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태양 김정일장군」(3) 중에서


 

 

  

 위대한 어버이를 잃은 조선은 그대로 눈물에 젖고 통곡에 메아리쳤다.

누구보다 크나큰 상실의 아픔과 비감을 감수하신 김정일장군님, 그이께서는 며칠째 끼니도 건느셨다. 존안은 수척해지셨다. 그런데도 장군님께서는 자신의 건강에는 아랑곳없이 인민의 아픈 마음을 쓰다듬어주시고 겨레의 신상을 보살펴주시었다.

그이께서 강원도의 깊은 산골에서 태어난 세쌍둥이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의 이야기는 수령님을 잃은 슬픔에 젖어있던 우리 인민에게 뜨거운 격정을 불러일으켰다.

7월 4일 분계연선지구의 자그마한 한 마을 군인가정에서는 세쌍둥이가 태어났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 생명이 위급하였다. 사람들은 대국상의 애도기간인지라 어찌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보고 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비애의 바다에서 세쌍둥이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한 작전을 펴시었다. 의료진과 함께 비행기를 보내어 그 삼태자를 평양산원으로 옮겨오도록 조처해주시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날부터 하늘은 먹장구름으로 덮이고 간단없이 내리는 비는 멈출 줄을 몰랐다. 비행기는 날지 못하고 평양산원의 의사들은 급히 열차로 먼저 떠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던 7월 12일 아침 실오리같은 해빛이 구름사이로 보이기 시작했다. 비행기는 그 빛을 따라 어버이수령님을 잃은 슬픔과 비애로 가득찬 하늘을 헤가르며 세쌍둥이의 마을을 향해 날아갔다.

비행기가 땅에 내렸을 때 착륙장에 모여온 인민군군인들과 가족들은 울음바다를 펼치었다. 장군님의 대해같은 그 사랑, 그 은정에 목이 메이고 가슴이 젖어왔다. 대국상속에서도 베푸시는 장군님의 은정에 의하여 세쌍둥이는 비행기에 실려 평양산원에 와서 극적으로 소생되었다. 온 나라는 그 사랑에 감동되어 또 뜨거운 눈물을 흘리었다.

인민을 귀중히 여기시고 사랑하시는 장군님의 은정은 연백벌에도 넘치게 베풀어졌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주체82(1993)년 8월 31일 황해남도 배천군 수원협동농장과 금성협동농장, 연안군 오현협동농장과 천태협동농장, 청단군 청정협동농장들을 돌아보시면서 그곳 연백지구의 농업근로자들이 당의 농업제일주의방침을 높이 받들고 주체농법의 요구대로 농사를 잘 지은데 대하여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시었다. 그리고 현지에서 농업부문 일꾼협의회를 소집하시고 황해남도의 농업을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끌어올리는데서 지침으로 되는   강령적 교시를 주시었다.

수령님께서는 이날 황해남도가 알곡생산계획을 수행해야 당이 제시한 알곡고지를 점령할 수 있다고, 농사가 잘되면 다음해 꼭 다시 오겠다고 크나큰 믿음과 은정어린 사랑을 남기고 떠나시었다.

연백지구 농민들은 농장벌에 수령님을 다시 모시고 기쁨을 드리려는 한마음을 안고 직심스레 농사를 지어 좋은 작황을 이루어놓았다. 그런데 수령님께서 이것을 보지 못하고 떠나가시었으니 그들의 슬픔은 하늘에 닿았다. 연백지구 농민들의 이 심정을 깊이 헤아리신 장군님께서는 자신을 대신하여 그들을 위로도 해주고 고무도 해주라고 하시며 주체83(1994)년 9월 5일과 6일 당과 국가의 간부들을 몸소 그곳에 보내시었다.

장군님의 그 사랑, 그 은정에 접한 연백지구 농민들은 격정을 누르지 못하며 농사를 더 잘 지어 경애하는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겠다고 한결같이 말하였다.

장군님의 자애로운 은정은 조국인민들뿐 아니라 해외동포들에게도 베풀어졌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의 서거와 관련한 조의행사에 외국대표단과 대표들을 받지 않기로 하였지만 해외동포들은 문제가 다르다고, 그들은 비록 이국에 나가 살고 있지만 조국인민들과 꼭같은 상제라고 하시며 해외동포들이 조국에 와서 어버이수령님의 영전에 조의를 표시하도록 해주시었다. 그리하여 세계 여러 지역의 동포대표단들과 수많은 동포들이 조국을 조의방문하였다.

누구보다 크나큰 상실의 아픔을 안고 계시는 장군님이시었지만 조국에 온 동포들의 생활에 각별한 관심을 돌리시었다.

