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태양 김정일장군」(3) 중에서

 


 

 항일의 빛나는 혁명전통은 조선노동당과 조선혁명의 억센 뿌리이고 만년초석이다. 조선혁명은 어버이수령님께서 장구한 항일혁명투쟁시기 창조하신 혁명전통을 옹호고수하고 계승발전시키면서 승리의 길을 헤쳐왔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벌리시면서 언제나 항일의 혁명전통을 튼튼히 틀어쥐고 선군혁명을 이끄시었다. 장군님께서는 혁명전통교양을 더욱 강화하여 모든 군인들과 인민들이 백두의 혁명정신을 가슴에 지니고 시련과 난관을 극복해 나가며 우리의 주체사회주의를 지키고 강성대국건설을 힘있게 벌려 나가도록 하시었다.

이무렵 장군님께서는 혁명의 성산 백두산을 자주 찾으시고 백두산의 눈보라를 몸소 맞으시었다. 백두산의 눈보라는 단순히 자연의 눈보라가 아니라 항일의 혁명정신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하기에 군인들과 인민들은 백두산의 눈보라를 두고 『우리의 백두산장군이 일으켜가시는 선군혁명의 총대바람』이라고 말하였다.

백두산의 눈보라, 백두산의 총대바람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만난을 맞받아 나가는 완강한 공격정신이며 백번 쓰러지면 백번 다시 일어나 싸우는 견결한 투쟁정신이다. 백두의 혁명정신은 꺾일지언정 신념을 버리지 않는 고결한 혁명정신이며 제힘으로 기어이 이 땅에 사회주의를 건설하려는 숭고한 혁명정신이다.

언제인가 장군님께서는 이 드센 바람을 봄날의 소슬바람처럼 헌헌히 맞으시며 동행한 일꾼들에게 얼마나 좋소, 힘이 생기고 마음이 든든해지고 머리가 거뜬해지거든, 지금 같은 땐 금강산의 꽃바람보다 백두산바람을 맞아야 제격이요라고 말씀하시었다.

그때를 체험한 인민군지휘성원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 말씀을 들으며 우리는 정말로 우리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이 백두산바람을 일구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냅다 휘몰아치는 영용한 기상을 보아도 그래 천하를 휘감아 흔드는 드센 본때를 보아도 그래 분명 백두산바람은 그 주인이 일구는 바람이었다. 오늘의 선군시대에 불어 치는 백두산장군의 총대바람이었다.』

사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제국주의연합세력의 반공화국압살책동으로 사느냐 죽느냐 하는 판가리마당에서 백두산의 드센 바람을 불러오시었다. 주체88(1999)년 2월 19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백두산기슭의 하늘아래 첫 동네인 무봉마을에 건설된 무봉청년발전소를 돌아보시고 삼지연읍으로 가시던 길에 백두산갈림길까지의 10리길을 눈보라를 헤치며 걸으시었다.

동행한 일꾼이 눈보라가 세차고 날씨가 몹시 차기때문에 차를 타고 가시자고 거듭 요청드리자 장군님께서는 백두산의 눈길을 헤치며 걸어보아야 조선혁명이 어떤 혈로를 헤쳐왔는가를 알 수 있으며 우리 수령님께서 백두산에서 얼마나 고생하시면서 조국의 해방을 이룩하시었는가를 알 수 있다고 힘주어 말씀하시고는 일행을 향하여 『모두 나를 따라오시오.』라고 말씀하시었다.

날아가는 새들도 얼어서 돌덩어리처럼 떨어지고 백두대지에 자리잡고 사는 말사슴도 네발을 버티고 서서 슬피 운다는 백두산의 눈보라, 일꾼들의 의지를 시험이나 하듯 하늘땅을 휩쓸며 몰아쳐오는 그 백두산의 눈보라가 폭풍처럼 귀청을 때리고 맵짠 눈가루가 바늘끝처럼 그들의 양볼을 아프게 쳤다. 내뿜는 입김이 금시 눈썹이며 모자에서 허연 성에로 되어버렸다. 앞을 가늠할 수 없게 사나운 눈발들이 무섭게 휘뿌려오고 옷자락들이 찢길듯 맹렬하게 나붓기었다.

장군님께서는 넘어지거나 뒤떨어지는 수행일꾼들의 손을 따뜻이 잡아 이끌어주시면서 눈보라길을 앞장에서 헤쳐 나가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백두산의 세찬 눈보라에 그대로 실려오는 항일유격대의 화약냄새, 군복냄새를 맡으시었다. 저 세찬 울부짖음소리에서 총, 총을 더 억세게 틀어쥐라는 선열들의 피타는 목소리, 백두산의 웨침소리를 들으시었다. 준엄한 오늘 총대를 틀어 잡아야만 민족의 운명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저 백두산눈보라에서 다시한번 확인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천만가지 깊은 뜻을 안고 백두산의 눈보라길을 걸으시었다. 조국이 아직도 준엄한 시련을 헤치고 있는 오늘, 제국주의원수들과 총포성이 울리지 않는 의지의 전쟁을 하고 있는 오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백두산의 눈보라길을 앞장에서 처억처억 헤치시며 걸어가시었다.

