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태양 김정일장군」(4) 중에서 

 

  
 


 

 사회주의경제강국을 건설하려는 것은 인민들이 남부럽지 않게 잘살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것이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의도이고 구상이다.

인민생활을 높이는데서 주되는 것은 식량문제, 먹는 문제를 푸는 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농업을 사회주의경제강국건설의 천하지대본으로 내세우시었다.

새 세기의 첫해인 주체90(2001)년 1월 3일이었다.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한해의 사업구상을 펼쳐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식량문제해결에서 혁명을 일으키기 위한 기본방향을 규정해주시었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나는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오직 당만을 믿고 따르는 인민들을 제대로 먹이지 못한 것이 제일 가슴아프다고 갈리신 음성으로 말씀하시었다. 그러시면서 새 세기에 들어와서도 인민들의 먹는 문제를 풀지 못하여서는 안된다고, 우리는 어떻게 하나 인민들의 먹는 문제부터 빨리 풀어야 한다고 절절하게 말씀하시었다.

생활상 불편이 당에 알려지면 자신께서 걱정할가봐 입밖에 내지 않고 참고 견디는 우리 인민들에게 식생활을 비롯한 물질경제생활의 모든 면에서 남부럽지 않게 해주시려는 뜨거운 말씀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꾼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종자혁명방침과 감자농사혁명방침을 계속 틀어쥐고 철저히 관철하며 알곡 대 알곡을 위주로 하는 두벌농사를 널리 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종자혁명, 감자농사혁명과 함께 알곡 대 알곡의 두벌농사방침을 우리 식으로 식량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한 기본방향으로 밝혀주시며 조상대대로 내려오던 단벌농사법에 종지부를 찍고 두벌농사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확고한 의지가 어려있는 말씀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내리신 두벌농사의 결단은 새 세기를 내다보신 신념과 배짱이었고 천리혜안의 예지였다. 두벌농사는 우리 나라의 구체적실정에 맞으면서도 실리가 매우 큰 우리 식의 가장 합리적인 농법, 주체적인 집약농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단작경리라는 토법농사에만 습관되어온 농업부문 일꾼들과 농민들은 두벌농사에 대해 신심을 가지지 못하고 적극적으로 달라붙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당과 수령의 요구, 명령지시라면 언제 어디서나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무조건 집행하고야 마는 우리 인민군대는 장군님의 두벌농사구상을 실현하는데서도 단연 앞장에 섰다.

맨손으로 바위를 갈아 옥토를 만드는 한이 있어도 기어이 제힘으로 해내고야 마는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기질, 주저와 동요를 모르고 서슴없이 달라붙어 생소한 길을 통이 크게 헤쳐가는 혁명적 대담성의 기질을 지닌 인민군대는 두벌농사에서도 선도자, 기수로 되었다.

주체91(2002)년에 조선인민군 어느 한 군부대산하의 농장에서는 농장 총경지면적의 80%에 달하는 논밭에 앞 그루로 봄 밀보리를 심어 훌륭한 작황을 마련하였다.

이에 대한 보고를 받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91(2002)년 6월 17일 이른아침 이 농장의 밀보리포전을 찾아주시었다.

무연히 펼쳐진 포전들마다에는 싯누렇게 익은 밀보리이삭들이 초여름의 훈풍에 와슬랑거리며 설레이고 있었다. 이삭들마다에 촘촘히 들어박힌 밀보리알들은 어찌나 잘 영글었는지 금시라도 툭툭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 정경을 만족하게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는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시며 밀보리농사작황이 대단히 좋다고, 이 농장에서 올해에 앞 그루 봄밀보리의 좋은 작황을 마련함으로써 우리 나라에서 두벌농사의 현실적가능성과 우리 당의 두벌농사방침의 정당성을 더욱 뚜렷이 확증하였다고 하시며 나는 오늘 이것이 제일 기쁘다고, 군부대일꾼들이 당의 방침을 관철하는 자세와 입장이 투철하다고, 군부대책임일꾼들과 군부대일꾼들 그리고 농업근로자들이 선군시대의 요구에 맞게 당의 두벌농사방침관철에서 훌륭한 모범을 창조한데 대하여 매우 만족하게 생각하며 동무들이 농업생산에서 이룩한 성과와 투쟁업적을 높이 평가한다고 치하해주시었다.

그러시고는 농사는 천하지대본이라고 하시면서 농사가 잘되어야 인민들의 식량문제를 원만히 풀 수 있으며 우리 나라를 모든 것이 흥하고 전체 인민이 남부럽지 않게 잘사는 사회주의강성대국으로 만들 수 있다고 뜻 깊은 말씀을 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말씀을 들으며 일꾼들은 이 땅에 두벌농사의 새 역사를 펼치시기 위하여 그분께서 바쳐오신 헌신의 나날들을 가슴 뜨겁게 돌이켜보았다.

