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태양 김정일장군」(4) 중에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병사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지니시고 그들의 운명과 미래도 다 맡아 안아 보살펴주고 계신다. 병사들의 행복한 모습에서 자신의 기쁨을 찾으시며 그들의 사소한 마음속 그늘마저 다 가셔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뜨거운 사랑과 은정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주체90(2001)년 6월 25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어느 한 구분대를 찾으시었을 때의 일이다.

이 날 기술강실에 들리시어 여병사들의 훈련모습을 보아주신 장군님께서는 사랑하는 딸자식들을 만나신 듯 정겨운 시선으로 그들을 보시며 뜻깊은 담화를 하시었다.

친어버이심정으로 이름은 무엇인가, 고향은 어디인가 하나하나 물으신 장군님께서는 갑자기 안색을 흐리시었다.

일꾼들은 영문을 몰라 안타까와 했다. 그러는데 장군님께서 여병사들을 가리키시며 이 동무들이 몸은 좋은것 같은데 키가 작다고 못내 근심어린 어조로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순간 여병사들도 일꾼들도 가슴이 뭉클 젖어들고 뜨거운 것이 북받쳐 올랐다.

한동안 아무 말씀이 없으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한 여병사에게 군대에 나와서 키가 얼마나 컸는가, 지금 키는 얼마인가고 물으시었다.  

너무도 다심하고 뜨거운 은정에 그만 목이 메여 여병사는 대답을 드리지 못하다가 가까스로 키가 얼마이라고 말씀드리었다.

장군님께서는 여병사와 이야기를 나누시었다.

장군님께서는 그에게 몇년도에 군대에 입대하였는 가고 물으시었다.

1998년 봄 평양에서 입대하였다는 대답을 들으신 그이께서는 1998년도에 입대하였으면 96년도, 97년도 쌀이랑 제일 없을 때 집에 있었겠다고 하시며 쌀이 떨어져 고생하지 않았는가, 집에 있을 때 굶어본 일이 있는 가고 물으시었다.

그가 굶어 본적은 없다고 말씀드리자 장군님께서는 평양사람들도 「고난의 행군」시기에 식량타격을 많이 받았다고, 그때는 누구나 다 모진 굶주림을 이겨내며 사회주의를 지켜냈다고 말씀하시었다.

제국주의자들의 악랄한 고립압살책동과 경제봉쇄속에서 사회주의를 지켜내던 「고난의 행군」의 나날을 돌이켜보시는 듯 잠시 아무 말씀도 없으시던 그이께서는 다시금 곁에 서있는 부분대장에게 언제 입대했는가, 98년도에 입대하였으면 「고난의 행군」을 겪어보았겠다고, 집에 있을 때 굶어본 일이 있는 가고 물으시고 그가 굶어본 적이 없다고 말씀올리자 쌀이 없어서 몇끼 굶어보았는 가고 솔직히 말해보라고 말씀하시었다.

굶어본 적은 없고 죽으로 끼니를 에운적은 많았다고 하자 장군님께서는 격해지는 마음을 애써 달래시며 일꾼들에게 이 동무들이 나를 생각해서 굶지 않았다고 할 것이라고, 그때야 조선사람들은 누구나 다 풀죽을 먹으며 살지 않았는 가고 아픈 마음으로 말씀하시었다.

강실의 여기저기에서는 흐느낌소리가 높아졌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부분대장이 그이께 말씀드리었다.

『그때 저희들보다 장군님께서 더 고생을 하시었습니다. 장군님께서 인민들과 함께 죽을 드시며 <고난의 행군>을 승리에로 이끌어주신 것을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죽어도 그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아버지장군님의 은정으로 우리 병사들은 배고픈 줄도 추운 줄도 모르고 군사복무를 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저 장군님께서만 건강하시면 됩니다.』

고맙다고 하시며 부분대장의 등을 두드려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뜨거움을 금치 못해하는 일꾼들에게 절절하신 음성으로 말씀하시었다.

『우리가 <고난의 행군>을 하느라고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을 잘 먹이지 못하여 이 애들이 크지 못했습니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픕니다.』

그러시면서 장군님께서는 우리는 하루빨리 강성대국을 건설하여 아이들을 잘 먹이고 인민들을 잘살게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었다.

정녕 최고사령관과 인민군전사들 사이에 맺어진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순결한 혈연의 정이 얼마나 뜨겁고 진실한가를 보여주는 숭고한 화폭이었다.

시간은 퍽으나 흘렀다.

장군님께서는 사랑하는 여병사들과 헤어지기 아쉬우신 듯 선뜻 자리를 뜨지 못하시고 일꾼들에게 다시금 동무들이 나의 뜻을 잘 알고 군인들의 생활을 친부모의 심정으로 잘 돌봐주어야 한다고 간곡히 이르시면서 말씀을 이으시었다.

『우리 군인들은 고향과 부모를 멀리 떠나 조국보위초소에서 꿈많은 청춘시절을 총과 함께 묵묵히 바쳐가고 있는 참된 혁명전사들입니다.

