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1) 중에서 





 


 

해솟는 맑은 아침의 나라, 삼천리강산에 은금보화 가득하고 찬란한 문화로 반만년역사를 빛내어온 자랑 높은 나라 우리 조선이 1905년 「을사5조약」이 날조되어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될줄을 누가 알았으랴.

5천년역사국의 연륜에 외침의 흔적은 많았어도 군력이 강하여 국권을 상실한적이 없었던 존엄 높은 우리 민족이었다. 그런데 군력이 강하면 권력을 빼앗긴다는 이씨봉건왕조의 집권욕에 찬 「국책」이 나라를 사색당쟁에 빠뜨리고 열강들의 각축전장으로 만들더니 졸지에 망국을 자초하게 했다.

명색이 군대라고 했지만 겨우 수천의 병정에 화승총을  쥔 것이 고작인 너무도 보잘것없는 군력이었으니 망국을 구경이나 하는 형편이었다.

국운을 통탄하며 자결의 길을 택한 충신들도 있었고 의병을 일으켜 병기를 잡은 애국자들도 있었다. 선진적인 지식인들의 애국문화계몽운동, 노동자, 농민들의 파업과 폭동, 청년학생들의 동맹휴학, 유생들과 애국관리들의 성토와 상소 등 각계각층의 애국투쟁이 도처에서 벌어졌지만 의분과 의기의 발로였을 뿐 강도 일제에 맞서기에는 너무도 무력한 것이었다. 피를 물고 달려드는 현대적 무장력의 침략을 어찌 화승총으로 제압할 수 있었고 성토나 상소로 막을 수 있었으랴. 나라를 건져줄 총이 없고 위인이 없어 삼천리강토는 피바다에 잠겼었다. 일제의 총칼은 이 땅의 모든 자원을 약탈하고 말살하였다. 강토는 피폐되고 민족적인 모든 것이 빛을 잃었다.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 칠성판에 올랐다.

그러나 인류발생과 더불어 이 땅에 삶의 뿌리를 내린 조선민족이 그렇게 쉽게 고할 수는 없었다.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 생사기로에 놓였던 그 역사의 분수령에서 조선은 천운을 받아 안는 행운을 지니었다.

주체1(1912)년 4월 15일 유서깊은 민족의 성지 평양의 만경대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 탄생의 고고성을 울리신 것이다.

김일성장군님의 탄생은 민족을 구원하고 조국광복을 안아올 걸출한 영도자의 출현을 목터지게 부르는  겨레의 한결같은 요청에 대한 시대와 역사의 화답이었다. 동방의 천년강국 고구려의 기상을 되살려 양병, 강병의 새 역사를 펼치어 강도 일제를 삼대베듯 쓸어버릴 민족적 영웅의 출현을 뼈에 사무치게 고대하는 이 나라 백성들의 갈망에 하늘이 베푼 은혜였다.

정녕 시대와 역사와 겨레의 지향과 요청, 사무치는 갈망이 안아온 민족운명의 태양의 출현이었다.  

예로부터 명소에서 영웅호걸이 난다고 하였다. 민족의 원시조 단군의 태가 묻혀있고 동방의 강국 고구려의 천년강성의 유적이 역력한 만경대, 대동강이 굽이쳐 흐르는 유서깊은 강기슭에 솟아있는 남산마루에 오르면 만가지 경치를 한눈에 볼 수 있다고 하여 그  봉우리를 만경봉이라 하고 마을을  만경대라고 불러온 명소중의 명소.

인걸은 지령이라 이 천하절승 만경대에서 탄생하신 위대한 수령님은 분명 하늘이 낸 위인이시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문은 대대로 애국해온 혁명일가였고 무장을 잡고  외적을 막는 호국성전의 선봉에 선 총대중시의 가문이었다.

평양에서 살던 일가는 김응우증조할아버님대에 지주의 묘를 보아주기로 하고 산당집 한 채를 얻어 만경대에 옮겨 앉았다.

이 나라 농촌의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수수한 초가집에서 민족의 넋, 애국의 넋을 살려 나라와 민족을 구제할 대통운이 태동하였다.

한 가정만을 위한 일개인의 몸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의 몸으로 뼈가 부서지고 몸이 쪼개지는 한이 있더라도 나라를 반드시 찾아야 한다는 것이 만경대가문의 넋이고 정신이었다.

