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태양 김정일장군」(4) 중에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선군시대 붓대중시사상을 내놓으시고 문필가들, 창작가들이 혁명적군인정신을 높이 발양하여 당의 선군영도를 앞장에서 받들어 나가도록 이끌어주시었다.

혁명은 사상의 힘으로 전진하며 사상의 위력은 붓대에 의하여 담보된다는 것이 경애하는 장군님의 붓대중시사상이다.

항일혁명에 시원을 두고 있는 붓대중시사상은 주체혁명의 년대기들마다에서 우리 군대와 인민이 영웅적 서사시를 창조하게 한 힘있는 무기로 되었다. 강도 일제를 쳐부시고 조국해방을 이룩하며 미제와의 전쟁에서 위대한 승리를 거두고 사회주의를 건설해오는 혁명과 건설의 매 단계마다에서 붓대는 실로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특히 1990년대 중엽 제국주의자들의 군사적 압력과 경제봉쇄책동으로 하여 사회주의건설에서 엄중한 난관이 조성되었을 때 문필가들은 힘있는 정론과 논설, 시와 가사를 창작하여 우리 군대와 인민을 「고난의 행군」, 강행군승리에로 힘있게 불러일으켰다. 이 과정에 붓대의 역할은 비상히 강화되었다.

혁명과 건설에서 붓대의 역할을 중시하시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새 세기 선군정치를 전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서 문필가들이 사상적 기수로서의 자기의 사명과 역할을 다하도록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시었다.

당보와 통신, 방송을 기본으로 하는 출판보도사업을 당사상사업의 주공전선으로 규정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 부문 사업에 선차적인 관심을 돌리시었다.

주체90(2001)년 7월 1일 당보의 책임일꾼을 만나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노동신문」에 낸 어느 한 사설이 잘된데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혁명에서 언론이 중요하다고, 그래서 나는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사, 조선중앙방송위원회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리고 있다고 말씀하시었다.

순간 일꾼의 뇌리에는 이해 2월 17일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2월 17일은 장군님의 탄생일을 맞은 다음날로서 온 나라 인민들이 즐거운 명절분위기로 한껏 흥성이고 있던 때였다.

자신의 탄생일은 물론 이날마저도 쉬지 않으시고 당보의 책임일꾼과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을 부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보도기관 일꾼들이 우리 당정책의 정당성과 생활력에 대한 선전을 더 잘할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고 나서 『나는 언제나 <노동신문>을 중시합니다. 당보의 사설은 매우 큰 영향력을 가집니다.』라고 말씀하시었다.

그러시면서 이번 2월 16일부 당보에 사설 「일심단결의 위력으로 백승을 떨치자」가 실렸는데 당의 의도에 맞게 잘 썼다고 높이 치하해주시었다.

해마다 2월 16일부 당보를 특별히 만들지 않도록 늘 엄하게 지적하시는 그분의 한없는 겸허성을 고려하여 이 날 사설만을, 그것도 당과 군대와 인민의 일심단결과 그 위력에 대한 내용을 담은 글만을 준비하여 2월 16일부 신문 1면에 내보내었다.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그 뜻깊은 자리에서 2월 16일부 당보에 실린 사설에 대하여 분에 넘치는 평가의 말씀을 해주시는 것이었다.

일꾼이 그때 있었던 일을 되새겨보고 있는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자신께서는 지금도 당의 기초를 쌓던 시기에 당보에서 사설혁명을 하던 때를 잊지 않고 있다고, 그때 당보에 혁명의 북소리를 높이 울릴데 대한 사설을 비롯하여 무게있는 사논설들을 많이 냈다고, 사설혁명때처럼 계속 일을 잘하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시었다.

그분께서 말씀하신 당의 기초를 쌓던 시기는 1970년대를 말한다. 이 시기 경애하는 장군님의 직접적인 지도와 세심한 가르치심에 의하여 당사상사업과 출판보도사업은 새로운 전성기에 들어섰다. 장군님께서는 당보에서 먼저 사설혁명의 봉화를 지펴 올리신데 이어 그것이 모든 출판보도분야에 파급되도록 하시었다. 그리하여 신문혁명, 보도혁명, 방송혁명, 출판혁명의 불길이 세차게 타번지게 되었으며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는 역사적 진군속에서 출판보도물은 주체형의 출판보도물로서의 면모를 더욱 뚜렷이 갖추게 되었다.

