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태양 김정일장군」(4) 중에서 

 

  
 

 
 

 사회주의경제강국의 높이에 맞게 인민생활을 향상시키자면 식량과 함께 축산과 양어를 과학화, 현대화, 집약화하여 더 많은 고기와 알, 우유, 물고기를 생산하여야 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자연지리적 조건이 유리한 곳에 목장들을 건설하고 거기에서 염소를 비롯한 풀먹는 집짐승들을 대대적으로 기르는 사업을 현명하게 이끄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이미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에 모든 도, 시, 군들에서 지방의 유리한 자연지리적 조건들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염소목장들을 잘 꾸리고 염소를 대대적으로 기를 데 대한 강령적인 과업을 주시었다.

어느 한 인민군부대에서 장군님의 원대한 구상을 받들고 선참으로 염소목장을 훌륭히 일떠세웠다.

주체90(2001)년 4월 16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곳 군부대의 염소목장을 현지지도하시었다. 그분께서는 염소떼가 흐르는 이곳 목장의 산발들과 자체의 힘으로 여러가지 우유제품들을 생산할 수 있게 꾸려놓은 젖가공설비들을 만족하게 바라보시며 부대일꾼들의 투쟁기풍과 일본새를 높이 평가하시었다.

그날 장군님께서는 이곳 군부대처럼 한다면 그 어디에서나 많은 염소를 길러 우유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하시면서 부대일꾼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염소목장을 전국의 본보기가 될 수 있게 더 잘 꾸려야 하겠습니다.』

그러시면서 자신께서는 이 부대의 경험을 전국에 일반화하여 모든 단위들에서 염소를 대대적으로 기르게 하려고 한다고 하시며 목장을 더 잘 꾸리고 확장할 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었다. 그리고 그에 필요한 운반용기재들과 젖가공설비들, 우량품종의 염소종자해결대책도 세워주시었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도, 시, 군들에서 이들의 모범을 적극 따라배워야 한다고 강조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떠나시기에 앞서 이곳 일꾼들과 뜻깊은 기념사진도 함께 찍으시었다.

그후 4월 30일 황해남도 삼천군 전진벌 토지정리현장을 돌아보시면서도 장군님께서는 황해남도일꾼들이 자신께서 가본 인민군부대의 염소목장에도 가볼 데 대하여 말씀하시며 거기에 가면 젖가공설비를 보아야 한다고, 그 부대의 젖가공설비는 자체로 만들어놓은 것이라고, 그것을 보고 인민군군인들의 자력갱생의 혁명정신과 일본새를 배워야 한다고 간곡히 가르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크나큰 기대와 믿음에 무한히 고무된 그곳 부대일꾼들과 장병들은 짧은 기간에 젖짜기실, 젖가공실을 비롯한 모든 생산공정들을 최신식설비들로 장비하고 염소사양관리의 과학화, 현대화를 실현함으로써 목장의 면모를 일신시켰다.

다섯달이 지난 9월 11일에 이 목장을 또다시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젖짜기로부터 젖가공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이 기계수단에 의하여 진행되는 생산공정들과 산뜻하게 건설된 편의 및 후방시설들을 돌아보시고 부대군인들이 몇달사이에 목장의 기술개건을 훌륭히 끝내고 여러가지 젖가공제품을 다량생산하고 있는데 대하여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시면서 부대군인들의 위훈을 높이 평가하시었다. 그러시면서 이곳 부대에서처럼 염소를 비롯한 풀먹는 집짐승을 대대적으로 기를 데 대한 당정책을 철저히 관철한다면 우리 인민들에게 짧은 기간에 풍족한 생활을 마련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시며 모든 단위들에서 이들의 모범을 적극 따라 배울 데 대하여 다시금 강조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에서 창조된 귀중한 경험을 일반화하여 전국도처에 염소목장들을 수많이 일떠세우도록 현명하게 이끄시었다.

함경남도에서도 인민군군인들의 자력갱생의 혁명정신과 일본새를 본받아 함흥시청년염소목장을 훌륭히 건설하였다.