만경대일가분들은 이 넋과 정신을 삶의 전부로 삼고 조선독립을 위한 애국위업에 소중한 청춘도 생명도 다 바치었다.

김응우증조할아버님께서는 청빈하면서도 의절이 강한 가문의 후손으로 남달리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심이 높으시고 외래침략자들과 봉건관료배들에 대한 항거정신이 강하시었다. 증조할아버님께서는 1866년 8월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가까이까지 침입해온 미국침략선 「셔먼」호를 격침시키는 싸움의 앞장에 서신 애국자이시었다.

증조할아버님께서는 침략선이 두루섬에 정박하고 있을 때에도 마을사람들과 함께 집집의 바줄을 모아 강건너 곤유섬과 만경봉사이에 겹겹이 건너지르고 돌을 굴리면서 침략선의 앞길을 막아나서시었으며 침략자들이 대포와 총을 쏘아대며 살인, 약탈, 방화를 일삼을 때에는 나무단을 가득 실은 매생이들에 불을 달아 떠내려 보내어 침략선을 불태우고 침략의 무리들을 모두 수장해버리시었다. 증조할아버님께서는 그후에도 미제침략자들이 군함 「쉐난도아」호를 대동강하구에 침입시켰을 때에도 그것을 격퇴시키는 싸움의 앞장에 서시었다.

증조할아버님의 애국의 넋은 수령님의 증조할머님 김씨여사에 의하여 자손들에게 이어졌다. 여사께서는 변변한 독 하나를 살 돈이 없어 제일 눅은 쭈그러진 장독을 사야만 하는 가난속에서도 자손들이 애국의 넋을 지니고 의절이 바르게 성장하도록 마음을 쓰시었다.

3대를 외독자로 내려오던 만경대가문은 김보현할아버님대에 와서 3남 3녀를 둔 대 가정으로 되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할아버님 김보현선생님과 할머님 이보익여사께서는 망국의 비운앞에 한탄하며 주저앉은 것이 아니라 자제분들 모두를  조선독립투쟁의 앞장에 내세우시었다.

나라없는 백성은 상갓집 개만도 못하다, 남자는 전장에서 적과 싸우다 죽어야 마땅하다, 이것이 할아버님의 의지이고 만경대가문의 가훈이었다. 이 가훈을 받들어 일가분들모두가 고향집사립문을 나서시었다.

조선독립, 그것은 대포와 총칼을 든 일제와 사생결단의 투쟁을 동반해야 했다. 죽기를 각오한 사람만이 나설 수 있는 결전장, 만경대일가분들은 뜨거운 독립의지를 지니고 추녀낮은 초가집사립문을 나서시어 겨레가 피터지게 찾는 조국광복의 제1선인 항일전에 뛰어드시었다.

높은 뜻의 학문과 군사적자질을 겸비하신 아버님 김형직선생님은  망국초엽부터 투철한 조선독립의지를 지니시고 우리 인민의 독립투쟁을 민족자주정신에 기초하여 자력으로 수행하는 길로 이끄신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시었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1911년 봄 평양숭실중학교에 입학하여 공부를 하시면서 독립운동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시었다. 선생님께서는 뜻을 원대하게 가져야 한다는 「지원」의 사상을 좌우명으로 내세우시었다. 조국과 민족을 위한 투쟁의 길에서 참된 보람과 행복을 찾는 혁명적 인생관인 이 사상의 바탕에 놓여있는 것은 대를 이어가며 싸워서라도 기어이 나라의 광복을 이룩해야 한다는 백절불굴의 혁명정신이었다. 그것은 침략과 예속, 억압과 착취를 견결히 반대하며 자기 나라 인민의 힘을 믿고 그 힘을 키워서 조국의 광복과 민족적독립을 이룩하고 인민의 새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확고한 민족자주정신과 애국적입장으로 일관된 혁명적인 사상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주체6(1917)년 3월 23일 평양에서 조선국민회를 결성하시었다. 조선국민회는 전체 조선민족이 일치단결하여 조선사람자체의 힘으로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며 참다운 문명국가를 세울 것을 목적으로 하는 비밀결사였다. 그것은 당시 조선에서 조직규모가 제일 크고 반제자주적 입장이 가장 투철하며 대중적지반이 튼튼한 반일지하혁명조직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조선국민회조직을 국내와 국외에 널리 확대강화하시면서 3.1인민봉기후 변화발전하는 혁명정세의 요구에 맞게 반일민족해방운동을 민족주의운동으로부터 무산혁명에로 방향전환시킬 데 대한 노선을 밝혀주시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에서 선구자의 역할을 하시었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광범한 무산대중을 조직결속하며 무산혁명을 지향하는 새로운 무장활동을 위한 준비사업에 특별히 큰 힘을 넣으시었다.

