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민족을 사랑하시는 김정일장군」중에서

 

 


 

경애하는 장군님의 해외동포들에 대한 사랑은 총련의 원로간부들에 대한 사랑과 은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해외에서 오랜 세월 해외동포들의 민주주의적 민족권리와 조국을 위하여 한생을 바쳐온 원로간부들에 대하여 극진한 사랑을 베풀어주시었다.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었다.

『총련에서는 노간부들을 잘 애호보존하여야 합니다. 이들이 재일조선인운동의 원로들이며 총련조직을 지켜온 핵심들입니다.』

총련의 원로들은 일본의 그 엄혹한 환경에서도 위대한 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한생을 충직하게 살아왔으며 총련과 재일동포들의 권리를 위하여 변심없이 살아왔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러한 그들을 한품에 안으시어 사랑을 부어주시고 그들이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일을 잘하도록 극진히 보살펴주시었다.

한덕수의장에 대한 장군님의 사랑은 이를 데 없이 넓고 깊었다.

장군님께서는 한덕수의장이 일본에 있을 때나 조국을 방문하였을 때나 언제나 그의 사업과 생활을 따뜻이 보살펴주시었으며 특히 그의 건강에 특별한 관심을 돌리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한덕수의장은 일생을 수령님의 혁명위업을 받들어 온 노혁명가라고, 언제나 조국과 운명을 함께 하면서 우리 당을 진심으로 받들고 있는 한덕수의장동지를 높이 평가하며 우리 당의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고 말씀하시었다. 그러시면서 해외동포들은 위대한 수령님과 우리 당에 무한히 충실하여 온 그의 모범을 따라배워야 한다고 하시었다.

한덕수의장이 노환으로 건강이 좋지 못하게 되었을 때였다. 장군님께서는 노환으로 앓고 있는 그에게 사랑에 담아 청춘을 주시고 은정에 담아 활력을 거듭 안겨주시었다.

원래 고령의 몸에는 잔병이 많은 법이다. 한덕수의장도 구순이 바라보이는 몸에 위독한 병을 만나 몸져눕게 되었다. 그는 일본병원에 입원하여 효험이 크다는 명약은 다 써보았고 의술이 높다는 명의의 치료도 받아보았으나 별다른 차도가 없었다. 오래동안 침상에 누워있은 탓으로 하여 다리근육이 응축되어 제대로 설 수도 걸을 수도 없었다. 병세는 더욱더 위급해갔다.

이무렵 그가 오래동안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을 보고 받으신 장군님께서는 그의 병세를 매일 지체말고 알리도록 지시하시었다.

그의 병을 두고 걱정하시는 장군님의 마음은 정말 뜨거웠다. 장군님께서는 조국의 유능한 의사를 한덕수의장의 치료를 위해 도쿄에 급파하시었고 한의장에게 새힘과 생기를 주시려는 마음에서 조국에 있는 아들딸들도 아버지의 병문안과 병구완을 하라고 연속 보내주시었다.

주체83(1994)년 2월 21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국을 방문한 총련중앙의 한 책임일꾼들과 우리 일꾼들을 몸 가까이에 부르시었다.

총련일꾼들이 드리는 인사를 받으시자마자 그이께서는 한의장의 안부와 건강부터 물으시었다.

『한덕수의장은 건강상태는 어떻습니까?』

장군님의 배려로 좀 차도가 있다는 보고를 받으시고는 좀 차도가 있다니 기쁘다고 하시었다. 계속하여 장군님께서는 한덕수의장이 몇해전에 조국을 방문하였을 때 목란관에서 그를 만난적이 있다고, 그때  그는 연설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아주 건강하였는데 감기에 걸리었다가 갑자기 페염이 왔다고, 나이가  많으면 건강에 각별한 주의를 돌려야 한다고 하시면서 총련에서는 어떻게 해서라도 한덕수의장의 건강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간곡히 말씀하시었다.

최선을 다하여 치료를 하였으나 한의장의 병세는 호전되었다가는 다시 악화되면서 좀처럼 숙어 들지 않았다. 순간도 지체할 수 없었다.

이러한 상태를 보고 받으신 장군님께서는 한의장을 즉시에 조국에 데려다 치료하도록 은정깊은 조치를 취해주시었다.