그들이 어버이수령님을 잃은 슬픔으로 맥을 놓고 주저앉을세라 못내 걱정하시며 친히 만나시어 고무해주기도 하시고 역사에 없는 위로연을 베푸시어 힘과 용기를 안겨주기도 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을 잃은 비감에 젖어있는 해외동포들이 슬픔을 딛고 억세게 일어나 애국애족의 한길로 변함없이 걸어 나가도록 손잡아 이끌어주시었다.

주체83(1994)년 7월 25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국에 온 재미동포여류기자가 위대한 수령님의 서거를 애도하면서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데 대하여 헤아리시고 그에게 영화문헌 「인민을 위한 길에 언제나 함께  계셨습니다」를 보여주도록 하시었다.

그는 영화를 보고 솟구치는 격정을 금치 못하며 오래전부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위대한 주석님의 사업을 보좌해드린데 대하여 이 영화를 통해 더 잘 알게 되었다고, 장군님께서 계시기에 주석님께서는 조국의 전도에 대하여 마음을 놓으실 것이라고, 이 영화를 보도록 하여 주신데 대하여 장군님께 감사를 드린다고 하였다.

위대한 어버이를 잃은 인민의 크나큰 비애가 가시어지지 않은 주체83(1994)년 8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어버이수령님의 유훈을 지켜 재미동포 손원태선생에게 생일상을 차려주신 이야기는 지금도 만사람의 심금을 울린다.

선생은 수령님께서 옛 길림시절에 인연을 맺으신 손정도목사의 아들이며 수령님께서 동생처럼 여겨오신 친지이다.

주체80(1991)년 봄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외에서 살고 있는 그를 불러주시고 그의 생일을 한번도 차려주지 못한 것을 못내 서운해하시면서 80돌생일상만은 형님으로서 성의껏 차려주겠다고 하시며 그때 조국에 와서 생일을 쇠라고 말씀하시었다.

수령님께서는 주체83(1994)년 5월 어느날에도 일꾼들에게 손원태선생의 80돌 생일상을 잘 차려주자고 이르시면서 그의 생일에 선물하실 대형보석화 「송학」을 마련해놓으시었다. 그러시던 수령님께서 너무도 갑자기 서거하셨다는 비보를 받고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손원태선생은 줄곧 흐르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며 조국으로 왔다.

7월 17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의식장에서 호상을 서시다가 그를 맞아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수령님을 뵈옵고 어깨를 들먹이는 그를 위로해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선생님, 멀리 타향에서 수고로이 와주어 고맙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생전에 선생님의 80돌생일을 크게 쇠드리겠다고 하시었는데 참으로 안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제 집처럼 드나들어야 합니다. 저는 수령님의 친지들을 항상 잊지 않겠습니다.』

어버이수령님을 잃은 슬픔과 비애로 하여 본인도 해당일꾼들도 생일문제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수령님의 은정그대로 손원태선생의 생일상을 차려주시려는 것이 아닌가. 손원태선생은 자기 귀를 의심하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생일날이 다가오자 모든 성의를 다해 생일준비를 잘하도록 관심하시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손원태선생은 대국상의 슬픔이 드리워있는 때에 생일잔치를 치른다는 것은 도리에도 어긋나므로 생일을 쇠지 않겠다고 거듭 사양하였다.

하지만 장군님께서는 손원태선생의 80돌생일을 차려주는 것은 수령님의 생전의 뜻이었다고 하시며 8월 11일 그의 생일날 이른아침 해당 일꾼들을 그에게 보내시어 자신의 명의로 된 꽃바구니와 대형과일바구니 그리고 그와 부인에게 대를 두고 길이 전할 선물을 전달하고 생일을 축하하는 인사도 전해주게 하시었다. 그날 저녁에는 수령님께서 생전에 손원태선생의 생일에 즈음하여 마련해놓으신 선물 대형보석화 「송학」을 전달하게 하시고 목란관에서 생일을 축하하는 연회도 차려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계시어 어버이수령님의 생전의 사랑이 그대로 뜨겁게 이어지고있음을 절감한 손원태선생은 생일상을 받고 자기의 심정을 이렇게 터치였다.

『참으로 친애하는 김정일선생님은 그대로 경애하는 김일성주석이시며 백의민족의 위대한 태양이십니다.

김일성주석께서는 비록 너무도 애석하게 우리의 곁을 떠나시었지만 우리 7천만 백의민족에게 수령님의 위업을 빛나게 이어가시며 우리모두를 사랑의 한품에 안아주시는 친애하는 김정일지도자분께서 계십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온 나라가 비애의 바다에 잠겨있을 때에 호상을 서시는 조의장에서 손원태선생에게 수령님의 은정을 되살려주셨으며 생일상을 차려주신 이런 이야기는 정녕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위대한 사랑의 전설이다.

위대한 장군님의 뜨거운 은정을 젖줄기로 하여 우리 인민과 온 겨레는 대국상의 슬픔을 천백배의 힘과 용기로 바꾸어 부강조국건설과 나라의 통일을 위한 애국의 길을 굳세게 걸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