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태양 김정일장군」(3) 중에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선군장정은 그자체가 반미군사대결전이었다.

다박솔초소에 선군장정의 큰 자국을 찍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최전연에 대한 현지시찰에 큰 의의를 부여하시었다.

최전연, 그곳은 적아쌍방의 방대한 무력이 대치하고 있는 제일선대결장이었다. 그곳은 단순한 조국방선이 아니라 주체혁명위업의 최전선, 사회주의수호의 최전방이었다. 적들은 주체혁명과 사회주의를 압살하려고 무시로 도발을 걸어왔다. 언제 총포탄이 날아올지 몰랐다.

그런 최전연에로 군현지시찰의 길을 이어가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85(1996)년 2월 27일 야전승용차에 오르시어 구름도 쉬어 넘는다는 철령을 넘어 전선동부의 351고지를 찾으시었다.

351고지는 고성남쪽 감호와 월비산사이의 동남쪽으로 돌출한 최전연고지이다. 전선동부에서 전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진지이다. 351고지는 미제침략자들과 판가리 싸움을 하던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조국의 고지, 영웅의 고지로 널리 알려졌다. 적들에게 조국의 풀 한포기, 한치의 땅도 넘겨주지 말라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전투적 호소를 높이 받들고 영웅적 인민군대가 적들이 장악하고 있던 이 고지를 단 15분동안에 탈환함으로써 그 명성이 더욱 높아지게 되었다. 세계의 면전에서 미제의 코대를 납작하게 만든 고지인것으로 하여 세상이 다 아는 고지로 되었다.

그래서 적들은 지난날에도 그러하였지만 40여년이 지난 그때에도 351고지전연에 숱한 무력을 끌어다 놓고 도발소동을 벌려왔다.

맵짠 바람에 옷자락을 날리시며 351고지에 오르신 장군님께서는 근엄한 눈길로 적진을 굽어보시다가 적헌병초소에 시선을 멈추시었다. 안광에서는 금시 불꽃이 튀어 날듯이 푸른 섬광이 번쩍이었다.

부대지휘관은 장군님께 적초소까지의 거리가 1,200m이며 적들은 무반동포로 여기 351고지를 조준해놓고 있다고 보고 드리고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여기에 오래 서계시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신변이 위험합니다.』라고 말씀올리었다.

사실 전날에만 하여도 적들은 이 고지에 수십발의 총포사격을 가하는 도발을 감행하였었다.

하지만 장군님께서는 태연하게 웃음을 지으시면서 『적들이 무반동포로 351고지를 조준하고 있다는데 일당백초병들이 초소를 튼튼히 지키고 있기 때문에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라고 흔연히 말씀하시었다. 그이의 우렁우렁한 음성이 산발과 계곡에 메아리쳐 갔다.

장군님께서는 적초소와 전선지대의 지형지물들, 고지의 방어시설상태를 구체적으로 요해하시고 나서 적들의 침략기도에 대처하여 아군의 작전전술을 완성하기 위한 명철한 방안들을 가르쳐주시었다. 그것은 백승의 명안이었다.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천리혜안의 군사적 예지와 비범한 통찰력으로 독창적인 작전전술적 예안을 구체적으로 밝혀주시는 장군님의 모습을 우러르며 수행한 일꾼들과 부대지휘관들은 승리의 신심으로 가슴을 들먹이었다.

장군님께서는 이어 전망대의 한쪽 벽면에 게시되어있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351고지전투에서 배출된 공화국영웅들의 사진에 오래도록 시선을 멈추시었다. 피끓는 가슴으로 적의 화구를 막고 아군의 돌격로를 열어놓은 김인택, 김룡택, 주상하영웅들이며 한몸이 그대로 육탄이 되어 적들속에 굴러 들어가 놈들에게 무리죽음을 주었으며 이리떼처럼 달려드는 적들 가까이에서 아군의 포사격을 호출하면서 351고지를 끝까지 사수해낸 박현종, 이능하영웅들…

피끓는 청춘을 서슴없이 조국에 바친 영웅전사들의 사진 한장한장에서 그들의 불멸의 위훈을 헤아려 보시는 듯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던 그이께서는 이윽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

『351고지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위대한 수령님께 끝없이 충실한 영웅전사들이 피로써 쟁취하고 사수한 조국의 고지, 영웅의 고지입니다.』

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우리 인민군용사들이 351고지를 점령하고 지켜싸우던 때의 이야기를 감명깊게 들려주시고 『당과 수령에게 끝없이 충직한 영웅전사들의 불멸의 위훈은 조국청사에 길이 빛날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에서는 351고지영웅들의 당과  수령에 대한 무한한 충실성과 불요불굴의 투쟁정신, 영웅적 위훈으로 교양하여 모든 군인들이 전화의 영웅들이 피로써 사수한 조국의 고지를 굳건히 지키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었다.

