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태양 김정일장군」(4) 중에서 


 



 

 그리움은 사랑의 표현이다. 그리움이 없는 사랑이란 있을 수 없으며 사랑이 없는 그리움도 없다.

온 사회가 선군혁명동지로 되고 있는 우리 나라에서 최고사령관은 병사들이 그리워 군부대를 찾으시고 병사들은 최고사령관을 그리며 충정을 바쳐가고 있다. 그래서 최고사령관과 군인들이 혼연일체로 된 선군혁명동지대오이다.

새 세기 선군혁명영도의 나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군인들이 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군인들에 대한 열화같은 사랑의 그리움을 안으시고 그들을 찾아 멀고 험한 전선길을 쉬임없이 걷고 걸으시었다. 언제나 병사들을 생각하시며 초소에 마음을 두고 계시는 그이의 크나큰 사랑의 세계, 시작은 있어도 끝이 없는 그리움의 세계는 정녕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주체90(2001)년 8월 중순 어느날, 온 나라는 끝없는 환희와 기쁨으로 설레이고 있었다.

러시아연방에 대한 역사적인 방문길에 오르셨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20여일에 걸치는 방문일정을 성과적으로 마치시고 조국으로 돌아오셨다는 감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던 것이다.

이날 수도 평양의 거리거리는 장군님을 맞이하기 위해 화려한 명절일색으로 단장되었고 곳곳에 환희의 춤바다, 꽃바다가 펼쳐졌다.

그런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국땅에 들어서신 그 길로 수도 평양이 아니라 외진 산골에 자리잡은  병사들의 이름없는 한 초소를 찾으시었다.

장군님의 러시아연방방문보도가 전하여진 그날부터 휴식장에 큼직하게 지도를 그려 붙이고 하루하루 방문노정을 붉은 별로 새겨가며 조국으로 돌아오실 날을 손꼽아 기다려온 병사들이건만 그이께서 이렇듯 외국방문을 마치고 돌아오시는 길로 자기들을 제일 먼저 찾아주실줄이야 어찌 꿈엔들 생각이나 하였으랴.

너무도 크나큰 감격에 목메어 인사도 제대로 올리지 못하는 구분대 지휘관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신 장군님께서는 수고한다고 하시면서 TV가 잘 나오는가, 군인들이 감자를 좋아하는가고 하나하나 다정히 물으시었다.

오래동안 헤여 졌던 친자식들을 만나신듯 그리도 기쁘시어 생활의 구석구석을 세심히 보살펴주시며 환한 미소를  지으시는 그이를 우러러 병사들은 솟구치는 격정의 눈물을 금치 못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장군님께서 조국을 떠나시어 외국방문의 그 나날에 자기들 군인들을 얼마나 그리워하시었는지 다는 모르고 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씨비리의 광활한 대지를 횡단하실 때에도 자주 일꾼들에게 조국을 오래동안 떠나 있으니 우리 병사들이 보고 싶다고, 이제 조국에 돌아가면 먼저 우리 병사들부터 찾아보자고 절절하게 말씀하군 하시었다. 그때마다 수행일꾼들은 그이께서 얼마나 병사들이 그리우셨으면 이런 말씀을 거듭 하시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눈시울을 적시었다.

러시아연방방문을 마치고 조국을 가까이 할 때에 그이께서는 병사들에 대한 생각이 더욱 간절하시었다.

하기에 장군님께서는 돌아오시는 길로 먼저 부대일꾼들과 따뜻이 인사를 나누시는 자리에서 조국을 떠나 20여일간 초소의 병사들이 보고 싶었다고, 노보씨비르쓰크를 떠나 하바롭쓰크를 가까이 할 때에는 우리 병사들 생각에 눈물이 다 났다고, 그래서 조국땅에 들어서자마자 동무들부터 찾아왔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던 것이다.

세상에 한 나라의 최고영도자가 조국을 멀리 떠나있는 외국방문의 길에서조차 총잡은 병사들을 그토록 잊지 못해 하며 조국땅에 들어선 그길로 병사들부터 찾았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또 있었던가.

이날 초소의 병사들과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시며 친어버이의 뜨거운 사랑을 가슴가득 안겨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군인들이 초소를 나의 정든 집이라고 말할 수 있게 훌륭히 꾸려놓고 보람찬 군무생활을 하고 있는데 대하여 대단히 만족해 하시면서 일꾼들에게 『러시아방문을 마치고 돌아와 이렇게 잘사는 중대를 돌아보니 피로가 다 풀리는 것 같습니다.』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만시름을 잊으신듯 환하게 웃으시는 장군님의 자애로운 영상을 우러르며 병사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리었다.

그들만이 아니었다. 어느 한 독립초소 군인들도 그립고 그리운 위대한 장군님을 자기들의 초소에 모시는 크나큰 영광을 지니었다.

