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태양
김정일장군」(3) 중에서


 

   

 

 사람들에게는 운명을 의탁할 마음의 기둥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절실하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운명의 태양으로 모시고 의거하여 오신 어버이수령님을 갑자기 잃으셨으니 이제 어디에 의거하실 것인가. 세계는 여기에 관심을 모으고 장군님의  발걸음 한자욱, 말씀 한마디 놓칠세라 주목하고 있었다.

그러한 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에 의거하여 모진 슬픔을 이겨내시었으며 인민군대를 기둥으로 삼고 모든 활동을 벌리시었다.

장군님께서 대국상을 당하시고 먼저 찾으신 사람들도 인민군지휘일꾼들이었다. 수령님께서 심장의 고동을 멈추신지 1시간정도 지난 7월 8일 새벽 3시 5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전화로 인민무력부장을 찾으시었다. 그는 그때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에 나가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전화기를 곧 도로 놓으시었다. 10대의 소년기로부터 위대한 수령님을 하늘처럼 믿고 이날이때까지 살아온 그가 이 단장의 비보를 받으면 혼절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시었던 것이다.

장군님께서 얼마후 그를 다시 찾으셨을 때 그는 무슨 일이 생긴 것으로 판단하고 평양으로 급히 올라오고 있었다. 장군님께서는 그가 도착하는 즉시 금수산의사당으로 오도록 조치를 취하시었다. 그리고 인민군총참모장도 부르시었다.

장군님께서 인민무력부 책임일꾼들을 부르신 것은 그들과 슬픔도 함께 나누시고 앞으로의 일을 상론하시기 위해서였다. 그이께서는 수령님의 영전을 지켜 밤을 새우시면서 모든 것을 인민군대에 전적으로 맡기기로 결심하시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느날 인민무력부의 책임일꾼들에게 인민군대는 수령님께서 창건하시고 영도하여 오신 수령님의 군대, 당의 군대이다, 그러므로 나는 수령님의 영구두리에 조선인민군 육해공군 군기도 세우고 무장호위도 군대가 하도록 조직하였다, 수령님을 추모하는 애도기간에 진행하는 모든 행사에서 인민군대가 주인이 되어야 하겠다고 절절히 말씀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이미 인민무력부 책임일꾼들과 조선인민군 육해공군 명예위병대 대장을 부르시어 어버이수령님의 영구를 호위할 임무를 명예위병대에 주시었으며 조의식장에 조선인민군 군기와 육해공군기를 세울 과업도 주시었었다. 이것은 인민군대에 대한 특별한 믿음의 표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의식과 영결식을 비롯한 애도행사들을 인민군대가 주최하되 철저히 우리 식으로 하도록 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미 7월 8일 인민무력부 책임일꾼들이 참가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비상회의에서 위대한 수령님을 안치하고 조의식을 거행할 장소문제에 대하여 가르치심을 주신바 있다.

그때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을 우리 나라에서 제일 큰 4.25문화회관이나 수도의 중심부인 인민문화궁전에 안치하고 조의식을 하자는 의견들을 다 들으시고 나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내 생각에는 어버이수령님을 금수산의사당에 안치하고 인민들이 금수산의사당에 와서 조의를 표시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금수산의사당은 수령님께서 근 20년간 집무를 보시던 곳이므로 여기에 모셔야 의의가 있습니다.』

