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태양 김정일장군」(4) 중에서 


 





   인연이란 흔히 그 어떤  사연으로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를 이르는 말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인민군군인들과 각별한 인연을 맺고 계신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군인들을 찾아가시는 끊임없는 현지시찰 길은 그대로 군인들 속에 믿음과 사랑에 젖은 인연을 맺으시는 길이며 인민군대를 혼연일체의 대오로 다지는 길이었다.

장군님께서 언제나 못 잊어하시는 군인들 속에는 인적드문 외진 산중초소에서 어버이수령님 서거 이후 10년세월 변함없이 꽃다발을 엮어 길손들을 통하여 수도 평양의 만수대언덕에 높이 모신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에 보내오는 어느 한 중대의 여병사들도 있다.

주체93(2004)년 4월초 어느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곳 중대의 여병사들을 찾아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뜻깊은 4월에 들어서면서 어버이수령님을 더더욱 그리워할 여병사들의 심정을 헤아리시어 태양절을 앞두고 그곳을 찾으시었던 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집을 멀리 떠난 딸자식들을 오래간만에 만난 친부모의 심정으로 그들의 건강상태부터 먼저 헤아려주시고 여성군인들 자체의 힘으로 병실을 일떠세운 이야기도 다정히 들어주시며 장시간 중대군인들과 함께 계시면서 생활의 구석구석까지 일일이 보살펴주시었다.

이윽하여 장군님께서는 행복에 겨워 어쩔줄 몰라하는 여병사들을 대견한 시선으로 바라보시며 『…중대는 이미부터 나와 인연이 있는 중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시었다.

순간 중대군인들은 쿵 하고 흉벽을 치는 세찬 충격과 함께 한편으로 혹시 잘못 듣지나 않았는가 하여 어리둥절해하였다. 한것은 그분께서 자기들의 중대를 찾아주신것은 이번이 처음이기때문이었다.

하다면 장군님께서 언제 한번 만나 이야기를 나누신 적도 없는 이곳 중대를 가리켜 이미부터 인연이 있는 중대라고 하신 말씀속에는 어떤 사연이 깃들어있는 것인가.

감동깊은 사연을 떠올리시며 장군님께서는 추억깊은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몇년전에 내가 최전연에 나갔다가 평양으로 들어가는데 이 영길위에서 들꽃묶음을 든 여성군인들이 깍듯이 경례를 하였습니다. 그들을 지나치면서 나는 심심산골 영길에 웬 여성군인들이 꽃다발을 들고 서있을가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알고 보니 그들은 …중대의 군인들이었는데 만수대언덕에 모셔진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에 꽃다발을 보내려고 평양으로 가는 차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중대군인들은 수령님께서 서거하신 때로부터 지금까지 10년세월 심산속에 피어나는 들꽃들과 자기들이 정성다해 가꾼 꽃으로 다발을 만들어 평양에 올려 보냈다고 합니다.』

전선시찰의 길에서 잠깐 띄어보신 평범한 여병사들의 아름다운 소행을 잊지 않으시고 다시금 되새기시는 그분의 말씀에 그들은 솟구치는 격정을 금할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산천초목도 비애에 몸부림치던 7월의 그날, 중대군인들은 어버이수령님께서 뜻밖에 서거하시었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에 접하자 수령님을 목메어 부르며 몸부림쳤다.

그때로부터 그들은 어버이수령님을 여읜 비애의 아픔을 안고 꽃다발을 엮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조국의 산중초소를 지켜선 군인들이어서 초소를 비울 수가 없었다.

중대군인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모대기다가 영길에 지나다니는 자동차들을 통하여 피눈물을 흘리며 엮은 꽃다발을 만수대언덕에 높이 모신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에 보내기로 하였다.

이 일은 날과 달이 가고 해가 바뀌어도 계속되었다.

여병사들은 산속에 피어나는 꽃만으로는 성차지 않아 참나리꽃을 비롯한 갖가지 꽃들을 중대마당가에 떠 옮겨오고 꽃씨도 얻어다 정성껏 심고 가꾸었다. 그것으로 자기들의 뜨거운 마음이 담긴 꽃다발을 정히 엮어 평양으로 올라가는 차들에 보내며 여성군인들은 목메어 부탁하였다.

『이 꽃을 만수대언덕에 모셔진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에 진정해주십시오. 우리 초소 군인들의 뜨거운 부탁입니다.』

이렇듯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다함없는 그리움을 안고 송이송이 엮은 꽃다발을 손에 들고 영길위에 서있던 여병사들을 전선길에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띄어보신 것이었다.