주체90(2001)년 5월 24일이었다. 이날 이른새벽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함흥시청년염소목장을 찾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드넓은 산판마다에 흰구름마냥 흐르는 염소떼를 정겨운 시선으로 바라보시었다.

장군님의 눈가에는 그윽한 미소가 어리었다.

『등판에 염소떼가 흐르니 참으로 보기 좋습니다.』

함흥시청년염소목장은 함흥시인민들이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에 풀뿌리를 씹고 산나물로 끼니를 에우면서 평안남도 대흥군과 함경남도 영광군, 함주군 경계지역의 험한 산발들과 골짜기들에 일떠세운 큰 규모의 염소목장이었다. 해발 500m로부터 천수백m에 이르는 천의산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염소목장은 방대한 규모의 풀판, 수십개의 분장과 백수십여리의 방목지도로 그리고 여러개의 발전소와 수많은 염소우리, 젖가공설비, 종업원들의 주택과 편의시설, 학교들로 이루어진 종합적인 염소목장이다.

지난날 곰, 메돼지를 비롯한 산짐승들만 싸다니던 천의산이 오늘 이렇게 사람들에게 염소젖을 주는 보물산으로 전변되게 된 것은 결코 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1996년 9월 도당위원회의 지도밑에 함흥시당의 일꾼들이 염소방목적지를 선정하기 위하여 이곳을 찾았을 때에는 잡관목이 너무 우거져있어 10m 앞에 있는 사람도 가려볼 수 없었다. 그때 제일 큰 고생은 식량이 모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건설자들은 모든 것을 이겨내면서 도로를 닦았다. 길을 닦기 위하여 뽑아낸 1t이 넘는 큰 바위돌만 해도 2만 5,000여개, 폭약이 없어 바위를 불에 달군 후 찬물을 끼얹어 깨버리군 한 돌만 하여도 하나의 산봉우리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들은  오늘을 위한 오늘에 살지 말고 내일을 위한 오늘에 살자는 당의 뜻을 심장에 새기고 부닥치는 애로와 난관을 박차면서 5년간의 힘겨운 전투를 벌려 염소목장을 훌륭히 건설하였던 것이다.

휴양각인듯 한 문화주택들과 합숙들, 특색있게 지은 염소우리들 그리고 젖가공공장들과 학교며 목욕탕, 진료소와 상점, 여관과 TV중계소, 발전소 등 모든 것이 마치 동화세계에서 볼 수 있는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처럼 희한하게 안겨왔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더없이 만족해하시며 정말 수고하였다고, 오늘을 위한 오늘에 살지 말고 내일을 위한 오늘에 살자는 당의 뜻을 잘 받들었다고, 염소를 기르려면 함흥시에서 염소목장을 꾸려놓은 것처럼 해야 한다고 치하의 말씀을 하시었다. 그러시면서 함흥시당 책임일꾼들을 대견한 눈길로 보시며 염소를 길러 노동자계급에게 먹이겠다고 일하는 이런 사람들이 애국자이라고 뜨거운 믿음을 안겨주시었다.

이어 장군님께서는 이곳의 풀판조성정형을 구체적으로 요해하시고 풀판조성에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들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시고 나서 어느 한 분장으로 향하시었다.

분장앞에 이르신 장군님께서는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분장의 전경을 오래도록 바라보시었다.

통나무로 판자를 켜가지고 1∼2층으로 특색있게 건설한 염소우리, 토끼우리, 먹이창고들은 얼핏 보면 짐승우리라기보다 동화속의 마을을 연상시켰다.

수정같이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산기슭에 산뜻하게 지어놓은 건물들을 유심히 바라보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꾼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염소우리를 얼마나 멋있게 지었는지 살림집에 못지 않습니다.

함흥농장 분장에서 잡관목이 무성하고 바위돌로 뒤덮여있던 곳에 염소우리와 살림집을 짓느라고 수고를 많이 하였습니다.』

그러시고는 가까이에 있는 염소우리로 발걸음을 옮기시었다.

염소우리에 들리신 장군님께서는 일꾼들에게 염소종자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고 물으시었다.