장군님의 뜨거운 충정이 담긴 말씀에 일꾼들은 모두 경의를 드리며 한결같이 찬동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의행사도 전례나 관례에 구애되지 않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7월 11일 조의행사준비정형을 요해하시면서 추도곡에 관심하시었다. 그이께서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군악단이 준비한 「빨치산 추도가」를 연주하지 말고 자신께서 알고 있는 「빨치산 추도가」를 연주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시었다. 그런데 군악단지휘성원들이 그 추도곡의 정확한 선율표상을 가지고 있지 못하였다. 그래서 장군님께서는 어리셨을 때 수령님께서 손수 풍금을 타시면서 배워주신 「빨치산 추도가」의 한절을 친히 그들에게 불러주시었다. 그리고 군악단성원들이 장군님께서 부르신 곡을 채보하여 편곡형상한 것을 들어보시고 그대로 조의식 추도곡으로 하도록 하시었다. 그러시고는 조의식 흐름에 맞게 어느때에는 묵상곡을 연주하고 어느 때에는 추도곡을 연주해야 한다고 하시며 행사흐름에 따라 연주할 곡의 순위까지 자상히 가르쳐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또한 영결식에 모실 수령님의 초상화를 준비하는데 심혈을 기울이시었다. 다른 나라의 경우를 보면 영결식에서 이미 있던 고인의 초상그림이나 사진을 들고 나가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언제나 승리를 낙관하시며 낙천적으로 살아오신 수령님의 영상을 영결식에 모실 결심을 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친히 들고 오신 여러권의 사진첩을 펼쳐 보이시며 『내가 수령님의 사진들을 보았는데 영결식에 모시고  나갈 초상화는 환히 웃으시는 수령님의 영상으로 선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하시었다.

일꾼들은 의아심을 금치 못했다. 지금까지 고인과의 영결식에 웃는 모습의 사진을 모셨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그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어버이수령님께서 우리 인민들과 영결하시면서 웃으며 가시도록 하시어 인민들의 가슴속에 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신념을 더 깊이 새겨주시려는 장군님의 절절한 심정에 감복되어 뜨거운 것을 삼키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사진첩에 있는 개통된 서해갑문을 부감하시면서 환히 웃으시는 한 사진을 원본으로 하여 수령님의 초상화를 잘 그리도록 하시었다.

7월 14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새로 형상한 수령님의 초상화를 보아주시었다. 초상화에서는 한평생 만단역정을 낙관적으로 헤치시며 백승을 떨쳐오신 수령님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고 우리 인민에게 만복을 안겨주신 수령님의 자애로운 덕화가 넘쳐흐르는 듯 하였다.

수령님의 초상화를 이윽토록 바라보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령님께서 생존해 계실 때의 모습그대로 환하게 웃으시는 인상이 강하게 안겨온다고 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수령님의 초상화를 더 잘 형상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수령님께서 생전에 애용하시던 넥타이까지 보내주시었다. 그리고  초상화의 액틀도 세계적인 전례를 깨뜨려 우리 나라 국화인 목란꽃으로 장식하도록 하시었다.

사람들이 「태양상」으로 부르는 환하게 웃으시는 수령님의 초상화는 이렇게 경애하는 장군님의 숭고한 충정에 의하여 모셔지게 되었다.

태양상을 모신 영결식에서는 사람들의 경의와 눈물을 더욱 뜨겁게 자아냈다. 한평생 고생이란 고생은 다 도맡아 겪으시고 인민들에게는 행복만을 안겨주신 수령님께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시면서도 웃으시며 가시니 그것이 너무도 섧고 통분하여 사람들의 가슴은 미어지는 듯 더 아프고 만민의 곡성은 더 구천에 사무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영결식날은 오직 한분 위대한 수령님만이 웃으시고 수백만 평양시민들과 온 나라 인민들이 더 슬피 울고 온 세계가 더 슬피 통곡하는 날로 되었다. 사람들은 수령님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장군님의 충정과 비범한 예지에 더욱 경탄을 금치못해 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영결행사의 예식도 다른 나라에서처럼 영구를 포차나 장갑차가 아니라 어버이수령님께서 생존시에 타고 다니시던 승용차에 모시도록 하시었다. 그리고 영결식때 영구차행렬에 밝고 환히 웃으시는 수령님의  대형초상화를 모시는 조건에서 추도곡이 아니라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연주할데 대하여, 노래는 중음과 저음을 기본으로 하여 폭이 넓고 장중하게, 리듬은 부드러우면서도 좀 느리게 편곡할 데 대하여 가르치심을 주시었다. 또한 영결식장에 조선인민군 육해공군 의장대 및 군기종대가 정렬해있으며 위대한 수령님의 영구에 육해공군 명예위병대 대장이 영결보고를 드리도록 하시었다. 영결식의 노정도 다른 나라에서처럼 직접 묘나 능으로 직행하도록 정할 것이 아니라 모든 평양시민들이 곳곳에서 어버이수령님과 영결할 수 있게 시내기본도로들을 다 돌도록 길게 정하고 영구차의 속도도 천천히 놓도록 하시었다. 그리고 수령님의 영구차가 금수산의사당으로 돌아오면 조선인민군 육해공군 의장대 및 군기종대가 「영접들어총!」자세를 취하고 명예위병대 대장이 수령님의 영구에 영결보고를 드리도록 하시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을 영접하기 위하여 조선인민군 육해공군 의장대 및 군기종대는 엄숙히 정렬하였습니다.』