주체86(1997)년 8월 2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들의 소행을 요해하시고 중대에 친히 감사를 보내주시었으며 중대군인들 모두가 평양에 올라와 금수산기념궁전에 영생의 모습으로 계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뵈옵도록 하는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었다.

그뿐이 아니라 중대여성군인들의 아름다운 소행을 내용으로 한 예술영화도 만들도록 하시었다.

민족대국상의 그날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10년세월 중대군인들이 해마다 많은 꽃다발들을 엮어 만수대언덕에 모셔진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에 보낸 것은 수령님의 전사, 제자들의 응당한 도리이고 본분이었다.

그런데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중대군인들의 충정의 모습에서 그토록 큰 감동을 받으시고 그들을 내세워 주시었을 뿐 아니라 오늘은 또 중대에까지 찾아오시어 그때의 일을 감회깊이 회고하시며 인연깊은 중대라고 하시니 여병사들은 감격이 커서 뜨거운 눈물을 걷잡지 못하였다.

장군님께서는 중대군인들을 미덥게 둘러보시며 외진 산중초소에서 자나깨나 위대한 수령님을 그리며 꽃다발을 엮어온 중대군인들의 소행이 너무도 기특하여 그들을 꼭 만나보려고 하였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이날 귀중한 시간을 내시어 중대의 여러곳을 다 돌아보신 장군님께서는 이 중대는 군인들의 사상정신상태도 좋고 전투훈련도 잘하며 물질문화생활수준도 높은 중대라고 과분한 평가도 주시고 중대를 떠나실 때에는 중대이름을 머릿속에 기억하고 가겠다고, 이 중대는 이름자체가 인상적이어서 외우기도 좋다고 하시며 『감나무중대』와 함께 유명한 중대가 또 하나 생겨났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장군님께서 인연이 있는 중대라고 뜻깊게 불러주신 그 영광속에는 중대군인들이 꽃다발과 더불어 빛나는 어젯날처럼 오늘도 내일도 변함없이 정성다해 꽃을 피워가는 여성혁명가들로 자라나기를 바라시는 그분의 간곡한 당부가 담겨져 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과 인연을 맺고 사는 병사들속에는 어젯날의 『들꽃소녀』 김명희도 있다.

그는 애어린 소녀시절 어버이수령님의 현지지도표식비앞에 들꽃묶음을 드려 장군님과 인연이 맺어진 여병사이다. 어젯날의 그 『들꽃소녀』가 오늘은 총대로 경애하는 장군님을 결사옹위하는 여병사로 어엿하게 자란 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현지시찰의 바쁘신 길에서도 그를 만나주시었다.

그날은 주체92(2003)년 1월 17일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자기를 만나주신다는 뜻밖의 소식에 접한 여병사의 가슴은 한없이 울렁이었다. 얼마나 뵙고 싶던 장군님이시었던가.

변변히 인사도 올리지 못하고 서있는 그를 보시며 장군님께서는 만면에 환한 미소를 담으시고 오늘 김명희동무를 만나니 반갑다고 하시며 일꾼들에게 친히 그를 소개하시었다.

『이 동무가 바로 몇해전 …비행장에 있는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지도 표식비에 들꽃묶음을 드렸던 동무입니다.』

잊지 못할 7년전 들꽃으로 인연이 맺어진 애어린 소녀를 잊지 않고 찾아주시어 오늘은 동무라 불러주시며 내세워주시는 그 사랑, 그 믿음에 감격의 눈물을 짓는 병사를 정깊은 눈길로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일꾼들에게 추억깊은 이야기를 들려주시었다.

『나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비행장을 현지지도하신지 44돌이 되는 날에 …비행장을 현지시찰하면서 수령님의 현지지도표식비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발길이 잘 미치지 않는 외진 곳에 세워놓은 현지지도표식비앞에 희한한 꽃다발이 아니라 들판에 흔히 있는 꽃을 가지고 만든 들꽃묶음이 놓여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나는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그리움이 더해져 눈물이 나오는 것을 어쩔수 없었습니다. 들꽃묶음을 놓은 것을 보니 어른이 아니라 어린이들의 소행같았습니다. 그래서 더 눈물이 났습니다. 그때 김명희동무와 어린이들은 현지지도표식비앞에 들꽃묶음을 놓고 인사를 한 다음 거기에서 놀다가 승용차들을 타고온 간부들이 표식비앞에 서있는 광경을 나무뒤에 숨어서 다 보았다고 합니다. 나는 며칠후에야 그 소행의 주인공이 바로 당시 11살밖에 안되던 김명희동무와 그의 동생 그리고 한마을에서 사는 어린 처녀애라는 보고를 받고 철부지인 그들이 너무도 대견하여 모두에게 천연색텔레비젼수상기와 손풍금, 녹음기를 선물로 보내주도록 하였으며 그 소행을 널리 소개선전하도록 하였습니다.』

한다발의 들꽃묶음에서 애어린 소녀들의 소박하고 순결한 그 마음을 헤아려보시고 그리도 값높이 내세워주신 전설같은 이야기를 받아 안는 일꾼들의 눈가에도 깊은 감동의 빛이 어리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병사가 된 어젯날의 『들꽃소녀』를 만나신 것이 못내 기쁘신 듯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었다.