그분의 손에 이끌리어가며 세차게 불어 치는 백두산눈보라를 맞는 일꾼들의 눈앞에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해와 해를 이어 전선에서 전선에로 누벼오신 전투적인 행로가 안겨왔다.

그것은 나라의 최북단초소에서부터 분계연선까지, 동해의 해안포진지에서부터 서해날바다위의 자그마한 섬초소에 이르기까지 동서남북으로 연연 수만리길이었다. 그것은 총대로 사회주의조국과 인민의 운명, 나라의 최고이익을 추호의 양보도 없이 견결히 수호하시며 일구신 위대한 장군님의 선군의 눈보라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 있어서 이 날의 백두산의 눈보라길은 지나온 해들의 수천수만리 전선길에서 몸소 헤쳐오신 선군의 눈보라를 부강조국건설에로 떠미는 위대한 승리의 총대바람이었다.

일꾼들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불굴의 영웅기상이 저 눈보라에 장엄하게 빛발쳐 오고 선군혁명의 폭풍을 부른 위대한 군인, 강철의 영장의 자국자국이 저 눈보라에 뜨겁게 어려옴을 온몸으로 절감하였다. 일꾼들의 마음을 안은 듯 백두산의 눈보라가 땅을 말아 올리며 울부짖고 있었다.

드디어 백두산갈림길에 이르신 장군님께서는 일꾼들에게 우리는 수령님께서 백두의 혹한속에서 풍찬노숙하시며 찾아주신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를 끝까지 고수하여야 한다고, 그러자면 백두의 혁명정신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순결하게 이어 나가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 위대한 백두산총대바람을 전체 군인들과 인민들의 가슴속에 안겨주시었다.

주체89(2000)년 1월 4일이었다.

장군님께서는 당보 「노동신문」의 한 논설원과 자리를 같이하시었다. 그 논설원은 그해 공동사설 『당창건 55돌을 맞는 올해를 천리마대고조의 불길속에 자랑찬 승리의 해로 빛내이자』를 받아 안고 그 관철에 떨쳐 나선 군인들과 인민들에게 힘을 안겨주기 위한 정론 「백두산눈보라」를 준비하고 있었다.

장군님께서는 그에게 한해 전 영하 40℃를 오르내리는 추운 날씨를 무릅쓰시며 헤치시었던 백두산의 눈보라길에 대하여 이야기해 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나는 그런 추운 날씨에 맵짠 눈보라를 맞는 것을 좋아한다고, 지난해 2월 내가 백두산의 눈보라를 맞은 것은 누구도 모를 것이라고 말씀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한해전에 걸으시었던 잊지 못할 백두산눈보라길에 대한 추억깊은 그 말씀은 그대로 정론의 소재였고 종자였다.

그후 일꾼들을 통하여 정론집필정형을 다시금 요해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아무래도 그가  백두산에 가서 눈보라를 맞아보게 해야 할 것 같다고, 백두산눈보라를 맞아보아야 혁명적인 글을 써낼 수 있다고 하시며 비행기를 띄워주시어 논설원이 백두산의 눈보라를 직접 체험하게 하시었다. 그리고 정론이 완성되었을 때에는 친히 다 보아주시고 글이 잘되었다는 친필을 써서 내려 보내 주시었다.

정론 「백두산눈보라」는 당보에 실리여 온 나라에 백두의 혁명정신이 약동하고 백두산눈보라처럼 억세고 강의하게 살며 투쟁하는 혁명적 기풍이 세차게 타번지게 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한편의 정론으로 백두산의 눈보라와 같은 거세찬 혁명의 열풍을 몰아오신데 이어 그해 3월 22일부터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에 오르시었다.

백두산의 눈보라를 헤치시며 진행하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지지도노정은 백두산일대의 항일전구 전 지역을 포괄하였다.

현지지도의 첫날 아침부터 백두산밀영과 사자봉밀영, 청봉숙영지, 삼지연대기념비에 이르는 노정을 긴장하게 이어오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밤이 퍽 깊어서 숙소에 돌아오시었다. 그분께서는 그 날 밤에도 자정이 가까워 오도록 집무에만 열중하시었다.