군인들의 생활을 잘 돌봐주는 것은 일꾼들의 응당한 본분이며 의리입니다.

내가 늘 강조하는 문제이지만 우리 지휘관들은 자기들이 덥고 배부를 때에도 전사들은 춥고 배고플 수 있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고 전사들의 생활을 잘 돌봐주어야 합니다.』

그이의 이 말씀에는 언제나 병사들을 금싸래기보다 더 귀중히 여겨주시는 위대한 선군영장의 사랑의 세계가 그대로 뜨겁게 어려있었다.

여병사들은 그 사랑을 심장으로, 폐부로 깊이 절감하며 이렇게 마음속으로 외치었다.

(장군님 계시여 우리 병사들의 행복한 삶과 미래가 있습니다.)

병사들에 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사랑은 세쌍둥이 여성군인들에게도 뜨겁게 미치었다.

그 날은 주체91(2002)년 3월 어느날이었다. 어느 한 인민군부대를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세쌍둥이 여성군인들을 만나시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생존하여 계실 때 세쌍둥이들이 많이 태어나는 것은 나라가 흥할 징조라고 하시며 남달리 깊은 사랑을 부어주신 세쌍둥이들이라고 그들에게 금반지와 은장도를 비롯하여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신 장군님이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자애롭게 웃으시며 세쌍둥이가 키도 같고 생긴 것도 비슷하다고, 모두 곱게 생겼다고 하시며 못내 기뻐하시었다.

그런데 세쌍둥이의 키가 자신께서 바라시는 마음처럼 크지 못하였다. 장군님께서는 물론 세쌍둥이의 나이가 아직 어리고 또 부모들의 키가 크다니 그들이 앞으로 더 자랄 수 있다고 믿으시었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마음을 놓을 수 없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생각깊은 눈길로 세쌍둥이를 바라보시다가 세쌍둥이들의 군사복무에 대해 상세한 가르치심을 주시고나시여 앞으로 그들이 매해 얼마나 더 자랐는가 하는 것을 자신에게 보고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었다.

순간 일꾼들의 가슴은 뜨거움에 젖어들었다.

세상 그 어디를 둘러보아도 이런 만복을 받은 삼태자는  없을 것이다. 더욱이 혁명과 건설의 모든 일을 다 보살펴야 하시는 장군님께서 평범한 세쌍둥이 여성군인들의 키가 매해 얼마나 더 자랐는가 하는 것을 보고해야 한다고 하시니 이런 위대한 사랑의 이야기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오로지 천만병사들을 친자식처럼 여기시며 그들을 위해서는 하늘의 별이라도 따오실 크나큰 사랑을 지니고 계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품속에서만 있을 수 있는 사랑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후 세쌍둥이병사들은 조선인민군창건 70돌경축 TV무대에 나와 그 날의 사랑의 이야기와 자기들이 경애하는 장군님의 은정속에 키도 마음도 성장해가고 있는데 대해 전하여 만사람을 격동시켰다.

이것이 어찌 이들 세쌍둥이병사만이 받아 안은 사랑이라고 하랴. 그것은 그들만이 아닌 이 나라의 총쥔 병사들모두가 받아 안은 사랑이고 은정인 것이다. 진정 경애하는 장군님은 천만부모들의 정을 다 합쳐 인민군군인모두를 품어주시고 친부모의 심정으로 생활의 구석구석까지 보살펴주시며 그들모두의 앞날을 빛내어주시는 삶의 은인이시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전선길에는 이러한 사랑의 이야기가 수많이 펼쳐졌다. 병사들을 위해서는 그 무엇도 아끼지 않으시며 그들의 생활을 육친의 정으로 따뜻이 보살펴주시는 장군님의 사랑은 군인들의 식생활에도 뜨겁게 어려있다.

새 세기 처음으로 맞이한 양력설날 아침, 어느 한 인민군부대를 방문하신 장군님께서는 취사장에 들리시어 군인들이 명절음식으로 무엇을 해먹는지 하나하나 알아보시었다. 뜬김이 뽀얗게 서린 취사장의 배식대위에는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찰떡이며 절편, 기름튀기, 수수떡을 비롯한 여러가지 설음식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것을 보시며 만면에 환한 미소를 담으시고 더없이 기뻐하시는 장군님께 부대의 한 일꾼이 명절음식을 준비한 정형에 대하여 보고드리었다.

그러자 그이께서는 일꾼들을 둘러보시며 잘하였다고, 명절날에는 푸짐히 먹어야 군사복무를 할 재미가 있다고 웃으시며 말씀하시었다.

전사들의 마음속생각까지 그리도 속속들이 헤아려주시는 그이를 우러르며 일꾼들은 숭엄한 감정에 휩싸였다.

이렇듯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속에 인민군장병들은 키도 마음도 크면서 보람찬 군사복무의 길을 힘차게 걸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