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1) 중에서 





 

 1920년대 중엽 세계정치무대에서는 정당정치가 급속히 일반화되어 시대적 추세로 되고 있었다. 3.1인민봉기를 통하여 부르조아민족주의가 더는 민족해방투쟁의 기치로 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선각자들속에서 새로운 공산주의사조를 따르는 기운이 급속히 자라나 마르크스-레닌주의가 빠른 속도로 전파되고 대중조직들이 출현하고 있었다. 한편 그 영향밑에 일제의 식민지통치를 반대하는 대중운동이 도처에서 일어났다. 새로운 현실발전은 그것을 통일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지도세력, 강력한 정치적 조직을 요구하였다.

1925년 4월 조선공산당이 창건되었으나 인민들의 투쟁의 앞길을 밝혀주는 옳은 지도사상이 없고 종파분자들의 파벌싸움으로 하여 노동자계급의 전위대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었다.

모든 사실은 탁월한 수령의 영도를 받는 참다운 전위조직의 올바른 지도가 없이는 공산주의운동의 발전도 반일민족해방투쟁의 승리도 이룩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탁월한 수령과 참다운 혁명조직의 출현, 이것은 조선공산주의 운동과 반일민족해방투쟁발전의 절박한 요구였다.

바야흐로 새로운 혁명활동개시의 첫걸음을 내디디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모든 문제를 시대와 혁명실천이 요구하는 안목에서 분석판단하시고 비판적으로 대하시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주체15(1926)년 6월 중순 어느날 남만에 있는 화전을 향해 떠나시었다. 화전은 송화강과 휘발하의 합수목에서 오륙십리 떨어진 곳에 있는 길림성 관할의 산간도시로서 남만치고도 손꼽히는 독립운동 중심지의 하나였다. 거기에는 민족주의자들이 독립군간부들을 키워낼 목적으로 세운 2년제 군사정치학교인 화성의숙이 있었다. 그때  만주에는 여러 곳에 무관학교가 있었는데 화성의숙은 1925년초에 세운 정의부소속의 군사정치학교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버님의 친지들의 권고와 어머님의 뜻을 받들어 화성의숙에서 군사를 배우고 익히기 위하여 떠나신 것이었다. 군사적 대결에 의해서만 일제를 타승할 수 있고 군사를 알아야 독립운동의 전열에 설 수 있다는 것이 군사정치학교인 화성의숙에 입학하실 당시의 위대한 수령님의 견해였다. 그러므로 화성의숙으로 가시는 것은 반일독립투쟁의 활무대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했다. 그때 수령님께서는 화성의숙의 교육에 적지 않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2년동안 의숙의 교육을 받느라면 중학과정안은 물론 군사를 하나 더 배우게 되리라는 생각을 하시었다.

화성의숙은 당년 15살의 그분을 열렬히 환영하였다. 화성의숙 최동오숙장은 아버님을 잃고 얼마나 가슴아프시겠는가고 진심으로 되는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훌륭한 아버님의 뒤를 이어 독립성전에 나서주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화성의숙을 자상히 소개해 드리었다. 의숙의 교직원들과 학생들은 김형직선생님의 아드님이신 그분을 「어린 독립군」이라고 하면서 그분의 화성의숙입학을 여간만 기뻐하지 않았다.

관할구역안에 살고 있은 조선사람들의 생활상편의를 봐주는 자치적인 기구인 정의부소속 화전총관소 김시우총관내외는 달려나와 반갑게 맞아주었다. 오래전부터 김형직선생님과 연계를 맺고 독립운동을 해오던 총관은 정미소를 운영하면서 거기서 돈을 뽑아 독립군에 식량도 대주고 화성의숙과 그 부근의 조선인모범소학교에 재정적인 후원도 하고 있었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을 위해 저녁을 차리고 침실 겸 서재로 이용하던 자기 방을 내주면서 기숙사에 들어가있을 생각은 아예 하지 말라고 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입학 첫날부터 두각을 나타내시었다. 의숙에서는 군사학을 비롯하여 조선역사와 지리, 세계혁명사, 생물, 체육, 수학 등을 배워주었다. 그분께서는 모든 과목을 높은 수준에서 이해하시었고 해박한 지식을 소유하시었다. 학생들은 모를 것이 있으면 선생보다 그분을 찾아와 물었는데 어떤 어려운 문제도 막힘이 없이 가르쳐주시었다. 그리하여 학생들은 「박사선생님」이라고 하면서 그분을 존경하였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점차 화성의숙의 교육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었다. 배워주는 것은 왕조사본위의 조선역사와 부르조아혁명사기본의 세계혁명사를 통해 고취하는 민족주의사상, 구한국냄새가 나는 낡은 군사교련뿐이었다. 선생들은 반일과 민족적 독립에 대하여 말은 많이 하였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투쟁방법은 뒤떨어진 것이었다. 군사정치학교라고 하지만 학생들이 실탄사격에 쓸 탄알마저 없는 형편이고 무장투쟁의 교범이나 전술 같은 것도 변변치 못하였다. 학교당국은 전투경험이 있는 독립군 대원들을 내세워 무훈담을 자주 들려주었는데 개인테러의 방법을 찬양하는 것이었다.

