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민족을 사랑하시는 김정일장군」중에서

경애하는 장군님의 겨레를 사랑하시는 위대한 품은 넓고도 넓다. 민족을 사랑하는 그이의 마음에는 끝이 없으시다.

그가 누구이든, 과거에 민족에게 죄를 지었던 사람이라도 통일을 위하고 민족을 위하는 사람이라면 다같이 한품에 안으시어 애국의 길, 통일의 길로 이끌어주시는 태양의 품이 바로 장군님의 품이다.

장군님께서는 통일을 위한 지향과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면 남조선의 정치인이건 경제인이건, 고위당국자이건 대자본가이건 관계없이 품어주고 통일애국을 함께 의논하시는 민족의 대성인이시다.

그러한 예는 남조선현대그룹 정주영에게 돌려주신 사랑에서도 뜨겁게 찾아볼 수 있다.

고향을 북에 둔 정주영은 일찍이 남으로 나가 기업인으로서 성공한 대재벌이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구석에는 언제나 어린시절에 두고 온 북의 고향이 떠나지 않았고 그래서 인생말년에 북행길에 오를 의향을 표시하였다.

이러한 소원을 헤아려주시고 그를 북녘형제들의 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배려를 돌려주신 분은 경애하는 장군님이시었다.

그는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숱한 소들을 이끌고 판문점을 넘어섰으며 북과의 경제협력을 위한 사업에 적극 나서기도 하였다. 그때마다 그의 심중에는  자기에게 그처럼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주시고 온 민족과 세인들이 존경해마지 않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단 한번이라도 만나뵙고 민족의 장래를 부탁하는 인사를 올리고싶은 마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북을 방문하는 기회에 이번에는 장군님을 만나뵙지 않고는 절대로 평양을 떠나지 않겠다고 완강하게 버티고 있었다.

그의 이러한 염원과 절절한 소망을 헤아려주신 분은 장군님이시었다.

주체87(1998)년 10월 30일, 머나먼 현지지도의 길에 계시던 장군님께서는 세번째로 평양에 온 정주영과 그 가족일행을 만나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정주영회장이 다문 몇분이라도 나를 만나야 하겠다고 하면서 내가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이건 찾아가겠다고 한다고 하기에 나는 고령에 있는 분이 나를 찾아오게 해서야 되겠는 가, 내가 가서 만나야겠다고 생각하고 현지지도도중에 오다나니 이렇게 밤늦게야 정주영회장을 만나게 되어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씀하시었다.

너무도 감격한 정주영은 제대로 말씀을 올리지 못하였다. 이러는 그의 긴장된 마음을 풀어주시려고 체류기간에 불편한 점은 없었는 가, 정주영회장이 다리를 불편하게 쓰는 것 같은데 어떻게 되어 그렇게 되었는 가고 다정하게 물어주시었다.

계속하여 장군님께서는 나는 정주영선생이 배짱이 세고 한번 마음먹으면 끝까지 내미는 성미를 가지고 있는 분으로 알고 있다, 나는 남조선기업체 창업주들 가운데서 지금까지 앉아계시는 분은 정주영선생뿐이라고 알고 있다고 말씀하시었다.

긴장되었던 정주영은 그제야 마음의 안정을 찾고 장군님의 말씀에 감사를 드리었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긴장된 마음을 풀어주신 다음 어버이수령님께서 한평생을 다 바쳐 조국통일을 위하여 기울여오신 로고에 대하여, 외세를 배격하고 온 민족이 대단결하여 자주적으로 조국을 통일하기 위한 과업에 대하여 그리고 애국애족의 입장에서 북과 남이 서로 협력을 잘해 나갈데 대하여 그리고 우리 민족이 잘되고 잘살게 하자는 사람들과는 그 누구와도 언제나 손잡고 나갈 것이라는데 대하여 말씀하시었다. 그러시면서 정주영선생은 북에 고향을 둔 사람으로서 자주 평양에 오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시었다.

정주영은 장군님의 손을 꼭 잡은채 놓을줄 몰랐다. 위대한 수령님의 뜻을 이어 민족의 영도자로 높이 칭송받고 있는 장군님의 거룩하고 인자하신 모습을 직접 만나뵈옵고 그분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날 밤 정주영과 그일행은 잠들수 없었다. 장군님의 접견을 받고 나오는 정주영에게 대표단성원들이 일제히 접견이 잘되었는 가고 물었다.

