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태양 김정일장군」(3) 중에서


 

 

  수령님을 생전의 모습대로 모실 기념궁전내부와 함께 궁전광장이며 외랑, 울타리, 운하와 다리, 궤도전차노선, 수목원 등 궁전외부와 주변도 새로 건설해야 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 거창한 공사에 인민군대의 정예부대를 불러주시어 그들에게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었다.

주체83(1994)년 11월 6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인민무력부의 한 책임일꾼을 전화로 찾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그에게 금수산의사당 광장공사에 인민군군인들을 동원시키자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 가고 물으시었다.

그는 금수산의사당 광장건설을 위대한 수령님의 아들딸들인 우리 인민군대가 응당 맡아 해야 할 일이라고 힘차게 대답올렸다.

그의 대답을 들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대단히 만족해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인민군대에서 금수산의사당 광장공사를 위한 조직사업을 잘하여야 하겠습니다. 금수산의사당 앞마당을 광장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이번에 위대한 수령님의 서거 100일중앙추모회를 금수산의사당 앞마당에서 하였는데 앞으로 금수산의사당 광장에서 행사를 많이 하여야 합니다. 다음해에 위대한 수령님의 서거 1돌 추모행사도 금수산의사당 광장에서 하여야 합니다.』

장군님의 말씀을 받아 안으며 일꾼은 그이께서 광장건설을 결심하시고 발기하시던 그날의 일이 되새겨져 눈굽이 뜨거워 났다.

그날은 위대한 수령님서거 100일중앙추모회가 엄숙히 거행된 10월 16일 저녁이었다.

장군님께서는 금수산의사당의 어느 한 방에서 일꾼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심중한 어조로 중앙추모회에 참가했던 사람들속에서 어떤 반영이 있는 가고 물으시었다. 한 일꾼이 행사때 제기된 반영들과 의견들을 보고 드렸다. 그 일꾼은 의사당앞마당이 지역상제한을 받다보니 일부 사람들이 잔디를 밟아놓았는데 앞으로의 행사때에도 걱정이 된다고 말씀드렸다.

이날 추모행사가 진행된 금수산의사당 앞마당에는 10여만의 군중이 모였다. 정문앞 공지와 분수터 도로양옆은 물론 좌위에 펼쳐진 드넓은 정원의 잔디밭위에까지 사람들이 꽉 들어찼다. 추모회참가자들은 날이 갈수록 못견디게 그리워지는 수령님에 대한 생각으로 저저마다 발돋움하며  수령님께서 계시는 의사당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그러다 보니 잔디밭들이 못쓰게 되었다.

일꾼의 말을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잠시 동안을 두시었다가 잔디가 귀중한 것이 아니라 어버이수령님을 그리워하는 인민들의 그 마음이 더 귀중한 것이라고 가볍게 나무람하시고 나서 말씀을 이으시었다.

『아무래도 광장을 하나 꾸려야 하겠습니다. 행사때마다 군중을 잔디밭위에 세울 수야 없지 않습니까. 금수산의사당앞을 모두 광장으로 꾸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수령님을 그리워하며 언제나 몸가까이 뵙고싶어 하는 우리 군대와 인민들의 심정을 담아 금수산의사당 앞마당을 광장으로 꾸리실 발기를 하시었던 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으로부터 전화로 인민군대에 주신 광장건설임무를 받으며 그날의 일을 뜨겁게 돌이켜보는 인민무력부의 책임일꾼은 장군님의 구상과 의도에 맞게 광장공사조직사업을 잘해 나가겠다고 말씀올렸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자신께서 어제 현지에 나가 공사대상을 직접 확인하고 해당 단위들에 구체적인 임무를 분담해주었다고 말씀하시면서 『인민군대에서는 금수산의사당 앞마당 좌측과 우측에 있는 잔디를 다 들어내고 김일성광장처럼 돌포장을 하여야 합니다.…

방대한 공사인데 신심이 있습니까.』라고 물으시었다.

일꾼은 지금까지 우리 인민군대에서는 당에서 준 과업을 단 한번도 못해낸 적이 없었다고 하면서 무조건 끝까지 해내고야 말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그의 대답에서 인민군대의 전투적 기상을 읽으신 장군님께서는 『좋습니다. 나나 동무나 위대한 수령님의 제자들입니다. 그러니 의사당건설은 인민군대가 마땅히 해야 할 본분입니다.』라고 힘주어 말씀하시었다.

순간 일꾼은 크나큰 격정에 휩싸였다.