한 일꾼이 종축장에서 키워낸 좋은 종자염소들을 분장들에 나누어주어 새끼낳이를 조직하고 있는데 이제는 퇴화되어 염소가 크지 못하고 젖도 많이 짜지 못하고 있다고 사실 그대로 말씀드리었다.

그의 대답을 들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염소기르기를 잘하자면 종자문제를 해결하여야 한다, 농사에서 종자가 기본인 것처럼 염소기르기에서도 종자가 기본이다, 이 목장에서 전망계획대로 젖을 짜려면 이 지대의 풍토에 적응하고 젖을 많이 낼 수 있는 새 품종의 염소를 가져다 길러야 한다고 일깨워주시었다. 그러시고 염소종자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까지 세워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어 목장의 젖가공직장을 찾으시었다.

험한 산중에 큰 규모의 젖가공기지가 있다는 것이 자못 대견하신듯 장군님께서는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원심분리기와 버터제조기, 살균가마며 치즈생산기계를 비롯하여 드넓은 작업장안에 꽉 들어찬 젖가공설비들을 눈여겨보시었다.

이때 한 일꾼이 송구스러운 어조로 설비들을 자체로 만들다 보니 볼품도 없고 수준도 낮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일없다고, 설비는 비록 발전된 것이 못되어도 이렇게 젖가공제품들을 자체로 만들어 시민들에게 공급해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고 하시면서 일꾼들에게 신심과 용기를 안겨주시었다.

생산된 젖가공제품을 보아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염소젖이 많이 생산되어도 거리가 먼 함흥시까지 어떻게 운반하겠는가 하고 걱정하였댔는데 이렇게 종합가공기지에서 버터, 치즈,  요구르트 등으로 가공하여 공급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은가고 못내 기뻐하시었다.

이윽고 장군님께서는 이곳 책임일꾼에게 눈길을 주시며 산골길을 달리는데 편리한 좋은 자동차를 여러대 보내주겠으니 분장들을 다 돌면서 젖운반을 잘하여야 하겠다고 당부하시었다. 그러시면서 젖가공설비일식과 실험실도 갖추어주겠으니 목장을 한번 멋있게 꾸려보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이곳 목장을 잘 꾸려주시려고 아낌없는 사랑을 거듭 베풀어주시는 그분의 은정은 정녕 하나를 주면 열백을 더 주고 싶어 하는 어머니의 심정그대로였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험준한 산발을 타고 뻗어 올라간 산중도로를 따라 천수백m를 헤아리는 천의산 정점에까지 오르시어 굽이굽이 뻗은 도로들을 끼고 촘촘히 들어앉은 분장들과 금진강상류의 맑은 물줄기를 따라 전개된 풀판들 그리고 그우에서 즐겁게 뛰노는 염소떼들을 만족한 시선으로 바라보시면서 전국적으로 이렇게 앞을 내다보고 통이 크게 염소목장을 꾸린데는 없다고 다시금 높이 치하하시었다. 그러시고 동행한 일꾼들에게 이렇게 꾸려놓자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고 하시면서 이곳 일꾼들과 건설자들의 수고를 헤아려주시었다.

계속하여 그분께서는 지금 어디서나 염소를 기른다고는 하지만 실속있게 기르는데가 많지 못하다고, 그러나 함흥시에서는 일을 일관성있게 내밀었다고, 그것이 마음에 든다고 하시면서 호탕한 목소리로 말씀하시었다.

『아주 기특합니다. 염소목장을 완전무결하게 꾸렸습니다. 총평을 하면 청년염소목장은 최우등입니다.』

순간 일꾼들은 가슴가득히 끓어오르는 격정에 눈시울을 적시었다.