한편 화성의숙에 찾아오는 독립군의 거두들이나 애국지사들은 혁명역량편성과 대중동원문제, 독립운동대열의 통일문제와 관련한 방법과 방도문제에 대한 일가견도 없이 독립하자고만 부르짖었다. 부르조아민족주의운동의 역사가 수십년 되지만 그것을 집대성하고 비판적으로 분석총화하는 이론이 없었다.

이때로 말하면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이 민족주의운동으로부터 무산혁명에로 방향전환을 하던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학교당국은 시대적 사조를 외면하고 학생들에게 낡은 민족주의사상만 주입하고 있었다. 학교당국은 공산주의서적도 마음대로 읽지 못하게 하였다. 학교당국이 민족주의 외통길로만 나가면서 다른 사상은 다 경계하다나니 학생들도 자연히 그 흐름을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학생들은 낡은 민족주의사상에 포로되어 왕조정치에 미련을 가지거나 미국식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까지 가졌다.

화성의숙의 사상적 낙후성은 위대한 수령님께 실망을 주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의숙에서의 생활전체를 부정하고 단념하고 싶지는 않으시었다. 시대풍조와 담을 쌓고 있는 그속에서도 새 것이 자라나고 있었다. 화성의숙의 학생들은 대부분이 노동자, 농민출신이고 조국광복을 위한 싸움에 한몸바칠 각오가 된 청년들이었다. 아직 낡은 사상에 깊이 물들지 않은 그들을 올바로 이끌어만 준다면 혁명의 참신한 세력으로 자라날 수 있는  젊은 세대들이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들 새 세대 청년들을 이끌고 혁명투쟁을 개척하실 것을 결심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선진사상연구에 정력을 기울이시면서 의숙의 학생들을 선진사상으로 무장시키는데 큰 힘을 돌리시었다.

그분께서는 「공산당선언」을 비롯한 마르크스와 레닌의 저서들을 탐독하시었다. 이 책들은 김시우총관의 서재와 강제하숙감의 집에 있었다. 그분께서는 마르크스-레닌주의서적들을 그저 읽으신 것이 아니라 특히 계급과 계급투쟁, 제국주의와 식민지문제에 대한 이론, 10월혁명, 대중영도에서의 공산주의자들의 임무와 활동경험 등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우리 나라의 구체적 현실과 결부시켜 창조적으로 탐구하시었다.

한편 그분께서는 의숙의 학생들 속에서 선진사상보급사업을 활발히 벌이시었다. 파악이 있는 동무들로부터 시작하여 점차 그 대열을 늘여 나가시었으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회정치문제에 대한 토론회를 마련하시고 그들의 정치적 안목을 높여주는 교양마당으로 되게 하시었다.

그리고 학생들과 함께 민족주의「이론가」들의 강연이나 행세식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사대주의적, 교조주의적  궤변을 들으시고는 그들 「주장」의 본질적 약점, 허황성을 낱낱이 까밝히시어 학생들로 하여금 그 영향에서 벗어나도록 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정력적인 활동에 의하여 학생들의 사상동향에서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그들은 민족주의의 낡은 울타리를 벗어나 새 사조를 동경하였다. 그들은 민족주의의 낡은 이념과 단호히 결별하고 수령님께서 가르쳐주신 새로운 투쟁의 길, 인민대중의 힘에 의거하여 자주적으로 수행하는 혁명의 길로 나가야 한다고 확신하고 그분을 따라 나섰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혁명의 참다운 길, 자주적 발전의 길이 탐구되고 핵심역량이 마련된데 기초하여 혁명적 전위조직을 내오기 위한 사업을 적극 벌여 나가시었다.

