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태양 김정일장군」(3) 중에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인민군부대들을  현지시찰하실 때마다 늘 군인들의 식생활에 깊은 관심을 돌리고 계신다.

주체88(1999)년 5월 31일이었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어느 한 산골짜기에서 차를 세우시었다. 골짜기에 전개된 야외훈련장어구에서 가마차를 띄어보셨던 것이다. 가마차에서는 식당근무성원들이 점심식사준비로 한창 바삐 돌아가고 있었다.

경치좋은 산촌의 내가에 펼쳐진 이 이채로운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는 부대지휘관에게 나무를 때서 밥하는가고 다정히 물으시고 나서 야외에 나와서 훈련하다가 이런 골안에서 밥을 해먹으면 밥이 맛있을 것이라고 하시며 가마차쪽으로 향하시었다.

마음이 즐거우신 듯 미소를 지으시며 가마차쪽으로 걸음을 옮기시던 그분께서는 조리대우에 무드기 쌓여있는 갖가지 구미가 동하는 찬들을 주의깊게 살펴보시다가 다시금 물으시었다.

『 점심에 먹을거요?』

『 예, 그렇습니다.』

『 점심준비가 이만하면 괜찮소. 군인들이 좋아하겠소.』

그러시면서 열이 확확 풍기는 가마차로 다가가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우리 전사들이 뭘 끓여 먹는가 좀 보자고 하시더니 성큼 가마차우에 올라서시는 것이었다.

뜬김이 서린 밥가마며 국가마안을 허리 굽혀 들여다보시던 장군님께서는 밥을 먹음직하게 지었다고, 국이 푸짐하다고 못내 만족해하시면서 일꾼들에게 가마마차라는 것은 원래 말이 끈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 것이라고, 그런데 지금 가마차는 자동차가 끌고 다닌다고, 이 부대는 야외훈련을 많이 하기 때문에 가마차가 중요할 것이라고, 가마차는 야외훈련할 때 이용하기 좋다고 일깨워주시고 나서 노래 「가마마차 달린다」에 대하여 상기시켜 주시었다.

한동안이 지나자 장군님께서는 일꾼들에게 이제는 그만하고 어서 가자고 하시며 길을 재촉하시었다.

그때까지 일꾼들은 장군님의 심중을 다 알지 못하였다.

그분께서 타신 야전차는 쉬임없이 달리고 있었다.

이날 또다시 어느 한 구분대에 대한 현지시찰을 마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꾼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시려고 어느 한 산골길녘에서 걸음을 멈추시었다.

차에서 내리신 장군님께서는 『 먼길을 행군했더니 오늘은 피곤하구만.』라고 하시며 일꾼들을 한자리에 둘러앉게 하시고 자신께서 준비해가지고 오신 줴기밥을 펼쳐놓으시었다. 너무도 때늦은 점심이었다.

일꾼들은 유달리 무더운 날에 군인들을 위해 바치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크나큰 헌신이 뜨겁게 안겨와 아무 말씀도 드릴 수가 없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꾼들의 마음을 헤아리신 듯 조용히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 전사들이 야외훈련장에 나와서도 더운 밥과 고기국을 먹고 있는 것을 보니 이렇게 길가에 앉아 점심식사를 해도 기분이 대단히 좋습니다.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것 같습니다.』

가마차두리에 모여 앉아 푸짐한 점심식사를 하고 났을 병사들의 모습을 그려보시며 하시는 말씀이었다.

그제야 일꾼들은 비로소 그분께서 때 맞춰 점심식사를 해야 할 병사들에게 자그마한 불편이라도 줄세라 서둘러 그들의 야외훈련장을 떠나오신 그 심중이 헤아려져 뜨거운 것을 삼키었다.

몸소 가마차에 오르시어 병사들의 식생활을 보살펴주시면서도 줴기밥으로 때식을 에우시는 장군님의 육친의 정이야말로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친 어버이의 뜨거운 사랑이었다.

