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민족을 사랑하시는 김정일장군」중에서


 

수수천년 하나의 지맥으로 잇닿아 있어 자유로이 오가던 이 땅은 외세가 그어놓은 38°선때문에 북과 남으로 갈라졌다. 그래서 북과 남의 우리 겨레는 수십연간 오도가도 못했고 가고 싶던 고장으로도 가보지 못하였다.

관서팔경, 관동팔경은 역사책이나 교과서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이름이고 온 겨레가 그곳을 자유롭게 찾아볼 수 없었다. 남쪽사람들은 조종의 산, 민족의 성산인 백두산을 보고 싶어도 못 보았고 북쪽사람들은 아름답기 그지없는 저 남해의 다도해기슭에도, 제주도에도 가볼 수 없었다.

제 나라, 제땅에서도 오가지 못하였던 이 민족적 불행을 풀어주신 분은 김정일장군님이시었다. 제 나라, 제땅위에서 자유로이 오가지도 못하는 우리 민족의 슬픔을 헤아리신 장군님의 심중은 실로 무거운 것이었다.

주체62(1973)년 어느날 강원도안의 여러 부문 사업을 현지지도하시던 장군님께서는 금강산일대를 돌아보시었다.

수수천년을 다듬어온 신묘한 자태와 절경을 자랑하듯 높이 솟아오른 금강산의 기암괴석들은 그날따라 해빛을 받아 유난히 번쩍거리었다.

끝간데 없이 펼쳐진 절경을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는 뜨거운 말씀을 하시었다.

『오늘 금강산을 돌아보면서 나는 어떻게 하면 이 좋은 경치를 저 남녘땅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형제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 가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예로부터 3천리금수강산으로 불리우던 이 땅,  더구나 세계의 명산으로 이름높은 금강산의 일만경치를 남녘형제들에게 보이지 못하는 현실을 헤아리신 장군님께서는 그것을 기어코 풀어주어야 할 숭고한 의지를 안으시고 마침내 금강산관광의 길을 열어주시었다.

북의 아시아태평양위원회와 남조선의 현대그룹사이의 협약에 따라 드디어 금강산관광이 시작되게 되었다.

금강산지구로 말하면 북과 남의 군사적 대치상태가 매우 긴장되어있는 지역이다. 조국해방전쟁시기에는 1211고지, 351고지를 비롯한 전략적 요충지들이 격전장으로 되었으며 금강산은 그러한 군사요충지들과 연결되어 군사작전상 견지에서 볼 때 북남대결이 첨예한 지역이며 따라서 도저히 관광이 어려운 지역이었다.

그러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헤아리시고 남녘동포들에게 금강산관광길을 열어주시었다. 참으로 그것은 장군님께서만이 하실 수 있는 대결단이었다.

그리하여 북에서도 전연지대로 알려져 있는 고성항이 남녘에 개방되었으며 인민군경비정의 엄호하에 남녘동포들을 태운 대형여객선이 첨예한 해상분계선을 넘어 장전항에 들어오게 되었다. 현대측은 고성항에 장전항을 새로 건설하고 수백대의 관광버스를 이용하며 관광객들을 숙박시킬 수 있는 시설과 교예극장까지 건설하여 이용할 수 있는 특전을 가졌다.

그리하여 남녘인민들은 세계의 명산 금강산에서 관광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남녘동포들에게 돌려주신 사랑은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관광객들의 편리와 현대측의 요구를 고려하여 금강산관광을 육로로도 할 수 있도록 중대한 조치를 취해주시었다.

금강산시범육로관광단이 군사분계선을 횡단하는 또 하나의 경이적인 사변이 일어났다.

각계각층으로 구성된 86명이라는 금강산시범육로관광단이 버스를 이용하여 원한의 분계선을 넘어 금강산구역으로 들어섰다.

이에 대해 미국신문 「로스안젤러스타임스」는 『남북<한>은 요새화된 비무장지대를 관통하는 금강산관광도로의 공식개통으로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었다.』고 대서특필하였다.

남조선의 「CBS」방송은 『금강산사전답사는 민간인이 판문점외의 군사분계선을 통과한 첫번째 사례로 남북교류활성화에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금강산육로관광을 위한 사전답사단 86명이 한꺼번에 분계선을 넘어갔다. 민간인이 판문점을 통해 군사분계선을 넘은 일은 있었지만 판문점외의 군사분계선통과는 이번이 처음이다. 판문점으로는 기껏해야 한두명씩 통과했지 이번처럼 대규모인원이 넘은 것은 역시 처음이다.』고 썼다.

금강산관광이 시작된 이래 벌써 수십만명이 이곳을 다녀갔다. 금강산에서는 관광뿐만아니라 북과 남, 해외가 모여 통일축전도 벌리고 노동자, 농민, 여성, 청년들을 비롯한 계층별 통일대회와 통일토론회, 체육경기들이 진행되었으며 그것으로 하여 금강산은 오늘 북과 남이 하나로 되는 만남의 장소로 되고 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금강산관광뿐 아니라 평양을 다녀오는 남녘의 모든 사람들이 백두산과 묘향산에서 관광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었다.

백두산과 묘향산을 관광한 남녘동포들은 조국산천의 수려함에 감탄을 금치 못해하고 있으며 하루빨리 통일을 이룩해야겠다는 신념을 굳게 가다듬고 있다.

최근에 공화국에서는 또한 개성공업지구의 운영과 관련하여 남조선인민들이 개성지구의 역사유적들을 관광할 수 있는 획기적인 조치도 취하였다.

고려의 수도로서 역사유적이 많이 전개되어있는 개성지구에 대한 관광은 남녘동포들이 그처럼 바라던 소원이었다.

그러나 개성지구는 판문점을 비롯하여 군사적으로도 첨예한 지역으로서 관광같은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곳이었다. 남조선에 분계선을 따라 분열의 콘크리트장벽을 높이 쌓아놓은 조건에서 북이 그것을 허용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6.15시대에 들어와 드높아진 남녘동포들의 통일열기와 개성지구의 유적들을 보고 싶어하는 소원을 헤아리시고 대담하게 개성지구의 판문점길을 열어놓고 남녘동포들이 개성지구 역사유적들을 돌아볼 수 있는 은정어린 조치를 취해주시었다.

참으로 남녘인민들을 생각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은 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