혁명은 사람들을 각성시켜 동지를 얻고 동지들을 하나로 결속하여 조직화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조직은 혁명을 낳는 산파이며 혁명의 생명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15(1926)년 9월말 어느날 휘발하강가에서 핵심성원들의 모임을 가지시었다. 조선혁명을 떠메고 나갈 조직의 필요성에 대하여 밝히신 그분께서는 사상을 같이하며 함께 투쟁할 수 있는 동지들을 더 많이 묶어세울 데 대하여 강조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의 모임에 대하여 회고록에 다음과 같이 쓰시었다.

『내가 그날 조직의 필요성에 대하여 많은 말을 하였던 것 같다. 나라를 해방하고 근로민중이 잘사는 세상을 세우자면 멀고도 험난한 길을 개척해야 한다, 우리가 대오를 늘이고 완강하게 혈전을 벌여 나간다면 능히 승리할 수 있다, 조직을 내온 다음 대중을 그 두리에 묶어 세우고 각성시켜 그들의 힘으로써 나라를 광복해야 한다, 이런 내용으로 말했더니 동무들이 다들 기뻐하면서 빨리 조직을 내오자고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0월 10일에 조직을 내오기 위한 핵심성원들의 예비회의를 여시었다. 예비회의에서 그분께서는 혁명적 전위조직의 명칭과 성격, 투쟁강령과 활동규범들에 대한 자신의 구상을 심의에 제기하시었다. 회의참가자들은 그분의 제안을 한결같이 지지찬동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새 형의 혁명조직을 내오기 위한 준비사업을 철저히 진행하신 기초위에서 주체15(1926)년 10월 17일 화전에서 타도제국주의동맹 결성모임을 소집하시었다.

회의에는 최창걸, 김리갑, 이제우, 강병선, 김원우, 박근원 등 핵심성원들이 참가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제국주의를 타도하자』라는 역사적인 보고를 하시었다.

그분께서는 보고에서 제국주의의 침략적 본성과 그를 타도해야 할 필요성, 우리 인민의 반일투쟁의 역사적 경험과 교훈을 분석하시었다. 그리고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자면 민족주의운동자들과 초기공산주의운동자들의 방법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투쟁의 길로 나가야 한다고 하시면서 우리 인민자체의 힘으로 일본제국주의를 때려 부수고 조선의 진정한 독립을 달성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었다.

그분께서는 보고에서 인민대중을 조직동원하여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조선의 독립을 달성하자면 청년공산주의자들의 혁명조직을 먼저 내와야 한다고 하시면서 조직의 명칭을 그 사명에 맞게 타도제국주의동맹으로 하며 약칭은 「ㅌ.ㄷ」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

『타도제국주의동맹이 명실공히 제국주의를 타도할 것을 자기 사명으로 하고 있는 조건에서 그 강령에서는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수인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조선의 해방과 독립을 달성할 것을 당면과업으로 내세워야 하며 최종목적으로 조선에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건설하며 나아가서 모든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세계에 공산주의를 건설할 것을 제기하여야 합니다.』

조선혁명의 당면과업과 최종목적을 밝힌 강령의 제시였다. 이것은 역사상 처음으로 조선혁명의 자주적 발전의 길, 주체혁명위업의 새 길을 밝힌 혁명강령으로서 우리 인민을 참다운 투쟁의 길, 민족적 및 계급적 해방의 성스러운 길로 힘있게 고무한 전투적 기치였다.

그분께서는 「ㅌ.ㄷ」의 강령을 옳게 수행하자면 타도제국주의동맹을 조직사상적으로 튼튼히 꾸리는 것과 함께 일제를 반대하는 투쟁에 모든 것을 다 바칠 굳은 각오를 가진 청년들로 조직을 확대강화하며 동맹원들은 엄격한 조직생활규범에 따라 활동하여야 한다고 하시었다.

그분께서는 끝으로 타도제국주의동맹의 결성은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기 위한 판가리 싸움의 선포이며 지구상 모든 제국주의와의 대결의 선언이라고 하시면서 우리들, 신흥청년전위들이 이 장엄한 투쟁의 선두에 서야 한다고, 타도제국주의동맹의 열혈청년들은 강의한 의지와 혁명적 투지로 온갖 난관과 시련을 극복하며 강도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조선의 독립을 이룩해야 한다고, 지구상의 모든 제국주의를 매장하기 위하여 용감히 싸워 나가자고 호소하시었다.

