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태양 김정일장군」(3) 중에서


 

 

 가장 큰 슬픔의 나날이 흐르던 그때부터 우리 나라에서는 붉은기가 더욱더 숲을 이루며 설레었다. 어디에 가나 붉은기가 휘날렸다.

사람들의 가슴에 뜨거운 정감을 불러일으키는 붉은기, 한평생을 붉은기를 휘날리며 조국의 광복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혁명의 가시덤불길을 헤쳐오시었고 오늘도 금수산기념궁전에서 한폭의 붉은기를 감싸 안으시고 영생하시는 어버이수령님.

가슴터지는 슬픔과 뼈를 어이는 상실의 아픔속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영구를 금수산의사당에 정중히 안치하던 그날 밤이었다. 수령님의 영구앞에서 점도록 비통한 심정에 잠겨 계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한 일꾼에게 준비한 붉은 기폭을 가져오라고 조용히 이르시었다. 그 일꾼은 북받치는 오열을 간신히 누르며 가져온 붉은 기폭을 그이께 정히 펼쳐드리었다.

붉은기, 화전의 언덕에서 높이 치켜드시었던 역사의 그날로부터 어버이수령님께서 세기의 만고풍상을 겪으시며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휘날려오신 혁명의 기치, 그 붉은 기폭을 이윽토록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이 붉은 기폭을 수령님을 따라 한생을 총대와 함께 혁명의 천만리길을 헤쳐온 항일의 노투사들이 영구에 덮어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나직이 말씀하시었다. 하지만 그이의 심중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투사들은 이 붉은 기폭은 주체위업의 상징인데 그 위업을 계승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반드시 덮어드려야 한다고 절절히 말씀올렸다. 그것은 전체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의 한결같은 심정이기도 하였다. 그러자 그이께서는 그러면 함께 덮어드리자고 하시면서 위대한 수령님을 따라 홍안의 젊은 시절부터 총대로 붉은기를 지켜온 항일의 노투사들과 함께 어버이수령님께 정중히 덮어드리시었다.

그후 장군님의 뜻을 담아 노래 「높이 들자 붉은기」가 창작되었다. 역사의 준엄한 언덕에서 군대와 인민을 전진과 승리에로 부르는 신념의 노래였다.

백두의 성스런 붉은 기발엔

수령님의 한생이 어리어있다

높이 들자 붉은기 맹세로 불타라

장군님을 따라서 휘날려가리라

역사의 준령을 헤쳐넘으며

승리만을 기폭에 새기어왔다

높이 들자 붉은기 신념의 이 기발

장군님을 따라서 휘날려가리라

이 기발 들고서 당을 받들고

이 기발 지키며 내 조국 빛내리

높이 들자 붉은기 주체의 한길에

장군님을 따라서 휘날려가리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 노래가 처음 나왔을 때 좋은 노래가 나왔다고 못내 기쁨을 금치 못하시었다. 그이께서는 나는 특히 가사에서 「백두의 성스런 붉은 기발엔 수령님의 한생이 어리어 있다」와 「승리만을 기폭에 새기어 왔다」는 구절이 제일 마음에 든다, 우리는 이 노래를 통해서도 혁명가의 일생은 붉은기를 휘날려가는 것으로 되어야 한다는 각오를 가지게 된다, 이 노래는 나의 이상을 담고 있으며 우리 공산주의자들에게 힘과 신심을 주고 있다고 말씀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그후 또다시 이 노래의 가사와 곡이 밀착되었다, 그전에 「동지애의 노래」가 나왔는데 이번에 또 좋은 노래 「높이 들자 붉은기」가 나왔다고 거듭 치하하시면서 「5월의 모스크바」라는 소련노래는 낭만이 있지만 이 노래에는 결의가 있다, 우리는 한다면 한다는 결의가 있다, 이 노래에는 낭만도 있고 투지도 있다, 노래를 정말 잘 지었다, 이 노래를 부르면 우리는 조밥에 된장을 찍어 먹어도 혁명을 해야겠다는 각오가 생긴다고 열정에 넘쳐 말씀하시었다.

장군님께서 어찌하여 이 노래를 그토록 사랑하시는 것인가.

붉은기는 간고한 혁명과 불굴의 투쟁을 상징하는 것으로 되어왔다. 프랑스노동자계급이 파리콤뮨의 진두에 치켜든 기발도 붉은기였고 러시아 10월혁명이 대오의 선두에 휘날린 기발도 붉은기였다. 그 붉은기는 인간의 존엄과 자주적 권리가 실현된 새 세상, 새 제도에 대한 갈망, 혁명의 승리와 미래에 대한 낙관을 표시하였다.