두벌농사가 의연히 매우 저조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태를 꿰뚫어보신 장군님께서는 두벌농사의 시범단위를 잘 꾸리고 그것을 본보기로 하여 2모작경리를 통이 크게 밀고 나가실 구상을 안으시고 그 과업을 인민군대에 맡겨주시었던 것이다.

원래 이 농장은 땅이 척박하여 주민들의 생활이 매우 어려웠던 곳이다. 때문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생전에 우리 나라에서 제일 못사는 고장가운데서 4번째로 이 농장을 찍으시고 수첩에 빨간 동그라미로 새겨두시었다고 한다.

장군님께서 이런 농장을 두벌농사의 시범단위로 내세워 주신 것은 아무리 조건이 불리해도 인민군대처럼 사상적으로 동원되어 과학기술적으로 농사를 지으면 능히 2모작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실천적으로 보여주시기 위해서였다.

그러시고 끊임없이 이어가시는 전선시찰과 현지지도로 바쁘신 속에서도 장군님께서는 이곳 농장의 실태를 여러차례 구체적으로 요해하시고 농약과 화학비료, 비닐박막은 물론 종합파종기, 수확기, 트랙터를 비롯하여 현대적인 연결농기계들까지 마련하여 보내주시었다. 그 뿐아니라 농장에 앞 그루로 심을 새 작물품종도 정해주시고 땅의 지력을 높이기 위한 대책도 일일이 세워주시었다.

해당 부대일꾼들과 농장원들은 그분의 숭고한 뜻을 가슴깊이 새기고 밤낮을 이어가며 수령결사옹위, 결사관철의 정신으로 두벌농사준비를 이악하게 다그쳐 나갔다.

장군님의 은혜로운 손길아래 이 농장의 포전마다에 그 해 봄철을 맞으며 앞 그루 봄밀보리가 뿌려지게 되었고 6월 중순경에는 알찬 이삭들이 맺게 되었다.

일꾼들이 이런 생각으로 가슴 뜨거움을 금치 못하고 있는데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시선을 돌리시며 군부대에서는 앞으로도 당의 두벌농사방침을 튼튼히 틀어쥐고 그 관철을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려 선군시대 농업생산의 본보기를 창조하여야 한다고 믿음을 안겨주시면서 두벌농사에서 새로운 전환을 가져오기 위한 구체적인 과업과 방도들을 제시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 농장에 대한 현지지도는 당의 두벌농사방침관철에서 새로운 전환을 가져오게 하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역사적인 현지지도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날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과 당의 두벌농사방침을 철저히 관철할 데 대한 문제를 가지고 역사적인 담화를 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두벌농사는 우리 나라의 자연지리적 조건에 맞는 주체적인 집약농법이고 두벌농사를 하는 것은 간석지나 덕지대를 개간하여 새땅을 얻는 것보다 경제적으로 더 유익하다고 지적하시었다. 그러시고 우리 당의 두벌농사방침은 당면한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효과적인 방도로 될 뿐아니라 우리 나라 농업의 전망적인 발전을 규정한 중요한 방침이라고 강조하시었다.

그러시면서 지금 두벌농사는 종자문제, 노력문제에도 걸렸지만 중요하게는 두벌농사에 대한 일꾼들의 관점과 태도에 걸려있다고 하시면서 두벌농사를 하는 것은 한갓 구호가 아니라 당의 방침이며 따라서 모든 당조직들과 농업지도기관들, 협동농장들에서는 그 관철을 위한 투쟁을 강하게 내밀어 두벌농사에서 일대 혁신을 일으켜야 하겠다고 가르치시었다.

그분께서는 종자가 확보되고 노력이 보장되면 우리 나라의 그 어디에서나 두벌농사를 할 수 있다고 하시면서 두벌농사면적을 계획적으로, 체계적으로 늘일 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었다.