1970년대의 사설혁명의 봉화를 지펴올렸던 그 전통을 이어 새 세기 당보의 사설에서부터 출판보도혁명의 불길을 일으킬 것을 바라시는 그분의 숭고한 뜻이 어린 말씀이었다.

그로부터 얼마후인 7월 16일에도 장군님께서는 1970년대에 사설혁명을 비롯한 출판보도부문전반에서 일대 혁신이 일어나게 한 훌륭한 전통을 잘 살려 나가야 한다고 하시면서 구체적인 방도까지 세심히 가르쳐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선군혁명영도의 그 바쁘신 속에서도 출판보도부문의 기자, 언론인들이 당의 의도에 맞게 집필활동을 잘해 나가도록 각별히 마음을 쓰시었다.

역사적인 러시아방문을 마치시고 귀국하신지 며칠밖에 안되는 8월 23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당보의 한 기자를 만나주시었다.

그로 말하면 지난 시기에 정론 「심장에 불을 달라 혁명군가여!」를 써서 군대와 인민을 강성대국건설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킨 필자였다.

장군님께서는 그에게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가고 다정히 물으시었다.

그는 「나는 세계와 말하고 있다」라는 제목으로 정론을 쓰고 있다고 말씀올렸다.

그의 대답을 들으시고 잠시 생각에 잠기시었던 장군님께서는 그런 글을 쓰는데 대하여서는 반대이라고, 제목만 보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세계에 대고 말하는 것보다 생사운명을 함께 해 나가는 훌륭한 우리 인민에 대하여 말해야 한다고, 선군혁명의 기치를 들고 나가는 우리 조국의 현실에 대하여 써야 한다고 말씀하시었다. 그러시면서 정세가 아무리 변하여도 우리는 언제나 혁명적 본성을 잊지 않고 오직 한길을 가야 한다, 정론 「심장에 불을 달라 혁명군가여!」식으로 살며 투쟁해 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 말씀은 글 한건을 써도 주체를 세우고 선군시대의 우리 조국과 우리 인민들의 투쟁을 반영한 더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을 깨우쳐주시는 것으로서 당보의 모든 기자, 편집원들이 지침으로 삼아야 할 고귀한  가르치심이었다.

뿐만아니었다.

언제인가 당보의 한 책임일꾼을 만나주신 장군님께서는 당보의 전통을 변함없이 고수하고 계승하기 위한 사업을 단단히 틀어쥐고 나가야 한다고, 노동신문사 일꾼들과 기자, 편집원들이 빈틈없이 일하도록 교양을 잘하여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었고 또 언제인가는 혁명의 수뇌부와 당보의 기자, 편집원들은 신념과 의리로 맺어진 동지적 관계에 있다고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었다.

이렇듯 경애하는 장군님의 세심한 지도와 보살피심이 있어 당보에서는 정치사상적 수준에서 그 어느 신문도 따를수 없는 무게있고 힘있는 글들이 지면을 가득 채울 수 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새 세기 혁명적 진군을 다그쳐 나가고 있는 시대적 환경에 맞게 통신부문에서 보도와 정세장악을 잘할데 대하여서와 방송의 내용과 형식, 편집을 철두철미 당의 사상과 의도대로 해 나가도록 하는 문제에 대하여 세심히 지도해주시었다.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출판보도혁명의 불길을 더 높이 지펴올리실 구상을 안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새 세기 첫해에 조선기자동맹대회를 소집하도록 하시었다.

그리하여 주체90(2001)년 11월 19일 평양에서는 조선기자동맹 제8차대회가 성대히 개막되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대회참가자들에게 역사적인 서한 『기자, 언론인들은 우리의 사상, 우리의 제도, 우리의 위업을 견결히 옹호고수하는 사상적 기수이다』를 보내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서한에서 우리 당의 붓대중시사상을 천명하시고 새 세기 출판보도사업에서 새로운 전환을 가져오기 위한 전투적 과업들을 밝혀주시었으며 기자, 언론인들은 사회주의사상진지를 철옹성같이 다지는 사상적 기수가 되고 전당, 전군, 전민을 사회주의강성대국건설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는 나팔수,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책동과 반동적 사상공세를 짓부시기 위한 선전을 진공적으로 벌여 나가는 견결한 투사가 되어야 한다는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대회에 보내주신 서한은 선군시대 출판보도혁명의 강령적 지침이며 불멸의 전투적 기치로 되었다. 이를 계기로 기자, 언론인들은 시대와 역사앞에 지닌 사명과 임무를 깊이 자각하고 서한에서 제시된 과업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에 힘차게 떨쳐 나섰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숭고한 뜻과 그분의 세심한 영도에 의하여 새 세기 첫해에만 하여도 출판보도부문에서는 커다란 전환이 일어났다.