인류의 해방을 위한 혁명투쟁역사에 처음으로 태여난 주체의 붉은기는 우리 수령님께서 백두에서 개척하신 주체혁명위업을 상징하여 나붓기는 기발이다. 「ㅌ.ㄷ」와 함께 수령님께서 치켜드신 그 기치가 근 70년의 긴긴 세월 시련의 연대와 연대를 넘어 승리만을 기폭에 새기어 왔다.

하여 우리의 붉은기는 가장 성공한 혁명, 가장 이상적인 사회주의의 상징으로 불리우고 있으며 적들의 도전이 우심해 질수록 더욱 기세차게 휘날리고 있다.

제국주의연합세력의 끈질긴 발악에 편승해서 이전날의 우방들까지 저들처럼 붉은기를 내리우고 「개혁」, 「개방」의 길에 들어설 것을 권유할 때 더 높이 치켜든 주체의 붉은기.

나에게서 그 어떤 변화를 바라지 말라, 붉은기는 나의 혁명철학, 인생철학이다, 노래 「높이 들자 붉은기」는 장군님의 이 철의 선언을 안고 불리워 졌다. 그 어떤 천지풍파가 몰아친대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넘겨주신 혁명의 붉은기를 이 세상 끝까지 휘날려갈 장군님의 신념과 의지를 그대로 반영한 붉은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의 유훈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붉은기를 더 높이 치켜들고 나아가는데서 인민군대가 기수가 될 데 대하여 가르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사회주의가 붕괴된 이전 소련의 사태를 놓고 인민군지휘성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소련은 군대가 비사상화, 비정치화되고 공산당원들이 레닌이 선택한 사회주의 붉은 기치를 끝까지 고수하지 못했기 때문에 망했습니다.

투쟁과 희생이 없는 승리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혁명의 붉은기를 더욱 높이 치켜들고 수령님께서 선택하신 우리 식 사회주의, 수령님께서 세우신 우리 식 사회주의제도를 끝까지 지켜야 합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85(1996)년 2월 인민군지휘성원들에게 지금 우리는 매우 어렵고 복잡한 환경속에서 혁명과 건설을 전진시켜 나가고 있다,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은 사회주의보루인 우리 공화국을 고립압살하려고 갖은 발악을 다하고 있으며 나라의 경제사정도 매우 긴장하다, 그러나 우리가 혁명이 어렵다고 하여 그 길에서 한걸음이라도 물러서거나 주저앉아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었다.

우리는 그 어떤 역경과 시련속에서도 혁명의 붉은기를 절대로 내리우지 않을 것이며 억천만번 죽더라도 원쑤를 치고 조국을 통일하며 주체의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할 것입니다. 이것이 조선의 배짱이고 의지입니다.

혁명의 총대에 의거하여 사회주의수호의 붉은기, 주체위업완성의 붉은기를 더욱 기세차게 휘날려가시려는 의지의 선언이었다.

혁명의 상징인 붉은기는 말공부나 맨주먹으로는 절대로 지킬 수 없다. 적에게는 용서를 모르고 혁명에는 배신을 모르는 정의의 총검만이 붉은기를 옹호할 수 있고 붉은기의 충실한 동행자, 불굴의 기수가 될수 있다.

그러자면 인민군대자체가 완전히 붉어야 한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우리는 인민군대를 붉은색으로 일색화하여야 하며 그안에 회색이나 황색같은 잡색이 0.001%도 침습하지 못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위대한 장군님의 이 말씀은 인민군대가 붉은기를 높이 치켜드는 데서도 앞장서고 붉은기를 지켜 나가는 데서도 앞장서도록 하기 위한 가르치심 이었다.

장군님께서는 이러한 의도로부터 어버이수령님 서거이후 나라의 첫 대회로 조선인민군 제9차 선동원대회를 성대히 진행하도록 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피눈물의 해를 보내고 맞이한 주체84 (1995)년 정초에 조선인민군 제9차 선동원대회를 진행하여 인민군대안의 선전선동일꾼들 뿐 아니라 전체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을 당창건 50돌, 조국해방 50돌이 되는 새해벽두부터 수령님의 유훈관철을 위한 투쟁에로 총궐기시키는 계기가 되도록 하시었다.

그리하여 온 나라 방방곡곡에서 당, 정권기관 일꾼들이 군중들과 함께 인민군선동원대회참가자들을 열렬히 축하해주고 평양에서도 연일 환영의 꽃바다가 펼쳐지며 대회분위기가 고조된 가운데 1월 26일 조선인민군 제9차 선동원대회가 개막되었다. 온 대회장은 붉은기로 일색되었다. 대회를 계기로 전군, 전국이 부글부글 끓어 번지도록 이끌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의 정이 뜨겁게 굽이쳤다.

