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태양 김정일장군」(3) 중에서

 

 

 
 

 

 시대의 준엄한 격동기에 혁명의 수뇌부가 투쟁의 어느 계선에 어떤 모습으로 서있는가 하는 것은 혁명의 승패와 민족의 흥망을 가늠하는 표대로 된다.

준엄한 싸움마당에서 혁명의 영도자가 진두에 서면 천만대오가 따라나서고 승리의 돌파구가 열려지게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혁명이 주접이 들고 대오가 사분오렬되어 붕괴와 파멸을 면치 못한다.

우리 인민이 허리띠를 조이고 「고난의 행군」을 하고 있던 그 준엄한 나날, 원수들은 「북침」전쟁연습을 미친듯이 벌이며 흰기를 들라고 위협하고 「개혁」과 「개방」을 요구하며 현대판 포함외교를 들이대었다.

세계가 조선을 지켜보고 있고 우리 인민이 누가 누구를 하는 결사의 투쟁을 벌이고 있던 때에 위대한 최고사령관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어디에 서 계시었는가.

우리 인민이 하늘처럼 믿고 사는 그이께서는 조국과 민족, 혁명의 운명을 한몸에 안으시고 최전연, 최전방초소들을 찾아 연이어 현지시찰의 길을 이어가고 계시었다.

주체85(1996)년 3월 20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전선중부 오성산지구의 최전방부대를 현지시찰하시었다.

그무렵 적들은 여느때없이 전선지대에 대한 감시정찰을 강화하고 있었다. 바로 그 이틀전에 장군님께서 전선서부의 대덕산초소에 나가신데 놀란 적들은 전선지대에 대한 감시를 더욱 강화하면서 우리 혁명의 수뇌부의 움직임에 신경을 도사리고 있었다.

현지시찰에 앞서 이런 정황을 보고받으신 장군님께서는 저으기 생각깊은 표정을 지으시고 일꾼들에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생전에 오성산지구의 부대에 직접 나가보시지 못한 것을 늘 아쉬워하시었다, 나는 지금도 그때의 수령님의 유훈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부대 전방지휘소를 현지시찰하는 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생전의 뜻을 풀어드려야 할 수령님의 전사, 제자들인 우리의 마땅한 의무이며 도리이다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절절히 말씀하시었다.

『우리는 아무리 험악하고 적들과 직접 대치하고 있는 곳이라도 위대한 수령님의 생전의 심려를 풀어드리고 나라의 방위력과 인민군대를 불패의 혁명무력으로 강화할 데 대한 수령님의 유훈을 빛나게 실현하는 길이라면 기어이 가야 합니다.』

이런 불같은 의지를 안으시고 장군님께서는 오성산을 찾으시었다.

이때만이 아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험한 길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오성산을 자주 찾군 하시었다. 해발 1천여m나 되는 오성산은 우리 나라 최전선의 고지들 중에서도 높고 험하기로 손꼽히는 험산준령이다. 코앞에 도사리고 있는 적들은 무시로 도발을 감행하며 정세를 긴장시키고 있었다. 게다가 가파로운 산비탈과 벼랑길을 따라 고지의 꼭대기까지 오르자면 무려 150여개의 굽이를 돌아야 한다. 그래서 눈비가 조금만 와도 이 산에는 차들이 아예 붙을 념을 못했다.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주체87(1998)년 8월 3일에도 한창 비가 쏟아지고 령길이 몹시 미끄러운 장마철에 오성산을 또다시 찾으시었다.

오성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말이 아니었다. 연일 계속되는 소낙비로 하여 그렇게도 애써 다져놓았던 흙이 다 씻겨져내리고 돌만 남아있는 울퉁불퉁한 돌밭길, 백쉰굽이나 에돌며 올라가야 하는 위험한 영길, 아차 실수하면 허양 굴러떨어져 형체도 찾을수 없는 아찔한 낭떠러지들, 구배가 하도 심하여 올라가다가는 미끄러져 내려와 다시 올라가기를 몇번이나 반복하며 진땀을 뽑아야 겨우 한고비를 넘기게 되는 험하기 그지없는 령길이었다. 그 험하디험한 산길을 따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타신 야전차가 한치한치 톺아 올라야 하였다. 이런 정황에서 오성산정점의 전방지휘소로 올라간다는 것은 말그대로 모험과 같았다. 그래서 지휘일꾼들이 앞을 막아 나섰다.

