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태양 김정일장군」(3) 중에서

 


 


 

 강철이 불속에서 단련되듯이 혁명은 시련과 난관속에서 승승장구한다. 붉은기를 지켜낸 1990년대 후반기의 준엄한 6년, 그것은 총포성없는 전쟁이었다.

제국주의반동들은 우리 나라에 대한 정치군사적 압력과 함께 끈질긴 경제적제재와 봉쇄책동을 악랄하게 감행하였다. 이전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의 붕괴로 하여 사회주의시장이 없어진 조건에서 우리 나라는 필요한 것을 자본주의시장에서 사들이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것을 기화로 제국주의자들은 동서냉전의 산물인 대공산권수출통제위원회라고 하는 이른바 코콤(「와세나협정」으로 바뀜)을 비롯한 국제적인 각종 수단들을 총발동하여 조선에 대한 무역제재와 경제봉쇄에 매달렸다.

미제는 우리 나라를 「비최혜국 및 적국관세」지역명단에 올려놓고 차별적인 관세정책을 실시하였으며 일본반동들도 다른 발전도상나라들에는 낮은 특혜세율을 적용하면서도 우리 나라에 대해서만은 가장 높은 기본세율을 적용하는 등 관세와 국제금융거래를 통해서도 경제봉쇄책동을 악랄하게 감행하였다.

거기에다 연속 들이닥친 큰물과 해일, 가물 등 파국적인 자연재해로 하여 혹심한 식량난까지 겹쳐들어 인민들은 초보적인 생존권마저 위협당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연료와 동력이 부족하여 공장들이 하나, 둘 숨죽어가고 달리던 열차와 전동차가 멈춰섰다. 제국주의자들은 쾌재를 올렸다. 그들은 『고립무원한 사회주의조선은 더는 지탱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떠벌이면서 우리에게 자본주의길에 들어서면  식량지원도 경제원조도 주겠다고 달콤한 넉두리를 늘어놓았다.

이 준엄한 역사의 갈림길에서 조선은 사회주의기치를 더 높이 들었다. 우리 군대와 인민은 장군님을 따라 「고난의 행군」을 단행하였다.

우리 혁명 앞에 나날이 시련과 난관이 겹쌓이던 주체85 (1996)년 2월 어느날이었다. 한 일꾼이 경애하는 장군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분께서 계시는 집무실로 갔다. 그분께 사업보고를 올리고 몇가지 문제에 대한 결론을 받은 그는 무심히 벽에 걸린 풍경화에 시선을 돌리게 되었다.

얼핏 보기에는 산간지대 그 어디서나 흔히 볼수 있는 평범한 산골풍경이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숭엄한 정서가 안겨왔다. 산비탈을 끼고 골안으로 들어가는 작은 오솔길, 그것을 감돌아 흐르는 맑은 시내물, 방금이라도 메새들의 우짖음소리가 들려 오는 듯 싶은 무성한 잡관목의 숲, 일꾼은 그 그림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그러는 일꾼을 바라보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나직한 음성으로 나라의 안팎의 정세가 복잡하다고, 우리가 간고한 혁명의 길을 꿋꿋이 걸어 나가자면 혁명적세계관으로 무장하는것과 함께 자기가 숭상하고 따라 배워야 할 정신적본보기가 있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저 그림은 요영구의 풍경을 그린 것이라고 말씀하시었다.

요영구는 1930년대 전반기 혁명의 사령부가 자리잡았던 유서깊은 곳이다. 풍경화의 산천에는 조선혁명의 준엄한 역사가 비껴있었다. 당시 일제침략자들은 갓 창건된 항일무장대오를 요람기에 압살하려고 그 중심지인 왕청, 훈춘, 화룡 일대의 유격구들을 봉쇄하고 갖은 발악을 다하였다. 일제는 수천수만의 방대한 무력을 끌어들여 유격구를 겹겹이 포위하고 포와 비행기까지 동원하여 근거지를 「초토화」하기 위한 대규모의 「토벌」공세를 강화하는 한편 혁명대오를 내부로부터 분열와해시키려고 악착스럽게 책동하였다. 그리고 한알의 쌀, 한치의 천도 유격구에 들어가지 못하게 봉쇄했으며 유격구의 곡식밭들을 모조리 짓뭉개버리거나 불태워버렸다.

