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태양 김정일장군」(3) 중에서


 

 

 세계는 우리 나라에서 있게 될 추대사업에 주목을 돌렸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수령님 생전에 유일한 후계자로 계셨으니 조선노동당 총비서로, 국가주석으로  공식 추대되시리라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었다.

그런데 날과 달이 바뀌고 해가 지나도 추대사업은 진행되지 않았다. 어찌된 일인가, 세계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였다. 사실 어느 나라나 국가수반이 타계하면 의례히 추대사업이 있기 마련이다. 통례로 영결행사가 끝나면 며칠사이에 새 지도자를 내세웠다. 세계사회주의운동과 사회주의나라들에서도 국가수반이 서거한 다음에 정치적 공백으로 하여 발생할 수 있는 불미스러운 사태를 막기 위해 후임을 정하는 사업을 다그쳐 진행하였다. 1883년 3월 노동자계급의 첫 수령이었던 마르크스의 묘앞에서 조상을 한 엥겔스가, 1924년 1월 크레믈리궁전에서 레닌과의 영결사를 한 스탈린이, 1953년 3월 같은 장소에서 스탈린과의 영결사를 한 말렌코프가 선대수령이 맡았던 공직을 다그쳐 넘겨받았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 어떤 국제적인 관례에도 구애되지 않으시고 어떻게 하면 위대한 수령님을 영원히 높이 우러러 모시겠는가 하는 하나의 생각으로 가슴을 불태우시었다. 사실 우리 군대와 인민은 경애하는 장군님을 당과 국가의 수반직에 공식 모실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것은 위대한 수령님과 꼭같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만이 우리 당과 군대, 국가를 현명하게 영도하실 수 있다는 것을 지나온 생활체험을 통하여 간직한 신념에 기초한 것이었다. 인민의 마음은 벌써 그이를 당과 국가의 최고수위에 공식 추대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세상사람들은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서거하신지 100일이 지나고 한해, 두해가 지났으나 추대사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데 대해 놀라와 하면서 억측도 하고 웃지 못할 일도 벌이었다.

주체83(1994)년 11월 9일에 있은 일이다. 아침 10시에 조선중앙방송은 낮 12시에 중대방송이 있다는 것을 반복하여 예고하였다. 이에 따라 세계의 주요통신, 방송들이 평양에 파장을 맞추고 귀를 기울이었다.

이때 남조선에서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남조선당국자는 북의 「추대발표」라고 예측하고는 「국방부 장관」을 불러 그 경우 남조선인민들과 청년학생들의 움직임과 반응이 우려되니 「대기태세」에 들어가라고 호통질을 했다. 그런가 하면 「안기부」나 「국방부」, 「통일원」에서는 제딴의 추측과 판단, 해석을 가하며 옥신각신 입씨름질을 하고 있었다. 「안기부」는 당국자의 말을 되받아 「추대」가 있을 것이라고 떠들었고 「국방부」는 북에서 「전국, 전군, 전민이 동원태세에 들어 갈데 대한 최고사령부보도」가 발표될수 있다고 하면서 대응책마련에 골몰했다.「통일원」은 그들대로 「국방부」의 예측을 전면부정하고 남조선당국자가 제기한 「남북경제협력방안」에 대한 답변형식의 「북의 제안」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그들이 엇갈린 「예측」소동을 벌이며 얼마나 불안에 싸여있었는가 하는 것은 남조선당국자가 회담차로 찾아온 미국무장관이 응접실에 들어서기 바쁘게 외교관례나 체면도 다 줴버리고 이제 있게 될 「북의 중대방송」이 무슨 내용인가고 물어본데서 여실히 드러났다.

이런 가운데 12시가 되자 조선중앙방송으로 평양시에 청류다리(2단계)와 금릉2동굴을 건설할데 대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이 발표되었다. 그러니 남조선당국자들의 억측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고 말았다.

세계 진보적 인민들은 물론 서방의 부르조아정객들도 우리 나라에서 당과 국가수반추대행사를 미루어오는데 대하여 놀라움을 금치 못해하면서 이것을 『세계정치사에 전무후무한 일』, 『정치계는 물론 실업계인물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사변』, 『선대수령에 대한 세계적인 경탄을 자아내게 하는 인륜도덕』이라고 평하였다.

실제로 우리 나라에서 추대사업이 오래동안 미루어지고 있은 이 사실은 인류사에 류례가 없는 사변이었다.

민족의 대국상을 당하였을 때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장병들, 인민들은 경애하는 장군님을 당과 국가의 최고수위에 하루빨리 공식적으로 모실 열망에 넘쳐있었다. 그 소망을 담은 편지를 매일과 같이 당중앙위원회에 보내왔다.

주체83(1994)년 7월 20일 낮 어버이수령님의 서거 중앙추도대회를 마치고 집무실에 돌아오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상실의 아픔과 겹쌓인 피로를 참으시며 밤깊도록 사업에 전념하시었다.

7월 21일 새날이 잡혔건만 잠을 이룰 수 없으신 그이께서는 평양시내를 돌아보시고 집무실에 다시 돌아오시어 당중앙위원회 어느 한 부서 책임일군을 찾으시었다.

그때 그 부서에서는 당중앙위원회 지도기관선거와 국가지도기관선거를 인차 진행하고 경애하는 장군님을 당과 국가의 최고수위에 공식추대하기 위한 준비사업을 하고 있었다.