문무겸전의 뛰어난 자질을 지니신 선생님께서는 조선독립은 「외세의존」이나 「청원」의 방법으로는 절대로 안되며 무장을 들고 일제의 침략무력에 맞서야 한다는 무장항전을 유일한 방략으로 내세우시었다.

선생님께서는 주체8(1919)년 8월초에 소집된 역사적인 관전회의에서 혁명적 무장활동방침을 밝히시면서 강대한 무력을 가진 적들의 유혈적 탄압에 적수공권으로 대항한다는 것은 실패를 전제로 하는 것이라고, 무기를 가진 원수는 오직 무기를 가지고 때려 눕혀야 한다고 하시면서 『조선독립달성의 총요원은 무기를 잡고 민족자력으로 일제와 싸워 나가는 것입니다.』라고 가르치시었다.

선생님께서 구상하신 무장활동은 지도이념과 사명, 조직적기초와 활동방식에서 지난날의 의병운동이나 독립군운동이 가지고있던 본질적약점과 제한성을 극복하고 방향전환의 요구에 맞게 철저히 무산혁명을 지향하는 새로운 무장활동이었다.

그후 남만과 동만, 국내 여러곳의 군사간부양성기지들과 학교들에서 새로운 무장대오의 골간으로 될 군사간부들이 육성되었다. 그리고 독립운동단체들에 조직되어있던 군사조직들과 분산적으로 널려있던 무장대들이 무산혁명의 요구에 맞게 개조되고 광복군총영, 백산무사단을 비롯한 새로운 무장대들이 조직되어 국경일대와 국내깊이에서 군사활동을 벌여 일제식민지통치에 큰 타격을 주고 인민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었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자신의 반일무장항전의지를 대를 이어나가도록 하는데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었다.

「조선국민회사건」으로 평양감옥에서 옥고를 치르고 나오신 선생님께서는 어느날 두 동생에게 세상에 제일 못된 놈들이 일본놈들인데 그놈들을 그냥 놔둘수가 있느냐고 하시며 형록이나 형권이도 왜놈들과 싸워야 한다, 죽어도 핏값은 해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었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맏아드님에 대해서 각별하시었다. 어렸을 때부터 총대에 대한 이야기, 외적을 쳐부순 증조할아버님과 만경대인민들의 용감한 투쟁, 애국명장들의 무훈담을 들려주시었고 우리 민족의 피눈물나는 망국사와 최익현, 이준, 안중근, 강우규, 이재명, 민영환, 이범진, 홍범식 등 애국충신들의 투쟁담과 비극, 의병들과 독립군들의 비참한 운명, 일제의 총칼에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겨레의 처지에 대한 가슴아픈 이야기도 들려주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70여년전 3.1인민봉기 후에 아버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를 이렇게 회고하시었다.

『그날 아버지가 하던 말씀 중에서 이런 말씀은 오늘까지도 내 기억속에 똑똑히 남아있다.

「강도들이 집에 들어와 칼부림을 하는데 목숨을 살려달라고 아우성친다고 그 강도놈이 목숨을 살려줄리는 없다. 집밖에 있는 놈도 역시 강도라면 아우성소리를 듣고 달려와 도와줄리는 없다. 제 목숨을 지키려면 제힘으로 강도놈들과 싸워야 한다. 칼든 놈하고는 칼을 들고 싸워야 이길 수 있다.」』

칼든 놈하고는 칼을 들고 싸워야 이길 수 있다, 이것은 침략자 일제와 총대로 맞서 빼앗긴 나라를 되찾을 데 대한 간곡한 당부였으며 대를 이어 진행하여야 할 민족해방위업수행에서 총대중시를 근본으로 틀어쥐고 나갈 데 대한 가르치심이었다.

