을 떠나서 상층부의 몇몇 사람끼리 모여 앉아 말공부만 하고 영도권싸움만 하면서 혁명운동에 대중을 불러일으키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파벌싸움과 사대주의, 교조주의가 심한 것이었다. 선행세대 운동자들은 파벌싸움만 하면서 자체로 혁명을 할 생각을 하지 않고 외세에 의존하여 나라의 독립을 이룩해 보려고 망상하였다.

그분께서는 우리 나라 민족주의운동과 초기공산주의운동의 이러한 실태를 분석해보시고 혁명을 그런 식으로 해서는 안되겠다는 것을 심각히 느끼게 되시었다. 이로부터 그분께서는 자기 나라 혁명은 자신이 책임지고 자기 인민의 힘에 의거하여 수행하여야 승리할 수 있으며 혁명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풀어 나가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게 되시었다.

이것은 혁명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인민대중이 일떠서야 혁명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진리, 자기 나라 혁명은 자신이 책임지고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추진시켜 나가야 한다는 진리의 발견으로서 새로운 시대 혁명사상과 이론을 밝히는데서 사상이론적 기초로 되었다.

경애하는 수령님께서는 이 위대한 진리에 기초하시어 혁명의 가장 올바른 지도사상인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창시하시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훗날 주체사상의 본질적 내용에 대하여 이렇게 정의하시었다.

『주체사상이란 한마디로 말하여 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혁명과 건설을 추동하는 힘도 인민대중에게 있다는 사상입니다. 다시말하면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자신이며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힘도 자기자신에게 있다는 사상입니다.』

그분께서는 이에 그치지 않으시고 주체사상의 원리들과 기본요구들에 기초하시어 총대로 조국광복위업을 이룩할 데 대한 사상과 항일무장투쟁노선을 비롯하여 선군으로 일관된 조선혁명의 주체적 노선과 투쟁방침들을 탐구정립하시었다.

「ㅌ.ㄷ」의 결성으로 조국광복을 위한 총대의지를 품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날이 갈수록 무장투쟁전개의 필연성을 폐부로 느끼시었다.  애국적이고 선진적인 청년학생들 속에서는 조선혁명의 승리를 이룩할 데 대한 노선적인 문제를 놓고 자주 논쟁이 있었다. 이준의 방법이 옳은가, 안중근의 방법이 옳은가,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안중근의 투쟁방법에 더 매력을 느끼며 의의를 부여하는 경향이 심하였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으시었다. 안중근의 소행은 물론 애국적이지만 투쟁방법은 모험주의적이고 결코 큰 군벌의 앞잡이 한두놈을 처단하는 테러적 방법으로는 일제를 꺼꾸러뜨릴수 없으며 반드시 인민대중을 교양하고 각성시켜 궐기시키며 적극적인 무장투쟁을 벌릴 때에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보시었다. 그분께서는 민족주의자들의 독립군운동에 대해서도 환멸을 느끼시었다. 그들은 통합을 말하면서도 서로 반목질시하고 가슴아픈 충돌과 유혈까지 빚어내면서 패권싸움을 계속하였다. 그분께서는 이들의 통합과정을 보시면서 우리 혁명은 반드시 새로운 지도사상에 의하여 지도되어야 한다는 것, 일제가 총칼을 들고 달려드는 이상 모두가 단결하여 손에 총을 들고 무장투쟁을 벌여야 한다고 마음다지시었다.

총대로 조국광복위업을 이룩할 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의지는 길림감옥에서 조선혁명의 유일한 출로로 확정되었다. 그분께서는 조선혁명은 총대로 개척해야 하며 일제를 반대하는 조직적인 무장투쟁을 전개해야만 승리할 수 있다고 확신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18(1929)년 가을에 중국반동군벌당국에 체포되어 이듬해 5월초까지 길림감옥에서 옥중투쟁을 하시었다. 길림감옥은 하나의 투쟁무대였다. 그분께서는 옥중에서 혁명운동지도를 계속하시면서 조선혁명의 진로를 더욱 정열적으로 모색하시었다. 우리 나라의 민족해방투쟁과 공산주의운동이 남긴 경험과 교훈도 분석해보시고 다른 나라의 혁명운동경험도 살펴보시었다.

그분께서 옥중에 계실 때 원산부두노동자들의 총파업이 진행되었다. 그분께서는 이 투쟁의 전과정을 주시하시고 그 실패를 가슴아파하시면서 무장투쟁이 민족해방투쟁의 주축을 이루고 전개될 때 대중투쟁도 그 배경밑에서 더 치열하게 벌어질 것임을 확신하시었다.

이처럼 그분의 사색과 탐구는 앞으로 조선혁명을 어떻게 이끌고 나갈 것인가 하는데 귀착되었다. 일제를 때려 부수고 조국을 광복하자면 어떤 형식과 방법으로 싸워야 하며 반일역량을 어떻게 하나로 결속하여야 하겠는가, 혁명의 영도기관으로서의 당은 어떻게 창건하여야 하겠는가, 감옥에서 나가면 무슨 사업부터 착수해야 하겠는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많이 고심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 일을 회고록에 이렇게 쓰시었다.