격정에 젖어있는 일꾼들을 한동안 둘러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염소의 마리수와 목장의 인구수가 늘어나는데 맞게 건설을 더 할데 대한 문제, 교통문제와 젖운반차문제, 젖가공설비들을 현대화하는 문제 등 제기되는 모든 문제들을 다 풀어주시면서 생산조직을 잘하여 목장의 생산성과 수익성을 높이고 종업원들을 잘살게 하여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시었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오늘을 위한 오늘에 살지 말고 내일을 위한 오늘에 살자는 구호의 정신으로 이 염소목장을 건설하였다는 의미에서 이곳 지구의 이름을 내일이라는 글자를 붙여 내일노동자구를 내왔으면 좋겠다는 일꾼들의 제기를 받으시고 그렇게 하자고, 내일구라는 것이 뜻도 좋고 부르기도 좋다고, 우리가 오늘에 덕을 보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을 내다보고 일을 하는 것만큼 내일구라고 하는 것이 좋다고 뜻 깊은 말씀을 하시었다.

그분께서는 이어 강동군 구빈리와 함주군에 있는 염소방목지들은 다른데서 도와준다고 하는데 이 목장은 내가 직접 도와주겠다고, 무엇이나 다 요구하라고, 말로만 하겠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달라고 하여도 주고 싶지 않지만 이 목장에서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나 다 주려 한다고 하시면서 이곳 책임일꾼에게 거액의 표창상금을 주겠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표창상금, 그것은 단순한 상금이 아니라 어려운 고생을 이겨내며 더 좋은 내일을 하루 빨리 앞당기려고 고귀한 땀을 바쳐 염소목장을 꾸려놓은 함흥시일꾼들과 시민들의 수고에 대한 그분의 최상의 평가였고 더 훌륭한 내일에로 다시한번 불러주시는 은정깊은 사랑의 표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함흥시청년염소목장을 현지지도하시며 전국에 염소목장건설의 열풍을 불러일으키신 후에도 여러곳을 찾으시어 풀먹는 집짐승기르기를 잘해 나갈 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었다. 그리하여 도처에 전문적인 축산기지들이 일떠서게 되었다.

인민들에게 더 많은 고기를 먹이시려고 깊이 마음쓰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92(2003)년 6월 13일 봉산군 은정축산전문협동농장을 찾아주시었다.

은정리는 예로부터 돌이 많은 산골이어서 사람 못살 궁벽한 고장으로 불리워 왔으며 이곳 농장은 황해북도에서도 제일 못사는 농장으로 알려져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52(1963)년 1월 이곳 은정리(당시 서흥군 당현리)를 찾으시어 산을   이용해서 풀먹는 집짐승을 대대적으로 기를 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후에도 황해북도를 찾으실적마다 어디에 가나 풀판으로 이용할 수 있는 야산들이 많은 황해북도는 축산을 발전시키는데 유리한 곳이라고, 황해북도에서는 염소를 비롯한 풀먹는 집짐승을 대대적으로 길러야 한다고 강조하군 하시었다.

황해북도에서는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영도업적이 깃들어있는 은정리를 축산전문협동농장으로 본때있게 꾸릴 결심을 하고 이 사업에 떨쳐 나섰다. 그러나 워낙 사람 못살 궁벽한 돌고장으로 알려져 있던 은정리를 새 세기의 요구에 맞는 종합적인 축산물생산기지로 꾸리는 일은 참으로 힘겨운 일이었다.

하지만 황해북도안의 일꾼들과 청년돌격대원들, 근로자들은 난관앞에 주저하지 않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인민군대의 혁명적 군인정신을 본받아 실정에 맞게 건설자재를 탐구동원하고 대담하게 건설을 벌여 나갔다. 그리하여 공사를 시작한지 2년 반이라는 짧은 기간에 불모의 땅이던 은정리를 종합적인 염소목장으로, 살기 좋은 사회주의문화농촌으로 전변시켰던 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전망대에 오르시어 한눈에 바라보이는 주변의 야산들과 마을전경을 부감하시면서 『정말 풍치가 좋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새 세기를 상징하는 황홀한 풍경입니다. … 몇해전에 서흥군 범안리에 가보고 양어장과 살림집을 멋있게 건설하였기때문에 그런 곳을 두고 사회주의선경이라고 한다고 하였는데 오늘 여기에 와보니 이곳은 사회주의농촌맛이 나는 노동당시대의 무릉도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시며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었다.