주체85(1996)년 2월 어느날 어느 한 고지를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초소식당에 들리시어 친히 간장 맛을 보시었다. 간장 맛이 시원치 않았고 색갈도 좋지 않았다. 장군님께서는 안색을 흐리시었다.

그날 저녁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낮에 초소식당에서 맛보신 간장 맛을 상기하시면서 우리의 귀중한 전사들에게 제일 맛 좋고 색깔 고운 간장을 공급하여야 하겠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그분께서는 군대에 공급할 간장문제를 결정적으로 풀어야겠다고 하시며 어떻게 하면 제일 좋은 간장을 먹일 수 있겠는가 다같이 연구해보자고 하시었다.

그 날로부터 얼마 후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꾼들앞에 간장견본 하나를 내놓으시었다. 그것은 그분께서 손수 마련하시어 맛도 보신 건간장(말린 간장)이었다.

장군님께서는 이 건간장을 물에 타서 맛을 보았는데 맛도 좋고 색갈도 곱다고, 이 간장을 군인들에게 공급하면 어떻겠는가고 하시면서 건간장을 주겠으니 지휘관들과 병사들이 직접 맛보게 하라고 이르시었다.

건간장을 맛본 군인들의 평이 대단히 좋았다.그리하여 이 건간장은 인민군대의 모든 부대들에 공급되었다.

주체86(1997)년 3월초 어느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어느 한 중대식당을 돌아보실 때였다.

부대의 지휘관이 식탁우에 놓인 간장병을 가리켜드리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건간장이라고 말씀드리었다.

지휘관의 보고를 들으시고 간장병들을 둘러보시던 장군님께서는 건간장의 색갈이 진한 것 같다고, 건간장은 배합비율을 기술규정의 요구대로 지켜야 맛도 있고 색갈도 보기가 좋다고 가르쳐주시었다.

그러시면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꾼들에게 건간장은 연대나 대대에서 가공하여 중대들에 공급하여야 한다, 건간장을 중대들에서 가공하면 질이 떨어질 수 있다고 그 가공단위까지 하나하나 지적해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말씀에 일꾼들은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을 올리고 나서 군인들이 간장을 먹어보고 대단히 좋아한다고 말씀드리었다.

일꾼들의 보고를 들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말씀하시었다.

『 군인들이 건간장을 먹어보고 맛이 대단히 좋다고 한다는데 전사들이 좋다고 하니 나도 기쁩니다. 오늘 제일 기분이 좋은 것이 군인들이 내가 보내준 맛 좋은 간장을 먹고 있는 것입니다.

군인들의 식생활을 높이기 위하여서는 아까울 것이 없습니다.

나는 앞으로 군인생활문제를 풀기 위하여서는 돈을 아끼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렇듯 그분의 세심한 보살피심 속에 인민군부대들에는 건간장이 정상적으로 공급되게 되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군인들에게 공급할 소금문제를 결정적으로 풀기 위한 사업도 강하게 밀고 나가시었다.

주체86(1997)년 4월말 인민군대에 정제소금공장을 건설할 데 대한 과업을 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다음해 5월 어느날 완공되어 조업하고 있는 정제소금공장을 돌아보기 위하여 현지에 나가시었다.

흰 눈처럼 쏟아져 내리는 소금폭포를 흐뭇하게 바라보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하얀 소금을 집어 드시고 몸소 맛까지 보시며 소금맛이 좋다고, 인민군군인들이 이런 정제소금을 공급받게 되면 대단히 좋아할 것이라고, 이제는 우리 인민군군인들에게 맛있고 질좋은 간장과 소금을 먹이려던 나의 소원이 풀렸다고 말씀하시었다.