「노동신문」에서는 사설집중공세를 벌여 무게있고 힘있는 수많은 사설들과 400여건의 위대성기사들이 나왔으며 통신, 방송부문에서는 당과 수령의 위대성선전을 기본으로 틀어쥐고 편집사업을 짜고들었다. 그리하여 중앙통신사에서는 1만 1,000여건, TV방송에서는 2,000여건, 소리방송에서는 3,760여건이나 되는 위대성기사들이 나와 선군혁명총진군길을 다그치고 있는 군대와 인민을 힘있게 고무하였다.

시대정신이 나래치게 하는데서 혁명적 문학예술이 차지하는 역할을 깊이 헤아리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문학예술부문 사업에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었다.

주체90(2001)년 6월 12일이었다. 이날 전선부대들에 대한 순회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어느 한 군인가족예술소조공연을 다시금 보아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꾼들에게 예술작품에는 그것을 쓴 사람들의 사상정신상태가 그대로 반영되어있다, 혁명적인 작가만이 혁명적인 작품을 써낼 수 있다고 하시면서 사회의 일부 작가들이 아직 인민군대작가들처럼 사상정신적으로 준비되지 못한데 대하여 말씀하시었다.

사실 이 시기까지만 하여도 사회의 일부 작가들은 인민군대작가들이 지닌 숭고한 사상정신적 풍모에 자신들을 따라세우지 못하고 있었다. 어버이수령님서거이후 서사시를 훌륭히 창작완성한 인민군대의 한 시인의 경우에 비겨보아도 그렇다. 그로 말하면 병사출신의 시인으로서 선군시대의 백두산시인이 될 결심을 품고 3년 가까이 백두산에 가서 진지한 현실체험을 하였다. 그 과정에 그는 혁명의 성산 백두산과 영원히 뗄수 없는 인연을 맺으신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위인적 풍모를 더더욱 절감하였으며 억제할 수 없는 흥분을 격정의 시운으로 터쳐 수령님서거 3년상에 드리는 서사시 「수령님은 영원히 백두산에 서계신다」를 세상에 내놓은데 이어서 수령님서거 5돌이 되는 해에는 또다시 「영원하라 동지애의 역사여」를 창작완성하여 세상에 내놓았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가 창작한 서사시 「영원하라 동지애의 역사여」를 녹음으로 들으시고는 수령님과 우리 당의 역사를 철학적으로 깊이있게 형상한 훌륭한 작품이라고 높이 평가해주시었다.

이 시인만이 아니였다. 인민군대에서는 1990년대 후반기에만 하여도 민족최대의 명절인 태양절과 2월 16일, 뜻깊은 12월 24일과 건군절 등 시대적으로 의의가 있는 계기마다 「영원하라 태양절이어」, 「영원히 최고사령부를 우러러」, 「백두의 총대 영원불멸하리」, 「어머님의 그 위업 영원하리」를 비롯한 서사시들을 창작하여 「고난의 행군」, 강행군과 강성대국을 건설하는 투쟁에로 군대와 인민을 힘있게 불러일으켰다.

일꾼들이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장군님께서는 모든 작가들이 당적, 계급적 입장에 튼튼히 서서 현실을 뜨겁게 대하며 군인들과 인민들을 혁명적으로 교양하는데 참답게 이바지할 수 있는 현실주제의 문학예술작품들을 더 많이 창작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작가들의 글쓰는 자세와 입장을 시대정신에 따라세우시기 위하여 이해 7월 16일 조선인민군지휘성원들을 만나신 자리에서 인민군대와 사회의 이름있는 창작가, 기자, 편집원들이 전연부대를 비롯한 인민군부대들에 나가보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들이 인민군부대들에 나가보아야 선군시대를 빛내이는 데 이바지할 수 있는 좋은 글을 많이 써낼 수 있다고 말씀하시었다. 그러시면서 창작가, 기자, 편집원들에게 오성산을 꼭 보여주도록 하여야 한다고, 오성산은 해발고가 높고 생활조건이 매우 불리하므로 그들이 거기에 가서 군인들이 전투근무를 수행하는 것을 보면 많은 것을 느끼게 될것이며 자신을 혁명화하는데도 좋을 것이라고 강조하시었다.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들고 창작가, 기자, 편집원들은 오성산으로 향하였다.