수령님의 제자! 이것은 그 하나만이 아닌 인민군군인들모두에게 안겨주신 최상의 믿음이며 최대의 영광이었다.

일꾼이 이런 생각에 싸여있는데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에서 전군의 본보기로 자랑높은 어느 한 정예부대의 이름을 불러주시며 그 부대 군인들을 동원시키는 것이 제일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하시었다.

그이께서 말씀하시는 그 부대로 말하면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조직해주시고 친히 부대명칭까지 달아주신 부대였다. 그 부대는 20여년전 경애하는 장군님의 부르심을 받고 금수산의사당건설에 동원되어 영웅적기개를 남김없이 발휘하였었다.

장군님께서는 말씀을 계속하시었다.

『금수산의사당 광장공사는 인민군대가 맡아하였다고 하여야 후에 광장건설에 대하여 말하기도 좋습니다.』

군대를 자랑스럽게 내세우시려고 하시는 말씀이었다. 그러시면서 장군님께서는 공사진행순차와 방법, 자재보장대책, 군인들의 숙식조건 등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하여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고나서 금수산의사당 광장공사에 참가할 부대들은 자신께서 제일 믿고 파악있는 정예부대이기때문에 공사를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거듭 믿음과 기대를 표시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전화말씀은 끝났으나 일꾼은 오래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일 줄을 몰랐다. 인민군대에 대한 장군님의 믿음과 은정이 너무나도 커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크나큰 믿음을 받아안은 정예부대군인들은 한달음에 공사현장에 달려왔다. 그들은 11월 17일 금수산의사당 앞마당에서 군인궐기모임과 착공식을 가지고 그 자리에서 공사에 들어갔다.

군인건설자들은 찬비가 내리는 불리한 날씨조건에서도 2∼3일간은 걸릴 것으로 보던 잔디 떠옮기는 작업을 하루사이에 해제꼈다. 그들은 강추위속에서도 중단없이 공사를 진행해 나갔다.

이러한 때인 주체84(1995)년 1월 30일 오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의사당광장건설장에 나오시었다.

그이께서는 현장지휘일꾼에게 공사를 많이 하였다고  치하해 주시고 나서 건설장을 둘러보시었다. 건설장은 강추위속에서도 웃동을 벗어던지고 비지땀을 흘리며 청암반을 까내는 군인들, 들것에 혼석을 가득 담아싣고 내달리는 군인들, 재빠르게 손을 움직이며 혼석을 펴고 다짐하는 군인들로 부글부글 끓었다.

군인건설자들의 작업모습을 한동안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금수산의사당 광장공사를 질적으로 하여야 하겠습니다. 금수산의사당 광장공사에서는 질을 보장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금수산의사당 광장공사를 올해 4월 15일까지 끝내겠다고 하는데 조급하게 서둘지 말고 기간이 좀 걸리더라도 질적으로 하여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서거 1돌행사를 7월초에 하기 때문에 금수산의사당광장 공사를 5월말까지 끝내도 일없습니다.』

광장공사에서 나타나고 있는 편향들을 환히 꿰뚫어보고 하시는 말씀이었다. 그때 군인건설자들은 수령님탄생기념일인 4월 15일까지 공사를 끝낼 목표를 세우고 낮과 밤이 따로 없는 돌격전을 벌리고 있었다.

지휘일꾼들은 속도에만 치우치다 나니 일부 작업장들에서 질을 높이지 못하여 그이께 근심을 끼쳐드리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머리를 들 수 없었다.

장군님께서는 광장바닥공사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주석단공사에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세심한 가르치심을 주시었다.

어느해보다도 모질게 계속된 이해 1월의 강추위도 무릅쓰시고 기념궁전건설장에 나오신 장군님께서는 사판을 보아주시면서 주석단은 광장에 모인 군중에게 접근시켜 거리가 가깝게 하여야 한다고, 그래야 주석단에서 군중과의 교감이 잘될 수 있다고 가르치심을 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궁전광장의 돌포장과 궁전외랑건설을 비롯한 태양의 성지를 완벽하게 꾸리기 위한 사업을 계속 힘있게 밀고 나가시었다.

궁전광장의 돌포장공사는 콘크리트포장을 한위에 화강석으로 돌포장을 하는 것이고 외랑건설은 수령님을 뵈오려고 기념궁전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눈비를 맞지 않게 하기 위하여 유개를 씌운 외랑신설공사였다. 이 공사들은 기술적인 면에서와 양적인 면에서 매우 복잡하고 방대한 작업이었다.