어찌 이뿐이랴. 언제인가 어느 한 여성구분대를 찾으시어 여성군인들의 구미에 맞게 음식을 해먹이는가 일일이 알아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한 비행부대에 가시어서는 비행사들이 맛있고 영양가높은 부식물들을 더 많이 먹게 하자면 급식조건을 다양하게 하고 요리가공을 잘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친히 그 방법까지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뜨거운 사랑의 손길은 병사들이 입고 있는 솜동복에도 뜨겁게 어려있다.

주체85(1996)년 2월 27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최전방 351고지에 오르시었을 때였다. 감시소에서 방어전연의 적정을 요해하시고 전투경계근무와 관련한 중요한 가르치심을 주시던 장군님께서는 전투경계근무를 수행하고 있던 두 병사를 몸소 만나주시었다.

감격에 겨워 보고를 올리는 병사들에게 최전연초소를 지켜선 군인들이 수고한다고 하시며 그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신 그분께서는 부드러운 어조로 고향은 어디며 부모는 무슨 일을 하는가, 나이는 몇살인가 등 하나하나 물어보시고 나서 그들이 입고 있는 솜동복을 눈여 겨 살펴보시었다.

병사들이 입고 있는 솜동복자락을 몸소 번갈아 쥐여보시던 장군님께서는 무거운 어조로 『 솜동복이 얇습니다.』라고 하시며 안색을 흐리시었다.

그때 한 병사가 근무를 설 때에는 근무용털외투가 있기 때문에 아무 일 없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여전히 흐리신 안색을 지으시고 아니라고, 솜동복에 솜을 적게 넣었기 때문에 군인들이 추워한다고, 솜동복이 이렇게 얇으니 군인들이 추워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시면서 지금 같아서는 솜동복안에 속옷을 입고 솜동복우에 외투까지 입어야 될 것 같다고 하시면서 못내 걱정하시었다.

순간 병사들은 뜨거운 격정에 휩싸이었다. 어느 누가 자기들이 입고 있는 솜동복의 두터이까지 가늠해보며 추워할세라 이렇듯 세심한 정을 기울인적이 있었던가. 자기들의 생활을 따뜻이 보살펴주는 수많은 지휘관들이 있지만 그 누구도 솜동복의 두터이까지 가늠해보며 그렇듯 깊은 관심을 돌리지 못하였던 것이다.

한동안 병사들의 솜동복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시던 장군님께서는 다시금 허리를 굽히시고 누빈 바늘자리를 어루쓸어보시며 누빈 솜동복은 누빈 자리로 바람이 스며들 것이라고 하시면서 천이 좀더 들더라도 천을 덧씌워 겉을 누비지 않은 솜동복을 만들어 입힐 데 대하여 말씀하시었다.

그분께서는 병사들이 신고 있는 솜신발을 눌러보시고 신발솜도 얇다고 무겁게 뇌이시었다.

이때 동행한 일꾼들은 그분께서 오래도록 강추위속에 계시는 것이 걱정되었다. 그래서 그들이 고지를 내려가셨으면 한다고 아뢰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여전히 흐리신  안색으로 병사들을 바라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 전사들이 추워하는 것을 보니 발이 떨어지지 않소. 내려가고 싶지 않소.』

병사들에게 불어오는 찬바람을 자신의 한 몸으로 다 막아주고 싶으신 듯 그분께서는 병사들을 품에 안으시고 좀처럼 발걸음을 떼지 못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꾼들에게 동무들은 좋은 외투를 입고 있으니까 추운 것을 모르지만 병사들은 그렇지 못하다고 하시면서 군관들을 위하여 병사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병사들을 위하여 군관들이 있다고, 지휘관들은 병사들을 위한 지휘관이 되어야 한다고 간곡히 이르시었다.

이날 현지시찰을 마치시고 돌아오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군대와 경제부문의 책임일꾼들을 부르시어 군인들의 솜동복에 솜을 두툼히 넣어주며 이제부터 군인들에게 바늘구멍으로 바람이 스며들지 못하게 겉을 누비지 않은 솜동복을 공급해 줄 데 대한 조치를 취해주시었다. 그러시고도 추운 때 근무를 서고 있는 병사들이 못내 가슴에 걸리시어 깊은 밤에 집무를 보시다가도 군인들 생각으로 좀처럼 마음을 놓지 못하시었다.