심장의 피를 끓이는 호소였다. 회의참가자들은 저마다 혁명을 위해 피와 살을 아낌없이 바치겠다는 전투적인 언약을 하였다. 그들은 한결같이 뜨거운 마음으로 위대한 수령님을 타도제국주의동맹의 책임자로 추대하였다.

타도제국주의동맹 결성모임이 끝나자 회의참가자들은 손에 손을 잡고 한덩어리가 되어 휘발하강가에 달려나가 노래를 부르며 조국과 민족을 위한 혁명의 길에서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자는 비장한 맹세를 다지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날 동지들과 함께 흥분을 금할 수 없으시었다. 조직을 뭇는 마당에서는 돌아가신 아버님생각이 떠오르고 조선국민회생각이 떠오르시었다.  뼈가 부서지고 몸이 찢기는 한이 있더라도 나라를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하신 아버님의 뜻을 실현하는 길에서 드디어 첫 열매를 맺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가슴도 울렁거리고 눈물도 나시었다. 그 날 밤에는 잠이 전혀 오지 않아 뜬눈으로 밤을 밝히시었다. 너무도 흥분이 크고 감격이 커서 잠을 이룰 수 없으신 것이었다. 후날 그분께서는 회고록에서 우리는 그때  온 세계를 전취한 것 같은 감격과 희열에 휩싸여있었다, 돈더미위에 올라앉은 억만장자들의 낙을 어떻게 이런 기쁨에 비길 수 있을 것인가라고 쓰시었다.

참으로 타도제국주의동맹의 결성은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투쟁에서, 조선혁명의 역사에서 위대한 사변이었다. 그것은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되는 참다운 공산주의적 혁명조직의 결성으로서 조선혁명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역사적 선언이었다. 우리 인민의 혁명투쟁은 사대주의, 교조주의를 비롯한 온갖 낡은 사조와 결별하고 자주성의 원칙에 따라 전진하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조선공산주의운동과 민족해방투쟁은 정확한 투쟁목표와 전략전술을 가지고 힘차게 전진하게 되었다. 타도제국주의동맹의 결성으로 반일민족해방투쟁과 공산주의운동발전에서 근본적인 전환이 일어나고 생사존망의 갈림길에 놓였던 민족의 운명을 구원할 수 있는 돌파구가 열려졌다.

타도제국주의동맹의 결성은 또한 우리 나라에서 종전의 당과 구별되는 새형의 당, 주체형의 혁명적 당건설의 출발점으로 되었으며 「ㅌ.ㄷ」에서부터 조선노동당의 영광스러운 뿌리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타도제국주의동맹의 결성은 또한 위대한 수령님께서 말씀하신바와 같이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기 위한 판가리싸움의 선포이고 지구상 모든 제국주의와의 대결의 선언이었다. 「ㅌ.ㄷ」의 이 투철한 반제자주사상은 수령님의 선군사상이 뿌리내린 사상적 토양이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선군혁명위업의 계승자이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타도제국주의동맹 결성 80돌이 되는 날에 하신 담화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었다.

『<ㅌ.ㄷ>는 우리 당의 뿌리이고 선군의 시원이며 단결의 전형이고 우리 혁명의 승리의 기치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작성제시하신 「ㅌ.ㄷ」의 강령은 철저한 반제사상으로 일관되었다. 강령에 천명된 제국주의를 타도할 데 대한 사상에는 혁명적 폭력에 의거한 투쟁방법 즉 무장투쟁에 관한 사상이 전제되어있었다. 이 혁명적 무장의 중요성, 제국주의와의 비타협적 투쟁에 관한 사상은 그후 위대한 수령님께서 창시하신 선군사상의 핵으로 되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어리신 나이에 제국주의타도를 선언한 혁명적 전위조직을 무으신 것은 실로 비범한 일이지만 선군사상의 시원으로 되는 투철한 반제사상을 담은 강령을  제시하신 것은 동서고금의 역사에 없는 위대한 장거였다.

참으로 「ㅌ.ㄷ」가 결성됨으로써 총대로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조선독립을 이룩할 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결심이 실현될 수 있는 광활한 길이 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