역사의 그 어느 갈피에도 없는 명예위병대 대장의 이 영결보고는 그대로 수령님을 맞이하는 영접보고로서 어버이수령님께서 인민의 다함없는 흠모속에 영생하고 계심을 보여주는 숭고한 화폭이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애도기간의 행사들뿐 아니라 수령님을 영생의 모습으로 모시는 사업, 수령님의 유훈을 관철하는 사업 등 모든 사업을 인민군대를 기둥으로 하여 그에 의거하여 조직전개하시었다.

인민군대에 의거하여 국상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처리해 나가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혁명영도의 근저에는 주체위업수행에서 인민군대의 지위와 역할을 새로운 높이에 올려 세우시려는 중대한 의도가 놓여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1960년대말, 1970년대초  어버이수령님으로부터 군대사업을 직접 맡아 지도할 데 대한 과업을 받아 안으시고 군사중시, 군사선행의 원칙에서 선군정치를 실현해오시는 과정에 인민군대에 의거하여 주체위업을 전진시키고 완성하실 결심을 더욱 굳게 다지시었다.

장군님께서는 그 의지와 결심을 어버이수령님을 잃은 피눈물의 언덕에서 더욱 굳히시고 결연히 천명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절통한 조의기간인 주체 83(1994)년 7월 13일 인민무력부 책임일꾼들을 부르시어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인민군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개척하시고 영도하여 오신 조선혁명위업완성에서 주력군이 되어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의 시작도 군대를 가지고 하시었으며 사회주의위업의 종국적 완성과 승리도 군대를 가지고 이룩하려고 하시었습니다.』

위대한 장군님의 이 말씀은 조선혁명의 주력군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 선언이었다. 군대를 가지고 혁명위업을 수행하여 오신 어버이수령님의 혁명영도에 대한 역사적 총화와 위대한 장군님께서 선군영도를 실현하여 오신 실천적 경험에 기초한 이 새로운 선언을 받아 안은 인민무력부 책임일꾼들의 가슴은 숭엄한 감정에 휩싸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들에게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에서는 인민군대를 수령님의 혁명위업완성의 주력군으로 튼튼히 준비시키기 위한 정치사상교양사업을 일층 강화하여야 하겠다고 이르시었다. 그러시면서 인민군대는 수령님께서 생존해 계실 때 『김일성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당중앙위원회를 목숨으로 사수하자!』라는 구호를 높이 들고 당과 수령을 옹호보위한 것처럼 앞으로도 당을 보위하고 수령님의 혁명위업을 보위하는데서 성새가 되고 방패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시었다.

크나큰 신임과 기대를 담아 인민군대의 숭고한 사명과 임무에 대하여 새롭게 밝혀주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말씀을 받아 안는 인민군지휘성원들의 가슴은 마냥 뜨거워 났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후에도 인민군지휘성원들에게 인민군대는 혁명의 주력군이고 기둥이라고 하시면서 총대를 굳게 믿고 그에 의거하여 주체위업의 최후승리를 기어이 이룩하시고야말 신념과 의지를 다시금 천명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지금 어떤 사람들은 생활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겉만 보고 이렇소, 저렇소 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우리가 왜 노동자계급보다 인민군대를 더 앞에 내세우는가 하는 것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며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이 투철하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하시면서 『인민군대만 강하면 천하대적이 덤벼들고 그 어떤 천지풍파가 닥쳐와도 두려울 것이 없으며 조만간에 김일성민족이 사는 내 나라, 내 조국을 이 세상에서 가장 부강하고 살기 좋은 강성대국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라고 힘주어 말씀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신념과 의지로부터 역사상 처음으로 인민군대를 주력군으로 내세워 혁명영도를 실현하는 새 역사를 창조하시었다.