그이께서는 이곳 부대의 전체 장병들로 하여금 351고지용사들이 이룩한 빛나는 전투전통을 살려 앞으로 적들과의 결사전에서도 전군의 모범이 될 데 대하여 간곡히 가르치시었다.

미국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351고지현지시찰에서 큰 공포를 느끼었다.

그때 세계각국의 군사정치정세와 정보를 연구분석하고 명장들의 무훈과 특징을 소개해온 서방의 권위있는 한 군사전문잡지의 특별란에는 한때 작전일꾼으로 나토사령부와 영국육군성에 있다가 퇴역한 장성의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다.

『백두산의 명장이신 김정일장군께서 범을 잡는 포수의 모자를 쓰시고 최전연을 시찰하시었다. 북조선에 대한 제국주의연합의 고립, 압살이 최절정에 이른 이때 포수모자를 쓰고 적들과의 거리 1,200m에 불과한 최전연에 신출귀몰하는 김정일장군이 뜻밖에 나타나신 것이다.

미제를 우두머리로 하는 세계제국주의연합세력에 단호히 맞서 나서시는 김정일장군께서는 직접 범사냥꾼의 모자를 쓰고 「범」을 잡으러 나오신것이다. 그이께서 「사냥터」에 나오시자 목표로 삼은 「맹수」들은 어디론가 다 꽁무니를 사리고 말았다. 그이께서 제일 처음 방아쇠를 당길 목표는 어느 「범」인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끊임없이 진행하시는 최전연에 대한 현지시찰은 그 자체가 적들의 머리에 내리는 무서운 철추였으며 총포성없는 대결전에서 승리를 마련하는 길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매 순간 위험을 마주하는 준엄한 길이었다. 그래서 군지휘성원들, 인민군장병들은 장군님께서 그런 위험한 길을 걷지 말아주실 것을 기회있을 때마다 거듭 절절히 말씀드렸다.

3월초 어느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351고지에 대한 현지시찰을 마치고 돌아오신지 며칠 안되는 때었다.

일꾼들은 장군님을 한자리에 모시고 조선인민군 군악단 취주악공연을 관람하게 되었다.

이 날 일꾼들은 군인들과 인민들이 어버이장군님의 신변안전과 건강을 잘 돌봐드릴 데 대한 수많은 청원편지를 보내오고 있는데 대하여 말씀드리면서 다시금 그이께 앞으로 위험한 최전연시찰만은 정말 그만두시었으면 하는 간청을 드리었다.

그러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감동에 젖은 표정으로 한동안 일꾼들을 바라보시더니 이윽하여 나는 우리 인민들이 나를 생각하여 위험한 최전방까지는 나가지 말아 달라고 제기하는 지성에 큰 고무를 받고 있으며 이에 대하여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우리 인민들과 일꾼들이 나를 생각하여 그런 제기를 하는 것은 수령님을 모시던 사상감정의 표현이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이께서 얼마나 뜨거움에 잠긴 음성으로 이야기하시는지 일꾼들은 저도 모르게 눈굽이 젖어들었다.

형언 못할 격정이 장내에 고조되는 가운데 그이의 드팀없는 의지가 어린 말씀이 계속되었다.

『그렇지만 나는 최전방에 있는 조선인민군 초병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생활도 요해하고 그들을 고무하여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최고사령관으로서 병사들이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에나 다 가야 합니다. 동무들은 내가 최전연에 배치되어있는 부대를 자주 현지지도한데 대하여 걱정을 많이 하면서 수령님을 모시던 것처럼 하려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할수 없습니다. 최고사령관은 병사들이 있는 곳에는 그 어디에나 다 가야 합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런 의지를 가다듬으시며 3월 18일에 전선서부에 있는 대덕산초소를 찾으시었다.