『그런 김명희동무가 이제는 인민군대에 입대하여 … 복무한다니 정말 기쁩니다.』

그러시면서 자신께서는 동무가 앞으로 군사복무를 잘하여 훌륭한 병사가 되기를 바란다고 하시며 그의 앞날을 축복해주시었다.

뜨거운 눈길로 그분을 우러르는 그의 가슴속에서는 장군님의 병사로 언제나 『들꽃』을 아름답게 피워갈 심장의 맹세가 불타 오르고 있었다.

어찌 그만이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어느 한 부대의 여성중대를 찾으시었던 주체92(2003)년 6월 18일이었다.

눈부신 아침햇살속에 중대마당에 들어서신 장군님께서는 중대지휘관의 인사를 받으시고 중대정치지도원에게 다가서시다가 그를 알아보시고 못내 반가워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군인가정의 본보기로 높이 내세워주신 엄복순의 둘째딸 손경순이었던 것이다.

장군님께서는 몹시 반가워 하시며 엄복순동무의 둘째딸이 어떻게 여기에 왔는 가고 하시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시었다.

한 일꾼이 그가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전연초소에 서겠다고 하여 여기에 왔다고 말씀드렸다.

장군님께서는 환하게 웃으시며 온 나라가 다 아는 군인가정의 딸이 확실히 다르다고, 어젯날의 감나무중대 병사가 전연초소의 어엿한 중대정치지도원으로 자라난 것을 보니 감개무량하다고, 감나무중대에 있을 때보다 얼마나 숙성하였는지 이제는 잘 몰라보겠다고 저으기 뜨거운 감회를 터치시었다.

사실 장군님께서는 엄복순군인가정과 더불어 그 집안의 막내딸인 손경순이와도 인연이 깊으시었다.     

몇해전 장군님께서는 엄복순군인가정모두를 만나주시고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시다가 감나무중대에서 복무하던 언니인 손경실이가 군관학교에 가게 되고 동생 손경순이가 그자리에 몹시 서고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시었다. 그때 손경순은 갓 입대하여 다른 구분대에서 복무하고 있었다.

그분께서는 어머니와 언니의 뒤를 이어 영광의 감나무초소에서 총대계주봉을 굳건히 지켜가려는 그의 마음이 더없이 기특하시어 한동안 사랑스러운 시선을 그에게 주시다가 좌중을 둘러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경실이가 올해 김일성정치대학에 가면 동생인 경순이가 감나무중대에 가서 군사복무를 하여야 하겠습니다.』

순간 그는 자기가 막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다녀가신 영광의 초소, 처녀시절 어머니의 복무의 자욱이 찍히고 오늘은 언니가 대를 이어 지키는 초소 그리고 장군님께서 온 나라에 높이 내세워주시는 초소에 서기를 얼마나 절절이 염원하였던가. 이렇게 되어 그는 감나무초소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듯 다심한 사랑과 힘을 주어 감나무중대에 보냈던 그 병사가 어느새 세월이 흘러 이제는 전연초소의 중대정치지도원으로 몰라보게 어엿이 자랐으니 그분의 감회가 어찌 크지 않을 수 있었으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부모들의 안부도 알아보시고 그의 희망도 친근하게 물으시며 중대의 맏누이 구실을 잘해 나가도록 또다시 힘을 주시었다.

장군님을 우러러 그는 심장의 맹세를 삼가 다지었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온 나라에 내세워주신 감나무중대의 병사답게 한생을 수령결사옹위의 총대로 빛내어 가겠습니다.』

이는 그 하나만의 결의가  아니었다. 평범한 병사들을 친자식처럼 따뜻이 품에 안아 총대의 대들보들로 억세게 키워가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  드리는 이 나라 천만장병들의 심장의 맹세였다.

남다른 믿음과 사랑을 받는 군인들 속에는 그분께서 우연한 기회에 아시고 각별한 인연을 맺어주신 군인들도 있다. 그들가운데는 중대를 모든 면에서 본보기가 되게 만든 한 중대정치지도원도 있다.

주체90(2001)년 5월 어느날 아침,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현지시찰의 바쁘신 길을 가시다가 한 중대병실을 띄어보시고 계획에 없는 중대시찰을 하시었다.