그러자 끝없는 영광을 받아 안은 정주영은 나는 오늘 김정일장군님을 만나뵈웠소라고 하면서 수행원들앞에 엄지손가락을 세워보이며 『과시 김정일장군님은 장군중의 으뜸장군이시야. 김정일장군님을 만나뵈오니 이제는 통일이 다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어』 라고 말하였다.

계속하여 그는 김정일장군님께서 말씀을 어떻게  그렇게 잘하시는지 감탄했다는 것, 남조선에 대해서도 환히 꿰뚫고 계시고 내가 「대통령선거』 에 출마해서 연설을 하였다는 것까지 다 알고 계셨다는 것, 그리고 나라의 통일방안도 명백히 밝혀주시었다는 것, 참으로 배심이 든든해진다는 것 등을 흥분하여 말하였다.

정주영의 상기된 모습과 흥분된 말을 들은 수행원들은 『우리 회장님은 오늘 하느님을 만나셨다.』 라고 하면서 너무 좋아 어쩔줄을 몰라하였다.

정주영은 10월 31일 오후에 판문점을 넘어 남으로 나갔다.

판문점 남측지역에는 수백명의 기자들이 나와 붐비었다. 정주영은 그들에게 김정일장군님께서 자기가 든 숙소에까지 나오시어 만나주시었다는 것과 남북관계와 통일문제에 대한 가르치심을 받은 내용을 남김없이 털어놓았다.

계속하여 그는 장군님께서 예의를 갖춰 대해주어 무척 고마왔다. 장군님께서 언제든지 다시 오라고 하시었으니 언제든지 또 갈 생각이라고 말하였다.

그때 한 기자가 다시 장군님을 만나뵈온 감상에 대하여 묻자 그는 장군님은 『민족공동의 이익을 그 무엇보다 우위에 놓으시며 년로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매우 지성적이고 매혹적인 지도자』 라고 높이 칭송하였다. 또한 그는 『김정일장군님은 제 나라, 제 동포들부터 생각하시는 덕망이 높은 분이시기에 민족의 통일전망도 밝다. 김정일장군님께서 나에게 주신 믿음을 영원히 가슴깊이 간직하고 받들겠다.』 고 말하였다.

자들이 그에게 김정일장군님을 왜 『장군님』 이라고 호칭하는 가고 묻자 그는 온 세상이 다 장군님이라고 하는데 나라고 왜 그분을 장군님이라고 하지 못하겠는 가고 추상같이 말하였다.

북을 방문하고 돌아간 뒤 정주영의 활동에서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그것은 그가 당시 미국대통령이었던 클린턴과 패리가 제기한 면담요청을 거부한 것에서도 나타났다.

정주영은 클린턴이 면담을 요구하자 북에 다녀온 뒤 외부인을 만날수 없을 정도로 심한 감기에 걸였다고 하면서 그것을 거부하였다.

정주영은 남조선당국이 평양방문을 막으려고 하고 미국도 방해를 놀자 『김정일장군님께서 아무때나 오라고 하셨기에 나는 간다.』 고 하면서 단호하게 면박을 주기도 했다.

정주영이 방북길을 틔우자 삼성, 쌍룡, 엘지 등 대회사의 수많은 재벌들이 연이어 북행길에 올랐다.

정주영에 대한 장군님의 사랑은 이에만 그친 것이 아니었다.

장군님께서는 그가 사망하였을 때에는 친히 조전을 보내도록 하시었으며 화환과 함께 조의대표단까지 파견하시는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었다.

오늘 평양에는 정주영의 이름을 단 체육관이 있다. 장군님께서는 조국통일에 바친 그의 수고를 헤아려보시고 새로 일떠선 체육관을 『유경정주영체육관』 이라고 명명해주시고 성대한 준공식을 마련해주시었으며 북과 남의 체육인, 예술인들이 함께 모여 통일행사들을 벌리도록 은정어린 조치를 취해주시었다.

정주영명예회장에 대한 장군님의 사랑은 지금도 계속되는 금강산관광사업과 함께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