군인건설자들은 70여만개의 크고작은 여러가지 색깔의 정교한 돌로 방대한 면적의 돌포장공사를 규모있고 섬세하게 완공하였다. 그리고 야외부분과 옷보관실, 직선부분과 지하부분을 포함한 궁전외랑을 우리 식으로 훌륭히 건설하였다. 또한 날아가는 학을 조각형상한 화강석돌울타리와 대원수별을 형상한 돌정문을 무게있게 세워 기념궁전의 품위를 더한층 높이였으며 궤도전차로선, 운하와 다리를 짧은 기간에 최상의 수준에서 건설하였다.

이 모든 것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몸소 불러주신 인민군대의 정예부대군인들이 해놓았다.

혁명의 영도자가 전사들에게 주는 믿음은 우주를 주는 것과 같은 크나큰 믿음이다. 영도자의 믿음은 전사들의 생에 활력을 주는 영양소로, 투지와 용맹을 주는 힘의 원천으로 된다. 장군님의 크나큰 믿음이 있어 정예부대군인들은 일당백으로 다져진 투지와 용맹을 남김없이 발휘할 수 있었다.

이렇듯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주체의 최고성지건설에 인민군대의 정예부대를 믿고 내세워주심으로써 어버이수령님의 영생위업수행에서 인민군대가 주력군으로서 또 하나의 중요한 몫을 담당수행할 수 있었다.

장군님 계시어 금수산기념궁전, 태양의 성지는 인민의 기념궁전으로 되었다.

장군님께서는 기념궁전을 주체의 최고성지답게 꾸리신 다음에는 어떻게 하면 모든 사람들이 금수산기념궁전을 참관할 수 있게 하겠는 가 하는데 깊은 관심을 돌리시었다.

주체85(1996)년 7월 2일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금수산기념궁전을 돌아보시다가 일꾼들에게 지난 한해동안의 기념궁전참관정형을 요해하시었다. 많은 사람들이 참관했으나 참관조직사업에서 일부 편향이 있었다. 이것을 헤아리신 장군님께서는 일꾼들에게 참관조직사업을 잘할 데 대하여 일깨워주시면서 금수산기념궁전은 만민의 어버이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생전의 모습대로 계시는 성지인 것 만큼 누구나 다 찾아와 수령님을 뵈올수 있도록 해주시었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금수산기념궁전은 인민의 기념궁전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수령님께서 영원한 인민의 수령으로 영생하실 수 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기념궁전을 개방하여 많은 군중이 찾아와 붐비도록 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명절때마다 광장문을 활짝 열어놓아 가정단위로도 오고 기관, 기업소단위로도 오게 하고 군인들과 청소년들이 분열행진도 하게 하며 기념궁전을 배경으로 사진도 마음대로 찍게 할 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었다.

장군님의 은정어린 가르치심에 따라 기념궁전을 찾는 사람들의 대하가 굽이쳐 흘렀다.

그런 가운데 금수산기념궁전광장에서는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시고 수령님탄생 85돌과 조선인민군창건 65돌을 맞으며 예식이 거행되었으며 어버이 수령님의 서거 3돌 중앙추모대회가 열렸다.

인류역사가 흘러 수백만년이 되고 노동자계급의 혁명운동사가 시작되어 어언 150여년의 연륜을 새기었다.

이 장구한 노정에 자기 영도자를 진심으로 받든 후계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 장군님처럼 언제나 자신을 선대수령의 전사, 제자로 간주하시며 선대수령을 변함없이 높이 받들어 모신 후계자에 대해 역사는 알지 못한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었다.

『우리는 금수산기념궁전을 주체의 최고성지로 숭엄하게 꾸리고 경애하는 김일성동지를 생존의 모습으로 정중히 모시였으며 수령님의 위대한 존함과 불멸의 업적을 빛내이기 위하여 모든 것을 다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대국상이후 장군님께서 열어놓으신 수령영생의 새 역사는 우리 조국과 민족, 인류역사에 길이 아로새겨질 가장 위대하고 성스러운 혁명실록이다.

하기에 세계 진보적인민들은 한결같이 위대한 장군님을 『역사상 처음으로 수령영생위업을 실현하신 천출위인』, 『동서고금에 없는 만년대계의 대기념비적 궁전을 일떠세운 것은 김정일장군님의 인류사적 공적』, 『인류역사는 김정일동지와 같으신 분을 위대한 영도자로 모신적이 없다.』고 높이 칭송하면서 장군님께서 계시어 수령님은 인민들의 심장속에 태양의 모습으로 영생하신다고 격정을 터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