높이가 해발 1,000여m나 되는 오성산은 고지정점까지 오르자면 무려 백쉰여개의 아슬아슬한 굽이를 돌아야 하는데 한번 잘못 디디면 깊고깊은 골짜기로 떨어질 수 있는 절벽위에 길이 나있었다. 마치도 성벽에 층층이 길이 나있는 것과 같았다.

바로 이러한 험산준령, 위험한 영에 장군님께서 여러차례나 오르시었던 것이다.

문필가들은 장군님께서 굽이굽이 에돌아 고지정점에 오르시었던 선군장정의 위대한 자국을 직접 체험하면서 전선기행작품들을 원고지에 올렸다.

그렇게 되어 태어난것이 「오성산은 번개친다」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90(2001)년 9월 6일 오성산에 갔다온 작가들이 쓴 작품들인 장시 「오성산은 번개친다」와 시 「먼 훗날의 역사가들에게」, 「전선고지에 별무리 흐른다」, 「오성산병사의 이야기」를 친히 보아주시고 높이 평가해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91(2002)년 2월 12일에도 몸소 시인들을 만나주시고 당의 선군영도의 열렬한 옹호자, 철저한 대변자로서 자신과 가까워 지고 정도 깊어졌다고, 자신께서는 명작으로 선군정치를 받드는 당에 끝없이 충실한 작가들을 믿는다고 하시었으며 5월 10일 한 시인을 만나주시었을 때에는 동무들이 쓴 가사와 시는 선군정치를 하는데 큰 힘이 되고 있다고 크나큰 고무의 말씀을 해주시었다.

선군시대에 붓대가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을 깊이 헤아리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94(2005)년 2월 23일, 4월 14일 작가, 기자들을 몸소 만나주시고 「작가, 기자들은 주체의 필봉, 선군의 붓대를 높이 들고 나가야 한다」라는 역사적인 담화를 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담화에서 자신께서는 언제나 문필가들을 중시한다고, 문필가들은 대중을 계몽시키고 각성시키는 시대의 선각자들이며 대중속에 혁명의 불을 지펴주어 그들을 영웅적 투쟁과 위훈에로 불러일으키는 사상전선의 전초병들이라고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었다. 그러시면서 혁명과 건설에서 노동자와 농민을 상징하는 마치와 낫을 치차라고 한다면 지식인들, 문필가들을 상징하는 붓대는 윤활유라고 할 수 있다, 윤활유가 없으면 치차가 원활하게 돌아가지 못하고 인차 마모되는 것처럼 문필가들이 없으면 혁명과 건설이 생기와 활력을 잃게 된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붓대가 있어야 혁명이 언제나 생기와 활력에 넘쳐 힘차게 전진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당의 선군정치도 붓대가 있기 때문에 인민대중의 심장을 울리며 더욱 강한 생활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문필가들에 의하여 혁명이 생기와 활력과 낭만에 넘쳐 힘차게 전진한다는 것이 우리 당의 붓대철학입니다.』

붓대철학, 자자구구에 심원한  진리가 담겨진 말씀이었다.

돌이켜보면 고대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의회정치를 주장하며 군주제의 부당성을 고발하였고 중세기 인문주의자들은 문예부흥의 등불로 종교적 암흑을 불살랐다. 진보적 문필가들은 언제나 피나는 저술활동으로 사회발전을 추동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인류역사는 붓대에 의한 문명창조의 역사이기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누구도 혁명과 건설에서 붓대가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에 대한 과학적 분석에 기초하여 문필가들을 시대의 선각자, 사상전선의 전초병으로 내세우지 못하였다. 오늘 세계에는 전 33권에 3만 4천페지에 달하는 굴지의 어학사전도 있고 1억 500만개의 단어가 수록되어있다고 하는 최초의 대백과사전도 있지만 붓대철학이라는 명제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장군님의 붓대철학, 여기에는 일찍이 조선노동당마크에 붓대를 새겨넣으신 어버이수령님의 주체적인 붓대관, 숭고한 지식인사랑이 깃들어있다. 인간의 머릿속에 있는 지식보다 지식을 가진 인간을 더 중시하시고 그들을 당의 영원한 동행자로 내세워주신 어버이수령님의 숭고한 믿음과 사랑이 바로 장군님의 붓대철학에 어려있는 것이다.