그날은 8월 28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러시아연방방문을 마치고 돌아오신지 열흘밖에 되지 않는 날이었다. 뜻밖에도 그이를 만나 뵙게 된 초소군인들은 형언할 수 없는 감격과 기쁨에 휩싸였다. 더욱이 그이께서 조국에 돌아오시는 길로 인민군부대부터 찾아주시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부러움을 금치 못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던 그들이어서 더더욱 솟구치는 격정에 목메이지 않을 수 없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뜨거움에 젖어 한품에 와락 안기는 병사들과 다정히 인사를 나누시고 초소를 돌아보시었다.

갖가지 나무들이 우거진 병영구내, 높은 사상정서가 풍기는 교양실과 침실, 풍성한 양식창고, 모든 것이 정갈하고 알뜰하였다.

장군님께서는 더없이 만족하시어 진짜 멋있다고, 마치 공원속에 들어온 것 같다고, 이만하면 괜찮다고 거듭거듭 치하해 주시었다. 그이께서는 교통호를 따라 펼쳐진 진지를 돌아보시고는 밤낮이 따로 없이 초소근무를 수행하면서 진지를 이렇게 알뜰하게 관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하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초소를 이렇게 관리하지 못합니다. 나는 소대군인들이 한마음한뜻으로 굳게 뭉쳐 조국의 최전연초소를 금성철벽으로 지키면서 병영구내와 주변을 공원과 같이 알뜰하게 꾸리고 생활을 전투적으로, 낙천적으로 해나가고 있는데 대하여 만족하게 생각합니다.

너무도 과분한 치하에 감동된 초소의 소대장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외국을 방문하시는 기간 최고사령관동지의 안녕을 바라고 또 바라면서 초소를 알뜰하게 꾸리며 조국의 방선을 철벽으로 지켰다고 기운차게 말씀드렸다.

『고맙습니다. 나도 조국을 떠나 20여일간 초소의 병사들이 언제나 보고 싶었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정말 고맙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의 그 사랑과 믿음에 보답하겠습니다.』

이 길지 않은 대화속에는 경애하는 장군님과 전체 인민군장병들 사이에 맺어진 그리움에 젖은 사랑의 세계가 뜨겁게 어려있었다. 정녕 그것은 장군님께서 인민군대를 혁명의 기둥으로 믿고 내세워주시고 인민군대가 장군님만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는 선군시대 우리 나라에서만 있을 수 있는 위대한 혼연일체의 참모습이었다. 숭고한 그리움과 사랑의 세계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펼쳐가시는 선군장정의 길에 끝없이 꽃펴났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선군혁명실록의 갈피에는 멀리 북방의 여성중대군인들이 그리워 몸소 멀고 험한 길을 여러 차례 찾아가시어 중대를 예술소조공연에서도 제일이고 모든 면에서 으뜸인 전군의 본보기로 키워주신 이야기도 있다.

주체92(2003)년 3월 1일 여성중대군인들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영광의 시각을 맞이하게 되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멀고 험한 고산지대의 찬바람을 맞으시며 이곳 여성중대를 또다시 찾아주시었던 것이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중대군인들의 예술소조공연을 보아주시고 못내 기쁘시어 오늘 중대여성군인들이 예술소조공연을 잘하였다고, 오늘 보니 공연수준이 많이 올라갔다고 높이 치하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중대여성군인들의 예술소조공연이 한해사이에 때벗이를 하였습니다.…

 나는 오늘 …중대여성군인들의 예술소조공연을 매우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공연에 출연한 중대군인들에게 최고사령관의 이름으로 감사를 준다는 것을 전달하여야 하겠습니다.』

 때벗이를 한 예술공연! 이것은 인적 드문 산골에서 생활하는 여성군인들이 예술소조활동을 정상적으로 벌리며 노래속에 웃음속에 복무의 나날을 값있고 보람차게 보내기를 바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믿음과 사랑이 낳은 빛나는 결실이었다.

장군님께서 이곳 여성중대군인들의 예술소조공연을 처음 보아주신 것은 주체87(1998)년 1월 20일이었다. 시종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공연을 보아주신 그이께서는 공연이 끝나자 오늘 여성군인들이 공연을 잘하였다고 말씀하시고 나서 그런데 목이 쉰것을 보면 예술소조공연을 갑자기 준비한 것 같은데 그래서는 안된다고, 예술소조활동은 일상적으로 진행하여 생활화, 정상화하여야 중대안에 혁명적 낭만과 전투적 기백이 차넘치고 공연수준도 높아질 수 있다고 이르시었다.

예술소조활동을 그 어떤 경쟁이나 판정을 위해서가 아니라 군인들의 일상생활에서 낭만과 웃음이 넘쳐 나게 조직진행하며 그 과정을 통하여 수준을 높여 나가도록 따뜻이 깨우쳐주시는 그이이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후에도 여러 기회를 통하여 그들의 예술소조활동에 거듭 깊은 관심을 돌리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주체89(2000)년 3월에도 부대에서 새로 건설한 수력발전소를 현지시찰하시는 기회에 부대의 책임일꾼들에게 산골에 있는 여성중대군인들이 잘 있는가고, 예술소조공연수준이 높아졌는가고 친히 알아보시었다. 그러시고는 영너머 중대가 있는 쪽을 바라보시며 내가 2년전에 부대에 왔을 때 중대군인들의 예술소조공연을 보아주었는데 이제는 많이 발전하였을 것이라고, 다음번에 오면 내가 가든지 시간이 바쁘면 불러오든지 하여 어떻게 하든 만나보겠다고 따뜻이 말씀하시었다.