계속하여 장군님께서는 종자혁명문제, 영농작업의 기계화문제, 지력을 높이는 문제 등 두벌농사를 힘있게 벌려 나가기 위한 과업과 방도들을 환히 밝혀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담화에서 두벌농사를 대대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농업부문에서 하나의 혁명인 것만큼 투쟁이 없이는 될 수 없다고 하시면서 보수주의, 소극성, 패배주의를 반대하는 강한 투쟁을 벌릴 데 대하여 강조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이날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과 하신 담화는 두벌농사방침을 관철하는데서 나서는 모든 문제들에 과학적인 해명을 준 강령적인 지침이며 두벌농사를 틀어쥐고 농업생산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키시려는 장군님의 철석같은 의지를 반영한 역사적인 담화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구상과 의도를 높이 받들고 군부대산하의 모든 농장들에서는 앞 그루 밀보리농사에서 이룩한 성과를 공고히 하면서 뒤 그루농사도 과학기술적으로 알심있게 지어 나갔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여러 농장들의 뒤 그루 농사정형을 알아보시고 10월 1일 또다시 군부대산하의 농장들을 찾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이 농장들에서 올해 두벌농사를 아주 잘하였다고 하시면서 앞 그루로 밀보리를 심고 뒤 그루로 강냉이와 벼를 심어 높은 소출을 내게 된 포전들이 많은데 정말 대단하다고, 두벌농사를 하지 않고서는 척박한 땅에서 높은 알곡소출을 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하시었다.

그러시고는 인민군대에서 올해 두벌농사에서 장군을 불렀다고, 자신께서 몇달전에 이곳 농장에 와서 앞 그루로 심은 밀보리작황을 보면서 뒤 그루 강냉이 재배에서도 풍년작황을 마련하라고 하였는데 그 과업을 인민군대에서 훌륭히 수행하였다고 높이 치하하시었다.

그러시면서 어버이수령님께서 알곡 두벌농사에서 높은 소출을 낸 농장포전을 보시었으면 얼마나 기뻐하시었겠는가고 절절하게 말씀하시었다.

정녕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치게 하는 말씀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꾼들을 둘러보시며 각급 지방당조직들과 농촌경리부문들에서 알곡 대 알곡 두벌농사를 틀어쥐고 알곡수확고를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릴 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면서 그 수행을 위한 방도들도 환히 밝혀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이어서 당의 두벌농사방침을 관철하기 위한 된바람을 일으켜야 한다고 하시면서 전당, 전국이 달라붙어 두벌농사를 대대적으로 하여 우리 인민들의 먹는 문제를 결정적으로 풀도록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명한 영도에 의하여 우리 나라의 두벌농사에서는 새로운 밝은 전망이 열리게 되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가 당의 농업혁명방침관철에서 선도자적역할을 맡아 수행하도록 하는데 더욱 큰 심혈을 기울이시었다.

주체92(2003)년 6월 4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꾼들과 함께 당의 두벌농사방침관철에서 앞장서 나가고 있는 어느 한 군부대산하 농장을 현지지도하시었다.

농장의 두벌농사작황은 대단히 훌륭하였다.

허리치게 자란 밀보리들이 바다처럼 설레이고 무성한 감자숲이 이랑을 꽉 덮은 것이 정말 볼만하였다. 게다가 포전들에 있는 타래식분무기를 비롯한 관수시설들에서 「단비」가 쏟아져 내리고 거기에 칠색무지개까지 비끼었다.

이 농장에서 앞 그루로 심은 밀보리와 감자의 소출이 높을 것으로 예견되었다. 이것은 농장이 생겨 처음 보는 작황이었다.

장군님께서는 군대에서 거둔 두벌농사의 자랑찬 성과를 두고 못내 만족을 금치 못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이제는 우리가 두벌농사를 두고 그처럼 마음 쓰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소원을 풀어드리게 되었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생전에 인구수에 비하여 부침땅면적이 적은 우리 나라에서 먹는 문제를 원만히 풀어 나갈 수 있는 방도는 두벌농사를 대대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생의 마지막시기까지 험한 포전길을 걸으시었습니다.』

이날 그분께서는 인민군대가 지난해에 두벌농사에서 장군을 부른데 이어 올해 또다시 이 농장에서 두벌농사의 본보기를 창조한 것은 아주 좋은 일이라고 평가하시면서 우리의 선군은 인민군대가 사회적으로 우대를 받는 것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모범을 창조하고 그를 본보기로 하여 온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선군이라고 말씀하시었다.

사실 이 부대가 맡은 농장이 두벌농사에서 본보기를 창조할 수 있은 것은 땅이 좋거나 노력과 기계수단, 비료 등이 다른데보다 우선적으로 집중공급되었기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믿음과 이에 보답하기 위하여 이악하게 떨쳐 나선 인민군군인들의 투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부대에서 창조된 두벌농사경험이 전국에 급속히 보급되면서 농업근로자들속에서는 두벌농사열의가 전례없이 더욱 고조되게 되었다.

한편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가 콩 농사에서 새로운 전환을 가져오도록 하는데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었다.