그리하여 한의장은 주체83(1994)년 4월 하순에 조국에 왔다. 평양의 숙소에 들어설 때까지도 그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조국에 와서 치료를 받고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고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한의장이 건강을 회복하고 일본에 돌아가서 생일 90돌을 맞게 되었을 때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생일 90돌에 즈음하여 한의장에게 축전을 보내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축전에서 의장동지는 위대한 수령님의 주체적인 해외교포운동사상과 영도를 빛나게 구현하여 총련조직을 건설하였으며 사회주의조국의 융성번영과 나라의 통일을 위하여, 재일조선인운동의 강화발전을 위하여 한평생을 바쳐온 우리 당과 혁명의 귀중한 원로이며 해외교포운동의 명망높은 활동가, 참다운 애국충신이라고 높이 평가하시었다.

한덕수의장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속에 앞가슴에 3개의  「김일성훈장」과  「김일성상」, 2개의 노력영웅칭호를 비롯한 수많은 훈장과 메달이 빛나고 원사, 교수, 박사라는 학위학직까지 지닌 명망높은 해외교포운동의 원로로 한생을 빛내이게 된 것이다.

그밖에도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존함이 모셔진 백금시계와 금시계, 경애하는 장군님의 존함이 모셔진 청자기와 수예병풍 등 수많은 선물을 받았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생일 90돌을 맞는 한의장을 기쁘게 해주시려고 조국에 귀국한 그의 아들네 가족들과 딸네 가족까지 자기 아버지가 받은 경사에 참가하도록 일본에 보내주시었다.

90돌 생일을 축하하는 날, 총련의 큰 경사이기도 한 그 날, 한덕수의장은 누구보다도 많이 울었다. 늙으면 눈물이 헤퍼진다고 하지만 그가 이날에 그토록 눈물을 그리도 많이 흘린 것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크나큰 믿음과 사랑이 하도 고마왔기 때문이다.

그후에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한덕수의장이 불편한 몸임에도 효고현에까지 나가 지진피해를 가시고 새로 일떠선 우리 학교들을 돌아보았다고 하는데 대단하다고 높이 평가하시면서 조국에 온 총련대표들에게 한덕수의장에게 자신의 인사를 전달해야겠다고 당부하시었다.

한덕수의장은 절세의 위인이시고 민족의 태양이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위대한 사랑의 품속에서 오늘도 영생의 언덕에 높이 서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은 이진규제1부의장에게도 뜨겁게 미치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총련중앙 이진규제1부의장은 모든 면에서 원만하고 충실한 사람이라고, 그는 생활에서 고정하고 청백하고 청렴하며 사업에서는 원칙적이고 성실하다고, 한마디로 가식이 없는 일꾼이며 충실한 혁명가라고 말할 수 있다고 높이 평가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가 생일 75돌을 맞을 때에도 크나큰 사랑과 은정을 베풀어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생일 75돌을 맞을 때에는 공화국공민의 최고영예인 노력영웅칭호를 수여하도록 하시고 그가 생일날에 같이 사업하는 총련일꾼들과 동포들과 함께 생일을 마음껏 즐길수 있도록 여러가지 생일선물까지 정성껏 마련하여  「만경봉-92」호편으로 보내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진규제1부의장이 해마다 조국에 와서 휴식하는 것을 제도화하도록 하시고 그가 조국에 오면 그의 숙식조건과 일정까지 세심히 보살펴주시면서 충분히 휴식할 수 있도록 모든 조건을 다 보장하여 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국에 온 그를 만나 식사도 차려주시고 그가 조국에 있는 외동딸집에도 가서 즐기도록 하여 주시었으며 조국에 있는 딸과 손자를 한달반정도 일본땅에 보내어 아버지와 어머니곁에 있으면서 즐거운 나날을 보내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었다.

이진규제1부의장이 사망하였을 때에는 이진규제1부의장의 미망인을 만나주시고 은정어린 사랑의 말씀도 하여 주시었다.

절세의 위인의 사랑속에 그의 유골이 신미리애국열사릉에 안치되게 되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속에 재일본조선민주여성동맹 박정현상임고문도, 인민배우 엄국지도 조국의 품에서 영생하고 있다.

참으로 총련의 원로간부들과 평범한 학생들에게 이르기까지 돌려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은 하늘의 높이나 바다의 깊이에도 비길 수 없는 무한 대한 것이다.

그처럼 위대한 사랑이 있기에 오늘도 총련과 재일동포들은 애국의 한길을 꿋꿋이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