그때로부터 두해후인 주체91(2002)년 2월 어느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곳 여성중대를 다시 찾으시고 그들의 공연을 또다시 보아주시었다.

여성군인들은 그이의 자애로운 모습을 우러르며 아버지 앞에 선 딸자식처럼 구김살없는 마음으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었다.

장군님께서는 종목이 바뀔 때마다 먼저 박수를 쳐주시고 그들을 축하해 주시었다. 그날 장군님께서는 부대책임일꾼에게 여성중대가 예술소조활동에서 전군의 앞자리를 차지할 수 있도록 잘 도와줄 데 대하여 당부하시면서 중대에 더 높은 요구성을 제기하시었다.

얼마 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금성학원에서 제일 기량이 높은 4명의 손풍금수들을 뽑아 2명은 동해의 어느 한 여성해안포병중대에 보내주시고 다른 2명의 손풍금수들은 여기 중대로 보내주시는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었다. 그리고 그들이 중대에 갈 때 최상급의 손풍금을 메고 가지 못하였다는 것을 아시고 그들에게 세계적으로 제일 좋다고 이름난 손풍금을 주어야 한다고 하시며 또다시 분에 넘치는 사랑을 돌려주시었다.

그 사랑, 그 믿음에 고무되어 중대의 여성군인들은 언제나 낭만과 희열에 넘쳐 중대예술소조활동을 더욱 열정적으로 벌려 나갔으며 그 과정에 수준도 몰라보게 높아졌던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은 경애하는 장군님으로부터 친히 감사까지 받아 안는 영광을 지니게 되었으며 중대여성군인들은 사업과 생활의 모든 면에서 전군의 본보기로 자라날 수 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전선길은 참으로 뜨거운 사랑과 헌신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병사들을 찾으시어서는 불편한 점은 없는가 다정히 물으시며 그들이 쓰고 사는데서 나서는 크고 작은 모든 문제들에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생활의 구석구석까지 친어버이사랑으로 따뜻이 보살피신다. 침실의 온도도 가늠해보시고 군인들이 잠을 자고 일어나면 조국의 밝아오는 하늘부터 보아야 한다시며 침대위치도 바로잡아주신다.

군인들에게 공급해 주는 생활필수품들의 질이 어떠한가 하는 것도 헤아려보시고 군인들에게 치솔과 비누, 면도칼을 비롯한 생활필수품들을 더 많이 만들어주도록 대책까지 세워주신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군인들이 낙천적으로 군무생활을 하도록 문화정서생활에도 깊은 관심을 돌려주신다.

새 세기 첫해 어느 한 부대를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중대교양실에 들리시어 책상우에 놓여있는 사진첩을 보아주시었다. 사진첩에는 보람찬 군무생활을 자랑하듯 병사들이 군기 앞에서 찍은 영예사진도 있었고 분대동무들과 함께 다정히 찍은 사진도 있었다.

장군님께서는 군인들의 늠름한 모습이 새겨진 사진첩을 한장한장 번지시며 사진첩이 좋다고, 내가 군인들에게 사진을 많이 찍어주라고 하였더니 사진첩을 만들었는데 잘 만들었다고 하시며 만족하신 표정을 지으시었다.

유례없이 간고했던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에 군인들이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그 심정을 누구보다 깊이 헤아려보시고 모든 것이 부족한 속에서도 사진촬영에서 제기되는 자재와 설비를 다 해결해 주신 장군님이시었다.

그이의 이렇듯 각별한 관심과 사랑속에 사진첩이 생겨났던 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부대를 찾으실적마다 영예게시판의 사진을 보시며 몇장을 찍는가, 고향에 보내주는가, 그리고 모교에도 보내주면 좋다고, 모든 군인들에게 1년에 적어도 3장이상은 사진을 찍어주어야 한다고 강조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친어버이의 다심하신 사랑은 끝없이 이어졌다. 어느 한 부대를 찾으시어서는 TV의 받침대가 낮아 군인들이 영화를 볼 때 불편해 할 것이라시며 받침대를 높여주게 하시었고 녹화기를 정상적으로 이용하자면 녹화테프가 많아야 한다시며 새로 녹화테프가 나오면 군인들에게 먼저 보내주도록 하시었다. 또 언제인가는 군인들이 TV연속소설방영시간을 제일 기다린다는 것을 아시고 군인들의 일과에 맞추어 그것을 내보내도록 조치를 취해 주시었으며 군인들을 위해 여러가지 음악기재도 마련하여 보내주시었다.

이렇듯 위대한 어버이사랑을 지니시고 언제나 병사들과 함께 계신 선군혁명영도의 나날 경애하는 장군님과 병사들사이에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혈연의 정이 뜨겁게 오갔고 그것은 그 무엇으로써도 깨뜨릴 수 없는 믿음과 사랑, 위대하고 숭고한 그리움의 세계를 펼쳐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