이런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요영구에서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를 소집하시고 전략적인 방어로부터 전략적인 공격에로 넘어가 일제의 봉쇄책동을 단호히 짓부수고 조선혁명을 일대 새로운 앙양에로 이끄시었던 것이다.

일꾼이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생을 자주적으로 살아나갈 것을 맹세한 혁명가들은 언제나 제국주의자들의 침략과 봉쇄책동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각오하여야 한다고, 요영구의 풍경화에는 바로 붉은기사상, 고난의 행군정신으로 적들의 그 어떤 침략과 봉쇄도 단호히 짓부셔버리고 우리 혁명을 승리에로 이끌어 나가려는 나의 의지와 결심이 그대로 어리어있다고 말씀하시었다.

그분께서는 사실 지금 조건이 아무리 어렵다 해도 지난 항일혁명투쟁때나 조국해방전쟁때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유산으로 물려주신 위대한 사상이 있고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제도와 강력한 자립적 민족경제의 토대가 있다, 그리고 당과 수령께 무한히 충직한 인민이 있으며 온 사회가 하나로 된 일심단결의 위력이 있다고 말씀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여 우리가 조성된 난국을 주동적으로 타개하고 혁명승리를 이룩하자면 고난의 행군정신으로 살며 싸워 나가야 한다고 하시며 고난의 행군정신은 자신의 힘으로 혁명을 끝까지 해나가려는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이며 어떤 역경에 처하더라도 비관과 동요를 모르고 난관을 맞받아 뚫고 나가는 불굴의 정신, 혁명적 낙관주의정신이며 한마음한뜻으로 굳게 뭉쳐 자기 영도자를 받들고 보위해 나가는 일심단결의 정신, 수령결사옹위정신이다, 고난의 행군정신으로 살며 싸워 나가는 여기에 내 나라, 내 조국의 부강번영과 혁명가의 값높은 영예를 빛내어 나가기 위한 기본담보가 있다고 말씀하시었다.

그분의 말씀을 받아 안는 일꾼의 감동은 참으로 컸다.

요영구의 풍경화, 바로 여기에는 1930년대의 그 정신으로 조선혁명을 새로운 앙양에로 이끌어 나가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확고한  결심과 의지가 어려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고난의 행군」을 하는 우리 군대와 인민에게 혁명적 인생관을 필승의 보검으로 틀어쥐고 살며 투쟁할 데 대한 강령적 가르치심을 주시었다.

주체85(1996)년 1월 14일이었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오늘을 위한 오늘에 살지 말고 내일을 위한 오늘에 살자』라는 뜻깊은 담화를 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혁명가는 오늘을 위한 오늘에 살 것이 아니라 내일을 위한 오늘에 살아야 한다, 혁명가들에게 있어서는 오늘보다도 내일을 위하여 살며 투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나는 끝없이 번영할 우리의 사회주의조국, 그 품속에서 더욱 보람차고 행복한 삶을 누릴 우리 인민의 모습을 그리며 그 어떤 난관도 달게 여기며 일하고 있습니다. 「오늘을 위한 오늘에 살지 말고 내일을 위한 오늘에 살라」,  이것이 나의 인생관입니다.』

그분께서는 이 말은 자기는 낙을 보지 못하더라도 조국의 앞날과 후손만대의 행복을 위하여 한몸을 바칠 각오를 가지고 살라는 것이다, 항일혁명투사들이 이런 인생관, 이런 신념을 가지고 투쟁하였다고 말씀하시었다.

우리 조국과  혁명앞에 닥쳐온 준엄한 시련과 난관을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가, 군대와 인민이 오늘의 고난을 어떤 신념과 낙관으로 뚫고 나가야 하는가를 가르쳐주시는 말씀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불길이 펄펄 이는듯 한 눈길로 일꾼들을 둘러보시다가 단호한 어조로 말씀을 계속하시었다.

그분께서는 제국주의의 포위속에서 단독으로 사회주의를 지켜나가자니 시련도 많고 고난도 많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혁명의 길에서 물러설 수 없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억천만번 죽더라도 모든 시련과 고난을 뚫고 사회주의를 지켜나간다, 누가 최후에 웃는가 보자, 이런 신념, 이런 배짱을 가지고 싸우면 당해낼자가 없습니다. 「죽음을 각오한 사람을 당할자 이 세상에 없다」,  이것이 우리 혁명가들이 지녀야 할 신념이고 배짱입니다.』

이것이 장군님께서 우리 군대와 인민에게 안겨주신 신념과 배짱의 선언이었으며 필승의 철학이었다.

