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태양 김정일장군」(4) 중에서 

 

  


 

 미제의 반 공화국책동은 더욱 분별없이 악랄해졌다.

조성된 정세는 어느때 보다도 혁명적동지애에 기초한 일심단결을 튼튼히 다질 것을 요구하였다.

생사운명을 같이할 혁명동지대오가 없이는 대적과 싸워이길 수 없으며 사회주의강성대국건설과 「우리 민족끼리」의 자주통일위업도 실현할 수 없었다.

온 사회를 선군혁명동지대오로 만드는 것은 온 사회를 선군사상화하기 위한 필수적요구였다.

천리혜안의 예지로 이러한 시대적요구를 통찰하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동지애의 노래」를 새 세기의 진군가로 높이 울리게 하시었다. 선군의 기치밑에 혁명적동지애의 대부대를 키우고 혁명적동지애에 기초한 일심단결을 튼튼히 다지고 그 위력으로 만난을 헤치며 새 세기의 진군로를 열어 나가시려는 것이 장군님의 결심이고 의도였던 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주체89(2000)년초의 어느날 인민군 지휘성원들에게 1990년대가 일심단결의 년대라면 2000년대도 역시 일심단결의 년대로 되어야 한다, 우리모두 일심단결의 노래인 「동지애의 노래」를 높이 부르면서 주체혁명위업의 완성을 위해 힘차게 전진해 나가자고 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말씀을 받아 안은 지휘일꾼들은 가슴이 뜨거웠다. 장군님을 모시고 헤쳐온 나날들이 눈앞에 삼삼히 밟혀왔다.

어느해에 있은 일이다. 어느날 장군님께서는 일꾼들에게 지난 몇해동안 별의별 일을 다 겪었다고 하시면서 그러나 나의 곁에는 항상 동지들이 있었다, 동지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마음이 든든했고 그 어떤 어려운 용단도 다 내릴 수 있었다고 회고하신 다음 조용하나 매우 절절하신 어조로 우리 다같이 함께 겪은 그 역사를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다, 그것을 잊으면 인간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몸소 자리에서 일어 나시어 「동지애의 노래」를 선창하시었다. 그리하여 모두 일어나 장군님을 따라 노래를 합창했다.

장군님께서는 역사의 다박솔초소길을 다녀오신 그 밤에도 이 노래를 부르시었고 오중흡7연대칭호쟁취운동의 불길을 지펴 올리신 그날 아침에도 비가 와도, 눈이 와도 가고 지뢰밭이 놓여있다고 해도 가야 하는 것이 혁명이고 동지라고 하시며 매우 비장하신 마음으로 이 노래를 부르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때로는 인민군전사들과 어깨를 겯고 뜨거운 사랑과 무한한 열정을 담아 이 노래를 부르시었으며 달리는 야전차안에서 붓을 드시고 이 노래를 새기시며 동지에 대한 시구절까지 적어보기도 하시었다.

 정녕 「동지애의 노래」는 우리 장군님께 있어서 선군단결의 기치, 승리의 노래였다.

    

    가는 길 험난하다 해도 시련의 고비 넘으리

    불바람 휘몰아쳐와도 생사를 같이하리라

    천금주고 살수 없는 동지의 한없는 사랑

    다진 맹세 변치 말자 한별을 우러러보네

 

    돌위에 피어나는 꽃은 그 정성 피운 것이고

    죽어도 잃지 않는 생은 그 사랑 주신거라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야 할 혁명의 길에

    다진 맹세 변치 말자 한별을 우러러보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새 세기에 들어와 이 노래가 더욱 높이 울리게 하시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주체91(2002)년 2월 26일 당중앙위원회 한 책임일꾼에게 뜻 깊은 말씀을 하시었다.