일당백」의 고향인 대덕산초소를 찾으신 장군님께서는 33년전 그날에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걸으시며 남기신 거룩한 발자취를 더듬으시며 일당백의 역사와 더불어 우리 수령님께서 쌓으신 위대한 영도업적을 감회깊이 회억하시었다.

그래서인지 초소를 현지시찰하시는 장군님의 표정은 여느때 없이 숙연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먼저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교시판에 이어 「일당백」의 구호가 새겨진 천연바위를 찾으시었다.

구호가 태어나던 역사의 그 날을 추억하시는가, 바위에 구호를 새긴 초소의 옛 주인들을 생각하시는가, 이윽토록 천연바위를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조용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63년 2월 6일 몸소 생눈길을 밟으시며 대덕산초소를 찾으시어 인민군대앞에 「일당백」의 혁명적 구호를 제시하시고 인민군대의 강화발전에서 역사적 의의를 가지는 강령적 교시를 주시었습니다.』

계속하여 장군님께서는 부대에서 「일당백」의 구호를 천연바위에 새기고 그것을 통한 교양사업을 잘하고 있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하시면서 인민군대에서는 앞으로 「일당백」의 혁명적 구호에 담겨진 수령님의 높은 뜻을 받들고 끝까지 관철하기 위한 교양사업을 더 잘하여 모든 군인들을 일당백의 싸움꾼으로 준비시켜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었다.

이어 「일당백」구호바위에서 좀 떨어진 산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지도사적비에로 걸음을 옮기신 장군님께서는 부대일꾼들에게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지도사적비를 아주 잘 만들어 세웠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대덕산은 위대한 수령님과 내가 현지지도한 역사적인 「일당백」구호의 고향인 것만큼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지도사적비를 통한 교양사업을 실속있게 하여 수령님의 군영도업적을 길이 빛내어 나가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감시소에도 오르시었고 병실이며 교양실, 식당과 일일창고 등 모든 곳을 일일이 다 돌아보시었다. 그이께서는 들리시는 곳마다에서 싸움준비와 군인교양에서 나서는 문제들에 대하여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었다.

그리고 군인들의 생활형편을 구체적으로 요해하시면서 일꾼들을 따뜻이 일깨워주기도 하시고 해결책을 밝혀주기도 하시었다.

장군님께서 기념사진촬영을 위해 병실앞마당에 나오시었을 때었다.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하늘에는 먹장구름이 떠돌고 진눈까비가 내려 사위가 어둑어둑했는데 그이께서 촬영장에 나오시자 구름은 온데간데 없고 해빛이 쏟아졌다. 정말 천지조화였다.

이 사실을 두고 훗날 군인들속에서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환한 미소가 사위를 밝혔기 때문이다, 우리 전사들에 대한 장군님의 사랑이 하늘가에 차고 넘쳐 먹장구름을 밀어냈다고 하는 「선군전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기념사진촬영을 끝내고 떠나시기에 앞서 장군님께서는 「일당백」의 고향을 철벽으로 지켜갈 맹세를 다지는 초병들에게 간곡히 말씀하시었다.

『나는 대덕산초소의 모든 전투원들이 최전연초소를 지켜선 전초병의 사명감과 영예를 깊이 자각하고 높은 책임성과 헌신성을 발휘하여 조국의 초소를 철벽으로 지키리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그러시면서 초소를 부탁한다고, 앓지 말고 일을 잘하라고 거듭 격려해주시고 차에 오르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때로부터 불과 한달남짓이 지난 그 해 건군절에 이 부대 지휘부를 또다시 찾아주시었다.

그이께서는 조국의 남쪽대문을 지키고 있는 전초병들이 보고싶어 찾아왔다고 하시면서 조선인민군창건 64돌을 맞이하고 있는 인민군장병들을 열렬히 축하해주시었다. 그러시고는 나는 여기에 오면 「일당백」구호가 제일 마음에 든다, 이 부대에서 「일당백」의 고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더 없는 영광이고 자랑이라고 뜨겁게 말씀하시며 「일당백」의 구호를 영원한 백두산강군의 기치로, 혁명무력의 신념과 의지의 기치로 더 높이 휘날려 나가도록 고무해주시었다.

예로부터 승리는 장막안에서 마련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 장군님께서는 민족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그 어려운 혁명의 난국에 결연히 집무실을 떠나시어 이제는 너무도 눈에 익은 야전복차림으로 폭풍치는 조국수호의 최전선에 자신의 위치를 정하시었다.

최고사령부는 언제나 최전연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