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선군태양 김정일장군」(1) 중에서

 


 

 

최신형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진 조미대결전은 사회주의와 제국주의와의 운명을 건 치열한 싸움이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철의 신념과 담력, 천재적 지략에 기초한 초강경대응으로 적들의 군사적 침략기도를 물거품으로 만드시고 사회주의조국의 존엄과 인민의 운명을 수호하시었다.

역경은 인간의 의지를 시험하고 전쟁은 영장의 가치를 시험한다고 한다.

그 어떤 위협공갈과 우회적 압력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미제는 전쟁을 해서라도 공화국을 기어이 굴복시켜 보려고 발악하였다.

간첩선이 나포된 초시기부터 매일과 같이 군부우두머리들을 들볶으며 전쟁도발음모를 꾸미고 있던 미제는 1월말에 이어 2월에 접어들기 바쁘게 조선반도주변에 침략무력을 대대적으로 증강하기 시작하였다.

이미 전투비상이 내려진 남조선강점 미군과 남조선군의 전반적 부대들은 전연진지들을 차지한 상태였다. 미국본토에 있는 전략적 기동예비대인 미제침략군 제1, 2장갑탱크사단들과 5개의 기계화보병사단, 82항공육전려단, 일본주둔 미제침략군에 조선침략을 위한 동원태세를 갖출 데 대한 명령이 내려졌다.

일본의 요코스카에 사령부를 둔 미제7함대 주력기동부대가 조선해역에 파견된데 이어 남해상으로 기동하고 있던 함선들과 미국본토 서해안에 있던 일부 함선들도 모여들었다. 구축함, 원자력잠수함, 보급함을 거느린 원자력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 항공모함 「레인저」호, 대잠수함 항공모함 「요크타운」호 등 항공모함 3척과 무려 22척에 달하는 함선들이 울릉도부근에 집결하였다.

미제는 또한 일본에 있는 여러 기지들에서 미제5공군소속의 각종 전투기 150여대를 남조선의 오산, 수원, 김포 등에 배치하였다. 그 가운데는 핵탄을 탑재할 수 있는 「B-52」전략폭격기, 「F-4」를 비롯한 전투폭격기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외에도 연 200여대의 비행기를 동원하여 일본에 있는 전쟁물자들을 남조선에 끌어들인 것 까지 계산하면 옹근 하나의 전쟁을 치르고도 남을 무력이 우리와 대치하고 있는 셈이었다.

미제는 그것으로도 모자랐던지 나중에는 「나토각료이사회」와 지난 조선전쟁참가국들의 모임까지 열고 그 무슨 「대책토의」를 한다고 떠들었다. 그리고 미국의 정계와 어용출판보도망, 하수인들의 입까지 동원하여 우리에 대한 모종의 「폭격」, 「보복」, 「최후통첩」설을 유포시켰다.

어찌보면 적들은 아마 우리 공화국을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루강아지처럼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놈들의 망상을 뒤집어엎고 미제를 하루강아지로, 조선을 범으로 만든 분은 희세의 영장이신 김정일장군님이시었다.

언제나 싸움에서 피동이 아니라 주동을 쥐고 방어가 아니라 공격으로 넘어가 역경을 순경으로, 화를 복으로 역전시키시는 것은 장군님의 군사적 기질이었다.

장군님께서는 천리혜안의 예지로 미제의 군사적 기도를 환히 꿰뚫어보시고 그것을 철저히 짓부셔 버릴 전략전술적 방안들을 밝혀주시었다.

조성된 사태의 결말과 조선반도에서의 새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불안과 초조속에 세계의 이목이 우리 공화국에 집중되고 있던 주체57(1968)년 2월 5일 저녁무렵이었다.

민족보위성청사를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총참모부 책임일꾼으로부터 적정보고를 받으시었다.