『나는 노래들 가운데서 「동지애의 노래」를 특별히 사랑합니다. 「동지애의 노래」는 뜻이 매우 깊은 노래입니다. 그래서 그 노래를 제일 좋아합니다.』

「동지애의 노래」는 장군님께서 몸소 지도하시여 창작된 혁명영화 「조선의 별」의 주제가이다. 새기면 새길수록 뜻이 깊은 노래이다. 노래에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상적신조, 동지관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혁명의 길에서는 동지보다 더 가깝고 귀중한 사람이 없다, 속담에 팔백금으로 집을 사고 천금으로 이웃을 산다고 했지만 천만금으로도 살수 없는 것이 동지이고 동지의 사랑이다, 혁명은 동지를 얻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혁명을 하려면 동지가 있어야 한다, 동지를 떠나서 혁명에 대하여 생각할 수 없다, 혁명은 동지를 낳는다, 혁명의 길에서 사상과 뜻을 같이하고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전우가 바로 동지이다, 동지란 말을 하기는 쉽지만 진정한 동지가 되고 진정한 동지를 얻기는 결코 쉽지 않다, 혁명의 길에서 한번 손을 잡으면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어도 변함없이 동지적 의리를 끝까지 지키는 사람만이 진정한 동지가 될 수 있으며 동지가 많은 동지부자가 될 수 있다, 동지의 세계에는 오직 내가 곧 그대이고 그대는 곧 나라는 믿음이 있고 사랑과 충성이 있을 뿐이다, 내가 자신처럼 믿고 사랑하는 것은 오직 동지이고 인민이며 자신보다 더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도 동지이고 인민이다, 나는 동무들을 믿고 일하는 동무들의 동지이고 동무들은 나를 믿고 일하는 나의 동지이다, 내가 말하는 동지는 생사운명을 같이하는 참된 동지이며 내가 바라는 것은 동지적인 신뢰와 사랑, 동지들의 조언과 방조이다, 나는 온 사회를 하나의 동지의 세계로 만들고 혁명적동지애로 뭉친 단결의 위력으로 주체의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여나갈 것이다, 이것이 경애하는 장군님의 동지철학, 동지관이고 사상적 신조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93(2004)년 4월 7일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하신 담화 『혁명적 동지애는 일심단결의 기초이며 우리 혁명의 추진력이다』에서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을 시작한지 벌써 40년이 되어온다고, 제일 감회깊이 추억되는 것이 난관과 시련속에서도 변함없이 당을 따라온 혁명동지들에 대한 추억이라고 하시면서 혁명동지, 혁명적동지애에 대한 뜻 깊은 말씀을 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혁명의 길에서는 동지보다 더 가깝고 귀중한 사람이 없다, 동지는 혁명가의 가장 큰 재산이고 밑천이다, 혁명의 길에서 동지들사이에 주고받는 사랑이 다름 아닌 혁명적동지애이다, 혁명적동지애는 동지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며 동지를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치는 자기희생정신이고 동지에 대한 끝없는 헌신이다, 혁명적동지애는 나이나 혈육에 관계없이 사상과 뜻을 같이한다는데 방점이 있다, 혁명적동지애는 일심단결의 기초이며 우리 당의 정신력, 우리 혁명의 추진력이다 라고 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혁명은 동지를 얻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진리는 내가 대를 이어 물려받은 고귀한 유산이다, 나는 이 유산을 귀중히 여기고 혁명동지들을 제일 사랑하며 나 자신처럼 믿는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었다.

『동지들이 있기에 김정일이도 있고 동지들이 없으면 김정일이도 없다는 것이 나의 사상적 신조이며 나는 곧 그대이고 그대는 곧 나라는 동지에 대한 믿음, 이것이 나의 동지관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이어 내가 「동지애의 노래」를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동지를 귀중히 여기기 때문이라고 하시면서 「동지애의 노래」는 수령에 대한 흠모와 충성심, 혁명동지에 대한 사랑을 철학적으로 깊이있게 노래하고 있다, 이 노래의 가사가운데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야 할 혁명의 길에 다진 맹세 변치 말자 한별을 우러러보네』라는 구절이 제일 좋다, 이 대목에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동요하거나 주저하지 않고 혁명의 수령 앞에 다진 맹세를 변함없이 지켜 싸워야 한다는 사상이 담겨져 있다고 말씀하시었다.