『그때 나는 우리 나라의 구체적 현실과 사회계급적 제 관계로부터 출발하여 조선혁명의 성격을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으로 규정하고 무장한 일제를 때려 부수고 조국을 광복하자면 무장을 들고 싸워야 하며 노동자, 농민, 민족자본가, 종교인을 비롯한 모든 반일애국역량을 반일의 기치하에 묶어 세워 투쟁에 불러일으키고 파쟁이 없는 새로운 혁명적 당을 창건하여야 한다는 투쟁방침을 확정하였다.』

여기에는 총대중시, 군사중시사상이 구현되어있었다. 그분께서 확정하신 투쟁방침에는 조선혁명을 군사를 앞세우는 원칙에서 먼저 혁명무력을 창건하고 그것을 주력으로 하여 혁명의 주체를 튼튼히 꾸리며 혁명무력의 주도적 역할에 의거하여 조국광복위업을 완수하시려는 그분의 선군의지가 깃들어있었다. 이것은 주체의 선군사상의 빛나는 정립을 의미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정립하신 독창적인 선군사상은 한마디로 말하여 군사를 앞세우고 혁명군대를 주력으로 하여 전반적 혁명운동을 밀고 나갈 데 대한 사상이다. 그것은 혁명투쟁에서 총대를 중시하고 군사를 다른 모든 사업에 확고히 앞세울 데 대한 사상이며 혁명군대를 핵으로, 주력꾼으로 하여 혁명의 주체를 튼튼히 꾸리고 혁명군대의 주도적 역할에 의거하여 혁명운동을 추진시켜 나갈 데 대한 사상이다.

선군사상은 혁명은 총대에 의하여 개척되고 전진하며 완성된다는 총대철학에 기초하고 혁명의 총대위에 혁명위업의 승리가 있고 나라와 민족의 자주독립도 번영도 있다는 혁명원리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시대의 지도사상인 주체사상을 창시하시고 그에 기초하시어 선군사상을 마련하신 것은 세계혁명운동사에서 특기할 사변이었다. 돌이켜보면 10대에 「ㅌ.ㄷ」를 비롯한 혁명적 전위조직을 결성하신 것도 경이적인 사변이었지만 시대의 지도사상을 창시하시고 총대에 의한 반제적 입장을 담은 총대중시, 선군사상을 내놓으신 것은 참으로 위대한 사변이었다.

길림감옥에서 출옥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곱달동안이나 옥바라지를 해온 길림예배당의 손정도목사를 만나시어 감사의 인사를 드리시었다. 그때 목사는 그분께 일제의 만주침공이 시간문제로 되고 있는 것 같은데 장차 어떻게 할 작정인가고 물었다.

『저야 다른 길이 있습니까. 군대를 크게 조직해가지고 일제놈들과 결판을 내자고 합니다.』

그분의 이 대답에 목사는 놀라며 『총으로 일본과 맞서보겠다는 건가?』 하고 다시 물었다. 그때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저없이 『그렇습니다. 그 길밖에야 다른 출로가 없지 않습니까.』라고 대답하시었다.

대화는 너무나 짧았다. 하지만 한방울의 물방울에 우주가 비낀다고 하지 않는가. 목사는 그분의 호기찬 대답에서 울리는 항일대전의 뇌성을 들었다. 그 장엄한 뇌성은 얼마 후 드디어 울려 퍼졌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주체19(1930)년 6월 30일부터 7월 2일까지 카륜에서 진행된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지도간부회의에서 주체사상, 선군사상의 창시를 선포하시고 주체적인 혁명노선, 선군혁명노선을 제시하시었다.

회의에는 차광수, 김혁, 최창걸, 최효일, 계영춘, 김원우 등 각지에서 모여온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 지도간부들이 참가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혁명의 진로」라는 역사적인 보고를 하시었다.

이 보고는 그분께서 5월 중순 돈화현 사도황구에 가시어 20여일간 머무르시며 종파사대주의자들이 종파적 목적으로 간도에서 일으킨 무모한 5.30폭동의 후과로 파괴된 혁명조직들을 복구정비하시는 한편 감옥에서 구상하신 조선혁명의 주체적 노선과 방침들을 다듬고 정립하신데 이어 카륜에 오시어 종합체계화하신 다음 회의에 참가하기 위하여 모여온 공청과 반제청년동맹지도간부들의 광범한 토의를 거쳐 완성하신 것이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보고에서 먼저 조성된 국내외정세와 선행운동의 역사적 교훈을 분석하시고 주체사상의 원리에 대하여 이렇게 밝히시었다.

『혁명투쟁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인민대중이 조직동원되어야 혁명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혁명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혁명을 추동하는 힘도 인민대중에게 있다는 주체사상의 근본원리를 밝히신데 기초하여 혁명을 승리에로 이끌기 위하여서는 인민대중속에 들어가 그들을 조직동원하여야 하며 혁명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자신이 책임지고 자기 실정에 맞게 자주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조선혁명의 주인은 조선인민이며 조선혁명은 어디까지나 조선인민자체의 힘으로,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게 수행하여야 한다는 확고한 입장과 태도를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가르치시었다.

