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태양 김정일장군」(4) 중에서 

  

  
 
인민들의 식생활을 개선하는데서 급선무로 나서는 것이 질 높은 기초식품을 원만히 생산보장하는 것이다.

간장, 된장, 기름 등은 사람들의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기초식품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미 「고난의 행군」시기 전선시찰의 길에서 어느 한 군부대식당에 들리시었을 때 질이 낮은 간장을 보시고 기초식품생산에서의 혁명을 결심하시고 인민군대에서부터 시작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에서 창조된 기초식품생산에서의 모범을 본받아 사회에서도 이 사업이 힘있게 벌어지도록 이끄시었다.

기초식품문제를 인민의 지향과 요구에 맞게 그리고 최단기간 안에 훌륭히 풀어 나가시려는 것이 경애하는 장군님의 구상이고 의도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기초식품생산기지들을 현대화하고 기초식품생산을 높은 수준에서 정상화하기 위한 본보기를 마련하시기 위하여 주체91(2002)년 7월 19일 삭주식료공장을 현지지도하시었다.

수백㎡의 드넓은 발효실에는 밀폐된 18개의 발효탱크가 놓여있었는데 2명의 발효공들이 발효공정을 감시하고 있었다. 이 공장에서 간장과 된장의 생산은 원료가 들어가는 첫 공정으로부터 완성된 제품이 나오는 마지막공정까지 모두가 사람의 손이 닿지 않고 진행되도록 밀폐식 생산공정으로 설계되어있었다.

공장에 도착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새로 건설된 생산공정들을 돌아보시고 나서 이 공장에서 기초식품생산공정을 잘 꾸려놓은데 대하여 높이 평가하시었다.

우리 나라에서 장의 역사는 매우 오래다. 역사문헌자료에 의하면 옛날에는 장을 결혼용 납채품목의 하나로 보내었다고 하며 평안남도 강서군 덕흥리 벽화무덤에는 장을 담그어 먹었다는 사료가 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리의 민족성이 체현되어있고 가장 필수적인 기초식품의 하나인 장을 공업적 방법으로 훌륭히 생산하여 인민들에게 공급하기 위해 이미 각 도, 시, 군들마다에 꾸려져 있는 장공장, 기초식품공장들을 기술개건하고 새로 기초식품공장들을 일떠 세우도록 하시면서 그렇듯 심혈을 기울이시는 것이었다.

공장을 다녀가신 이틀후인 7월 21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에게 삭주식료공장의 기초식품생산공정을 돌아보신데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삭주식료공장 기초식품생산공정은 손노동이 없게 완전히 밀페식으로 꾸린 생산공정이라고, 식료품공장들은 삭주식료공장처럼 꾸려야 한다고 하시었으며 이 공장 기초식품생산공정을 전국의 기초식품공장들에 일반화하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크나큰 믿음의 말씀을 하시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달후인 10월 17일 함흥기초식품공장을 찾으시었을 때에도 장군님께서는 삭주식료공장의 장생산공정을 알려주시면서 장생산에서도 질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인민들이 이 공장에서 생산하는 간장과 된장을 먹어보고 다 좋다고 한다는데 자신께서도 장을 조금 가지고가서 맛보겠다고 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삭주식료공장과 함흥기초식품공장에 대한 현지지도는 나라의 기초식품생산기지들의 기술개건을 힘있게 밀고 나가 기초식품생산을 높은 수준에서 정상화하며 그 질을 높여 인민들의 식생활을 향상시키는데서 전환적인 의의를 가지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기초식품만이 아니라 여러가지 식료가공품생산을 늘이고 그 질을 높이는데도 커다란 관심을 돌리시었다.

감자생산이 급격히 늘어나는 실정에서 쌀과 함께 감자를 주식으로 하는 식생활양식으로 전환시키자면 감자를 원료로 하는 식료품생산을 공업화하여야 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91(2002)년 2월 23일 새로 확장되어 여러가지 감자가공품들을 생산하고 있는 대홍단감자가공공장을 현지지도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새로 설치한 기계들의 가동상태와 제품의 질, 포장에 이르기까지 세세히 알아보시고 갖가지 질 좋은 감자가공품들이 쉬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광경을 보시면서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시었다.

장군님께서 엿생산직장에 들리시었을 때였다.

줄줄이 쏟아져 나오는 눈처럼 하얀 감자엿을 살펴보시던 장군님께서는 문득 『내가 전후에 답사행군대오와 함께 보천보에 갔을 때 감자엿을 먹어본 일이 있는데 그 엿은 색깔이 거밋거밋하였습니다. 거밋거밋한 엿도 맛이 있었습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근 50년전에 있은 일을 두고 하시는 추억의 말씀이었다.