오늘을 위한 오늘에 살지 말고 내일을 위한 오늘에 살자는 장군님의 혁명적 인생관은 그저 막연한 낙관이 아니었다. 그것은 죽음을 각오한 사람을 당할자 이 세상에 없다는 신념과 누가 최후에 웃는가 보자는 든든한 배짱을 가지고 시련과 난관을 뚫고 내일을 향하여 달려나가는 혁명적 낙관주의였다.

장군님께서는 동안을 두시었다가 말씀을 이으시었다. 일꾼들은 희생을 각오하고 돌격전에 그대로 육탄이 되어 뛰어드는 불굴의 혁명전사가 되어야 한다, 비록 힘이 들고 난관이 많다 하더라도 앞날을 생각하며 용감하게 돌진하는 일꾼이라야 신념이 있고 주체의 인생관이 선 일꾼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간곡히 가르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85(1996)년 10월 14일에도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고난의 행군정신으로 살며 일하도록 할 데 대하여 가르치시면서 모든 일꾼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혁명적 낙관을 가지고 신심에 넘쳐 투쟁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나는 정세가 아무리 준엄하여도 비관에 빠지지 않으며 어렵고 복잡한 때일수록 모든 일을 웃으며 낙관적으로 해나가고 있다, 고난과 시련이 겹쌓일수록 그것을 맞받아 나가는 것이 나의 의지이다, 내가 조국해방전쟁시기 최고사령부에 가있으면서 수령님으로부터 배운 것이 혁명적 낙관주의와 맞받아 나가는 의지와 전술이다, 일꾼들은 언제나 신심을 잃지 말고 앞을 내다보며 전진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었다.

이렇듯 투철한 혁명적 인생관을 지니신 장군님께서는 달리는 야전차에서 쪽잠과 줴기밥을 드시며 최전연에서 최전연으로, 공장에서 농촌으로  끊임없는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 나날 자신의 숭고한 모범으로 일꾼들이 고난의 행군정신으로 살며 투쟁하도록 이끌어주시었다.

주체86(1997)년 3월 어느날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시고 현지지도의 길을 수행하던 일꾼들은 뜻밖의 「강의」를 받게 되었다. 혁명을 하려면 풀뿌리맛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내용이었다.

장군님께서는 수행한 일꾼들에게 냉이뿌리를 캐서 반찬을 만들어 먹어보았는데 맛이 있더라고 하시면서 그 방법에 대하여 하나하나 가르쳐주시고 나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우리가 풀뿌리맛을 잊으면 혁명을 못합니다. 우리는 우유맛은 몰라도 풀뿌리맛은 알아야 합니다.』

인민들과 같이 풀뿌리를 씹으면서라도 기어이 혁명을 해야 한다는 각오를 깊이 심어주시는 장군님의 이 말씀에 일꾼들의 가슴은 저절로 숙연해졌다.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여 지금 우리 인민들은 「고난의 행군」을 하면서 식량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고 있지만 풀뿌리를 삶아 먹으면서라도 끝까지 당을 따라 주체위업을 완성하며 조국을 통일할 결의에 넘쳐있다고, 수령님께서 키우신 우리 인민과 군대는 풀뿌리맛을 잊지 않고 있는 혁명적이고 검박하고 성실한 인민이며 군대이라고 말씀하시었다.  

냉이뿌리와 같은 풀뿌리맛, 거기에는 조선혁명의 간고한 투쟁역사가 어려있었으며 풀뿌리를 씹으면서라도 끝까지 혁명을 해야 한다는 위대한 장군님의 혁명적 각오와 굳센 의지가 비껴있었다.

일꾼들은 장군님께서 하신 풀뿌리맛의 이러한 철리를 가슴깊이 새기고 「고난의 행군」대오의 앞장에서 대중을 이끌어 나갈 결의를 다지였다.