이해 가을 인민군대의 어느 한 단위가 맡아보는 농장에서는 다수확품종의 콩을 시험재배해 볼 데 대한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들고 밀보리 뒤 그루로 콩을 재배하였는데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높은 소출을 내었다.

인민군대에서 이룩한 이러한 자랑찬 성과를 보고 받으신 장군님께서는 10월 4일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을 만나신 자리에서 그 성과에 대하여 말씀하시었다. 그분께서는 선군시대의 요구에 맞게 인민군대는 조국을 튼튼히 보위하고 있을뿐아니라 강성대국건설에 이바지하는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있다고 하시면서 인민군대가 선군시대에 하고 있는 일은 다 선도적이고 훌륭한 것이라고, 인민군대는 신문이나 방송에서만 떠드는 선군시대의 기수인 것이 아니라 실천적으로 당의 사상과 영도를 앞장에서 받들어 나가는 선군혁명의 기수라고 격찬의 말씀을 하시었다. 그로부터 보름 후인 10월 20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몸소 이 농장의 콩농사작황을 현지에서 요해하시고 인민군대의 후방부문 일꾼들이 우리 당의 선군정치를 맨 앞장에서 받들어 나가는 기수, 돌격대답게 혁명적 군인정신을 높이 발휘하여 당의 방침관철에서 빛나는 모범을 창조하여 우리 당의 선군혁명사상의 정당성과 생활력을 실천행동으로 부각시켰다고, 자신께서는 이것이 제일 기쁘다고 하시며 그들에게 최고사령관의 감사를 주어야겠다고 말씀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그후 인민군부대산하의 어느 한 농장을 현지지도하시면서 지금 군대에서 운영하는 농장들에서는 농업과학의 발전추세에 맞게 농업생산을 고도로 과학화, 집약화하기 위한 사업을 짜고 들어 효율적인 새 영농방법을 끊임없이 창조하고 있다고, 모든 농업지도일꾼들은 이런 진취적인 사업태도를 가지고 일해야 한다고 가르치시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현명한 영도 밑에 인민군대가 앞장에 서서 두벌농사를 힘있게 밀고 나감으로써 농업생산전반에서 커다란 성과가 이룩되었다.

장군님께서는 벌방지대들에서 진행하는 두벌농사의 앞 그루로 감자를 많이 심도록 하시여 논에도 감자꽃이 만발하는 선군시대의 새 전설을 펼쳐주시었다.

주체90(2001)년 4월말 어느날이었다.

이날 황해남도 안악군 어러리벌을 찾으신 장군님께서는 서해곡창벌에 펼쳐질 감자꽃바다를 그려 보시는 듯 드넓은 벌판을 이윽히 바라보시고 나서 『감자꽃이 양강도에서만 피는줄 알았는데 황해남도의 논들에서 피게 된 것은 아주 희한한 일입니다』.라고 하시며 환한 미소를 지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높은 뜻을 받들고 인민군대의 모범을 따라 온 나라가 일떠선 결과 2002년에 두벌농사에서는 커다란 성과가 이룩되었다.

그리하여 인민들의 식량문제, 먹는 문제해결에서 전진이 이룩되고 우리 식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높이 발양시킬 수 있는 중요한 담보가 마련되게 되었다.

이러한 시기였던 주체92(2003)년 5월 21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과 하신 담화 『우리 당의 농업혁명방침을 철저히 관철할 데 대하여』에서 두벌농사를 대대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과업과 방도를 환히 밝혀주시었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꾼들에게 최근년간 여러 지방에서 두벌농사를 하여 얻은 경험은 종자혁명을 하고 영농작업을 기계화하면 어디에서나 다 두벌농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두벌농사는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는 집약농법이라고 하시었다. 그러시면서 우리는 당의 두벌농사방침을 철저히 관철하여 두벌농사를 우리 농업의 주체적인 영농체계로, 우리 식의 농법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가르치시었다.

두벌농사를 주체적인 영농체계, 우리 식의 농법으로!

강성대국건설의 요구에 맞게 인민들의 먹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 위한 방도를 다시금 명철하게 밝혀주시는 장군님의 말씀을 받아 안으며 일꾼들은 높뛰는 가슴을 진정할 수 없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말씀은 그대로 세기를 이어 내려온 단벌농사의 잠에서 깨어난 우리 나라의 농촌에서 거대한 전변의 새 역사가 시작됨을 알리는 장엄한 선언이었고 그 정당성과 생활력이 실천적으로 확증된 두벌농사방침을 보다 철저히 관철하기 위한 투쟁에로 전체 농업근로자들을 힘있게 불러일으키는 고무적인 기치였다.