그분께서는 이어 조선혁명의 임무와 성격을 규정하시고 항일무장투쟁노선과 반일민족통일전선노선, 당창건방침 등 조선혁명에 관한 주체적인 노선과 전략전술적 방침을 전면적으로 제시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혁명의 기본임무는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조선의 독립을 달성하는 것과 함께 봉건적 제 관계를 청산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하는데 있으며 이로부터 출발하여 조선혁명의 성격은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으로 된다고 하시었다.

그분께서 조선혁명의 성격을 사회주의혁명도 아니고 부르조아혁명도 아닌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으로 규정하신 것은 역사상 처음으로 식민지, 반식민지나라들에서 수행해야 할 혁명의 새로운 유형을 밝힌 위대한 발견이었다.

그분께서는 혁명의 동력과 대상, 전략적 과업을 명백히 규정하시었다. 그분께서 조선혁명의 성격과 임무, 전략적 과업을 천명하심으로써 「ㅌ.ㄷ」가 제기한 조선혁명의 새로운 강령을 실현하기 위한 혁명투쟁의 전략적 단계와 목표, 과업들이 뚜렷이 밝혀지게 되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혁명을 수행하기 위한 전략전술적 문제들을 밝히시면서 무엇보다 먼저 항일무장투쟁노선을 제시하시었다.

그분께서는 반일투쟁의 역사적 경험과 교훈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독립은 남이 가져다 줄 수 없으며 평화적 방법으로는 절대로 독립을 달성할 수 없다고, 조성된 정세는 일제를 반대하는 조직적인 무장투쟁을 전개할 것을 절실히 요구한다고 밝히시면서 다음과 같이 가르치시었다.

『우리는 일제의 폭압이 전례없이 강화되고 있고 발톱까지 무장한 적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조건에서 폭력적 형태를 띠고 전개되는 대중투쟁을 조직적인 무장투쟁에로 점차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무장투쟁을 조직전개하기 위하여서는 그 준비사업을 잘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구체적 방도로서 혁명적 무장조직인 조선혁명군을 결성하며 무장투쟁을 전개할 수 있는 여러가지 경험을 축적해야 한다고 가르치시었다.

이처럼 그분께서는 무장투쟁을 벌릴데 대한 문제를 반일민족해방투쟁의 기본노선으로, 조선혁명가들의 첫째가는 과업으로 제시하시었다.

그분께서 제시하신 항일무장투쟁노선은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투쟁에서 무엇보다도 총대를 중시하고 그것을 기본으로 틀어쥐고 나갈 데 대한 총대중시의 독창적인 혁명노선, 선군혁명노선이었다. 여기에는 혁명투쟁에서 군사를 중시하고 혁명무력과 무장투쟁을 중심으로 하여 전반적 혁명운동을 조직전개해 나갈 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독창적인 선군사상이 집약적으로 담겨져 있다.

항일무장투쟁노선은 식민지민족해방투쟁의 새로운 길을 밝힌 독창적인 사상이었다. 그 누구도 식민지나라 인민들의 민족해방투쟁이 혁명적 폭력에 의거해야 한다는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였다. 레닌도 프롤레타리아혁명에서 자본가계급을 타도하기 위해서는 혁명적 폭력에 의거해야 하며 그 중요한 형태는 무장폭동이여야 한다는 것을 제기했을 뿐 무장투쟁에 의한 식민지민족해방투쟁이론은 밝히지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반일민족통일전선노선을 제시하시면서 모든 반일애국역량을 각성시키고 튼튼히 묶어 세워 성스러운 반일투쟁에 불러일으켜야 하며 노동자, 농민은 물론 종교인, 양심적인 민족자본가에 이르기까지 반일적인 사상을 가진 모든 세력을 반일의 기치하에 굳게 결속할 데 대하여 가르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주적으로 혁명적 당을 창건할 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면서 반드시 자체의 힘으로 새로운 혁명적 당을 창건하며, 충분한 준비밑에 당의 기층조직을 먼저 내오고 그것을 부단히 확대강화하는 방법으로 당을 창건하며, 당창건준비사업을 반드시 일제를 반대하는 무장투쟁과 밀접히 결부하여 진행해야 한다고 가르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카륜회의에서 천명하신 노선과 방침은 나라의 독립과 인민대중의 자주성실현을  핵으로 하고 있었다.

그분께서 주체사상의 원리를 천명하시고 총대중시의 독창적인 혁명노선, 선군혁명노선을 비롯한 반일민족통일전선노선, 혁명적 당창건방침을 밝히신 것은 위대한 주체사상, 선군사상의 창시와 주체적인 혁명노선의 탄생을 선포한 역사적 사변이었다.

두자루의 권총과 「ㅌ.ㄷ」의 결성으로 선군의 시원이 마련되고 새 출발을 선언한 조선혁명은 카륜회의를 계기로 주체사상, 선군사상의 창시를 선포하고 그 기치밑에 자체의 독창적인 혁명노선과 전략전술을 가지고 자기의 앞길을 개척해 나가는 자주적인 혁명의 길에 확고히 들어서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