그러는 일꾼들에게 장군님께서는 고지에 인민군전사들이 있는데 여기까지 왔다가 내가 고지에 올라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최고사령관이 오늘과 같은 이런 궂은 날씨에 전선의 험한 영길을 다녀보아야 우리 전사들의 생활을 잘 알수 있다고 하시면서 그들을 설복하시었다.

굽이굽이 돌아 차가 얼마간 올라갔을 때였다. 갑자기 「쾅-」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문득 차가 멈춰 섰다. 타이어가 가시돌에 뚫리어 터졌던것이다. 운전수가 재빨리 예비타이어를 바꾸어 끼우고 다시 달리었다. 그렇게 하기를 몇번. 그길에서는 야전차가 갑자기 기우뚱하며 기울어져 천길낭떠러지로 굴러내릴번 하는 위기일발의 순간도 있었다.

차가 몇굽이를 에돌아갔을 때였다. 산정을 향해 한치한치 힘겹게 오르던 야전차가 헛돌림을 하더니 아래로 미끄러져 내리기 시작했다. 만약 차가 이대로 뒤걸음질하며 미끄러져 내리다가는 천길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었다.

이때 장군님께서는 심상치 않은 사태를 헤아리시고 차에서 내리시었다. 함께 차에 탔던 일꾼들도 모두 내리었다.

『자, 어서…』

초를 다투는 시각이어서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한마디 말씀하시고는 차체에 어깨를 들이미시었다. 뒤따라 수행원들도 어깨를 들이밀었다. 아, 이런 최고사령관이 세상 또 어디에 있는가, 영장의 이런 전선길이 동서고금 그 어느 전설에 있었던가, 이러한 생각을 하는 수행원들의 가슴마다에 뜨거운 격정이 차올랐다.

간난신고끝에 위험을 넘긴 야전차는 드디어 전방지휘소에 이르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몸소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시어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그곳 초병들을 반갑게 만나주시었다.

『수고합니다. 전연에서 얼마나 고생합니까?

… 제일 궂은 날씨에 왔습니다.』

한 일꾼으로부터 영접보고를 받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사랑이 담긴 따뜻한 음성으로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부대군인들이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을 간직하고 방어전역을 난공불락의 요새로, 금성철벽의 보루로 전변시킨데 대하여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시면서 그들의 투쟁성과를 높이 평가하시었다.

그이께서는 우리의 인민군장병들은 지난날 할아버지, 아버지들이 나라가 없고 주권이 없었던 탓에 겪지 않으면 안되었던 피눈물나는 망국노의 생활을 두번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하여 계급의 총검을 억세게 틀어 잡고 목숨바쳐 조국을 지키는 복수자들이라고, 이런 결사의 각오를 지닌 혁명군대의 힘을 당할 자는 세상에 없다고 말씀하시었다.

계속하여 그이께서는 오늘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이  우리의 사회주의조국을 무력으로 압살하기 위하여 새로운 침략책동을 악랄하게 감행하고 있는 조건에서 군대는 그 어느때 보다 혁명적경각성을 고도로 높이고 적들이 감히 달려든다면 단매에 족쳐 버릴  수 있게 전투력을 더욱 강화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시었다.

그이께서는 그곳 초병들의 싸움준비정형과 생활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요해하시고 걸린 문제들을 즉석에서 풀어주신 후 부대군인들에게 기관총과 자동보총, 쌍안경을 기념으로 주시고 고지의 전호가에서 오성산초병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오성산시찰길에는 일화도 많았다.