얼마후 장군님께서는 1호동 원종장에 이르시어 어느 한 염소우리앞에 다가서시었다. 거기에서는 염소들이 서로 엉키어 돌아가고 있었다.

그 염소로 말하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2년전에 황해북도에 보내주신 우량종염소들이었다. 이 염소의 하루젖생산량은 6∼8ℓ나 되고 젖통의 둘레는 최고 92cm까지 되는 우량종염소이다.

장군님께서는 염소들을 보시며 이 염소는 파악이 있다고, 앞으로 염소기르기에서는 이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하시면서 종자의 개량과 선택에서 나서는 문제들 그리고 염소의 사양관리에서 나서는 과학기술적 문제들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었다.

뒤이어 축산분장의 젖가공실에 들리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치즈를 비롯한 먹음직스러운 젖가공제품들을 보시고 우리가 허리띠를 조이며 애쓴 보람이 있다고, 우리 인민들에게 맛있고 영양가가 높은 우유를 먹일 수 있게 되었다고 매우 기뻐하시었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축산을 실리적으로 하는데서 나서는 문제들도 새롭게 밝혀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 목장에서 여러가지 가공먹이들을 많이 만들어 염소와 돼지, 오리, 계사니도 기르고 물고기까지 기른다는데 그렇게 하여야 실리가 날 수 있다고, 젖가공부산물로 돼지와 오리, 계사니도 기르고 물고기까지 기르는 것은 이상적이고 실리에도 맞는 자랑할만 한 일이라고 하시면서 이 축산분장은 알곡먹이와 풀을 다 자체로 해결하기때문에 전망이 아주 좋다고, 이런 축산분장에서 염소를 기르는 것은 다 먹어놓은 것이나 같다고 말씀하시었다.

그러시면서 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었다.

『축산분장이 정말 멋있습니다. 대담하고 통이 크게 잘 꾸렸습니다. 아주 훌륭합니다.

황해북도에서 소문없이 큰일을 해놓았습니다.』

축산분장을 잘 꾸려놓은데 대하여 거듭 만족을 표시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은정리 염소목장에 최고사령관의 명의로 감사를 주시는 크나큰  사랑을 베풀어주시었다. 그리고 축산분장을 제대로 운영하자면 도에서 자체로 해결하여야 할 것도 있겠지만 우에서 도와주어야 할 것도 있는 것만큼 꺼리지 말고 다 제기하라고 하시면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다 풀어주시었다.

진정 경애하는 장군님의 은정리 염소목장에 대한 현지지도는 인민들에게 더욱더 윤택하고 문명한 생활을 마련해주시려는 숭고한 사랑의 현지지도였다.

인민들의 식생활을 더 윤택하게 하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지지도는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장군님께서는 주체92(2003)년 12월 28일 황해남도 계남목장을 두번째로 찾아주시었다.

목장에서는 이해 6월 장군님께서 계남목장을 찾으시어 주신 과업을 철저히 관철하여 목장을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새롭게 더 잘 꾸리였다.

장군님께서는 이날 축산 1분장의 언덕에 오르시어 목장의 전경을 부감하시면서 참 잘 꾸렸다고, 꼭 화보에 나오는 한폭의 그림과 같다고 하시면서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시었다.

이날 목장의 여러곳을 돌아보신 장군님께서는 황해남도에서는 내가 지난 6월에 이곳에 와서 목장을 전망성있게 더 잘 꾸릴 데 대하여 준 과업을 받들고 힘찬 투쟁을 벌려 방대한 능력확장공사를 넉달남짓한 사이에 끝내는 기적을 창조하였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

『계남목장은 염소와 돼지를 비롯한 집짐승들을 과학기술적으로 기를 수 있는 모든 시설들이 충분히 갖추어지고 젖가공설비들도 대형화, 현대화되어 축산물생산을 끊임없이 늘일 수 있는 훌륭한 목장입니다. 우리가 또 하나의 만년대계의 창조물을 후대들에게 물려줄 수 있게 된 것이 기쁩니다.』

그러시면서 장군님께서는 전국도처에 건설된 염소목장, 소목장, 돼지목장, 닭공장 등 축산기지들에서 많은 고기와 알, 우유제품들이 쏟아져 나와 인민들이 그 덕을 보기 시작하였다고, 이 자랑찬 성과는 우리 인민의 백절불굴의 혁명정신과 위력을 뚜렷이 보여주며 축산을 대대적으로 발전시킬 데 대한 우리 당정책의 정당성과 생활력을 힘있게 확증해주고 있다고 뜻깊은 말씀을 하시었다.

