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민족을 사랑하시는 김정일장군」중에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6.15통일시대를 열어주시어 북과 남이 민족적 화해와 협력을 실천으로 옮기는 새로운 역사의 장을 펼쳐주시었다.

이에 대해 남조선잡지 「민족21」 2004년 7월호는 다음과 같이 썼다.

『6.15공동선언이후 4년간의 남북화해협력과 통일의 기운은 막을 수 없는 대세로 굳어졌다. 6.15공동선언 4돌, 우리 민족은 어디까지 와있으며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가. 인천에서 열린 <6.15공동선언 발표 4돌기념 우리 민족대회>에 참가한 남, 북, 해외대표단들은 한마음으로 외쳤다. 이제는 실천으로 나가야 할 때라고.』

민족적 화해와 협력은 원래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한 근본요구이며 민족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서 항시적으로 진행해야 할 민족본연의 사업이다. 그러나 민족이 인위적으로 북과 남으로 갈라져 있은 것으로 하여 그것은 지금까지 이루어질 수 없었다.

이러한 역사적 요구가 6.15시대에 이르러 현실로 실현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저절로 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경애하는 장군님의 하해같은 사랑과 은정에 의해서 마련되게 되었다.

무엇보다 인적 교류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북과 남이 서로 이해하고 화해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게 되었다.

내외의 커다란 관심과 기대속에 2000년 7월 북남사이에 첫 상급회담이 개최되었으며 연이어 당국과 민간급에서 여러 갈래의 대화와 접촉들이 열렸다.

6.15공동선언발표이후에 북남당국사이에는 10여차의 상급회담과 40여차의 경제협력추진위원회 회의 및 각 부문별 분과회의와 실무접촉이 있었으며 10여차의 북남군사당국자들사이의 회담 및 실무접촉을 비롯하여 무려 100여차의 회담과 접촉이 진행되었다. 이것은 북남대화역사에서 전례없는 기록이었다. 그밖에 체육, 문화, 과학 등 분야에서 공동행사와 협역사업을 위한 회담과 접촉들도 폭넓게 진행되었다.

6.15공동선언발표이후 북남사이에 각계각층 인사들이 서로 오가는 큰길이 열려지게 되었다. 역사적인 6.15공동선언이후 2000년 8월에는 남조선언론사대표단이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하고 장군님의 접견을 받는 가장 큰 영광을 지녔으며 그해 10월에는 조선노동당창건 55돌을 계기로 남조선의 14개 정당, 단체대표들과 각계 인사 수십명이 집체적으로 평양을 방문하였다.

체육문화분야에서도 활발한 교류가 진행되었다. 2002년 가을 부산에서 진행된 제14차 아시아경기대회와 2003년 대구에서 진행된 제22차 세계대학생체육경기대회에 북의 선수단과 응원단이 참가하여 민족의 화합과 통일의 열풍을 불러일으켰으며 백두산과 한나산에서 출발한 성화가 하나로 합쳐져 부산과 제주의 경기장봉화대에 지펴지게 되었다. 2000년 8월에는 북의 교향악단이 서울에서 공연하였고 2002년 9월에는 남조선의 「KBS」교향악단과 「MBC」공연단이 평양방문공연을 진행하였다. 2001년 6월 평양에서 민족옷전시회가 진행되었으며 2002년 9월과 10월에 평양과 서울에서는 북남태권도시범단이 출연하였고 평양과 서울, 금강산에서 여러 갈래의 토론회와 사진전시회도 열리었다. 이것은 참으로 6.15이전에는 볼수 없었던 역사적인 사변들이었다.

북과 남의 협력과 교류는 경제분야에서도 활발히 전개되었다.

지난 2002년 9월에는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가운데 동해선, 서해선철도와 도로연결착공식이 진행되었으며 지금 그 개통식을 앞두고 있다.

이를 두고 온 겨레는 대립과 갈등, 분단의 세기를 극복하고 화해와 협력, 통일의 시대를 여는 의미있는 일로, 분단의 철조망과 지뢰밭을 뚫고 통일의 길을 열어놓는 역사적 쾌거라고 하면서 흥분과 격정을 금치 못하고 있다.

더우기 주목되는 것은 외세의 방해책동속에서도 북남사이에 개성공업지구건설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으며 북남경제협력의 「옥동자」로 불리 우는 금강산관광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유서깊은 보통강기슭에 남조선의 애국적 기업가의 이름을 가진 「유경정주영체육관」이 통일애국충정의 상징으로 건설되어 북과 남의 예술인들과 체육인들의 만남의 장소로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남조선의 잡지 「통일한국」(2003년 1월호)은 『세상이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다. 남쪽의 소떼가 무리지어 북으로 가고 남북의 연예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노래와 춤을 추며 민족의 온정을 나누고 있다. 북에서 남쪽에서 진행되는 국제경기대회에 응원단을 파견하여 수만군중들앞에서 남북의 체육선수단을 함께 응원하기도 한다. 그뿐인가. 남북민간단체대표단이 한자리에 모여 통일대회와 문화교류, 단군릉행사 등 다양한 행사를 펼쳐오고 있다. 통일의 보물이 터진 것이다.』라고 지적하였다.

한마디로 말해서 6.15의 뜨거운 통일열풍이 북남사이에 얼어붙었던 첨예한 대결의 얼음장을 녹여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화해와 통일, 협력의 열풍이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를 모시었기에 맞이하게 된 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6.15이후에도 2000년 9월과 2002년 10월 그리고 2004년 6월, 2005년 6월 등 여러차례에 걸쳐 북의 당국대표단과 민간대표단들을 남측에 파견하는 조치를 취하시었으며 북남관계개선과 공동선언이행에서 제기되는 정치, 경제적 문제들과 군사적 담보를 마련하는 문제를 원만히 풀어 나가도록 적극적인 대책을 취하시었다.

2005년 6월에는 남조선의 「통일부 장관」을 비롯한 당국대표단과 통일인사들을 몸소 접견해주시고 통일을 실현하는데서 나서는 원칙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가르치심을 주시었으며 남측에서 온 대표단이 평양에서 진행되는 6.15공동선언발표 5돌기념 민족통일대축전행사를 성과적으로 맞을 수 있도록 각별한 배려를 돌려주시었다.

그리하여 오늘 북남사이의 화해와 협력은 일찍이 있어보지 못한 높은 단계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통일의 그 날은 더욱더 앞당겨지고 있다.

정녕 절세의 위인이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속에 6.15시대가 펼쳐지고 그속에서 북남사이의 화해와 협력은 더더욱 높은 단계에서 발전하고 있다.

민족의 위대한 태양이 있어 민족적 화해와 협력은 더욱더 뜨겁게, 더욱더 힘있게 발전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