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태양 김정일장군」(3) 중에서


 

   

 

 우리 인민은 망극지통의 슬픔속에서도 절망과 허탈에 빠져있지 않았다. 슬픔을 힘과 용기로 바꾸어 비애의 땅을 차고 일어났다.

세상사람들이 영영 주저앉으리라고 보던 조선인민이 통절한 비애속에서도 분연히 일어나는 그 무한한 힘과 용기는 과연 어디에서 생긴 것인가. 망망대해에서 구제의 항로를 마중가는 풍랑피해자의 힘과 용기는 대망의 푸른 하늘과 잇닿아 있는 법이다.

저 하늘의 해님과 같이 우리 인민이 믿고 따르던 김일성주석과 꼭같으신 김정일장군님께서 주체태양의 웅자로 온 나라 인민에게 다시 일어날 힘을 주시고 무비의 용기를 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이미 7월 8일 아침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비상회의 참가자모두를 데리고 수령님을 모신 방으로 갔을 때었다. 너무도 절통한 현실앞에서 가슴을 치며 대성통곡하는 그들에게 장군님께서는 북받치는 통분을 누르며 갈리신 음성으로 이러지 말라고, 슬픔을 힘과 용기로 바꾸자고 하시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특히 인민군지휘성원들이 비감에 잠겨만 있지 말고 자기의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도록 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뜻밖에 서거하시었다는 비보가 온 나라에 전해진 직후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안의 책임일꾼들에게 지금 전체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이 크나큰 슬픔에 몸부림치고 있을 때에 인민군지휘성원들이  수령의 군대, 당의 군대로서의 숭고한 본분과 책임감을 깊이 명심하고 슬픔을 힘과 용기로 바꾸어 부대지휘를 비롯한 직책상 임무를 더 잘 수행해 나가야 한다고 간곡히 이르시었다.

그즈음 수령님의 서거비보에 너무도 큰 충격을 받고 정신을 잃은채 사무실에 쓰러졌던 인민무력부의 한 책임 일꾼은 장군님께서 걸어주신 전화를 받고서야 정신을 가다듬고 일어섰다. 일꾼이 얼마간 마음을 진정하자 그이께서는 수령님께서 병석에 계시며 나의 정성을 조금이라도 받다가 돌아가시었어도 내 마음이 이렇게까지 아프지는 않을 것이라고, 수령님께서 너무도 갑자기 돌아가신 것을 생각하면 절통하기 그지없다고 갈리신 음성으로 말씀하시었다. 목이 메어오시는 듯 잠시 말씀을 끊으시었던 그이께서는 그렇다고 하여 눈물만 흘리고 있어서도 안된다고 하시며 수령님을 잃은 상실의 아픔을 완강히 이겨내야 한다고 이르시었다. 그이께서는 혁명의 제일 어려운 고비는 수령을 잃었을 때이라고, 지난 역사는 노동자계급의 탁월한 수령을 잃었을 때 흔히 사람들속에서 동요가 일어나고 대열안에 숨어있던 야심가, 음모가들이 나타나 당의 영도권과 군권을 탈취하려고 책동하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금이야말로 충신과 간신, 혁명과 반혁명을 똑똑히 갈라보아야 할 때이라고 심각히 말씀하시었다. 그 말씀은 천근만근의 무게로 일꾼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이께서는 계속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돌아가시었다고 하여 절대로 맥을 놓아서는 안된다고, 맥을 놓고 주저앉으면 좋아할 것은 적들밖에 없다고 하시면서 수령님을 잃은 대상실의 아픔을 강한 의지로 이겨내고 사업을 더 적극적으로 벌여 나가야 한다고 간곡히 가르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어버이수령님을 잃은 상실의 아픔을 강한 의지로 이겨내고 사업을 더 적극적으로 벌여 나가야 하겠다고 거듭 강조하고 전화를 마치시었다.

사실 역사는 수령이 서거하였을 때 혁명군대가 자기의 성격과 지위를 고수하지 못하면 반혁명의 농락물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대오안에 숨어있던 음모가, 야심가들은 수령이 서거한 기회를 이용하여 혁명군대의 성격과 지위를 모호하게 만들고 자기의 더러운 정치적 야심을 달성하기 위해 온갖 비렬한 책동을 다하였던 것이다. 이전 소련시기에 누구보다 『스탈린 만세!』를 많이 웨쳤던 흐르쵸프는 스탈린이 서거한 후 음모적 방법으로 당과 국가의 최고지위를 차지하고 선대수령을 「횡포한 독재자」, 「폭꾼」으로 헐뜯으며 「개인미신」의 간판을 내들고 그의 업적을 전면부정하였다. 그 궤변과 음모에 속은 소련군대는 자기의 혁명적 성격과 지위를 고수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자기들을 키워주고 승리에로 이끌어준 최고사령관이었던 스탈린의 시신마저 지키지 못하는 허수아비군대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의 교훈을 되새겨보는 인민군장병들은 장군님의 숭고한 뜻, 간곡한 가르치심을 받들고 피눈물을 삼키며 일떠섰다.