일꾼들이 여러번 쉬실 것을 청드렸지만 장군님께서는 줄곧 문건만 보시다가는 무엇인가 깊은 생각에 잠기군 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재차 휴식하실 것을 간청하는 일꾼들의 진정에 가슴이 뜨거워 지시는 듯 조용히 일어 나시어 방안을 거니시다가 말씀을 시작하시었다.

『내가 이번에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들을 돌아보면서 새로 느낀 것도 많고 감흥을 받은 것도 많습니다. 거저 걸어 다니기도 힘든데 우리 수령님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에 풍찬노숙하시면서 적들과의 치열한 전투를 벌리시고 추위와 배고픔을 참으시며 간고한 행군길을 걸어가시느라 얼마나 힘드시었겠는가 하는 것을 다시금 절감하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 이룩하신 혁명업적이 얼마나 고귀하고 위대한가 하는데 대하여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일꾼들은 백두의 설한풍속에 혈전만리를 헤쳐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풍상고초를 돌이켜보며 숭엄한 감정에 휩싸였다.

한동안 아무 말씀도 없으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근엄하신 어조로 수령님께서 장구한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창조하신 혁명전통을 영원히 옹호고수하고 계승발전시키며 그 위대한 전통에 기초하여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려는 것은 우리 당의 확고한 의지이며 결심이라고, 우리는 혁명전통교양사업을 끊임없이 강화하여야 하며 혁명의 세대가 바뀌고 혁명이 심화될수록 이 사업을 더욱 적극적으로 벌려야 한다고 강조하시고 나서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었다.

『내가 이번에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들을 돌아본 것은 전당, 전군, 전민이 사회주의강성대국건설에 떨쳐 나선 혁명적 앙양의 시기에 맞게 당원들과 근로자들속에서 혁명전통교양을 더욱 강화하는 사회적분위기를 세우기 위해서 입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준엄했던 우리 혁명의 역사적년대들을 감회깊이 회고하시면서 지금은 새 세대가 자라나고 있으며 혁명은 멀리 전진하여 사회주의강성대국을 건설하는 높은 단계에 이르렀다는데 대하여 지적하시고 이러한 역사적사실은 우리 인민들속에서 혁명전통교양을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강화할 것을 절박하게 요구하고 있다고 말씀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여 일꾼들에게 우리 혁명의 안팎의 정세는 의연히 복잡하고 첨예하다고 하시면서 앞으로 우리 혁명앞에 지금보다 더 엄혹한 시련이 닥쳐올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도 수령님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에 걸으시었던 그런 험난한 길을 걸어야 한다, 우리가 혁명의 난국을 헤쳐 나가자면 당원들과 근로자들속에서 혁명전통교양을 강화하여야 한다고 절절하게 말씀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혁명전통교양을 강화하는 것은 세계사회주의운동의 역사적교훈에 비추어보아도 매우 중요한 문제로 나선다고 지적하시고 나서 결연하신 어조로 『우리는 혁명전통교양사업에 계속 큰 힘을 넣어 모든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유격대식으로!」라는 구호를 높이 들고 항일유격대원들처럼 사업하고 생활하며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끝까지 완성하도록 하여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시었다.

장군님께서 말씀을 마치시었을 때는 새날이 푸름푸름 밝아오고 있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3월 24일과 27일에도 눈보라를 헤치시며 베개봉숙영지와 건창숙영지, 신사동혁명전적지와 대홍단혁명전적지, 무포숙영지를 차례로 돌아보시면서 양강도를 혁명전통교양의 거점으로 더 잘 꾸리고 그를 통한 교양을 강화할 데 대한 강령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었다.

백두산의 눈보라를 헤치시며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진행하신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에 대한 역사적인 현지지도는 어버이수령님께서 항일의 불바다속에서 이룩하신 백두의 혁명전통을 새 천년대에도 견결히 옹호고수하고 후손 만대에 길이 빛내어 나가시려는 철석같은 의지의 발현이었으며 어떤 광풍이 몰아쳐와도 백두의 혁명정신으로 역사의 온갖 도전을 이겨내고 사회주의강국건설의 자랑찬 승리를 안아오려는 신념을 더욱 굳히신 불멸의 노정이었다.

장군님께서는 2월의 탄생과 함께 맞으신 눈보라를 60여년이 흘러간 오늘도 꽃보라와 바꾸지 않으신다.

장군님께서는 오늘도 백두산을 내리지 않으신다.

어버이수령님께서 혁명의 계주봉으로 넘겨주신 권총을 억세게 틀어 잡으시고 어머님께서 입혀주신 혁명의 군복을 벗지 않으신다.

백두산빨치산의 아들이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백두산눈보라와 함께 엮어오신 영웅서사시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심장을 세차게 격동시키면서 사회주의위업수행을 위한 투쟁에로 힘있게 고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