중대병실마당에 들어서신 장군님께서는 병실과 그 주변을 살펴보시었다. 얼마나 알뜰히 잘 꾸렸는지 마치나 휴양소에 온것만 같으시었다. 병실앞에는 추리, 살구나무가 자라고 뒷산에 심은 아카시아나무에 흰꽃이 활짝 피여 꿀향기를 진하게 풍기고 있었다. 포도덩굴을 지붕처럼 한 중대휴식장, 마당 한옆의 속보판, 주변산 나무들에 달려있는 새둥지, 창문에 친 곤충막이덧문, 정말 보는 것 마다가 새롭고 정성과 지성이 깃들어있었다. 자기 집이면 이처럼 알뜰하게 꾸리랴 하는 생각이 절로 났다.

장군님께서는 경치가 정말 좋다고, 병사들이 재간둥이들이라고 치하하시며 만족을 표시하시었다. 그때 부대일꾼이 그분께 이 중대가 이렇게 잘 꾸려지게 된데는 지금 다른 단위로 소환되어간 전 중대정치지도원의 노력이 많이 깃들어있다고 말씀드리었다.

장군님께서는 그 정치지도원의 이름이 어디서 듣던 이름같아 거듭 외워보시었다. 부대일꾼이 그는 여기서 하전사생활을 하였는데 과오를 범하고 제대되었다가 복대한 군인이라고 하면서 그에 대해 말씀드렸다.

과오를 범하고 제대되어 고향에 간 그를 부모들이 달가워 하지 않았고 모교의 스승들, 마을사람들도 반겨주지 않았다. 그는 몹시 상심했다. 혼자서 묵묵히 일만 했다. 그런 때 평양-개성사이 고속도로공사가 시작되었다. 그는 이 공사에 피땀을 바치는 것으로 과오를 씻을 결심을 하고 자진하여 공사장에 달려나갔다. 그는 1년동안이나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을 도맡아 해제꼈다. 그의 이 성실성에 감동된 그 부대지휘관들이 당시 인민무력부장에게 그에 대하여 상세히 보고했다. 인민무력부장 역시 그 사연을 경애하는 장군님께 보고 드리었고 그분께서 그를 복대시키도록 은정깊은 조치를 취해주시어 중대 정치지도원으로까지 키워주시었다.

부대일꾼의 이야기를 다 듣고나신 장군님께서는 글쎄 그 이름이 귀에 설지 않다 했다고, 그 동무가 여기 중대정치지도원으로 배치되어 와서 일을 제꼈구만라고 하시며 기뻐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병실, 교양실을 돌아보시며 군인들의 군사규율교양, 정치사상교양에 바친 그의 노력을 깊이 헤아려주시었으며 중대의 집짐승우리, 취사장, 식료품을 저장한 지하창고도 돌아보시면서 전사들을 위해 그가 헌신한 이야기까지 다 들어주시었다.

그분께서는 보시는 것마다 들으시는 이야기마다에서 정치지도원의 성실한 복무에 대해 감탄하시면서 그를 내세워주어야 한다고, 단단히 표창해주어야 한다고, 무슨 표창을 주었으면 좋겠는 가고 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중대를 다 돌아보시고 감동에 젖은 음성으로 말씀하시었다.

『어쨌든 그 정치지도원이 기특해… 그 동무는 군인생활을 위해 아글타글 노력하다가 다른데로 소환되었습니다. 여운을 남기고 갔단 말입니다.

그게 진짜 일꾼입니다. 사람들의 추억에 남는 그런 일꾼이 좋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중대정치지도원은 한번도 장군님을 뵈온 일이 없지만 그분께서 잘 아시는 진짜 일꾼, 사람들의 추억에 남는 일꾼이 되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에게 노력영웅칭호를 주도록 하시고 그를 원형으로 하는 예술영화를 만들게 하시어 전군과 온 나라가 다 알게 하시었다.

그후 언제인가 중대정치지도원은 영웅메달을 가슴에 달고 TV무대에 출연하여 경애하는 장군님의 크나큰 믿음과 사랑에 대하여 눈물을 머금고 이야기하면서 위대한 선군영장의 손길이 있어 인민군대가 총폭탄, 수령결사옹위의 일당백 백두산강군으로 튼튼히 다져졌다고 토로하였다.

선군영장의 품속에서 각별한 인연을 맺고 군사복무를 하는 인민군군인들은 그분의 사상과 신념, 담력과 배짱, 슬기를 가진 펄펄 나는 싸움꾼으로 자라났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진정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과 각별한 인연을 맺고 그분의 축복속에서 군사복무의 길을 걷는 바로 여기에 우리 군인들이 누리는 크나큰 행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