장군님의 현지지도를 받은 이후 계남목장에서는 목장을 인민들에게 덕을 주는 대규모축산기지로 더 잘 꾸리기 위하여 3단계 확장공사를 힘있게 벌이었다. 그리하여 계남목장은 우리 나라에서 으뜸가는 대규모의 전문화된 축산기지로 더욱 튼튼히 꾸려졌다.

그뿐이 아니었다.

주체94(2005)년 9월 어느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4월16일염소목장을 현지지도하시었다.

여러차례 이곳을 찾아오시어 목장을 전망성있게 발전시킬 데 대한 방향과 방도를 밝혀주시고 온갖 조건을 다 마련해주신 장군님의 한없는 사랑에 고무된 이곳 군인들과 목장의 종업원들은 염소의 마리수를 계통적으로 늘였을뿐아니라 생산공정들을 부단히 보충완비하고 최신설비들을 장비하여 목장을 훌륭한 축산기지로 전변시켰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시내물이 흘러내리는 아늑한 골짜기에 산뜻하게 줄지어 늘어선 염소우리들과 가공시설들, 문화후생시설들과 공원화된 구내의 풍경을 바라보시면서 몇해사이에 목장의 면모가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만족해하시었다.

이어 장군님께서는 군부대에서 목장의 과학화, 현대화를 실현하기 위한 사업을 꾸준히 실속있게 진행하여 젖생산을 급격히 늘이고 목장을 휴양소처럼 알뜰하게 꾸린 것을 비롯하여 최근 연간 참으로 많은 일을 하였다고 평가해주시었다.

이날 목장을 다 돌아보신 장군님께서는 젖생산을 높은 수준에서 정상화하기 위한 과업들을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가금기지들을 일떠세우고 양어를 대대적으로 하는데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었다.

주체90(2001)년 9월 5일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인민군군인들이 새로 건설한 어느 한 닭공장을 현지지도하시었다.

인민들에게 더 많은 고기와 알을 먹이시려는 그분의 원대한 구상에 의하여 수십정보의 광활한 부지에 새로 건설된 이 닭공장은 최신식설비들로 장비되고 모든 생산공정들이 현대화되어 높은 생산능력을 가진 가금기지이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콘베이어 를 타고 닭알들이 쉬임없이 쏟아져 내리는 광경을 오래도록 보고 또 보시다가 만족하신 표정으로 『콘베이어 를 타고 나오는 닭알들이 볼만 합니다. 마치 닭알폭포가 쏟아져 내리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하시었다.  

닭알폭포, 이 말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창조하신 선군시대의 새로운 시대어이며 인민에 대한 장군님의 사랑의 화폭, 인민군대에 대한 믿음의 화폭이었다.

일꾼들과 군인건설자들에게 크나큰 믿음과 사랑을 안겨주신 장군님께서는 이 닭공장에는 당의 영도사적이 깃들어 있는 것만큼 앞으로 전국의 본보기가 될 수 있게 공장환경도 더 잘 꾸리고 관리운영사업도 더 잘하여 닭고기와 알생산을 높은 수준에서 정상화하라는 간곡한 당부를 남기시고 공장을 떠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11월 10일에도 새로 건설된 어느 한 닭공장을 현지지도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그후에도 인민군군인들에 의하여 새로 건설된 어느 한 가금목장을 현지지도하시면서 가금목장을 많이 건설하여 인민들에게 고기와 알을 풍족하게 먹이려는 것이 우리 당의 결심이라고, 이런 목장을 본보기로 하여 도처에 축산기지들을 건설함으로써 후대들에게 사회주의강성대국을 넘겨주자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그분의 말씀을 받들고 전국도처에서 인민군대의 모범을 본받아 새 세기의 요구에 맞는 닭공장들이 일떠섰다. 그리하여  황주닭공장, 강계닭공장, 구성닭공장, 흥주닭공장 등 수많은 닭공장들이 새로 일떠서고 대규모의 만경대닭공장과 서포닭공장, 룡성닭공장과 하당닭공장, 승호닭공장이 개건되어 고기와 알생산이 정상화되는 선군시대 가금업의 새 역사가 창조되게 되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정력적인 영도는 양어의 공업화를 실현하는데서도 혁명적인 전환을 가져왔다.