「동지애의 노래」는 새 세기 선군시대의 일심단결의 진군가로 높이 울렸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혁명적동지애의 구호를 높이 드시고 군대와 인민을 신념의 동지, 선군혁명동지로 키우며 온 사회를 동지의 세계로 전변시켜 나가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무엇보다도 당, 근로단체조직들에서 「동지애의 노래」를 전인민적 가요로 누구나 다 부르며 온 나라에 그것이 더 높이 울려퍼지게 하기 위한 조직정치사업을 여러가지 형식과 방법으로 진행하도록 하시었다.

그리하여 「노동신문」을 비롯한 신문, 방송에서 연이어 기사들이 나가고 강연회가 힘있게 벌어졌다. 청년동맹에서는 「제13차 전국청소년들의 충성의 축전」청년기동해설대경연과 독창, 독주경연에 「동지애의 노래」를 기본종목으로 선정하였고 동맹원들의 문답식학습경연에서도 이 노래를 부르도록 하였다. 그리고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대표자회에서 전체 참가자들이 이 노래를 합창하게 함으로써 청년들의 가슴속에 혁명적동지애의 고귀한 뜻을 깊이 새겨주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동지애의 노래」를 통한 교양사업을 강화하도록 하시는 한편 온 사회에 혁명적동지애가 더 높이 발양되도록 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주체91(2002)년 3월 20일, 4월 9일과 18일, 5월 5일에 혁명적동지애를 귀중히 여기고 더욱 높이 발양시켜나가야 한다고, 「동지애의 노래」를 높이 부르며 동지적 단합을 더욱 튼튼히 다져 동지애로 시작되고 승리하여 온 우리 혁명위업을 동지애로 끝까지 완성해 나가야 한다고 간곡한 가르치심을 주시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었다.

『우리는 당의 전통적인 동지애의 정신을 높이 발양하여 동지들을 무한히 아끼고 사랑하며 동지를 위해서는 죽음판에도 서슴없이 뛰어드는 참다운 동지애의 기풍이 온 사회에 차 넘치도록 하여야 합니다.』

 혁명적동지애는 장군님의 혁명철학, 정치철학이다.  그분께서 펼치시는 인덕정치, 광폭정치는 주체사상을 구현한 이민위천의 정치, 숭고한 동지애로 일관된 인민에 대한 사랑과 믿음의 정치이다. 그분의 선군정치에도 혁명적동지애의 사상이 빛나게 구현되어있다. 그분께서는 총잡은 군인들을 단순히 최고사령관의 전사라는 군직관계에서가 아니라 사상과 뜻을 같이하는 혁명동지로 보고 그들을 끝없이 사랑하신다. 그분께서는 군인들이 있는 곳이라면 아무리 멀고 험난한 곳이라고 해도 찾아가 믿음을 주시고 정을 주시며 사랑의 한 품에 안아 선군혁명동지로 내세워주신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혁명적동지애를 구현하는데서 선군혁명동지대오인 인민군대를 앞장에 내세우시었다.

인민군대는 총대로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을 보위하는 무장대오이다. 인민군대의 위력의 원천은 정치사상적 우월성에 있으며 여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혁명적동지애에 기초한 무장대오의 단합이다. 총대가 혁명적동지애와 결합될 때 그 위력은 필승불패이다. 또한 인민군대에서  최고사령관과 병사는 생사를 같이하는 운명공동체이다. 모든 군인들이 최고사령관과 뜻도 마음도 운명도 같이하는 최고사령관의 제일 가는 혁명동지가 되어야 하며 전군이 혁명의 수뇌부결사옹위의 결정체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장군님의 뜻이고 요구였다.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안에서 혁명적동지애가 더욱 높이 발양되도록 이끌어주시었다. 그분께서는 인민군대에서 관병일치, 상하일치의 미풍을 높이 발양시켜 전군을 하나의 동지적 집단으로 튼튼히 다지며 군민관계를 발전시켜 군대와 인민의 동지적 단결을 더욱 강화하도록 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에서 높이 발양되는 혁명적동지애의 미풍을 온 사회가 따라 배워 일심단결, 혼연일체를 더욱 튼튼히 다지도록 심혈을 기울이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명한 영도밑에 새 세기에 들어와 「동지애의 노래」는 시대의 진군가로 높이 울리고 수령과 당, 군대와 인민의 동지적 단결을 비상히 강화시켰다.