그로부터 며칠후 장군님께서는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을 만나신 자리에서 또다시 그때 일을 추억하시었다.

『그 공장에서 생산하는 감자엿을 보니 내가 1956년에 백두산혁명전적지를 답사하러 갔을 때 보천보에서 감자엿을 먹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주인집할머니가 내놓은 감자엿은 검은색이었는데 맛이 있었습니다. 대홍단감자가공공장에서 만드는 엿은 희었습니다.』

장군님의 말씀에 접한 일꾼들은 가슴이 뜨거워 났다.

나라가 어려움을 겪던 전후시기 백두산지구를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 우리 인민들이 올릴 수 있었던 것은 거무스름한 한가락의 감자엿뿐이었다.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그 한가락의 감자엿도 맛있게 드시면서 앞으로 이곳 인민들을 남부럽지 않게 잘살게 하시려는 결심을 굳히시었고 감자농사혁명의 포성이 울린 오늘에는 그 결심을 실천에 옮기시려고 백두산기슭에 감자엿생산공정까지 갖춘 훌륭한 감자가공공장도 건설해 주시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얼마후인 2월 26일 장군님께서는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에게 이번에 대홍단감자가공공장을 돌아보면서 자신께서 구상한 것이 옳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자신께서는 감자농사혁명방침을 내놓으면서 감자가공공장을 건설하여 인민들에게 맛 좋은 여러가지 감자가공품을 생산공급할 것을 구상하였다고, 그래서 대홍단군에 현대적인 감자가공공장을 건설할 때 감자농마뿐아니라 분탕과 엿, 술을 생산하는 공정도 꾸리도록 하였는데 지금 그 공장에서 분탕과 엿, 술을 생산하고 있다고, 그것들을 인민들에게 공급하면 얼마나 좋아하겠는 가고, 인민들이 좋아할 생각을 하니 기쁘다고 말씀하시었다.

주체93(2004)년 1월 11일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한겨울의 추위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인민군군인들이 새로 건설한 식료종합가공공장을 찾으시었다.

기초식품직장에 들어서시어 생산능력에 대한 설명을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잠시 무엇인가를 생각하시다가 조용히 말씀하시었다.

『나는 <고난의 행군>시기에 우리 군인들과 인민들이 질이 높지 못한 기초식품마저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는 것이 너무도 가슴이 아파 나라의 경제형편이 매우 어려웠지만 많은 … 자금을 내여 인민군대의 기초식품문제부터 해결하고 그 경험을 전국에 일반화하도록 하였습니다.』

언제인가 그이께서 전연고지에 가셨을 때 병사들이 질이 좋지 못한 간장과 소금을 먹는 것을 보시고 너무 가슴이 아파 며칠동안 밤잠을 이루지 못하셨던 일을 잊으실 수 없어 벌써 몇번째나 외우시는 말씀이었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후방사업의 중요성에 대해서 참으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었다. 그이께서는 군대에서 기본은 크게 세가지 군사, 정치, 후방사업이라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었다.

『수령님께서는 후방사업은 곧 정치사업이라고 교시하시었습니다. 수령님의 이 교시는 명언중의 명언입니다. 배고파하는 사람에게 먹을 것은 주지 않고 해설설복만 하여서는 소용이 없습니다. 정치사업도 후방사업이 안받침되어야 은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후방사업은 곧 정치사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후방사업을 단순한 물자공급사업이 아니라 인민군대에서 정치사업, 군사사업과 함께 3대기둥의 하나로 내세워야 한다는 가르치심이었다.

인민군대의 모범을 본받아 새 세기의 경공업전선에서는 인민에 대한 헌신과 복무의 서사시가 창조되고 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기초식품생산과 식료가공분야에서 근본적인 전환을 이룩하도록 하시는 한편 일용품생산기지들을 수많이 일떠세우도록 하시었으며 전반적인 경공업공장들의 기술개건을 통하여 천, 옷, 신발 등 전반적인 경공업제품들의 질을 높이고 인민들의 늘어나는 수요를 보장하도록 하시었다.

사회주의경제강국의 높이에 맞게 인민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지지도의 숭고한 자욱을 따라 경공업혁명의 불길이 온 나라에 타 번졌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수많은 경공업공장들이 개건확장되고 경공업발전의 토대가 더욱 튼튼히 마련되게 된 조건에서 공화국창건 55돐이 되는 주체92(2003)년에 경공업발전에서 새로운 혁명적 전환을 이룩하도록 하기 위한 전국경공업부문일꾼회의를 소집하도록 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각별한 관심속에 3월 23일과 24일에 혁명의 수도 평양에서 전국경공업부문일꾼회의가 진행되었다. 회의에서는 지난 기간 경공업발전에서 이룩한 성과에 기초하여 인민소비품생산을 획기적으로 늘이는데서 나서는 구체적인 방도들을 광범히 토의하였다.