주체90(2001)년 5월 13일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어느 한 인민군부대에서 건설한 메기공장을 찾으시었다.

이날 오랫동안 귀중한 시간을 내시어 알깨우기실, 야외 및 실내의 원형살찌우기못들과 새끼고기못 등 여러 생산공정들을 주의깊게 돌아보시던 그분께서는 살찌우기못마다에 욱실거리는 팔뚝같은 메기들을 보시고 군인건설자들이 결사관철의 정신으로 짧은 기간에 희한한 메기공장을 훌륭하게 건설한데 대하여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시면서 이 놀라운 기적은 인민의 행복의 창조자인 우리 군대만이 이룩할 수 있는 자랑찬 성과이라고 그들의 위훈을 높이 평가하시었다. 그리고 양어를 과학화, 집약화하여 민물고기생산을 획기적으로 늘이는데서 나서는 강령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었다.

돌이켜보면 이 부대 군인들이 메기공장을 짧은 기간에 훌륭히 건설할 수 있은 것은 전적으로 메기를 공업적 방법으로 생산하여 인민들과 군인들에게 더 많이 먹일 데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원대한 구상과 정력적인 영도의 결과였다.

이 메기공장도 장군님께서 친히 터전을 잡아주시고 건설에 필요한 자재와 설비는 물론 먹이와 종어문제 등 메기기르기에서 나서는 제반 문제들을 다 풀어주시며 걸음걸음 이끄시어 오늘과 같은 훌륭한 공장으로 일떠설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새 세기의 첫해가 저물어가던 12월 6일에 년산 수천t의 생산능력을 가진 평양메기공장이 완공되어 조업하였다.

평양메기공장은 동평양화력발전소의 버림물을 이용하여 운영되는 공장이다. 수도시민들에게 더 많은 메기를 먹이시려는 장군님의 의도와 크나큰 은정에 의하여 건설된 메기생산기지였다.

평양메기공장건설을 발기하신 장군님께서는 그것을 건설할 영예로운 과업을 조선인민경비대 군인들에게 맡겨주시고 공장건설과 관련하여 20여차례의 강령적 말씀을 주시며 세심히 손잡아 이끌어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91(2002)년 2월 28일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에게 우리 나라에 와있는 다른 나라의 양어기술자들이 평양메기공장을 와보고 세계 어느 나라에도 그렇게 잘 꾸려진 메기공장은 없다고 감탄하였다고 말씀하시었다.

장군님의 세심한 보살피심이 있어 우리 나라 메기양어에서는 공업화가 완전히 실현되었고 메기양어의 과학기술수준은 종업원이 10여명밖에 안되는 메기공장에서 한해에 수백t의 메기를 생산하는 높은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엄동에 얼음을 까고 잉어를 잡아다 병든 부모에게 먹이는 것을 효도의 표본으로 삼았다.

그러나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명한 영도에 의하여 선군시대에 와서 우리 인민모두가 눈내리는 겨울에도 메기탕을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그것을 「사랑」이라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그 은정, 그 은덕이 너무도 컸다. 진정 경애하는 장군님이시야말로 인민의 위대한 어버이이시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렇듯 정력적인 영도에 의하여 전국의 여러 곳에 축산기지들과 양어기지들이 일떠서고 염소를 비롯한 풀먹는 집짐승들의 마리수가 부쩍 늘어나 인민들의 식생활을 더 윤택하게 할 수 있는 전망이 열려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