일군과의 담화과정에 그 문제를 포착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방금 시내를 돌아보신데 대하여 말씀하시고 나서 인민들의 마음속에서 수령님과 애석하게 영결한 비애의 감정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조건에서 추도대회가 끝나자마자 인차 당지도기관선거나 국가지도기관선거를 하는 것은 좋을 것 같지 않다고 말씀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고서야 일군은 그이의 숭고한 뜻을 깨닫고 머리를 숙이었다.

그러는 그에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께서 갑자기 서거하시였지만 우리 나라는 안정되어있고 어제 추도대회에서 결의한 것을 보아도 모든 것이 명백한데 다른 나라들처럼 공석을 빨리 메꾸는 식으로 당지도기관선거와 국가지도기관선거를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하시면서 당, 국가수반추대준비사업을 그만두도록 단호히 말씀하시었다.

추대사업에 대한 제의는 어버이수령님 서거 100일중앙추모회가 있은 10월 16일에도 제기되었다.

그날 중앙추모회가 끝나자 당중앙위원회 정치국의 한 성원이 이제는 경애하는 장군님을 당과 국가의 최고수위에 공식추대하는 행사를 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 보고를 받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애도의 곡성이 환호성으로 바뀌어져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하시며 엄하게 만류하시었다.

그이께서는 이날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에게 수령님께서 우리곁을 떠나셨으니 당과 국가지도기관을 새로 구성하는 추대사업을 빨리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의견들이 제기되지만 우리는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으며 또 그렇게 할 필요도 없다고, 수령님을 높이 받들어 모시는 우리의 숭고한 도덕관의 견지에서 보아도 당과 국가지도기관을 새로 구성하는 사업을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추대사업은 위대한 수령님을 생전의 모습대로 영원히 모시는 사업을 해놓은 다음에 하여야 합니다. 수령님의 영구앞에서 인민들이 목놓아 울던 비분이 아직도 가슴속에 그대로 남아있는데 당과 국가지도기관을 새로 선거하고 만세를 부르는 것은 전사의 도리가 아닙니다.』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여 우리는 추대사업을 놓고 신경을 쓸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혁명위업을 옹호고수하고 빛나게 계승완성하겠는가 하는데 대하여서만 머리를 써야 한다고, 우리는 오직 수령님께서 걸어오신 혁명의 한길로만 변함없이 걸어가야 하며 수령님의 위업을 수행해 나가는데 모든 힘을 집중하여야 한다고 절절하게 말씀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나는 언제나 자신을 수령님의 전사로 생각하여 왔다고 하시고 우리는 수령님을 생존해계실 때보다 더 잘 그리고 영원히 높이 받들어 모심으로써 세상사람들에게 공산주의자들이 어떤 도덕관을 가지고 자기 수령을 받들어 모셔야 하는가 하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가장 고상한 공산주의도덕을 고수하고 더욱 빛내이며 수정주의자들과 사회주의배신자들에 의하여 어지럽혀진 공산주의도덕을 국제적 범위에서 복구하는데 적극 이바지하여야 한다고 간곡히 가르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날의 말씀은 우리의 추대사업이 어버이수령님을 영원한 수령으로 높이 모시며 수령님의 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완성하는 것이 혁명의 운명과 직결된 중대한 문제라는 것을 밝혀준 강령적인 가르치심이었다. 그것은 숭고한 혁명적 도덕관에 기초한 수령영생위업계승완성에 관한 지침을 밝히신 것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 위대한 사상으로 우리 군대와 인민들을 고무하시면서 어버이수령님의 영생위업계승완성을 위한 투쟁에로 힘있게 이끌어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지구의 한쪽에서는 혁명의 배신자들이 노동자계급의 수령을 모독하는 온갖 비열한 행위를 다 감행하고 있고 지어 선대수령의 동상마저 경매에 붙이는 추악한 짓까지 거리낌없이 벌여놓고 있을 때 무엇보다도 어버이수령님을 생전의 모습으로 영원히 모시기 위한 사업을 제일사업으로 내세우시고 몸소 진두에서 이끌어주시었다.

그리고 장군님께서는 혁명의 주력군인 인민군대를 앞장에 내세우시고 전당, 전국, 전민이 어버이수령님의 유훈관철투쟁을 힘있게 벌여 나가도록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시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서거하신 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하신 모든 일은 추대사업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수령님의 권위를 더욱 철저히 옹호보장하고 수령님의 업적을 더욱 빛내이며 수령님의 영상을 더 밝게 모시는 일이었다.

몽상의 나날 어버이수령님께서 인민들속에 함께 계시는 300여상의 사진을 당보에 내려 보내주시어 3년세월 글과 함께 편집하도록 하시고 수령님의 위대성을 생동한 화폭으로 보여주는 영화문헌들을 최상의 수준에서 완성하여 TV로 연속 방영하도록 하신 분이 다름아닌 경애하는 장군님이시었으며 여러 기회에 수령님의 육성교시를 방송하도록 조치를 취해주신 분도 바로 우리의 장군님이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처럼 뜨거운 충정과 숭고한 도덕의리에 의하여 우리 인민의 마음속에는 오직 어버이수령님의 위대한 태양상과 거룩한 음성만이 가득차게 되었으며 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신념이 심장깊이 자리잡게 되었다.

피눈물의 언덕에서 어버이수령님을 끝없이 흠모하고 받드는 고결한 사상감정과 정신도덕적 풍모를 온 세상에 남김없이 과시한 우리 군대와 인민들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수령영생위업에 관한 위대한 뜻을 심장에 새기고 그 빛나는 실현을 위하여 한결같이 떨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