대회가 끝난 1월 30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인민군지휘성원들에게 이번에 조선인민군 제9차 선동원대회가 높은 정치사상적 수준에서 진행되었다, 선동원대회와 같은 대회는 우리 당에서만 할 수 있다고 하시며 이번에 우리가 조선인민군 제9차 선동원대회를 조직한데 대하여 온 세계가 떠들었으며 특히 적들이 신경을 많이 썼다고 말씀하시었다.

조선인민군 제9차 선동원대회가 세상에 일으킨 파문은 대단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서거하시자 전대미문의 곡성과 슬픔의 눈물속에 잠긴 우리 나라를 각이한 눈길로 주시하던 세계는 새해벽두에 진행된 인민군대  대회에 대하여 제나름의 견해와 평을 달아 광범히 보도하였다.

서방의 한 통신은 「북조선에 별안간 이채로운 광경이 펼쳐졌다. 무엇 때문인지 방송차를 앞세운 군대트럭행렬이 수도의 거리를 아침저녁으로 휩쓸며 시민들을 선동하고 있다. 버스며 트럭마다 붉은 기발이 꽂혀있어 군대의 변함없는 사회주의고수의지가 그대로 시위되는 가운데 길가던 시민들도 멈춰서 손을 흔들며 열렬한 찬동의 뜻을 표한다. 올해 정초 김정일영도자의 첫 공식활동보도로 군부대방문보도가 전해진 뒤 이어 펼쳐진 북조선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공세적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눈물의 바다에서 불현듯 거대한 폭발이 인듯 싶다. 그 충격파가 그들고유의 사상에 어떤 에네르기를 발산할지, 어쨌든 수도에서 열린 군대집회가 일으킨 충격파라는데 새롭게 주목하게 되는 요점이 있다.」라고 보도하였다.

우리의 정책동향, 특히 군대의 움직임에 신경을 도사리던 적들은 「아무런 시정표명도 없는 북조선」이 별안간 인민군선동원대회를 소집하여 사상의 「대폭발」을 일으켰다고 하면서 금후 「북의 정치동향은 군의 강경자세를 배경으로 할」것이라고 아우성쳤다.

위대한 장군님의 구상과 의도에 따라 진행된 조선인민군 제9차 선동원대회는 전체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을 사회주의붉은기수호전에 궐기시킨 선군혁명 최고사령부의 포성이었다.

조선인민군 제9차 선동원대회를 계기로 온 나라에 혁명적 진격의 된바람이 일어 번졌으며 사회주의붉은기수호의 열풍이 몰아쳤다.

온 사회가 붉은기숲을 이루었다. 주체84(1995)년 10월 10일 조선노동당창건 50돌경축행사는 붉은기로 일색화된 속에 치르어졌다.

당창건 50돌경축 조선인민군 각급 군사학교, 근위부대, 노농적위대, 붉은청년근위대열병식과 100만군중시위 그리고 평양시 청소년학생 5만명이 출연하는 집단체조 「주체사상의 기치따라 영광의 50년」이 공연되고 밤에는 평양시 청년학생들의 야회 및 10만명 횃불행진이 진행되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당창건 50돌경축 열병식과 군중시위, 집단체조, 야회와 횃불행진이 다 잘되었다고 만족을 금치 못하시며 열병식이 조선인민군의 불패의 위력을 시위한데 대하여, 횃불행진이 조선청년들이 주체혁명위업의 믿음직한 계승자라는 것을 뚜렷이 보여준데 대하여, 전군, 전민이 노래 「높이 들자 붉은기」를 부르며 최고사령관앞에 끝까지 충직할 것을 굳게 맹세다진데 대하여, 당창건 50돌 경축행사들이 조선노동당의 조직력을 힘있게 시위한데 대하여 높이 평가하여 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당창건 50돌행사를 성과적으로 치른 다음날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우리는 비겁한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기를 지키리라는 <적기가>의 가사와 같이 당을 따라 혁명의 길을 꿋꿋이 걸어 나가야 합니다. 나는 우리 혁명이 반드시 승리하리라고 확신합니다. 우리는 혁명의 길에서 절대로 물러서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당창건 50돌을 맞으며 장군님께서 수령님앞에,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앞에 다지신 맹세이기도 하였다.

90년대의 「적기가」인 「높이 들자 붉은기」는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위업을 변함없이 계승완성하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결심과 의지를 새겨가며 힘차게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