보고가 끝나자 그분께서는 미국놈들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전후 최대규모의 무력을 우리 나라에 동원하였다고, 미제가 우리 나라에 많은 무력을 끌어들이는 목적은 위협공갈의 방법으로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놈들이 떠들어대는 것처럼 「보복」을 하거나 전면전쟁을 일으키려는데 있다고, 놈들이 말하는 「보복」이라는 것은 우리가 제놈들의 요구대로 「푸에블로」호와 그 선원들을 돌려주지 않으면 그 대가로 공화국북반부의 그 어디를 치겠다는 것이라고 명철하게 가르쳐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지시봉을 드시고 지도를 가리키시며 말하자면 여기 원산이나 공업도시들인 함흥, 청진, 남포 지어 평양까지 포함하여 우리의 주요도시들을 타격하겠다는 수작이라고, 우리는 놈들의 이러한 「보복」조치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주동적으로 짓부셔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시었다.

이어 그분께서는 그러자면 민족보위성에서 놈들의 움직임을 예리하게 살피는 것과 함께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적들의 「보복」조치를 짓부셔 버릴 탁월한 작전적 방안들을 명시해 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끓어오르는 흥분을 진정하지 못하는 책임일꾼에게 우리가 수행하게 되는 전쟁은 조국땅에서 미제를 몰아내고 조국을 자주적으로 통일하는 정의의 전쟁이며 반대로 미제가 조선에서 감행하는 전쟁은 침략적이며 약탈적인 부정의의 전쟁이라고, 정의의 전쟁은 반드시 승리하며 부정의의 전쟁은 반드시 패한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역사적 진리라고 확언하시었다.

그분께서는 또한 우리에게는 정규적인 혁명무력도 국가적 후방도 지원도 없이 일제의 100만 대군과 맞서 싸워 이겼으며 청소한 무력으로 세계「최강」을 떠벌이던 미제를 역사상 처음으로 타승한 귀중한 투쟁업적과 풍부한 경험이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우리 인민은 수령님의 두리에 굳게 뭉친 영웅적 인민입니다, 미제침략자들은 우리 인민의 힘을 얕보지 말아야 하며 분별있게 행동하여야 합니다, 만약 미제침략자들이 우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우리 나라에서 전쟁을 일으킨다면 우리는 적들과 싸워 단연 결판을 내야 합니다라고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힘을 주어 말씀하시었다.

장군님의 근엄하신 모습에서는 진정 천만대적앞에서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태연자약하게 조국통일의 역사적 위업을 완성하실 구상을 무르익히시는 만고의 영장다운 기상과 의지가 넘쳐 나고 있었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시간이 퍼그나 지나도록 조성된 정세에 대처한 인민군대의 과업과 구체적인 작전방안들을 일일이 제시해 주시었다.

이러한 속에서 주체57(1968)년 2월 8일 평양에서는 조선인민군이 정규무력으로 강화발전된 20돌을 경축하는 성대한 연회가 진행되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회에서 하신 역사적인 연설에서 만일 미제국주의자들이 계속 무력을 동원하여 위협공갈하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그들은 이로부터 얻을 것이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있다면 오직 시체와 죽음뿐일 것이라고 엄숙히 선언하시었다. 그리고 우리는 전쟁을 바라지 않지만 결코 전쟁을 두려워 하지는 않는다고, 우리 인민과 인민군대는 미제국주의자들의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대답할 것이라고 강경하게 언명하시었다. 그것은 미제의 무분별한 전쟁책동에 대처한 공화국의 단호한 입장을 천명한 것이었다.

이날 연회에 참석하신 장군님께서는 총정치국의 한 책임일꾼에게 수령님께서 내리신 선언은 미제국주의자들과 그 앞잡이들에게는 폭탄과 같은 선언이라고, 미제는 「푸에블로」호사건에서 쓰디쓴 참패외에 아무 것도 얻을 것이 없겠지만 우리 인민과 인민군대는 아주 큰 것을 얻게 될 것이라고, 이제 두고 보라고 말씀하시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신념과 배짱이 실제로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조치들을 연이어 취하시었다.

인민군대와 노농적위대 전체 부대들이 완전전투태세에 들어갔다. 각종 현대적인 무장장비들이 방수포들을 벗어던지고 전투위치를 차지했다. 완전무장한 군종, 병종 예비구분대들도 지정된 계선으로 진출하였다.

장군님께서는 군대와 함께 인민들도 한손에는 총을, 다른 한손에는 낫과 마치를 들고 내일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오늘 밤까지는 사회주의건설을 다그치도록 이끄시었다.