그이께서 위기일발의 순간순간을 수없이 넘기시면서 산마루의 전방지휘소에 이르시었을 때였다. 코앞에 도사리고 있는 적들이 총구를 겨누고 있는 정황에서 경애하는 장군님의 신변안전이 염려되어서 인가 하늘도 조화를 부리며 안개를 피워 올렸다. 마치 안개가 장군님을 호위하는 근위병이라도 된 듯이…

동행하였던 일꾼들은 한해전 5월에 있은 일이 생각되었다. 어느날 한 인민군지휘성원은 장군님께 지금 인민군군인들은 장군님께서 부대들을 현지시찰하실 때 일어난 자연현상을 전설처럼 이야기하고 있다고 하면서 들은바 그대로 말씀드리었다. 흥미 진진한 표정을 지으시며 그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신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사실 우리가 인민군부대들을 현지시찰할 때마다 여러가지 묘한 자연현상들이 자주 일어나군 합니다. 내가 지난해 3월 대덕산초소를 찾았을 때에는 갑자기 날씨가 흐려지며 함박눈이 내려 승용차전조등을 켜놓고 기념촬영할 준비를 하였는데 우리가 촬영하러 병실에서 나올 때에는 신기하게도 구름이 가셔지며 해가 나 사람들 모두가 경탄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판문점초소에 갔을 때에는 전에없이 안개가 끼여 적들로부터 우리를 은밀히 위장하여 주었습니다. 우리가 적진이 눈앞에 있는 판문점초소에 2시간 30분이나 있었지만 적들은 인민군최고사령관이 그곳을 현지시찰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감촉하지 못하였습니다.』

일꾼들은 안개속에서 그이의 뜻깊은 말씀을 되새기면서 장군님의 현지시찰 때마다 펼쳐지는 신비한 자연현상에 대하여 다시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이께서 다녀가신 다음 오성산초병들은 흙주머니를 만들어가지고 경애하는 장군님의 거룩한 자욱이 찍혀진 영길의 흙을 담아 정히 간수하였다.

오성산초병들은 오늘도 그 흙주머니를 품에 안아보면서 장군님에 대한 그리움의 정을 억제할 수 없어하고 있으며 조국이 통일된 다음 그것을 박물관에 꼭 전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장군님께서는 그후 석달이 좀 지난 11월 10일에 또다시 오성산에 오르시어 부대의 싸움준비를 위한 구체적인 과업과 방도를 제시해주시었으며 주체89(2000)년 11월 7일에는 이곳 부대를 일곱번째로 찾아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오성산시찰은 그 어떤 험로역경도 인민군병사들이 있는 곳이라면 기어이 찾아가보아야 한다는 억척의 의지를 지니시고 혁명의 전선길을 이어가시는 선군영장의 뇌성벽력이었다.

후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느 한 뜻깊은 자리에서 자신께서 선군정치를 하고 선군의 상징인 오성산이 있어 나라를 지켜냈다고, 오성산이란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나고 간고하였던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가 잊혀지지 않는다고, 우리가 선군정치를 계속해 나가는 한 우리 인민은 자주민족의 존엄과 영예를 떨치며 강성대국을 일떠세워 남부럽지 않게 잘살게 될 것이며 백두에서 개척된 주체혁명위업은 반드시 최후승리를 이룩할 것이라고 뜨겁게 말씀하시면서 오성산현지시찰과 같은 준엄한 길을 헤치지 않으면 안되었던 우리 혁명의 선군역사를 깊은 감회속에 회고하시었다.

아아하게 높이 솟은 오성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걷고 걸으신 현지시찰의 길모두가 조국수호의 길이었다. 빛나는 승리에로 이어진 길이었다.

이렇듯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전선동부와 서부, 중부로 종횡무진하시며 꽃피는 봄날이나 락엽지는 가을날이나 눈내리는 한해의 마지막나날에도 언제나 최전선에 계시었다. 조국의 운명을 위하여, 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준엄한 투쟁의 최진두에 나서신 선군영장의 위대한 모습은 우리 군대와 인민의 무한한 신뢰와 경모를 불러일으키며 멸적의 투지와 승리의 신심을 백배해주었다.

참으로 최전연시찰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거룩한 선군장정과 더불어 길이 빛날 선군혁명역사의 불멸의 기념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