온 나라에 두벌농사를 짓기 위한 투쟁이 힘차게 벌어지고 있던 주체92(2003)년 9월 3일 장군님께서는 전국적인 앞 그루 농사정형을 구체적으로 요해하시고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을 부르시었다.

일꾼들을 반갑게 맞아주신 장군님께서는 올해 앞 그루 농사를 잘하여 그 덕을 보는 과정에 일꾼들과 농장원들이 두벌농사를 잘하면 먹는 문제를 얼마든지 풀 수 있고 실리가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으며 당의 두벌농사방침의 정당성과 생활력에 대하여 더욱 똑똑히 알게 되었다고 하시었다. 그러시면서 당의 두벌농사방침의 생활력이 실천적으로 확증된 조건에서 두벌농사를 대대적으로 하도록 당적으로 틀어쥐고 힘있게 내밀어야 하겠다고 거듭 간곡한 가르치심을 주시었다.

이렇듯 경애하는 장군님의 정력적인 영도가 있어 나라의 곳곳에서 두벌농사의 불길이 세차게 타오르고 두벌농사에 대한 농민들의 관심도 높아지게 되었으며 두벌농사방법은 선군조선의 대지위에 확고히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두벌농사로 하여 먹는 문제해결에서는 또 하나의 큰 걸음을 내디디게 되었고 우리 나라 농촌의 풍경도 새롭게 변모되게 되었다. 5월과 6월이 오면 우리 나라의 벌들에서는 밀보리바다가 설레여 봄풍경과 가을풍경이 하나로 겹치는 황홀경이 펼쳐지게 되었고 이쪽에서는 모내기와 씨뿌리기 등 봄철농사일을 하고 저쪽에서는 가을걷이와 낟알털기 등 가을철농사일을 하는 선군시대의 새로운 농촌풍경이 생겨나게 되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농업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농촌경리의 수리화를 더 높은 수준에서 완성하도록 하시는 한편 종자혁명방침을 일관하게 틀어쥐고 나가도록 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다수확품종품평회를 조직하시고 주체93(2004)년 8월 16일과 9월 18일에  당과 군대, 국가의 책임일꾼들과 함께 현지를 찾으시었다.  

『다수확품종의 농사작황이 대단히 좋습니다. 밭벼, 흰쌀밀수수, 콩, 목화를 비롯하여 여러가지 농작물들이 하나와 같이 잘 되었습니다. 나는 농사가 이렇게 잘된 것을 처음 봅니다.』라고 하시는 장군님의 말씀이 설레이는 포전우에 메아리쳤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에서 당의 종자혁명방침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려 육종해낸 다수확품종들은 수확고가 높을뿐아니라 생육기일이 짧고 가물과 냉해, 비바람에 대한 견딜성이 강한 품종들이다, 인민군대에서 두벌농사와 새 품종의 콩농사에서 성공한데 이어 이번에 우리 나라의 기후풍토에 맞는 우량품종들을 많이 육종해내고 그 재배에서 성공한 것은 나라의 농업생산에서 결정적전환을 이룩할 수 있는 돌파구를 열어놓은 것으로 된다고 말씀하시었다. 그러시면서 현지일꾼들에게 다수확품종들을 이렇게 훌륭히 육종해내느라고 수고가 많았다고 높은 평가의 말씀을 주시었다.

계속하여 장군님께서는 당과 수령에 대한 보답의 한마음을 안고 당정책관철에서 절대성, 무조건성의 정신을 높이 발휘하여 끝장을 보고야마는 인민군대가 아니고서는 오늘과 같은 현실을 안아오지 못하였을 것이라고 재삼 평가의 말씀을 하시었다.

『나는 지금 우리 나라의 방방곡곡에 인민군대에서 육종해낸 다수확품종인 밭벼와 흰쌀밀수수, 콩을 비롯한 농작물들의 바다가 펼쳐진 것을 보는 것만 같아 기쁨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인민군대는 선군시대의 농업혁명의 개척자이며 선구자입니다.

인민군대에서 당의 종자혁명방침을 받들고 육종해낸 다수확품종들은 그야말로 혁명적 군인정신이 낳은 선군시대의 창조물이며 선군품종들입니다.』

선군품종! 이것은 선군시대에서만 나올 수 있는 새로운 표현이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현명한 영도밑에 인민군대가 앞장에 서서 종자혁명과 두벌농사를 힘있게 밀고 나감으로써 농업생산전반에서 커다란 성과가 이룩되었다. 그리하여 인민들의 식량문제, 먹는 문제해결에서 커다란 전진이 이룩되고 우리 식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높이 발양시킬 수 있는 중요한 담보가 마련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