선군의 기치밑에 혁명동지의 대부대가 자라나고 혁명적 동지애에 기초하여 혁명대오의 일심단결이 더욱 굳게 다져졌다. 새 세기 첫 자폭영웅인 군관 김기봉과 같이 동지들을 위해서 터지는 반탱크수류탄을 한몸으로 덮고 영예군인들을 위해 서라면 청춘을 서슴없이 바치며 부모없는 어린이들을 친혈육처럼 맡아키우고 돌볼 사람이 없는 늙은이들을 부모처럼 모시는 동지애의 미풍이 높이 발양되었다.

강원도 세포군의 300여명의 의사, 간호원, 군내 일꾼들, 근로자들, 청년학생들은 뜻하지 않은 산불을 끄려고 떨쳐 나섰던 여러명의 학생들과 교원이 심한 화상을 입고 생명이 위급한 상태에 빠졌을 때 떨쳐 나서 수천㎠의 피부를 떼내어 이식해주고 온갖 정성을 다해 환자들을 소생시켰다. 동지애의 숭고한 세계를 보여준 이 아름다운 소행은 어버이수령님 계시여 천리마시대에 꽃펴난 인간사랑의 전설이 오늘 경애하는 장군님 계시여 선군혁명시대를 빛내이며 더욱 활짝 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동지적 사랑의 서사시였다.

2004년 4월 평안북도 용천군에서 뜻밖의 재난으로 읍이 큰 피해를 당했을 때였다.

피해직후 이곳을 돌아본 외국사람들은 용천읍을 몇년이 걸려도 본래의 모습그대로는 복구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용천군피해복구사업을 단순히 원상그대로가 아니라 이전의 낡은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게 도시형성을 새롭게 현대적으로 하여 그야말로 새 도시를 일떠세워야 한다고, 그것도 몇년이 아니라 몇달사이에 완성해야 한다고 가르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의도는 곧 우리의 투쟁목표이다, 결사관철의 투쟁기풍으로 하루 빨리 새 도시를 일떠 세우자, 피해복구에 떨쳐 나선 군대와 건설자들의 심장은 이 하나로 고동쳤다.

장군님의 구상과 의도를 실천에 옮기기 위한 결사관철의 맨 앞장에 인민군군인들이 나섰다. 그들은 현장에 달려온 순간부터 낮과 밤이 따로 없이 현장에서 맡은 대상의 기초작업전투를 벌리었다. 지휘관들은 깨어진 벽돌쪼각들이 발에 밟히는 울퉁불퉁한 현장에 지휘부를 전개하고 『나를 따라 앞으로!』의 구호를 외치며 피해복구전투를 지휘해 나갔다.

그들은 어려운 조건에서 피해복구의 앞장을 열어 나가면서도 인민을 위해 마음쓰시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일장군님의 뜻을 받들어 피해입은 주민들이 사는 천막에 찾아가 온돌도 놓아주고 땔감도 마련해주었다.

인민군대의 모범을 따라 피해복구전투장은 낮이나 밤이나 불도가니처럼 끓어 번졌다. 높아가는 건설속도에 설계를 앞세우느라 설계일꾼들은 하루에 한두시간도 눈을 붙일새가 없었다.

수도 평양에서 달려온 건설자들, 평안북도의 각 시, 군들에서 달려온 돌격대원들, 내각과 성, 중앙기관의 일꾼들에 이르기까지 경애하는 장군님의 숭고한 뜻을 꽃피우기 위해 자기들의 지혜와 재능, 열정을 다 바치었다.

군인들과 건설자들은 불과 몇달사이라는 짧은 기간에 용천읍을 선군시대 사회주의선경으로 꾸려놓았다.

혁명의 수뇌부를 중심으로 하는 천만군민의 이러한 일심단결이 있어 난관과 시련이 겹치는 속에서도 우리 식 사회주의는 더욱 굳건해지고 강성대국건설은 앞당겨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