주체92(2003)년 2월 3일에도 기자, 작가들을 만나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동무들은 명작으로 당의 선군정치를 받들고 있다고, 당은 좋은 글을 써내고 있는 동무들을 굳게 믿고 있으며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동무들이 써낸 글들은 제국주의자들의 악랄한 반공화국고립압살책동과 봉쇄속에서도 굴함없이 사회주의기치를 높이 들고 나가는 우리 인민들에게 큰 힘과 고무를 주었다고 하시면서 자신께서도 힘겨울 때가 많았지만 그때마다 동무들과 같은 선군혁명동지들과 인민들의 지지와 신뢰에서 힘을 얻었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작가, 기자들이 이 가르치심을 되새기는데 장군님께서는 이날 또다시 문필가들이 시대앞에 지닌 사명과 임무를 밝혀주시고 그것을 붓대철학으로 정의해주시는 것이 아닌가.

장군님께서는 우리가 적들과의 치열한 정치사상적 대결전을 벌리면서 사회주의강성대국을 건설하고 있는 조건에서 우리의 정치사상진지를 더욱 강화하며 사회주의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선군혁명총진군을 다그쳐 나가자면 인민들의 마음을 틀어 잡고 그들을 투쟁과 위훈에로 고무추동하는 좋은 글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동무들이 쓴 글들과 시들은 제국주의자들의 악랄한 반공화국고립압살책동속에서도 선군의 기치를 높이 들고 나아가는 우리 군대와 인민들을 힘있게 고무하고 있다고 말씀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여 지금 우리의 문필가들이 시대와 혁명앞에 지닌 사명과 임무를 가슴깊이 자각하고 당의 선군사상, 선군정치를 격조높이 노래하며 선군혁명영도를 충성으로 받들어 나가고 있는데 대하여 만족하게 생각한다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

『작가, 기자들은 앞으로도 혁명의 필봉을 높이 들고 좋은 글을 더 많이 써서 군인들과 인민들을 선군혁명총진군에로 힘있게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여 인민들에게 사상정신적 양식을 주고 그들의 투쟁을 고무하는 명작을 많이 창작하여야 한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문필가들은 당과 수령을 진심으로 받들고 따르며 당과 운명을 끝까지 함께 하는 우리 당의 영원한 동행자, 충실한 방조자, 훌륭한 조언자가 되고 참다운 선군혁명동지가 되어야 합니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작가, 기자들이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혁명적인 창작활동을 벌여 나가는데서 나서는 방도적인 문제들에 대하여서도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역사적인 담화를 끝마치시면서 선군혁명의 길은 결코 순탄한 길이 아니며 한걸음한걸음 사선을 헤쳐 나가야 하는 간고하고도 어려운 길이다, 선군은 우리의 생명이고 자주이며 존엄이다, 그런것만큼 선군을 하여야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아 나갈 수 있다, 우리모두가 사생결단의 각오를 가지고 선군혁명의 길을 변함없이 걸어 나가야 수령님의 염원대로 인민들을 잘살게 할 수 있고 강성대국건설도 앞당겨 나갈수 있다, 비록 오늘은 시련을 겪고 있지만 선군의 기치를 높이 들고 역사의 온갖 도전을 맞받아 나가면 반드시 승리의 날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라는 신념의 가르치심을 주시었다.

이렇듯 문필가들을 주체의 필봉으로 당을 받드는 사상적 기수, 선군혁명투사들로 키우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세심한 보살피심과 현명한 영도는 그 시작과 끝, 폭과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무한대한 것이었다.

당사상전선의 전초병으로서의 사명과 임무를 다하도록 내세워주시며 끝없는 믿음과 사랑을 안겨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명한 영도에 의하여 문필가들은 당의 위대한 선군정치실현에 이바지하는 훌륭한 글들을 더 많이 써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