전체 인민군부대들에서 슬픔을 힘과 용기로 바꾸어 나갈 불같은 맹세를 담은 조문들을 연이어 국가장의위원회 앞으로 보내어왔다. 수많은 부대와 구분대, 개별적 지휘관들, 군인들이 경애하는 장군님께 충정의 결의를 담은 맹세문과 결의문, 편지를 올리였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인민군장병들뿐 아니라 일꾼들과 인민들이 슬픔을 힘과 용기로 바꾸어 분연히 일떠서도록 하시었다.

주체83(1994)년 7월 13일, 장군님께서는 비애에 잠겨있는 당중앙위원회 정치국위원들에게 지금 우리 인민들이 흘리고 있는 눈물은 수령님을 잃은 슬픔의 눈물만이 아니라  수령님의 생전의 뜻대로 당의 영도를 더욱 충성으로 받들어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할 굳은 신념과 맹세의 눈물이기도 하다고 하시면서 일꾼들이 수령님께서 생존해 계실 때보다 마력을 더 내어 일하여야 한다고 간곡히 말씀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7월 18일에도 중앙기관의 당, 행정, 경제일꾼들에게 수령님께서 7월 6일 경제부문 책임일꾼협의회에서 하신 교시를 녹음으로 전달해주어 수령님을 잃고 슬픔에 잠겨있는 일꾼들이 수령님의 교시를 육성으로 듣고 용기를 내어 분발하도록 하시었다.

한편 장군님께서는 『슬픔을 힘으로 바꾸자』라는 글을 출판물들에 내보내어 인민들이 수령님의 생전의 뜻을 실현하고 수령님의 혁명업적을 빛내이려는 한마음을 안고 떨쳐 나서도록 하시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전체 인민이 뜻밖의 비보에 접하여 절통한 애도속에 싸여있을 때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혁명사상으로 더욱 철저히 무장하자!』라는 구호를 제시하시어 그들에게 수령영생에 대한 신념의 기치, 다시 일어날 힘과 용기의 자양을 안겨주시었다. 그리고 환히 웃으시는 태양상을 모시게 하시어 낙천적 으로 살아오신 수령님의 혁명적 낙관의 넋을 뜨겁게 간직하게 하시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우리 인민이 수령님의 유훈을 지켜 당의 위업에 끝까지 충실하려는 신념과 의지를 반영하여 새로 창작한 노래 『우리는 맹세한다』를 힘차게 부르도록 조치를 취해주신 것도 온 나라 인민이 대국상의 슬픔에서 일어나 수령님의 유훈관철을 위한 투쟁에 분연히 떨쳐 나서도록 하시기 위해서였다.

    맹세한다 우리는 수령의 유훈 지켜

    더 굳게 다져가리라 불패의 당을

    (후렴)  천백배로 뭉치여 나아가는 우리

           위대한 당의 영도를 끝까지 받들리

    

    맹세한다 우리는  수령의 유훈 지켜

    더 부강하게 하리라 내 나라 내 조국을

    (후렴)

  

    맹세한다 우리는 수령의 유훈 지켜

    총대로 옹위하리라 주체의 위업을

    (후렴)

만사람의 가슴을 쿵쿵 울려주는 신념의 노래 『우리는 맹세한다』, 그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영전에서 다지는 군민의 맹세의 합창이고 경애하는 장군님의 영도따라 내 나라, 내 조국을 더 부강하게 하리라는 군민의 철석의 의지의 외침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수령님을 그리워하고 당을 따르는 우리 군민의 순결한 마음에서 깊은 감동을 받으시었다.

애도의 날과 날이 흐르던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시내를 돌아보시면서 만수대동상쪽에 가시었다. 밤이 깊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비가 퍼붓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령님의 동상을 찾아 애도의 뜻을 표시하고 있었다. 그들가운데는 수령님의 동상에 화환을 드리려고 차례를 기다리는 댓명의 청년학생들도 있었다. 그들은 온몸이 비에 흠뻑 젖으면서도 웃옷을 벗어 화환에 씌워 비에  젖지 않게 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커다란 격정속에 그 광경을 한참동안 보시면서 청년대학생들의 소행이 너무도 기특하여 눈물을 흘리시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새 세대 청년들이 이렇게 기특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더욱 격해지는 심정을 어쩔 수 없으시었던 것이다.