조선의 위대한 어머니 강반석여사께서는 나라를 독립시키지 못할바에야 살아서 무엇하겠는가, 내가 싸우다 쓰러지면 아들이 하고 아들이 싸우다 못하면 손자가 싸워서라도 우리는 반드시 나라의 독립을 성취하여야 한다는 김형직선생님의 「지원」의 뜻을 받들어 만경대가문의 넋을 지키고 그것을 빛내이는 데 모든 것을 다 바치시었다.

만경대가문의 총대의지가 자제분들에게 면면히 이어지게 하는데서 강반석여사의 로고가 매우 컸다.

일신의 위험을 무릅쓰시고 조중국경을 넘나드시며 무기와 탄약운반까지 맡아하시며 김형직선생님의 무장항전사상을 받들어오신 여사께서는 자제분들이 아버님의 뜻을 받들어 반일항전에 떨쳐 나서도록 떠밀어주시었다.

여사께서는 맏아드님이신 김일성장군님께서 「지원」의 높은 뜻 어려있는 혁명의 총대를 억세게 틀어 잡으시고 항일대전의 포성을 울리시는데 모든 힘을 깡그리 바치시었다.

해방 후 조국에 개선하시어 칠골을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머니는 항일유격대를 창건할 때에도 크게 한몫 했다고 하시면서 항일유격대는 어머니가 지어준 밥을 먹고 어머니가 지어준 군복을 입고 어머니가 만들어준 깃발을 추켜들고 창건되었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수령님의 작은삼촌 김형권선생님과 동생 김철주선생님께서 항일무장투쟁의 싸움마당에 용약 나서시어 한 몸 다 바쳐 싸우신데도 여사의 뜨거운 손길이 미치었다.

이처럼 만경대일가분들은 무장항전의 중심무대에 자신을 세우시고 견결히 싸우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광복위업을 이룩하시고 20년만에 만경대고향집사립문을 들어서시던 때를 회고하시어 이 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하직하고 고향을 떠날 때에는 모두들 나라를 찾고서야 돌아오겠다면서 씩씩하게 사립문을 나섰으나 그들가운데서 조국으로 돌아온 것은 나 하나뿐이었다고, 만리타향에 무주고혼이 되어 누워있는 선친들의 유해마저 모시지 못하고 고향집사립문에 홀몸으로 들어선 내 마음이야 어떠했겠는가고, 우리 일가가 당한 이러한 불행과 고초는 나라를 잃은 우리 민족이 당한 불행과 고초의 한 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당시의 심정을 피력하시었다.

정녕 만경대가문의 일가분들은 무장을 잡는 것만이  빼앗긴 나라를 찾는 최선의 길이라는 역사의 진리, 혁명의 원리를 누구보다도 먼저 깊이 깨닫고 청춘도 생명도 다 바쳐 그것을 실천하며 선군역사의 여명을 불러온 위대한 총대애국자들이었다.

만경대의 초가집에서 이렇듯 나라와 민족을 위한 무장항전의 길에 청춘도 생명도 다 바쳐 싸운 총대혁명가들이 대를 이어 배출되었으니 만경대일가를 어찌 보통가문이라 하랴.

일가분들이 지니였던 투철한 무장항전의 의지와 그 실천으로 이룬 업적, 그것은 주체혁명의 총대혈통의 비옥한 토양이었다.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투쟁이 바야흐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면서 총대를 기본수단으로 하는 항일무장투쟁, 선군혁명으로 도약할 수 있게 한 뿌리가 여기서 자라났다.

이 총대가문에서 주체1(1912)년 4월 15일에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구원할 위대한 사명을 지니신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님의  탄생이라는 민족사적대업이 마련되었다.

참으로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 만경대의 애국적이며 혁명적인 가문에서 탄생하신 것은 비운의 조국강산에 민족재생의 봄을 알리는 역사의 봄우뢰였으며 망국의 어둠을 걷어내는 민족의 태양의 탄생이었다. 그것은 선군의 총대가 일으키는 혁명의 폭풍에 의해 강도 일제가 격멸되고 조국이 광복되며 새 조선이 일떠설 광휘로운 해돋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