그러시는 한편 장군님께서는 온 나라에 평화시기의 정상적인 생활이 그대로 흐르도록 하시었다. 전국의 극장, 영화관들과 체육관, 경기장들에서는 예술공연과 영화상영, 체육경기들이 이전이나 다름없이 진행되었다. 인민대표단들도 여느해처럼 인민군부대들을 찾아가 장병들을 축하해 주었고 예정했던 전국농업대회도 성대히 열리었다.

장군님자신께서도 이무렵 몸소 평양대극장에 나가시어 조선인민군협주단이 창조한 음악무용서사시 「수령님께 드리는 충성의 노래」를 지도하시었다. 그후 어느날에는 안주군 상서리를 돌아보시면서 학교를 잘 건설하고 교구비품을 충분히 갖출데 대하여 가르치시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한 일꾼이 장군님의 집무실에 찾아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분께서 작전도가 아니라 여성들의 옷도안을 들여다보고 계시었다.

미소를 지으시고 『좋구만, 좋아!』 하시며 한장 또 한장 펼쳐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어디 엔가 전화로 우리 여성들이 입을 옷인데 꼭 도안대로 만들어 선녀가 되게 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시는 것이었다.

우리는 벌써 이겼구나! 일꾼은 이런 환희에 휩싸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그 일꾼에게 「푸에블로」호사건과 관련한 외교적 대응책을 세워주시면서 결연한 어조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미국호전광들에게 버릇을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큰 나라라고 하여 작은 나라를 업수이 여기는 오만한 자세를 꺾어놓아야 합니다.

미국이 조선을 똑바로 알았어야 했습니다. 조선을 아직도 잘 모르는데 미국의 비극이 있습니다.

이번에 미국놈들이 허장성세하면서 우리 나라에 기어들지만 돌아갈 때에는 우리 인민과 세계인민들앞에서 적대적인 정탐행위를 인정하고 항복서라도 내야 제 발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올 때에는 제 마음대로 왔지만 돌아갈 때에는 절대로 제 마음대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이제 교활하기 그지없는 미국놈들이 무모하게도 모험적인 책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덫에 걸린 도적고양이신세이므로 우리 인민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의 항복서를 반드시 쓰게 될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은 우리가 미국놈들로부터 항복서를 어떻게 받아내는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장군님의 여유작작하고 배포유연하신 모습은 어떤 정황속에서도 드놀지 않는 무비의 담력과 배짱으로 적들을 한손에 거머쥐고 쥐락펴락하는 전설적 영장의 거인적 모습이었다.

그 위대한 모습을 우러르며 인민군장병들과 인민은 물론 세계 진보적 인류는 벌써 조선의 승리를 낙관하였다.

외국의 한 출판물은 이렇게 썼다.

『평양은 매우 낭만적이다. 민족의 관심하에 체육대회와 예술축전이 성황리에 개막되고 올해농사를 의논하게 될 농업대회에 참가하기 위하여 농민대표들이 평양으로 들어서고 있다.

<워싱턴은 과연 평양을 굴복시킬 수 있는가?>

정견이 서로 다른 100명의 인사를 대상하여 이런 질문을 하였는데 그들은 하나처럼 대답하였다.

<전쟁은 벌써 끝났다. 평양은 이겼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군대와 인민이 미제의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맞서 과감히 싸울 태세를 갖추도록 이끄시는 한편 궁지에 빠진 미제에게 숨돌릴 틈을 주지 말고 연속타격을 안기도록 하시었다.

주체57(1968)년 2월 12일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당중앙위원회의 한 책임일꾼을 부르시었다.

그분께서는 「푸에블로」호 함장의 두번째 자백서를 신문에 내면서 그놈이 저들의 범죄행위를 더 상세히 자백하고 공화국의 법에 의하여 처벌되어야 하나 관대히 용서해줄 것을 청원한 내용을 신문들에 그대로 주라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

『이것은 무장간첩선을 파견한 미제의 전쟁두목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으로 될 것이며 원수들에 대한 우리 인민들과 세계인민들의 적개심을 더욱 높이게 할 것입니다.