그 이튿날 장군님께서는 일꾼들에게 그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우리 인민은 자기 수령을 흠모하고 받드는 사상감정과 정신도덕적 풍모가 세계 그 어느 나라 인민들과도 대비할 수 없이 고상한 인민이다, 우리 인민은 수령복을 타고났지만 우리 간부들은 인민복을 타고났다, 수령님께서는 인민들을 교양하시어 수령을 알고 당을 아는 훌륭한 인민으로 키우시었다, 우리는 이에 대하여 영원히 크나큰 긍지로 간직하여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그때로부터 여러해가 지난 어느날 장군님께서는 그때의 청년학생들에 대하여 다시 회고하시면서 수령님께서 서거하셨을 때 만수대언덕에서 화환이 젖을가봐 그 위에 옷을 펴들고 있던 대학생들도 이제는 어른이 되어 아이가 있는 아버지, 어머니가 되었을 것이라고 감회깊이 말씀하시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 감회깊은 회억의 주인공들의 소행을 목격하셨던 날로부터 며칠이 지난 7월 21일, 만수대언덕을 다시 찾으셨다. 그때가 새벽이었는데도 이 언덕에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그치지 않고 있었다. 그것을 보신 장군님께서는 이런 훌륭한 인민이 있는 한 우리는 그 어떤 불행도 반드시 이겨내고 주체혁명위업을 빛나게 이어갈수 있다고 확신하시었다.

위대한 장군님의 이런 크나큰 믿음은 우리 인민들에게 당과 혁명에 대한 충정의 마음을 더욱 굳게 간직하도록 하여주는 정신적 원천으로 되었고 수령님의 유훈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에 힘차게 떨쳐 나서도록 고무추동하는 기치로, 활력소로 되었다.

우리 인민에 대한 위대한 장군님의 철석같은 믿음과 높은 평가는 그이께서 주체83(1994)년 10월 28일, 위대한 수령님의 서거에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시하여준 전체 인민들에게 보내신 감사문에 그대로 담겨져 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감사문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서거하시었다는 뜻하지 않은 비보에 접한 전체 조선인민은 비통한 심정을 누르지 못하여 형언할 수 없는 슬픔에 잠겨 몸부림쳤으며 모두가 상제가 되어 가장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시하였다고, 자신께서는 비오는 날이나 깊은 밤이나를 가리지 않고 수도의 만수대언덕을 비롯하여 온 나라의 유서깊은 곳들에 높이 모셔진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을 찾아 물결처럼 끝없이 흐르는 인민들의 조의행렬을 보면서 우리 인민은 참으로 위대하고 훌륭한 인민이며 우리는 인민복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더욱 뜨겁게 느끼었다고 지적하시었다. 그러시면서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나는 경애하는 김일성동지의 서거에 그처럼 심심한 애도의 정을 표시하였으며 수령님을 잃은 비분을 이겨내고 수령님의 유훈을 충직하게 실현해 나가려는 확고한 결의에 넘쳐있는 우리의 영웅적 노동자계급과 협동농민, 인민군장병들과 지식인들, 청년학생들을 비롯한 전체 인민들, 남조선인민들과 해외동포들에게 뜨거운 감사를 드린다고 하시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었다.

『나는 전체 인민들이 경애하는 수령님을 잃은 슬픔을 천백배의 힘과 용기로 바꾸어 수령님께서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그처럼 크나큰 노고와 심혈을 기울이신 주체의 혁명위업을 빛나게 완성하기 위하여 더욱 힘차게 투쟁해 나갈 것을 바랍니다.』

끝없는 믿음과 기대, 과분한 평가가 어리어있는 감사문은 우리 인민이 대국상의 슬픔을 천백배의 힘과 용기로 바꾸어 나가게 하는 추동력으로 되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 이후에도 우리 인민에게 높은 평가와 감사를 계속 주시었다. 장군님께서 온 나라의 군민이 올리는 충정의 편지와 그들의 애국적 소행을 보고드린 문건을 보시고 친필회답서한과 감사를 보내주시어 우리 인민에게 승리의 신심과 고무를 주신 이야기는 끝이 없다.

우리 군대와 인민이 선군영도의 길을 끊임없이 이어가시는 장군님의 건강과 안녕을 걱정하고 자기들의 충정의 결의를 담은 소박한 편지를 올리면 그이께서는 그 분망한속에서도 그것을 다 보아주시고 친히 회답서한을 보내주시었다.