3월 26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에게 전국경공업부문일꾼회의가 잘되었다고, 회의에서 토의한대로 올해 인민소비품생산목표를 모든 부문들에서 무조건 수행하고 다음해초에 총화를 단단히 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었다.

『인민소비품생산을 빨리 늘여야 합니다. 가까운 앞날에 우리 인민들이 남부럽지 않게 잘살도록 하려는 것은 당의 확고한 결심이며 의지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이날 인민소비품의 질을 결정적으로 높이고 새로 건설한 경공업공장들과 개건된 경공업공장들을 만부하로 돌리는데 선차적인 힘을 넣으면서 전반적인 경공업공장들의 현대화를 적극 다그칠데 대한 강령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었다.

전국경공업부문일꾼회의를 소집하시어 전국에 증산투쟁의 불길을 지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인민소비품문제를 보다 원만히 풀기 위한 사업을 현명하게 영도하시었다.

함흥시내 공장, 기업소들을 현지지도하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92(2003)년 4월 11일 새로 건설된 어느 한 공장도 현지지도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최신식설비들로 장비된 이 공장의 안팎을 돌아보시면서 이 공장은 21세기의 요구에 맞는 현대적인 공장이라고, 이 공장에서 파다이어로 생산한 고무가루를 인민군대와 도안의 신발공장들에 보내준데 대하여 잘하였다고 기쁨에 넘친 음성으로 말씀하시고 나서 이 공장은 실리에 맞고 생산문화도 잘 보장된 아주 훌륭한 공장이라고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시었다.

이 공장은 생산에 필요한 원료구입과 생산된 제품의 판매에서 제한을 받지 않고 있어 실리적일 뿐 아니라 고도로 현대화되고 공해가 전혀 없으며 건축형식이 독특한 공장이었다.

공장의 생산설비들은 논리조종체계로 이루어진 프로그램조종설비들로서 원료장입으로부터 제품포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산공정이 컴퓨터화되어있었다.

오랜 세월을 두고 인민들의 신발문제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면서 그 해결을 위하여 온갖 심혈을 기울여오신 장군님이시기에 이 공장에서 생산하는 신발창재료를 보시고 그토록 기뻐하시었던 것이다.

이렇듯 인민들에게 보다 문명하고 유족한 생활을 마련해주시기 위하여서는 그 무엇도 아끼지 않으시고 심혈을 바쳐가시는 우리 장군님이시기에 그이께서는 삼복더위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그해 8월 5일에도 뙤약볕이 내려쪼이는 한낮에 평양화장품공장과 선교편직공장 등 평양시내 경공업공장들을 현지지도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선군의 요구에 맞게 인민소비품생산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키기 위하여 지방공업을 발전시키고 「8월3일인민소비품」생산운동을 보다 힘있게 벌여 나가도록 적극적인 대책들도 세워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93(2004)년도 저물어가던 11월 30일 아침 일찍 새로 건설한 희천경질유리그릇공장을 찾으시었다.

이날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들의 공급정형에 대하여 알아보신 장군님께서는 제품들을 평양시민들과 노동계급들에게 공급하는 것과 함께 인민군대에도 보내주어야 한다고 가르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군인들이 훈련에 나가서는 늄식기를 쓰다가 병영에 돌아와서는 이런 경질유리그릇을 쓰게 하자는 것이 자신의 의도라고 말씀하시었다.

계속하여 장군님께서는 경질유리그릇은 던져도 깨지지 않게 하여야 한다고, 21세기에 맞는 경질 유리그릇공장인 것만큼 생산한 제품이 세계적 수준에 이르게 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시면서 공장을 만부하로 돌리는데 필요한 조건을 다 보장해줄 데 대한 은정을 베풀어주시었다.

이렇듯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늘 인민군대와 인민들에게 무엇을 하나라도 더 안겨주고 싶은 불덩이같은 정과 사랑을 가슴속에 간직하시고 숭고한 헌신의 길을 걷고 또 걸으신다.

군대와 인민에 대한 이 사랑이야말로 김정일장군님의 정치의 핵을 이루고 있으며 일찍이 역사에 있어본 적이 없는 가장 숭고한 사랑이다. 이 지극한 사랑속에 선군시대 인민의 행복이 꽃펴났다.

군대와 인민을 위해 바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위대한 헌신은 세기적인 기적과 변혁을 일으키는 창조의 힘이었고 인민생활을 놓고 어쩌고저쩌고 하는 제국주의 자들에게 안기는 뇌성벽력이었다. 이 위대한 사랑과 헌신에 의하여 우리의 경공업은 현대화의 나래를 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