앞으로 놈들의 함선위치, 일일기록부와 항해도, 작전문건 등도 연이어 공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장간첩선 장교들과의 기자회견준비를 잘하여가지고 진행하여 새 전쟁도발책동에 날뛰고 있는 미제의 날강도적인 침략행위를 다시금 확인시켜 놈들의 죄행을 못박아놓아야 하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푸에블로」호 선원들이 제놈들의 죄과를 인정한 후에 기자회견을 요청하고 공화국정부에 공동사죄문을 제출하였을 때에는 이것을 가지고 미제에게 연속타격을 안기도록 이끄시었다.

「푸에블로」호 선원들은 2월 16일에 제출한 공동사죄문에서 상전의 명령에 따라 우리 나라 영해에 몰래 기어들어 정탐행위를 하다가 우리의 자위적 조치에 의해 붙잡힌 사실을 인정하고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는 것을 공화국정부와 인민앞에 정식으로 사죄하였다.

사죄문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사죄가 충분한 것이 못되며 자기들을 정탐활동에로 내몬 미국정부가 세계의 공정한 여론앞에 범죄의 진상을 밝히고 공화국정부에 공식 사죄할 것을 요구하였다.

장군님께서는 그들이 공동사죄문을 낸 그날 그 공동사죄문의 전문을 사진과 함께 편집하여 통신과 방송들에서 즉시로 내보내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이 공동사죄문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 대내외적으로 커다란 파문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미제침략자들이 아무리 날뛰어도 이자들처럼 우리 인민앞에 반드시 무릎을 꿇고야 말 것입니다.』

장군님의 이 예언과 확신은 천하무적의 영장으로서의 지략과 선견지명에 의해 담보된 것이었다.

그분께서는 이제는 「푸에블로」호 선원들의 자백과 사죄문을 가지고 미제의 코를 단단히 꿰어 놓은 조건에서 미제의 두목 존슨에게 주공방향을 돌리도록 하시었다.

그무렵 미국에서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치열한 선거경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선거에서 갖은 모략책동을 다해서라도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다시 대통령감투를 뒤집어쓰려는 것이 존슨의 꿈이었다. 그래서  베트남전쟁을 계단식으로 확대하였는데 막대한 군사비의 지출이 통화팽창과 심각한 경제위기를 초래하여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러한 그에게 있어서 「푸에블로」호사건은 골치거리정도가 아니라 목에 찔린 가시었다.

이런 때 미국정부가 제놈들이 저지른 범죄행위를 솔직히 인정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앞에 진심으로 사죄하고 그러한 일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을데 대하여 보증할 것을 요구한 「푸에블로」호 선원들의 공개서한이 존슨에게 보내졌다.

그리고 잔꾀를 부리며 사죄하려 하지 않고 저들의 새 전쟁도발책동을 은폐해 보려고 교활하게 행동하는 미제를 되게 다불리는 논평들이 연이어 발표되었다.

「푸에블로」호 선원들의 공개서한이나 논평은 존슨의 숨통을 조이는 올가미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펼치신 영활무쌍한 지략과 작전에 의해 정신을 차릴사이 없이 연속 강타에 얻어맞은 미제는 완전히 녹초가 되고 말았다. 사면초가의 처지에 빠진 미국대통령 존슨은 마침내 「푸에블로」호사건을 구실로 남조선에 끌어들였던 침략무력을 철수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놈들은 우리 나라 동남해에 집결시켰던 미제7함대소속 71기동분함대 항공모함 3척과 각종 함선 22척을 3월 22일부터 일본 오키나와 근해로 이동시켰다.

그리고 24일부터는 전연진지를 차지하였던 일부 역량을 철수하기 시작하였으며 해외로부터 남조선지역에 반입하였던 250여대의 미군전투기들 중에서 84대를 다시 해외기지로 내가고 말았다.

이러한 보고를 받으신 장군님께서는 통쾌하게 웃으시면서 미제국주의자들이 이번에 우리 당과 인민의 단호한 입장에 겁을 먹고 다시한번 우리 인민앞에 굴복한 셈이라고 말씀하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