오늘에도 계속되고 있지만 친필회답서한의 대상에는 나어린 유치원꼬마로부터 항일의 노혁명투사들과 그 가족들, 군인, 노동자, 농민으로부터 과학자, 기술자, 예술인, 행정, 경제, 당일꾼에 이르기까지 온 나라의 각계각층, 각 부문, 각 분야를 다 포괄하고 있었다.

친필회답서한에는 『대단히 훌륭한 현상입니다. 연대정치위원에게 최고사령관의 특별감사를 줄 것입니다. 전군적으로 크게 떠들어야 하겠습니다. 인민군대는 바로 이러한 풍모를 갖추는 것이 위대한 수령님의 생전의 의도였습니다.』, 『훌륭한 생각입니다』, 『좋은 소식 알려주어 반갑습니다』, 『좋은 동무요.』, 『기특한 어린이들이요』, 『조선의 믿음직한 역꾼이 되기를 바랍니다』, 『훌륭한 조선의 딸이 되기를 바랍니다.』 등 믿음과 고무격려가 어린 영광의 글발들로 빛나고 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각계각층 인민들에게 보내주신 친필회답서한은 전체 조선인민뿐 아니라 세상사람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네데를란드의 이름난 아동심리학자 요리스 쉔데르한스는 「김정일영도자와 조선의 아이들이 나누는 대화」라는 제목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위인들과 명사들은 누구나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미덕중의 미덕으로 간주하여 왔다.

그러나 이 행성의 그 어느 위인이나 명사도 김정일영도자의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따르지 못한다. 그것은 김정일영도자와 조선의 아이들이 주고받는 편지를 놓고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지구상에 편지가 생긴 후 수많은 일화들이 기록되어왔지만 한 나라 영도자가 아이들로부터 편지를 받고 일일이 회답을 써 보낸 이야기는 아직 없다. 아이들로부터 아버지라 불리우며 허물없는 편지를 받으시는 분은 오직 김정일영도자뿐 이신줄로 안다. 아이들로부터 받으시는 편지, 아이들에게 보내시는 편지, 여기에 아이들에게 베푸시는 그이의 세상에서 제일가는 사랑이 집적되어있다.』

군대와 인민은 대국상의 슬픔을 힘과 용기로 바꾸어 위대한 수령님의 유훈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에 결연히 떨쳐 나섰다.

혁명의 총대가 서리발같은 총창을 비껴 들고 일떠섰다.

인민무력부의 책임일꾼들과 조선인민군 육해공군장병들은 중앙추도대회가 있은 다음날인 7월 21일에는 만수대언덕에 모셔진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앞에서 그리고 전승기념일인 7월 27일에는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 중심주제 「승리」상앞에서 수령님의 유훈을 지켜 최고사령관 김정일장군님의 영도를 앞장서 받들어 나갈 것을 맹세다지는 결의모임을 진행하였다.

7월 20일 중앙추도대회, 10월 16일 100일중앙추모회를 계기로 온 나라의 모든 단위들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신념과 의지의 결의모임, 궐기모임들이 진행되었다.

슬픔을 천백배의 힘과 용기로 바꾸어 전국의 탄부들과 용해공들, 전력생산자들과 수송전사들, 농업근로자들이 일떠섰다.

창화력발전연합기업소의 노동자계급을 비롯하여 전력생산자들은 수령님의 생전의 뜻을 받들어 더 많은 전력을 생산하는 것으로 경애하는 장군님의 영도를 받들기 위한 투쟁에 떨쳐나 이해의 가장 높은 전력생산수준을 돌파했다. 안주지구탄광연합기업소, 순천지구탄광연합기업소를 비롯한 각지 탄부들도 앞을 다투어 막장으로 달려가 꽝꽝 석탄을 캐냈다.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이 깃들어있는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 성진제강연합기업소를 비롯하여 각지의 공장, 기업소들에서 우람찬 증산의 동음이 울려 퍼졌다.

분계연선의 연백벌로부터 조국의 북변 두만강기슭에 이르기까지 수령님께서 바쳐오신 헌신의 결실인양 좋은 작황이 마련되었다.

167만여명의 청년들이 최고사령관 김정일장군님을 무장으로 옹위할 불같은 마음을 안고 인민군대 입대와 복대를 탄원하였다.

한평생 인민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오신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숭고한 도덕의리심을 지니고 18살나이의 고려봉사관리국 종합상점 판매원이 어버이수령님의 현지지도의 거룩한 자욱이 어려있는 온천군 금당협동농장에 진출하여 영원히 뿌리 내릴 것을 결의해 나선데 이어 근 3만명의 청장년들과 근로자들, 제대군인들이 사회주의농촌으로, 어렵고 힘든 부문으로 적극 탄원해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