이렇듯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안겨주신 불멸의 금언들과 그분께서 보여주신 숭고한 모범은 우리 군대와 인민에게 어떠한 각오와 의지로 「고난의 행군」을 이겨내야 하는가를 심장마다에 새겨준 고귀한 진리로, 겹겹이 막아서는 만난과 시련을 과감히 헤쳐나갈 수 있게 하는 불굴의 정신적 힘의 원천으로 되었다.

「고난의 행군」은 비록 총포성이 울부짖는 격전길은 아니었어도 항일의 준엄한 전구를 방불케 하는 「처창즈의 굶주림」도 있었고 「소왕청방위전투」도 있었으며 신념과 배신이 갈라진 「41년도바람」도 있었다. 하지만 온 나라 인민들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안겨주신 내일을 위한 오늘에 살라는 주체의 인생관과 고난의 행군정신으로 자그마한 개울에도 발전소를 건설하여 기계를 돌리고 원료, 자재가 부족하면 내부예비를 적극 동원하여 생산을 보장하였으며 식량이 모자라면 풀뿌리라도 캐먹으며 과감하게 시련을 뚫고 나갔다. 조국보위초소와 사회주의건설장들마다에서는 제국주의자들의 반사회주의광풍을 신념과 낙관의 역풍으로 뚫고 나가는 승리자들의 노래소리가 힘있게 울려 퍼졌다.

우리 나라의 이러한 현실에 대해 홍콩에 있는 국제문제담당 분석가는 「홍콩신문」에 실은 글에서 이렇게 썼다.

『북조선에서의 인생관의 심연은 그 어떤 가물도 타지 않고 푸른 대해마냥 출렁이며 끝없이 깊어지기만 한다. 그것은 이 나라 김정일최고영도자의 인생관이 영원하고 끝없이 깊기 때문이다. 북조선은 이 인생관으로 하여 앞으로도 계속 완강히 지탱해 낼 것이며 이 나라 공산주의자들, 군인들, 남녀청년들, 인민들모두가 이 영원한 젖줄기를 마음껏 마시며 더욱 완강히 싸워 나갈 것이다.

그들이 바라는 사회주의의 종국적 승리를 위하여, 인생의 가장 큰 영예와 영광을 위하여.』

모진 시련과 난관을 헤치며 신념의 행군, 낙관의 행군을 하는 우리 군대와 인민들의 모습을 반영한 세계의 목소리였다.

이처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군대와 인민의 가슴속에 승리에 대한 필승의 신념과 혁명적 낙관을 심어주심으로 하여 「고난의 행군」을 승리적으로 돌파하고 최후의 승리를 이룩할 수 있는 결정적담보가 마련되게 되었다.

우리 군대와 인민이 강성대국건설의 힘찬 진격의 길에 들어선 어느해 2월 일꾼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고난의 행군」의 나날들을 감회깊이 추억하시면서 지난 7년간 나는 선군정치를 하는데 모든 것을 다 바치었다고 절절이 말씀하시었다. 그러시고는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기시었다가 노래 『봄을 먼저 알리는 꽃이 되리라』를 조용히 부르시었다.

따뜻한 깃을 찾아 새들은 가도

찬바람 부는 길을 처녀는 가네

그 누가 내 마음 몰라줘도 몰라준대도

희망안고 이 길을 가고 가리라

마음속 깊은 감회를 담아 한번 부르시고는 말씀을    하시고 또다시 부르시고는 또 말씀을 이으시기를 그 몇번, 장군님을 따라 노래를 부르는 일꾼들의 얼굴에는 형언할 수 없는 격정으로 눈물이 줄지어 흘러내리었다.

우리 장군님께서 헤쳐오신 그길이 얼마나 간고하였고 겪으신 고생이 얼마나 크시었으면 그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르시었으랴. 그 누가 몰라준대도 희망안고 찬바람, 눈서리를 헤쳐온 그길이 바로 위대한 장군님께서 열어오신 피어린 「고난의 행군」길, 선군혁명영도의 길이었다.

바로 이러한 희망, 이러한 낙관을 안고 장군님께서는 「고난의 행군」을 앞장에서 헤쳐오시었다.

역사적인 「고난의 행군」노정은 그 진두에 서계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내일을 위한 혁명적 인생관, 숭고한 낙관주의로 시대의 폭풍을 헤치시며 힘차게 찍어가신 불멸의 자욱자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