그분의 모습을 뵈오며 한 일꾼이 조용히 다가가 머나먼 현지시찰의 길을 다녀오시고 또 밤도 깊었는데 잠시라도 쉬시었으면 한다고 간절히 말씀 올리었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무거운 안색을 지으신 채 말씀하시었다.

『 이 추운 때 산꼭대기에서 근무를 서고 있는 전사들의 수고를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소. 그들이 추위에 떨고 있지 않는지 모르겠소. 그들에게 미리 지금보다 더 두툼한 솜동복을 해입히지 못한게 가슴에 걸려 내려가지 않소.』

그러시면서 정말 가슴에 걸려, 가슴이 아파서 잠들 것 같지 않다고 거듭 뇌이시었다.

이날 병사들 생각으로 종시 잠시도 쉬지 못하시고 새날을 맞으신 장군님께서는 한 일꾼을 부르시어 군인들에게 빠른 기간내에 겉을 누비지 않은 솜동복을 공급해주어야 한다고 다시금 절절히 강조하시었다.

진정 오늘 우리 병사들이 겨울에도 추운 줄 모르고 입고 있는 겉을 누비지 않은 두툼한 솜동복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렇듯 뜨거운 사랑속에 마련된 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병사들에 대한 사랑은 이에만 그치지 않았다.

주체84(1995)년 2월 어느날 저녁이었다.

이날 감나무중대에 대한 현지시찰을 마치고 돌아오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여느때없이 진중한 표정을 지으시고 아무 말씀도 없이 깊은 생각에 잠겨 계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나직이 말씀하시었다.

『 아무래도 내일 우리 동무들을 중대에 보내어 여성군인들의 생활실태를 구체적으로 알아오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시간이 모자라서 그들의 의견을 다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일꾼들은 머나먼 현지시찰의 길을 다녀오신 이 저녁에도 병사들의 생활문제를 두고 마음 쓰시는 그분을 우러르며 눈시울을 적시었다.

이튿날 감나무중대에 다녀온 한 일꾼을 통하여 여성군인들의 생활실태를 구체적으로 요해하신 장군님께서는 문득 중대군인들이 바닷바람에 얼굴이 텄던데 약크림을 가져다 주지 않았는가고 물으시었다.

그 일꾼이 약크림을 보내지 못했다고 보고 드렸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어제 많은 사람들이 나를 따라 여성해안포병중대에 갔다 왔지만 군인들의 얼굴이 튼데 대하여 가슴 아파하지 않고 있다고 엄하게 지적하시면서 약크림과 고약을 가지고 내일 아침 당장 여성해안포병중대에 내려가라고 이르시었다.

이렇게 되어 그 다음날 아침 한 일꾼이 그분께서 보내시는 사랑의 약크림과 고약을 가지고 감나무중대로 다시 떠나게 되었다. 그 일꾼이 약크림, 고약과 함께 가지고 가는 하나의 봉투안에는 그 사용방법까지 적혀있는 한 장의 종이가 들어있었다.

그날 저녁 일꾼으로부터 약크림과 고약을 전달했다는 보고를 받으신 장군님께서는 일꾼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

『 동무들은 감정이 없는 식물인간들입니다. 여성군인들이 바닷바람에 얼굴이 텄다는 말을 들었으면 응당 고약이나 크림같은 것을 보내줄 생각을 했어야 합니다. 동무들이 나를 따라다니면서 그런 것도 생각 못하는 것을 보면 아직 멀었고 목석인간들입니다.』

그분의 준절한 비판의 말씀은 일꾼들의 가슴을 세차게 울려주었다.

그날의 이 뜻깊은 사연은 우리 군인들의 심장을 뜨겁게 달구어주며 오늘도 사랑의 전설로 끝없이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